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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독이 쳐 올랐냐? 셔츠는 거지 같은 걸 주워 입은 주제에……!”
셔츠 이야기에 박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둥이 닥치지 못해! 이 쓰레기 같은 이도교 새끼야! 너희 같은 새끼들은 다 화형시켜야 해!”
“뭐?”
험악한 분위기에 헌터들이 단체로 H력을 뿜어냈다. 그러자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박장을 밀쳐 내다시피 해서 단상에서 내려보냈다. 그리고 급히 박장의 마이크를 뺏어서 상황을 수습했다.
“그럼 오늘 모임 발표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자유롭게 식사를 즐기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2위 쟁탈전은 한 달 뒤에 입금하신 분들에 한해서 따로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들은 혹여 헌터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후다닥 달아났다. 헌터들은 투덜거리면서 화를 가라앉혔다.
“박장 저 인간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저 쫄보 새끼가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지.”
“지부의 개 같은 새끼!”
헌터들은 이를 갈면서 식사를 했다. 난 괜히 주목 받지 않기 위해 조용히 식사만 하다가 문서를 갖고 재빨리 지부를 빠져나갔다.
“후우.”
체한 것 같다. 근데 돈이 없어서 소화제도 못 사 먹는 신세다. 루호한테 바늘로 손가락 좀 따 달라고 할까? 루호네로 가는 버스를 타서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지부에서 받은 문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3위~10위 : 무료]
[11위~20위 : 25억]
[21위~40위 : 50억]
[41위~70위 : 100억]
[71위~100위 : 400억]
“와, 이건 정말…….”
운영 한번 예술적으로 하네. 가장 부유한 로얄은 무료고, 가장 수입이 적은 순위한테는 400억?
이건 분명 날 노린 가격 책정이다. 아무리 랭킹 헌터라고 해도 71위 이하 헌터에게 한 번에 400억이나 쓰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씁쓸한 마음으로 오이해에게 계좌번호를 보냈다. 그러자 정말 약속대로 돈을 입금해 줬다! 별 기대 없이 문자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입금 : 392억 ― 오이해]
“392억!”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주변을 살피며 입을 틀어막았다.
“흐흐흐.”
이제 부자 됐다! 여기에 나중에 태한이 줄 금액까지 합하면……!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머리를 굴렸다.
“다음 사냥감을 물색해야겠어!”
2위 쟁탈전까지 한 달이 남았다. 그렇다면 그 전에 사냥으로 경험과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최상이다. 휴대전화로 ‘튜트리팟’에 접속! 국내가 아닌 외국 헌터들의 사냥 영상을 검색했다.
“응?”
샌드타이거. 우리나라 명칭은 ‘모래호랑이’다.
외국에서도 서식하는 5급 괴물인데, 거의 6급에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디 보자.”
외국 헌터팀의 사냥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했다.
모래호랑이는 이름처럼 얕은 모래 속에서 서식하는데, 마치 상어처럼 등에 큰 지느러미가 있어서 이걸 모래 위로 표출한 채 땅속을 돌아다니는 습성이 있었다.
우선 지면으로 꺼내는 것부터가 문제다. 영상 속 헌터들은 무려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서 녀석들을 땅 위로 불러냈다.
“우리는 쓸 수 없는 방법이네?”
다이너마이트를 구하고 터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내가 김익조에게 찍혔다는 것.
괜히 꼬투리 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고개를 저으며 죄책감을 떨쳤다. 그리고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와!”
강하다. 외형은 상어와 호랑이를 뒤섞은 형태.
지금 우리 팀의 수준을 생각한다면 딱 적당한 상대다.
노건이 합류하고 첫 팀 사냥임을 생각하면 협동심을 키우기에 안성맞춤!
아저씨의 부재를 고려하면 이 이상의 모험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저씨가 엄청 중요하긴 했구나.”
아저씨의 대타로 치료술사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사흘 뒤 루호의 집에서 집결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팀원들에게 보냈다.
[미안. 나 헌한발 탈퇴할게.]
“누구냐!”
문자를 열어 보니, 주아라였다. 아라는 공미, 그리고 문일과 함께 다시 ‘세손가락’을 결성해 일하기로 한 모양이다.
아쉽긴 하지만 축하 메시지를 담아 답장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변해라는 괴물을 새로 구했을까?”
그냥 저번에 불칸 잡아 줬을 때 받지, 그게 뭐가 싫다고…….
아란은 수련을 잘하고 있을까? 호규가 만든 요리 먹고 싶다. 유정은 잘 지내고 있겠지?
정말 오랜만에 팀원들 만날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버스에서 내려 루호의 집을 향해 걸었다.
이 시골 동네에서도 루호는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내가 루호네에서 얹혀사는 게 이 마을에선 꽤 중요한 뉴스거리였다. 다들 날 보면서 상당히 수상쩍은 눈빛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나무 정자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께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날 경계하는 눈으로 보면서 본인들끼리 무어라 수군거렸다.
“시골 인심 한번 끝장나네.”
정자를 뒤로 하고 루호네 집 앞에 도착했다. 집 앞에 놓인 거대한 개집에는 루호의 애완 사슴인 ‘백구’가 있었다.
“우쭈쭈쭈! 백구야, 이리 온!”
개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백구가 머리를 내밀어 굉장히 귀찮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착하지?”
백구는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도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이 자식,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 말을 이해하는 것 같다.
루호는 괴물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슴이라고 했는데…….
누구냐, 넌!
“나 왔어!”
집 안에 들어가자 거실 소파에 앉은 기기래가 보였다.
“엥?”
오늘은 제법 화려하게 꾸몄다. 평소에 보던 사무적인 차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김상팔 씨, 안녕하세요?”
기기래가 저렇게 입고 왔다는 뜻은 단 하나!
난 단호하게 소리쳤다.
“우리 루호는 절대 넘겨줄 수 없어! 그러니까 포기해!”
왜냐하면 내가 계속 여기 얹혀살 거거든! 천상천하, 유아독존, 유비무환, 얹혀살기!
기기래는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소파에 기대면서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 민망하게 만드는 법 과외라도 받아요?”
한돈어학 교육이라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쓰레기 같은 일대일 과외를 받았죠. 젠장!
“형, 일찍 오셨네요?”
앞치마를 멘 루호가 부엌에서 나왔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을 보니 직접 과자를 만든 모양이다.
“두 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거의 다 됐어요.”
부드러운 루호의 미소에 기기래는 다소곳하게 몸을 추슬렀다.
“네. 기대할게요.”
“흥!”
나와 기기래는 나란히 앉아 루호의 과자를 기다렸다. 잠시 후, 루호가 쟁반에 생강 쿠키와 주스 두 잔을 갖고 돌아왔다.
“드세요.”
루호는 쟁반을 소파 앞 테이블에 내려놨다.
“잘 먹을게요!”
기기래는 설레는 얼굴로 가장 크고 예쁜 쿠키를 집었다.
난 정반대로 가장 작고 못생긴 쿠키를 집었다.
“후후후, 기대 따윌 하니까 실망하는 거예요.”
“네?”
기기래는 코웃음 치면서 쿠키를 한 입 깨물었다. 그리고 내 말을 무시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끄윽!”
기기래는 몸을 비틀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소리의 크기와 경련의 정도를 볼 때 그녀가 먹은 쿠키는 분명 빙초산 수준이었을 것이다.
왜 생강에서 식초 맛이 나는지에 대해선 굳이 따지면 안 된다.
왜냐하면 루호의 음식 솜씨는 단순히 ‘잘한다’와 ‘못한다’의 저급한 이분법적 논리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내가 먹은 쿠키는 꽤 맛있었다. 루호가 음식을 권할 땐 반드시 하자 있어 보이는 것을 고르면 된다.
“앗!”
더 이상 맛없어 보이는 쿠키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 시식은 이걸로 종료. 나머지를 전부 기기래에게 권했다.
“다 드세요! 우리 루호가 정성을 들여 만든 거니까,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드셔야 합니다! 알았죠?”
“그, 그렇지만…….”
기기래는 부들부들 떨면서 가장 앙증맞은 쿠키를 골랐다. 그리고 그것을 한입에 털어 넣은 직후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주스 마셔서 넘겨요.”
난 주스 잔을 들어서 기기래에게 주었다.
“그런데 기자님께선 어쩐 일이시죠?”
루호의 질문에 주스를 원 샷 한 기기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조루호 씨를 취재하고 싶어서요.”
우와! 이거 그거잖아? 데이트 신청?
난 잔뜩 긴장해서 루호의 대답을 기대했다.
이거 완전 멜로드라마 보는 기분이다.
“싫어요……라고 대답해!”
너무 감정이입을 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본심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 좀!”
기기래가 흘겨보면서 이를 갈았다. 거기에 쫄린 난 자진해서 쿠키를 먹었다.
“크윽!”
짜릿하다. 마치 혓바닥을 전기 충격기로 지진 것 같았다. 강력한 충격에 혓바닥이 굳어 버리자 얼른 주스를 마셔서 쿠키를 씻어 냈다.
“응? 잠깐……!”
마비? 좋은 아이디어야!
난 벌떡 일어서서 H력을 발동했다. 그리고 양손으로 각각 루호와 기기래의 멱살을 잡아 집밖으로 던졌다.
“데이트 잘 하고 와!”
문을 잠그고 혼자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충격’이란 단어로 열심히 검색을 시작했다.
“지난번엔 손평화가 있어서 비슷한 습성을 지닌 드릴소를 쉽게 잡았지만 이번엔 달라.”
혼잣말을 늘어놓으며 필사적으로 정보를 찾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검색으로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협회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랭킹 헌터의 권한으로 검색을 했다.
“이럴 땐 랭킹 100위여서 다행이란 말이지.”
협회에서 대여해 주는 장비 중 모래호랑이를 제압할 물건이 있는지를 찾았다.
그런 다음 호규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가지 질문을 했다.
***
일주일 뒤.
드디어 오늘 사냥에 나설 인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5급 사냥 구역 주차장. 이제 여기도 제법 와서 많이 익숙해졌다.
오늘 사냥에 참가하는 사람은 우리 팀 일곱과 최고의 최고 셋, 모두 합쳐서 열 명이다.
“잘 부탁드려요.”
최고의 최고 팀장인 모배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맡겨 줘.”
최고의 최고는 어디까지나 치료술사들. 사냥은 전적으로 우리 팀의 몫이었다.
“자자, 일단 작전 설명에 앞서서 신입을 소개해 줄게요. 노건 씨, 이리 오세요.”
혼자 떨어져 있던 노건이 쭈뼛거리며 내 옆으로 왔다. 그를 본 팀원들은 다들 박수를 치면서 인사를 건넸다.
“노건 씨는 왕년에 ‘광전사’라고 불린 전적이 있는 숙련된 헌터세요. 팀의 방어를 맡아 주실 거예요.”
솔직히 노건의 근력으로 보면 공격을 해도 충분하겠지만, 지금 우리 팀엔 방어가 시급하다.
“노건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노건의 소개를 끝내고, 드디어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우선 역할을 네 가지로 나눴어요. 각각 탐지, 방어, 속박, 공격, 이렇게요.”
탐지는 호규.
방어는 노건.
속박은 루호와 아란, 변해라.
공격은 나와 유정.
우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속전속결은 필수다.
다들 타고 온 밴의 트렁크에서 임대해 온 장비와 무기를 챙겼다.
호규는 속옷형 특수복 외 따로 장비를 챙기지 않았다. 탐지를 맡은 그의 입장에선 최대한 가벼운 게 좋았다.
방어를 맡은 노건은 양손에 직사각형 모양의 타워 실드를 들었다.
생긴 건 진압용 방패와 흡사하지만 견고함은 차원이 달랐다.
루호와 아란은 긴 강철 와이어와 함께 네모난 플라스틱 박스를 챙겼다.
저 박스가 바로 이번에 지부에서 대여해 온 물건이었다. 변해라는 볼트액션 라이플을 가져왔다.
위력을 생각하면 아쉽지만 어차피 그녀의 진면목은 사격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