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67화 (167/250)

167.

167.

“차갑게!”

이번엔 아란의 다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아란은 차가운 기운이 담긴 다리로 자신이 찼던 쇠사슬들을 한 번 더 걷어찼다. 그러자 급격한 온도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쇠사슬이 모두 폭발하듯 깨졌다.

“쇠사슬도 못 버티는 온도차를 쟤 다리는 어떻게 견디는 거야?”

이신지가 꽤 합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의 기술이 깨졌단 사실보다 아란의 다리가 멀쩡하단 점에 더 경악스러워했다.

아란은 바닥에 착지해서 대답했다.

“수련하면 돼요.”

“헛소리!”

이신지는 화를 내면서 한 번 더 바닥에서 쇠사슬들을 뽑아냈다.

수십 개의 쇠사슬은 아란의 다리를 피해 그녀의 상체를 묶었다.

“아란 양!”

나와 루호는 아란을 구하기 위해 뛰었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하기 전에 아란의 몸은 천장까지 높이 올라갔다.

“떨어져라!”

이신지는 쇠사슬에 묶인 아란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아란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그때 아란에게 정신이 팔린 이신지의 등에 바위 인간 마바일이 주먹을 꽂았다.

“크윽!”

이신지도 입에서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10팀. 마바일(18), 적지형(40)] 7점

폭발대제한테 1위를 뺏겼다!

이신지가 쓰러지자 어금니의 남은 인원들이 마바일을 노렸다.

“받아라!”

최강지의 털침, 김대팔과 조력자의 광탄이 마바일에게 쏟아졌다.

“크윽!”

마바일이 세 사람의 공격을 버티는 사이 갑자기 슈퍼타이거의 김목록과 추보영이 달려와 그를 공격했다.

“으아아악!”

마바일의 바위 몸체가 김목록의 뿔에 관통당하고, 표범으로 변한 추보영의 발톱에 표면이 긁혔다.

“지금이다!”

나와 루호도 거기에 동참.

광탄과 광권으로 마바일을 공격했다.

“하아아앗!”

거대한 폭발과 함께 마바일의 몸이 부서졌다.

조각조각 박살 난 바위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서, 설마 죽은 건가?”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이놈들!”

수백, 수천 개의 돌멩이에서 마바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돌멩이들은 자신을 공격한 이들뿐만 아니라 필드에 있는 모든 헌터들에게 날아들었다.

“으악!”

사방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에 다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난 능력발현으로 슈트를 입으며 루호에게 말했다.

“변신해!”

“넵!”

루호도 거대한 사슴으로 변하며 위용을 드러냈다. 난 루호 위에 올라탔다.

“이제 몇 명 안 남았어! 돌격!”

타임어택!

10분 안에 한 명이라도 쓰러뜨려야 했다.

루호는 서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날뛰었고 헌터들은 돌멩이 세례와 흰 사슴의 습격에 다들 비명을 질러 댔다.

“으아아악!”

[11팀. 조루호(75), 김상팔(100)] 7점

따라잡았다! 그러나 마바일과 적지형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이런 개판에선 저 둘의 능력이 참 사기적이었다.

마바일은 돌멩이, 적지형은 모래가 되어 우리 이상으로 필드를 휩쓸었다.

[10팀. 마바일(18), 적지형(40)] 10점

흰 사슴으로 변한 루호의 털가죽에 마바일의 돌멩이는 무용지물, 적지형의 모래는 내가 무차별 폭격으로 견제했다.

“받아라!”

난 광탄, 무광탄, 시한 무광탄을 만들어서 빠르게 쐈다. 급히 만든 것이라 위력은 평소보다 약해도 지금과 같은 혼란에선 충분했다.

[11팀. 조루호(75), 김상팔(100)] 10점

폭발대제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피하며 대신 다른 팀들만 골라서 공격하고 있었다.

“하하하!”

[10팀. 마바일(18), 적지형(40)] 11점

남은 사람은 어금니의 김대팔. 슈퍼타이거의 추보영. 그리고 폭발대제와 우리뿐이었다.

“남은 시간 1분!”

그때 김대팔이 스스로 우리에게 달려왔다.

“상팔 씨!”

김대팔을 본 마바일과 적지형은 한데 섞여서 파도처럼 그를 덮쳤다. 그러나 그는 능력발동만으로 그걸 뚫고 뛰어올라 기어이 우리 앞까지 달려왔다.

“상팔 씨!”

철가면의 눈구멍으로 보인 파란 눈동자는 아주 강한 눈빛으로 나에게 호소했다.

난 그의 호의를 배신할 수 없기에 특별히 무광권으로 그의 복부를 때렸다.

“크아아악!”

김대팔은 천장까지 날아가서 부딪친 다음 바닥으로 추락했다.

“시합 종료!”

이서현의 선언과 함께 알람이 울렸다.

“승부는?”

[07팀. 추보영(23)] 1점

[10팀. 마바일(18), 적지형(40)] 11점

[11팀. 조루호(75), 김상팔(100)] 11점

“동점?”

유리 돔이 열리고 직원들이 들어와 또 부상자를 옮겼다. 그리고 남은 생존자도 직원을 따라 치료실로 이동했다.

“쳇!”

마바일과 적지형은 흩어져 있던 잔해를 모아 원래의 인간 형상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겉으론 멀쩡해 보였지만 제대로 걷지 못해서 직원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우리는 치료를 받는 동안 심판의 결정을 기다렸다.

“내 400억……!”

부들부들 몸이 떨렸다.

“팀장님!”

문을 열고 아란이 들어왔다. 다행히 아란의 상처도 대부분 치유되어 있었다.

“아란 양! 괜찮아요?”

“네.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그게…….”

때마침 문이 열리고 이서현이 치료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우리와 폭발대제를 불러다 놓고 조심스레 말했다.

“심판석에서 회의를 진행한 결과, 이번 2위 쟁탈전은…….”

꿀꺽.

모두가 침을 삼키며 이서현의 입술을 주시했다. 그녀의 입술은 쭉 앞으로 튀어나오며 다음 말을 이었다.

“무승부입니다.”

“뭐, 시발?”

적지형은 버럭 화를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서현에게 달려들어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바일의 제재에 이를 갈면서 중지.

대신 모든 단어를 ‘시발’로 대체하면서 지껄였다.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시발!”

미친 건가? 그러나 심정은 알 것 같았다. 썅!

“설마 이러고 끝인 건 아니겠죠?”

루호의 질문에 이서현은 가슴을 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무승부를 낸 헌한발과 폭발대제는 둘이서 연장전에 들어가겠습니다.”

“연장전?”

“좋았어! 지금 당장 뜨자고!”

적지형이 대뜸 아란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아란이 인상을 쓰면서 적지형의 사타구니를 찼다.

“차갑게!”

“으허어엉!”

적지형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비 꼬았다. 그리고 침을 흘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저 기술, 사기다! 태한이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일주일 뒤에 연장전 방법과 장소에 대해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2위 쟁탈전은 수고하셨습니다.”

이서현은 끝까지 침착하게 사무적인 어투를 유지했다.

우리도, 폭발대제도 이를 갈면서 서로를 노려봤다.

***

“미친 한국 지부!”

주말.

루호네에서 모든 팀원이 집결했다.

생방송으로 2위 쟁탈전을 본 팀원들은 모두 흥분해서 떠들었다.

“정말 최고예요! 이런 기세라면 정말로 루호 씨가 2위가 되겠어요.”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관건은 연장전의 방식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때 이서현에게서 문자가 왔다.

[10승 연전제]

[각 팀은 일대일로 싸웁니다. 그리고 경기의 승자는 패할 때까지 다음 경기의 상대와 싸워야 합니다. 먼저 10승을 하게 되는 팀이 승리합니다.]

즉, 릴레이 대결.

이론상으로는 굳이 10명이 아니어도 첫 경기에 나간 선수가 상대방 10명을 연달아 쓰러뜨리면 승리할 수 있다.

[도구 사용 불가. 살인의 경우 고의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속행.]

“이건 그냥 하상구한테 우리 싹 다 몰살시키라는 거잖아!”

문자를 본 팀원들은 다들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하죠?”

호규가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난 단호히 그에게 말했다.

“강제 참가가 아니에요. 굳이 날 위해서 목숨을 걸 필요 없어요.”

사냥이야 헌터의 본분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이건 그냥 개인적 야욕에 불과하다.

실제로 팀원들은 다른 때와 달리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특히 하상구의 능력을 화면으로 직접 봤기에 그런 것과 맞서 싸운다고 생각하면 주저하는 게 당연했다.

“다들 오늘은 일찍 해산하고 돌아가서 잘 생각해 주세요. 내일까지 의사를 밝히시지 않으면 불참하는 걸로 알게요.”

난 미소를 지으며 모두를 배웅했다. 그때 이서현에게서 아예 전화가 왔다.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이서현이 왜 날 만나자고 하는 거지?

“네, 그러죠. 제가 자주 가는 카페가 있거든요. 거기서 봬요.”

난 배웅하는 김에 함께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그리고 목적지에서 홀로 내려 카페로 들어갔다.

“여기예요.”

창가 자리에 이서현이 있었다.

저 자리, 굉장히 경쟁이 치열한 곳인데, 이상하게 약속 있는 날에는 널널하네?

난 이서현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이시죠?”

“이번 연장전, 포기하세요.”

역시!

“왜죠?”

이서현은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지부에서는 헌한발이 이기지 않도록 일부러 이런 방식을 고집한 거예요. 최대한 변수를 줄여서 폭발대제가 실력으로 헌한발을 눌러 주길 바라거든요.”

“무조건 저희가 진다는 보장은 없어요.”

내 말에 이서현은 한숨을 쉬었다.

“하상구만 없다면 그럴지 모르죠. 솔직히 헌한발의 실력은 로얄까진 아니어도 50위 이상엔 근접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한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그때 우리의 시선이 창밖으로 쏠렸다. 참 질리게도 뉴 월드 무리가 무려 가두행진을 하고 있었다.

숫자는 어림잡아도 수백은 되어 보였다.

“이단을 죽이자! 국가를 구하자! 믿음을 강제하자!”

“성녀 예카테리나의 손길을 거부하는 자를 죽이자!”

“뉴 월드만이 진리! 다른 건 다 쓰레기다! 내 편 아니면 적!”

나와 이서현은 입을 쩍 벌리며 그들의 구호를 들었다.

경찰들이 안전을 위해 그들을 둘러싼 상태였지만 무리에 비해 한참이나 모자란 숫자였다.

“요즘 굉장히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어요. 지부와 정부쪽에도 신도가 꽤 있나 봐요.”

이서현이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박장도 저쪽에 빠진 것 같은데……지부장님은 업무에 지장 없으니 그냥 놔두라고 하셨거든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문제가 생길까요?”

박장은 예전의 비서가 아니다. 그는 이제 엄연한 헌터 협회 한국 지부의 부지부장. 절대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여차하면 제거해야죠. 미친 놈 몇몇 때문에 조직을 말아먹을 순 없으니까요. 아! 저 사람이 리더예요.”

이서현이 누군가를 가리켰다.

행렬 맨 앞에서 확성기를 든 사람은 바로 구지태였다.

“형제, 자매여! 가족도, 친구도 필요 없다! 뉴 월드 신도가 아니면 모두 적이다! 이 나라는 썩었다! 그러니 우리가 구원해야 한다!”

구지태 녀석……!

커피를 홀짝이며 그를 흘겨봤다.

불과 며칠 만에 저렇게까지 숫자가 분 것을 보면 보통 수완이 아니다.

“표면적 교주는 다른 사람이고 섬기는 대상은 예카테리나지만, 제 조사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구지태가 모든 걸 지휘하고 있어요.”

무서운 새끼!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지킨 거야?

이서현은 설명을 계속했다.

“정말 무서운 점은 처음엔 세력 확장을 위해 강압적인 방법을 썼는데, 그 후에 세력이 커지자 즉각 이미지 쇄신과 자금 세탁을 해서 지금은 깨끗한 조직이 됐어요. 그래서 경찰들도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가 봐요.”

역시! 개같이 번 다음에 정승 코스프레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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