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63화 (163/250)

163.

163.

―알았어. 한 번 상의해 볼게.”

좋았어!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전화를 끊었다.

“누구야?”

태한이 뉴 월드를 응시한 채 물었다. 난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혹시 이씨 십 형제 알아? 이일이 랭킹 헌터였었는데?”

“이일? 아아, 그 호색한?”

“어. 그 동생인 이이랑 통화했어.”

이일까지 아는구나.

태한은 아는 것이 참 많다.

“이씨 십 형제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조부모님 손에 자랐어. 형제가 열 명이나 됐기 때문에 형편이 늘 안 좋았지.”

“그랬구나.”

형제들이 모두 H력이 있으니, 육체노동으로 어떻게든 근근이 버텼을 것이다. 그리고 맏이인 이일을 시작으로 형제 전원이 사냥업계에 입성했고, 이류이긴 해도 그 이름을 조금씩 알리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가지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혹시 김대팔에 대해서 알아?”

“그 인형옷 입은 사람?”

“어.”

태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태한은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두드렸다.

“지부가 그한테 쩔쩔맨다고 하더군.”

“지부가? 김익조도?”

“어. 대단한 배경이 있는 모양이야.”

망할 티라노 대가리!

어금니에 있는 걸로 봐선 녀석도 보통이 아니다.

더구나 지부에서 쩔쩔맨다고? 지부가 어떤 지부인데?

스페셜 매치로 경영인과 정치인에게 빚을 지게 만들어서 그것으로 꼭두각시처럼 뒤에서 조종하잖아!

“조, 조심해야겠네.”

입술이 바짝 마르며 목이 말랐다. 난 김이 나는 커피를 원 샷 하다가 입안을 완전히 데이고 말았다.

“꾸에에엑!”

“추해.”

태한은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난 커피를 뱉어 내며 태한이 준 손수건으로 혀를 닦았다.

“정말 추해!”

닥쳐!

난 속으로 외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태한의 수련에 대한 내용을 적어 호규, 아란, 유정에게 보냈다.

“집 없는 것도 서러운데, 자꾸 추하다고 하지 마!”

“응? 집이 왜 없어?”

난 대략적인 사정을 설명했다. 물론 오이해에게 392억 받은 이야기는 쏙 뺐다.

그 돈은 엄연히 2위 쟁탈전에 쓸 자금이었다.

“그래서 팀원 집에 얹혀살고 있어?”

“어! 걔가 성격 좋지, 잘생겼지, 집안일도 다하지, 조용하지, 결정적으로 잔소리도 안 해! 얼마나 이상적인 인생 동반자의 표본이냐?”

“어……그래?”

태한은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아주 사악하게 웃었다.

“뭣하면 우리 집에서 재워 줄까?”

“아니야. 괜찮아. 난 루호네에서 행복해.”

그 뒤 난 태한과 헤어졌다. 그리고 금요일, 태한이 가르쳐 준 주소로 나, 호규, 유정, 아란이 집합했다.

“와!”

집 한번 끝내주게 크다. 집이 완전 영화 속 대저택 크기다. 태한 이 자식, 돈 벌어서 집 사는 데 다 썼구먼! 우리는 집 대문만 보고 완전히 압도당했다.

“괴물 볼 때보다 지금이 더 두근거리는 것 같아요.”

호규가 후드를 푹 눌러쓰며 말했다. 유정과 아란도 그의 말에 동의하며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난 힘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설마 주소가 틀린 건 아니겠지?

대문 현판에는 분명 ‘이태한’이라고 쓰여 있다.

“어서와. 기다리고 있었어.”

초인종을 누르자 대문 위에 달린 감시 카메라가 움직여 우리를 주시했다. 그리고 대문이 양쪽으로 스르르 열렸다.

마치 사냥 구역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앗!”

문이 열리자 안에서 무려 승합차 한 대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의 명령으로 여러분을 본동으로 모시겠습니다.”

승합차의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무려 집사!

우리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순순히 승합차에 올라타 졸지에 저택 관광 투어를 하게 됐다.

“좌측에 보이시는 건물은 1번 별동으로 주인님과 사모님께서 취미 생활을 즐기시는 곳입니다.”

집사의 설명. 아니, 망할! 이 자식 얼마를 번 거야? 은퇴할 만하네!

다들 혀를 내두르며 건물을 구경했다.

“그리고 1번 별동 뒤로 보이는 것이 바로 온천 스파와 수영장입니다.”

“우리 지금 휴가 온 거예요?”

아란이 잔뜩 들떠서 말했다. 나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본동. 우리의 목적지였다. 우리는 승합차에서 내려 집사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현관문 안에는 거대한 거실, 그리고 양옆으로 줄지어 선 고용인들이 있었다.

“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유정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모두의 심정을 대표했다.

난 거기에 맞장구쳤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 같네요.”

장르는 막장이겠지?

우리는 계속 집사의 뒤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죽을 때까지 집 밖으로 나오기 싫겠는데?”

집 담장 안에 그냥 다 갖다 놨구먼.

우리는 오락실, 휴게실, 미용실, 헬스장, 영화관, 식당 등등 다양한 방들을 지나 ‘도서관’ 문 앞에 섰다.

“주인님.”

집사는 예의 바르게 손등으로 똑똑똑 세 번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태한의 허락이 떨어지자 집사는 문을 열고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와!”

감탄만 몇 번째. 도서관이란 방은 정말 이름처럼 책장이 수십 개가 있었다.

“하! 요즘은 온라인 이북이 대세거든?”

난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그러자 태한이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말했다.

“물론 이북으로도 여기 있는 책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어. 하지만 난 아날로그를 더 선호하거든.”

젠장! 졌다.

난 고개를 푹 숙이며 집사 뒤로 숨었다.

“안녕하세요!”

호규, 유정, 아란은 공손히 태한에게 고개를 숙였다. 태한도 가볍게 목례를 해서 그들의 인사에 답했다.

“환영합니다. 수련하시는 동안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세요. 상팔이와 상의해 보니 기간은 대략 열흘 정도 되겠더군요.”

왜냐하면 그 기간 이후엔 2위 쟁탈전의 공식적인 발표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수련할 계획이다.

“그럼 다른 팀원들을 데려왔어도 되지 않았나요?”

유정의 말에 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러네요?”

그냥 여기서 놀아도 되잖아? 난 또 변해라네처럼 개고생하는 줄 알았지!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나머지 팀원에게도 연락을 했다.

“다들 식사는 하셨나요?”

태한이 존댓말로 묻자 난 집사 뒤에서 나와 말했다.

“어! 그러니까 빨리 수련을 시작하자고!”

“그래, 그러자.”

우리는 태한을 따라 또 걸었다. 그리고 도서관을 나와 ‘훈련장’이라 쓰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와!”

넓다. 딱 실내 체육관 수준. 여기라면 그냥 H력을 사용해서 마구 날뛰어도 될 것 같다.

역시 돈이 최고야!

우리는 준비해 온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럼 지금부터 수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원래는 김상팔 하나만 시키려고 했지만, 몇 명 더 늘어도 괜찮습니다.”

태한은 날 제외한 다른 세 명에게 훈훈하게 말했다.

“그럼 일단 팔굽혀펴기 500번, 시작하세요.”

“네?”

“500번.”

세 사람은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태한은 그런 뒤 나에게 말했다.

“적지형하고 싸울 때 썼던 것 있지? H력으로 손을 덮어서 폭발시키는 기술.”

“광권 말이야?”

난 정성껏 H력을 모아 광권을 만들었다.

“좋아. 기본은 됐군. 이제 그걸 날린다고 생각해 봐.”

“날린다고?”

광권을?

팔을 흔들어서 손에 완전히 밀착된 장갑을 벗기고, 또 그 장갑을 날려서 목표를 맞추란 소린데…….

점점 갈수록 기인 열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열흘 안에 해내야 돼. 시작!”

그렇게 열흘간의 지옥 훈련이 시작됐다. 그리고 난 이때 태한에 대한 증오를 키웠다.

***

[2위 쟁탈전 안내 문자]

[2위를 희망하시는 분은 참가비, 그리고 함께 싸울 동행자 2분을 정해서 헌터 협회 한국지부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청 방법은 전화ARS, 홈페이지……]

드디어 때가 됐다. 난 컴퓨터를 통해 홈페이지에 접속한 다음, 참가 신청 직전에서 멈췄다.

“나머지 한 명을 누구로 하지?”

루호랑 나, 그리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고난에 빠졌다. 태한에게 수련 받을 때를 돌이켜 보면 아란과 유정의 실력 향상이 가장 컸다.

“안전한 유정이냐, 가능성의 아란이냐. 그것도 아니면 그냥 닥치고 노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 사람 중 실력으로만 따지면 노건이 최고지만, 2위 쟁탈전의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이상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탱크가 강력하긴 해도, 등산을 하거나 늪을 건널 땐 무용지물이니까…….”

노건의 능력은 단순하기에 강력하지만 반대로 단순하기에 무너지기도 쉽다.

“흠, 그럼…….”

난 모니터에 띄워진 화면에 세 번째 이름을 입력했다. 그리고 엔터. 이걸로 접수가 완료됐다.

“빠이빠이, 400억.”

가지고 있던 392억과 랭킹 헌터 신분으로 대출을 받은 8억을 합해 겨우 액수를 맞췄다.

모래호랑이의 부산물을 판 돈은 전부 팀원들과 최고의 최고에게 우선적으로 분배했다.

“하하하, 또 빚쟁이 신세라니…….”

서글프다.

특히나 그저께까지 대궐 같은 저택에서 지내서 그런지 더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형, 커피 좀 드세요.”

루호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가져왔다. 난 잔을 들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신청은 잘 하셨어요?”

“어. 너랑 나랑 아란 양.”

“주아란 양 말씀이세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루호는 놀라워하며 내가 홈페이지에 신청한 양식을 확인했다.

“형, 그런데 이건…….”

“어쩔 수 없어.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야.”

그때 휴대전화로 지부로부터 문자가 왔다.

[접수가 정상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2위 신청자 ‘조루호’님과 조력자 ‘김상팔’님과 ‘주아란’님께선 정해진 날짜까지 지부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좋았어!”

일주일 후. 나, 루호, 아란은 지부 앞에서 만났다. 이미 1층 로비는 참가자로 가득했다.

“이게 다 참가자란 말이지?”

대충 세어 봐도 30명 이상. 게다가 여기 모인 사람은 상당수가 랭킹 헌터다!

아란처럼 조력자 중엔 일반 헌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랭킹 헌터끼리 팀을 짜서 왔을 것이다.

“문제는…….”

가장 안쪽에 모여 있는 ‘폭발대제’ 소속 헌터들. 특히 로얄 7위인 하상구의 모습이 상당히 거슬렸다.

“설마 참가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렇겠지? 누가 그렇다고 말해 줘!

“자자, 주목해 주십시오!”

양복 차림의 박장이 손뼉을 치며 모두를 주목시켰다. 그는 손목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얼추 다 모이신 것 같으니, 조금 이르지만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다들 주차장에 세워진 버스에 승차해 주십시오.”

또 이동해? 그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최종 장소로 오라고 하지!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게 투덜댔다. 그러나 딱히 따지진 못하고 다들 순순히 버스에 올랐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특별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매의 눈으로 우리를 감시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들 거액을 주고 참가한 것이기에 가급적 불이익 받을 짓은 삼가고 있었다.

“엥?”

도착한 곳은 헌팅 페스티벌이 열렸던 네오 강화도.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투괴가 열렸던 투기장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괴물들이 싸울 때처럼 잘 정비된 필드와 유리 돔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