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61화 (161/250)

161.

161.

내 말을 듣자마자 다들 예전에 사냥했던 ‘쌍두하피’를 떠올렸다.

그 흉폭함과 무시무시한 움직임. 비행 괴물은 위험도로만 따지면 본래 등급에서 가볍게 1~2급을 뛰어넘었다.

“반대!”

변해라는 펄쩍 뛰면서 외쳤다.

“나 때문에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어. 이건 사냥도 아니잖아?”

“사냥이란 게 무조건 부산물을 얻어야만 하는 건 아니야. 이건 우리팀의 미래를 위한 투자야.”

내 말에 변해라를 제외한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변해라는 호규의 팔을 끌면서 말했다.

“오빠! 오빤 겁 많잖아? 안 무서워? 예전에 쌍두하피 때문에 죽을 뻔했다며? 날아다니는 건 다 무섭다며?”

호규는 과감히 후드를 벗으며 얼굴을 환히 드러냈다. 그리고 변해라의 양어깨를 잡으며 외쳤다.

“그래! 하지만 난 널 사랑해!”

앗!

다들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변해라는 호규의 미친 사랑에 압도되어 입만 벌린 채 서 있었다.

“넌 내 여자니까!”

저 대사가 왜 이 타이밍에…….

다들 나처럼 아연실색했다.

그, 러, 나!

“오빠……!”

변해라는 감동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쟨 아버지하고 개들하고만 지냈으니……조금은 남다른 감수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설득된 거야?”

아란이 기가 차서 말했다.

갑자기 두 사람을 제외한 모두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특히 최고의 최고는 다들 입으로 한 가지 말을 되풀이했다.

“4배, 4배, 4배…….”

호규는 등신 샌드위치 같은 고백을 마치고 다시 수줍게 후드를 썼다.

변해라는 그런 호규의 후드를 함께 눌러 주면서 호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

변해라는 손바닥을 내밀며 호규에게 말했다. 그러자 호규는 순순히 자신의 손을 변해라의 손에 올렸다.

“헐.”

저거 도대체 뭐하는 거지? 자기들 나름대로 애정표현인가?

도저히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근데 해라야. 너 6급 괴물을 조련할 수 있겠어?”

유정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변해라는 웃으면서 답했다.

“응. 예전보다 강해졌으니까 괜찮아.”

사랑의 힘인가. 둘이 살짝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연애를 한 지 꽤 오래됐다.

“노건 씨는요?”

노건은 힐끔 유정을 보면서 웃었다.

“저도……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좋아요. 그럼 갑시다!”

에잇, 연애 따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사냥 구역의 정문을 열었다.

우리는 2시를 조금 넘긴 시각, 6급 사냥 구역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이번 사냥도 하룻밤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드래곤이 사는 동굴 산을 넘고, 나이트윙이 사는 검은 초원을 지나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약 2시간 뒤 원반가오리가 서식하는 갈대 숲에 도착했다.

“와!”

드넓은 갈대 숲 군데군데 예초기로 한 바퀴 돈 것 같은 흔적이 보였다.

분명 원반가오리의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지니까, 오늘은 슬슬 야영장을 찾아서 쉬도록 하죠?”

루호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이 바로 딱 좋은 순간이야. 해가 질 때쯤 빠르게 사냥을 한다!”

다들 내 의사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딱히 거부하진 않고 순순히 내 말에 따라 사냥 준비를 했다.

“포지션은 아까와 같아요! 호규 씨는 초음파로 탐지, 노건 씨는 방어 및 지원, 루호와 아란 양은 움직임 저지, 저와 유정 씨는 사격 지원, 해라는 조련을 맡고, 최고의 최고는 부상자를 후방으로 이송하고 치료해 주세요.”

최고의 최고는 갈대 숲 밖에 치료용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그러나 설치가 다 끝나기 전에 초음파를 뿜어내던 호규가 외쳤다.

“뭔가 와요!”

저 멀리 UFO처럼 생긴 물체가 낮게 날아오고 있었다.

지름 2미터의 파란색 쟁반처럼 생긴 그것은 수북한 갈대 숲 바로 위를 베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언뜻 보기엔 그냥 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녀석은 원형 톱날처럼 아주 빠르게 회전을 하고 있었다.

“준비!”

변해라, 노건, 루호, 아란이 전기톱을 들며 앞으로 나섰다.

나와 유정은 그물총을 들고 그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원반가오리는 비틀거리더니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위로 떠올랐다.

“온다!”

원반가오리는 공중에서 비스듬히 각도를 틀어서 우리를 노렸다. 그리고 한순간에 쏜살같이 움직여 내리꽂았다.

“노건 씨!”

노건은 양손에 전기톱을 하나씩 쥐고 능력발현을 했다. 그리고 아까처럼 육체가 부풀어 오르면서 엄청난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

시동이 걸린 전기톱은 거구가 된 노건에게 그저 막대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자유롭게 휘둘러 원반가오리의 테두리와 부딪쳤다. 그러나 드래건 때와 달리 원반가오리의 몸에 닿은 전기톱은 불꽃을 튀길 새도 없이 깔끔하게 절단됐다.

“으앗!”

노건은 전기톱을 버리고 펄쩍 뛰어서 원반가오리를 넘었다.

원반가오리는 아슬아슬하게 노건의 발바닥을 스쳐 지나갔다.

“피해!”

다른 사람들도 양옆으로 몸을 던져 녀석을 피했다.

원반가오리는 제초를 하듯 갈대를 휘날리며 지나갔다.

“와!”

땅에 착지한 노건의 발은 하얀 맨살이 드러나 있었다.

스쳤을 뿐인데도 강한 원반가오리의 회전에 신발 밑창이 갈려 버린 것이었다.

“형! 저 정도면 그물망도 안 통할 것 같은데요?”

루호의 외침. 그 다음엔 변해라의 절규가 이어졌다.

“저거 눈도 안 달렸잖아!”

그러게!

지부에 나온 정보에선 눈이나 회전의 위력에 대해선 없었다.

거기에 문서에 실린 사진도 화질이 흐릿해서 그냥 둥근 형태만 어렴풋이 나왔었고, 무엇보다 눈 안 달렸단 소린 없었다.

원반가오리는 우리팀 한가운데를 지나서 다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구속이 안 되면, 다음 방법.

“유정 씨!”

나와 유정은 원반가오리를 향해 총을 쐈다. 총구를 떠난 총알은 빠르게 날아가 원반가오리를 때렸다.

충격과 함께 수십 개의 불꽃이 녀석의 표면을 긁으며 산화했다.

“좋았어!”

원반가오리는 휘청거리면서도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나와 유정은 계속해서 총을 쐈다.

“해라야! 어떻게든 조련시켜!”

난 변해라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어떻게?”

변해라는 인상을 쓰면서 외쳤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잘!”

변해라는 중지를 세우며 눈을 흘겼다. 그러나 정말로 그것 외에 그녀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애초에 그녀의 능력은 사냥 업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희귀한 것이었다.

난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아버지를 뛰어넘기 싫어?”

변해라의 표정이 변했다.

변해라는 입술을 씹으면서 차가운 눈으로 원반가오리를 바라봤다.

“아니?”

그때 원반가오리가 다시 각도를 틀었다.

이번에도 녀석은 우리를 향해 대각선으로 내려올 심산이었다.

“에잇!”

변해라는 화를 내면서 나에게 외쳤다.

“어떻게든 녀석의 움직임을 멈춰 줘!”

“좋았어!”

광탄이 가능한 사람은 모두 H력을 끌어올렸다.

난 양손에 H력을 모아 하나는 시한 무광탄, 다른 하나는 광탄을 만들었다.

“온다!”

원반가오리가 또다시 하강. 날 포함한 넷이 광탄을 던졌다. 그러나 날아간 광탄은 녀석의 회전력에 의해 전부 튕겨 나갔다.

“피, 피해!”

다들 원반가오리뿐만 아니라 튕겨 나온 광탄까지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광탄들은 무작위로 떨어져 폭발했다.

“받아라!”

난 시한 무광탄을 높게 던졌다.

포물선으로 날아간 시한 무광탄은 원반가오리 위로 툭 떨어졌다.

“좋았어!”

원반가오리에게 닿기 전 첫 번째 폭발이 일었다.

원반가오리는 엄청난 힘에 찌그러지듯 휘청거리며 회전을 멈췄다. 그러나 아직까진 공중에 떠 있었다.

“한 번 더!”

두 번째 폭발. 원반가오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갈대 위에 떨어졌다.

녀석은 움찔거리며 다시 떠오르려 했다.

“그물망!”

“오케이!”

아란이 그물총을 쏴서 원반가오리를 그물로 덮었다.

“가라, 변해라!”

내 외침에 변해라가 원반가오리에게 접근했다.

변해라는 전신의 H력을 집중해 두 눈에 모았다. 그리고 능력발현으로 눈에서 아지랑이를 뿜어냈다.

“하앗!”

변해라의 아지랑이는 빠르게 원반가오리에게 뻗어 갔다. 그러나 원반가오리의 표면을 훑다가 그냥 스르르 허공으로 사라졌다.

“눈이 없어서 그런 건가?”

이러다가 원반가오리가 ‘그걸’ 쓰면…….

조급함에 변해라를 다그쳤다.

“서둘러! 녀석이 다시 날뛴다고!”

“알고 있어!”

변해라는 열심히 능력을 발현했다. 그러나 아무리 아지랑이를 뿜어내도 원반가오리의 상태에 변화가 없었다.

그때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섰다!”

원반가오리가 일어섰다.

그 이유는 녀석이 그냥 원반이 아닌 ‘가오리’라 불리는 부위. 바로 몸속에 내재되어 있던 꼬리였다.

“철수! 철수합시다!”

더 이상의 사냥은 위험하다.

원반가오리는 몸 중앙에서 나온 긴 꼬리로 둥근 몸통을 지탱하고 있었다. 마치 콩나물 같았다.

“도망쳐!”

난 능력발현으로 슈트를 착용하며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양손으로 광탄을 쏘면서 주의를 끌었다.

“날 봐! 날 노려!”

원반가오리는 꼬리를 축 늘려서 끝부분을 휘둘렀다. 그러자 ‘펑’하면서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뒤로 날아갔다.

“으아아악!”

슈트 덕에 몸이 찢기진 않았지만 정신없이 갈대 숲을 뒹굴었다.

눈앞은 핑핑 돌고, 귀에는 팀원들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물망을 붙잡아요! 움직임을 막아야 해요!”

“꼬리를 공격해요! 너무 위험해요!”

“으아아악! 사람 살려! 누가 저 괴물 좀 말려 줘!”

비명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난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며 상황을 파악했다.

“젠장!”

서둘러 다리를 움직였다.

현재 노건이 원반가오리의 꼬리를 잡았고 루호와 아란이 그를 돕고 있었다.

세 사람의 몸은 아지랑이를 가득 뿜어내며 필사적으로 원반가오리를 구속하고 있었다.

“버텨요!”

난 무광탄을 준비하며 달렸다.

“빠, 빨리요!”

거구의 노건이 외쳤다.

원반가오리의 꼬리를 잡은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아아앗!”

아직 거리가 좀 남았지만 급한 마음에 힘껏 무광탄을 던졌다.

“앗!”

무광탄이 도착하기 전 원반가오리가 기어이 노건을 떨쳐 냈다. 그리고 꼬리를 휘둘러 내가 던진 무광탄을 음속으로 잘라 냈다.

“으아아아!”

무광탄이 폭발하며 모두가 그 위력에 날아갔다. 난 몸을 낮추며 폭발로 인해 생긴 후폭풍이 가시길 기다렸다.

“다들 괜찮아요?”

괜찮을 리 없다. 알고 있음에도 지금으로선 물어보는 게 전부다.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젠장!”

바람이 가시고 시야가 확보될 때쯤 몸을 세웠다. 그리고 팀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들…….”

유정, 호규는 기절. 루호, 아란, 변해라는 서로 뭉쳐서 버티고 있었다.

유일하게 노건 혼자 힘으로 버티는 것을 보면 확실히 기본적인 피지컬이 다르다.

후방에 있는 최고의 최고만 멀쩡한 상태. 다들 피로와 충격에 빠져 헐떡였다.

“쳇!”

반면에 원반가오리는 완전히 그물망에서 벗어나 꼿꼿이 꼬리로 서 있었다. 녀석은 마치 우리를 내려다보듯 똑바로 서서 몸통을 고개처럼 까딱였다.

“잘난 척하는 거냐!”

입술을 깨물며 아직 전투가 가능한 팀원들에게 외쳤다.

“기절한 사람들을 후방으로 옮겨요!”

“팀장님, 하지만…….”

아란이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난 거칠게 외치며 그것을 끊었다.

“치료를 받고 나서 날 도우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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