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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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광탄을 연속 발사하며 원반가오리의 관심을 끌었다.
다행히 녀석은 다친 사람을 끝장내기보단 날 공격하는 것에 흥미를 보였다.
“그래, 그래! 어서 와라!”
원반가오리는 내게 다가와서 곧장 위에서 수직으로 꼬리를 뻗었다.
난 가볍게 그 공격을 피하며 녀석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아까보다 속도가 떨어졌어?”
혹시 음속으로 움직이는 건 원반가오리의 몸에 부담이 되는 걸까?
그 순간 녀석은 내 생각을 완전히 뛰어넘는 행동을 했다.
“엥?”
녀석은 땅에 꼬리를 박은 채 다시 몸통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마치 땅에 박힌 바람개비처럼 녀석은 몸통의 회전으로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냈다.
“와!”
질풍과 같은 바람이 내게로 불어와 전신을 휘감았다.
난 기껏해야 드래건처럼 톱날 공격 같은 것일 줄 알았는데……!
이것도 협회 자료에 없었다.
“크으으윽!”
말 그대로 칼바람. 슈트가 없었다면 살갗이 다 찢겨 나갔을 위력이다.
“노건 씨가 이걸 버틸 수 있을까?”
나도 H력을 소모하며 겨우 버티는 중이다. 그러나 내 능력은 모두의 H력이 모인 반칙의 산물. 그렇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낼 수 있었다.
“망할 자식!”
이 상태론 광탄이나 광권을 쓸 수 없다. 지금으로선 버티는 게 고작이다. 그마저도 점점 몸이 뒤로 밀리고 있었다.
“하하, 역시 6급은 무서워. 하지만…….”
원반가오리의 몸통으로 몇 번의 폭발이 일어나며, 한순간에 바람이 멎었다.
“나한텐 동료가 있거든.”
난 잔뜩 힘이 들어간 몸을 풀어 주면서 말했다. 원반가오리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몸통을 뒤로 향했다.
“어딜!”
높이 뛰어올라 원반가오리의 뒤로 추측되는 부분을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그 주먹은 바람을 맞으며 준비한 광권으로 덮여 있었다.
“받아라!”
광권이 닿으며 큰 폭발이 일었다. 원반가오리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넘어졌고, 난 폭발의 충격으로 녀석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착지했다.
“으아아아!”
노건이 달려들어 원반가오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강력한 완력으로 녀석을 잡았다.
“노건 씨!”
다들 노건의 주변에 모여 그의 힘을 구경했다.
노건은 원반가오리를 찌그러뜨릴 기세로 와락 끌어안았다.
“으아아아!”
원반가오리는 몸을 회전해 벗어나려 했지만 노건의 품 안에서 잠깐 움찔했을 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자 녀석은 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꼬리!”
내 외침에 노건은 원반가오리를 놔주고 대신 녀석의 꼬리를 잡았다. 그리고 자루를 패대기치듯 녀석을 마구 휘둘렀다.
“으랏차차!”
원반가오리는 몸통을 회전시키며 저항했다.
원형 톱날이 땅에 닿자 그 반발력으로 녀석이 높게 튀어 올랐다. 그러나 꼬리가 잡혀 있었기에 결국엔 노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즈아!”
어느새 정신을 차린 호규와 변해라가 뛰어왔다. 호규는 무려 노건이 있는데도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
호규의 충격파에 노건은 이를 악물며 버텼고, 원반가오리는 황급히 꼬리를 몸통 안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오빠, 그만!”
호규는 즉각 능력을 중지. 이번엔 변해라가 나섰다.
변해라는 한 번 더 원반가오리에게 다가가 조련을 시도했다.
“하아아앗!”
변해라는 원반가오리의 꼬리로 아지랑이의 방향을 바꿨다. 그러자 이번엔 스르륵 아지랑이가 녀석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됐다!”
꼬리가 감각기관 역할도 하는 건가?
변해라는 원반가오리가 충격파에 괴로워하는 그 짧은 순간에 그 점을 파악한 것이었다.
덕분에 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됐다. 이런 미확인 정보는 협회에 비싼 값을 주고 팔 수 있다.
“하하하!”
변해라는 환희에 차서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웃음소리에 따라 원반가오리는 꼬리를 집어넣고 얌전해졌다.
“내가 해냈어!”
노건은 천천히 원반가오리를 놔주고, 변해라는 원반가오리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원반가오리는 두둥실 떠올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았다.
“와, 부럽다.”
난 능력을 해제하고 넋이 빠져라 변해라의 비행을 구경했다.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치료를 받으며 원반가오리와 변해라를 쳐다봤다.
“해, 해라야!”
호규는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워했다. 그리고 나에게 와서 말했다.
“팀장님! 저도 더 강해지고 싶어요. 절 단련시켜 주세요!”
“예?”
내 코가 석자인데?
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팀원 중 루호, 변해라, 노건은 어느 정도 실력이 무르익었지만 호규, 아란, 유정은 아직 발전할 여지가 있다. 그럼 다음엔 이 셋만 데리고……?
살짝 머리가 아파 왔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2위 쟁탈전’을 하려면 전력 보강은 필수다!
“좋았어!”
어깨에서 캠코더를 떼어…….
“엥?”
캠코더가 없다.
슈트로 변신하면서 찌그러진 건가?
서둘러 근처를 뒤졌다.
“아…….”
부서졌다. 하지만 다행히 잔해 속에서 메모리카드를 발견!
그건 멀쩡했다.
“영상만 건지면 돼!”
우리는 흐뭇하게 원반가오리를 가지고 사냥 구역을 나왔다. 그리고 지부에 연락해 원반가오리를 정식으로 등록했다.
“대단해요! 비행 괴물이 등록된 건 처음 봤어요.”
확인차 나온 직원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는 가져온 트럭의 키를 변해라에게 건넸다.
“이 트럭으로만 괴물을 운송하실 수 있으니까 주의하세요.”
“네.”
변해라는 차에 실린 원반가오리를 보며 흐뭇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얘 이름은 ‘도로시’예요!”
뭐?
다들 변해라의 작명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세바스찬도 그렇고…….
아이를 낳으면 이름은 무조건 아빠가 짓게 해야겠다, 아이고!
그렇게 우리는 변해라의 새 파트너 도로시의 조련을 축하하는 뒤풀이를 가졌다.
참! 오늘 사냥의 MVP는 누가 뭐래도 노건이었다.
***
연락을 받고 나간 카페에는 먼저 온 태한이 있었다. 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2위를 노린다는 게 사실이야?”
태한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다들 마찬가지잖아?”
“미쳤어?”
태한이 평소답지 않게 언성을 높였다. 오히려 내가 그를 말리며 주변을 살폈다.
“왜? 무슨 일 있어? 하란 씨랑 싸웠니? 신혼 콩깍지가 벌써 끝난 거야? 아님…….”
태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 없어. 다만…….”
태한은 주머니에서 타로카드를 꺼냈다. 그것은 지난번 스페셜 매치에서 우리가 주고받은 것이었다.
“지부에서 널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아. 아마 널 방해하려고 여러 가지 공작을 펼칠 거야.”
“공작?”
“뭔지는 나도 알 수 없어. 하지만 내가 아는 김익조란 작자는 그렇게 당하고 그냥 있을 작자가 아니야. 그러니 너도 더욱 힘을 길러야 해.”
“그건 나도 알아.”
태한은 카드를 다시 품에 넣었다.
“그래서 말인데, 너에게 내 기술을 전수해 주고 싶어.”
“기술?”
그거 능력 아니었어? 서, 설마……!
“광탄이나 실체화 같은 응용 기술이야?”
그럼 이 녀석은 기가트라우랑 싸울 때 능력도 안 썼단 말이야?
뜬금없이 놀라웠다.
“맞아. 지금의 난 더 이상 H력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기술을 가르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너라면 내 기술을 익힐 수 있을 거야.”
태한은 킹메라와의 싸움에서 하필 H력 장기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다른 장기나 상처는 치료술사의 힘과 현대 의학으로 재생 수준의 치료가 가능하지만 H력의 근원인 장기들만큼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고마워. 신경 써 줘서…….”
“예전에 들은 말인데, 너 정말 랭킹 1위가 목표야?”
“어.”
꿈은 꿈일지라도 난 1위가 되고 싶다. 태한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1위를 지향한다면 단순히 강해지기만 해선 안 돼. 어느 정도 세력을 꾸려야 해. 다른 빅4들처럼 말이야.”
“그 빅4 중에 공포특급은 소수 정예잖아?”
“그 사람들은 예외. 솔직히 하나하나가 다 엄청난 괴물이라…….”
요즘 들어 느낀 건데, 의외로 랭킹에 허점이 많은 것 같다.
저번 스페셜 매치만 봐도 이경신과 김경진은 각각 20위, 30위라곤 믿기지 않을 수준의 실력이었다.
아님 그 둘만 팀의 후원 덕에 비정상적으로 높은 랭킹을 얻을 것일 수 있다.
“김용과 오이해는 널 꽤 괜찮게 보고 있는 것 같아. 특히 네 덕에 꽤 큰돈을 벌었다고 좋아했으니까…….”
결국 돈이냐. 씁쓸하게 웃으면서 태한의 말을 들었다.
“너도 알겠지만 한국 헌터들은 세 부류로 나뉘어. 자유파는 내가 은퇴함으로써 힘이 많이 꺾일 거야.”
“파벌 같은 게 의미가 있어?”
지부파나 개혁파는 그렇다 쳐도, 자유파는 파벌을 만들어서 뭐하는 거지?
“당연히 있지. 주기적으로 로얄만 모여서 지부와 회의를 하거든. 이때 세금, 지원, 복지 등등 각 정책을 자기네 파벌한테 유리하도록 발언할 수 있어.”
태한의 설명에 따르면 로얄 10명 중 지부파는 1위 김용, 5위 한유리, 7위 하상구.
개혁파는 3위 신진부, 4위 강자기. 자유파는 6위 남주나, 9위 마다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은 8위 오이해와 10위 이준. 이렇게 세력이 나뉘어 있었다.
“그러니 누구든 자기 세력 사람을 2위에 앉히려고 할 거야.”
“그렇겠네.”
이젠 정치까지 해야 되는 거냐? 그건 좀……. 머리가 아파 왔다.
“아오! 수련하기도 벅찬데……!”
“어쨌든 좋은 수련 장소를 알고 있으니까, 이번 주말에 만나자. 시간 되지?”
“응. 근데 다른 사람이 동행해도 돼?”
“팀원이라면 상관없어.”
다행이다. 그렇다면 다 같이 수련하면서 태한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응?”
창밖에 뉴 월드 무리가 보였다. 그런데 숫자가…….
“뉴 월드를 국교로! 새로운 믿음, 새로운 신, 새로운 낙원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뉴 월드야말로 진리! 뉴 월드야말로 삶! 뉴 월드야말로 우주! 여러분 거짓을 멀리하고 진실을 마주하세요!”
“H8 중 하나인 센의 후손, 성녀 예카테리나의 기적을 체험하십시오!”
며칠 전엔 열 명 남짓이었는데, 이젠 수십 명이 시위를 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박장도…….
불어나는 속도가 꽤 빠른데?
태한도 커피를 홀짝이며 뉴 월드를 바라봤다.
“말세군.”
굵고 짧은 정의. 나도 거기에 동의했다.
“응. 근데 저거 보고 있으니까 왠지 아저씨가 보고 싶네?”
“아저씨?”
“한돈 아저씨.”
“아! 한손?”
“응.”
우리는 희귀 생물 구경하듯 뉴 월드와 경찰의 대치를 감상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얼굴이 보였다.
“엥?”
구, 지, 태. 녀석의 얼굴이 시위대 속에 섞여 있었다.
“저 미친놈이 왜 저기에……?”
순간 예전에 헌터 자격시험 때 본 면접이 떠올랐다.
난 고개를 저으며 애써 그 기억을 지웠다. 그때 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김상팔!”
이이?
“무슨 일이세요?”
―너 인마, 우리 언제 헌한발에 끼워 줄 거야?”
아차!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이이와 초조선. 분명 훌륭한 헌터들이었다.
“흠, 그게……좀……. 하나 여쭐 게 있는데요.”
―뭔데?”
“이씨 십 형제 전원이 들어오시는 건 어떨까요?”
너무 욕심인가? 살짝 입술을 깨물며 이이의 대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