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56화 (156/250)

156.

156.

“또 함정!”

또 모래 덩어리였다.

그렇다면 적지형은 도대체 어디에?

그 순간 아래턱으로 큰 충격이 오면서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발밑을 조심해야지! 하하하!”

적지형은 빠르게 몽둥이를 휘둘러서 내 머리만 집중 공격했다.

잠깐 동안 최소 20여 회 이상의 타격을 받았고, 빠르게 머리가 흔들리며 뇌진탕 증상까지 왔다.

“크, 크윽!”

강한 어지러움과 함께 시야가 일그러졌다.

적지형은 자신의 몸을 부분별로 토막토막 나눠서 각각의 모래 덩어리로 나눴다. 그리고 그것 자체를 탄환처럼 날려서 마치 로켓 펀치처럼 날 타격했다.

“후후후.”

한 방, 한 방이 대단한 위력이었지만 맞으면 맞을수록 점점 공격이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녀석이 지치기 시작했다!

“망할……자식……!”

적지형은 숨을 헐떡이며 몸을 다시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나 처음의 기세가 상당히 꺾인 것을 보니 많이 지쳐 보였다.

“힘드냐?”

난 스르르 슈트를 해제했다.

“나도 힘들다.”

적지형이 체력을 소모했다면, 난 H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반대로 적지형에겐 아직 상당한 H력이, 나에게는 체력이 남아 있었다.

처음엔 녀석에게 접촉해서 녀석의 H력을 흡수할 생각이었는데, 녀석이 몸을 모래로 바꾸면 그럴 수 없단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괴물 같은 능력을 얻었지?”

적지형이 헐떡이며 물었다. 난 씩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지금 나한테 그런 말 할 처지냐?”

난 겨우 능력발동만 유지하면서 적지형을 주시했다.

“쫄았냐?”

“이 새끼……!”

적지형은 어이가 없는지 몇 번 웃다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뒈져도 모른다?”

“그럼 지금까지는 살살한 거야? 힘 좀 쓴 것 같은데?”

적지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전신을 모래로 바꿔서 나에게 돌진했다.

모래더미가 파도처럼 날 휩쓸었다. 그리고 날 가둔 채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건 네 실수야. 슈트가 없어졌다고 같은 실수를 또 하냐?”

역시 적지형은 적지형!

참 한심한 노릇이다. 난 양손을 광권으로 보호한 후 무광탄을 모아 그대로 터뜨렸다.

“으아아악!”

적지형은 슈트 없는 내가 근거리에서 무광탄을 터뜨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H력 소모가 심한 슈트를 해제해도 여전히 광권으로 손을 감쌀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1차적 충격을 최소화해도 2차적으로 오는 충격엔 별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와 적지형 모두 큰 충격을 받은 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녀석이 높이 떠오르기 전에 서둘러 터뜨렸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켁, 켁! 크윽!”

피를 토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팔다리 쪽은 타박상 정도일 뿐 부러지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몸통. 숨을 쉴 때마다 따끔한 걸로 봐선 폐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저, 적지형은……?”

적지형은 나보다 훨씬 상태가 좋았다.

녀석은 거친 숨을 내쉬며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승리를 확신하면서 웃었다.

“히히히! 어디 일어나 보시지?”

적지형은 양손을 모래로 바꿔서 내 목을 감쌌다. 그리고 천천히 모래를 움직여 내 목을 조였다.

“켁! 케, 켁! 케엑!”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손안에 작은 무광탄을 만들어 끊임없이 압축했다.

너무 작아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아야만 승산이 있었다.

적지형은 뒤로 물러나면서 내 목에 모래만 남겨서 내 목째로 날 들어 올렸다.

“어디 또 터뜨려 봐? 엉?”

“이, 이 자식!”

흔들리는 시야로 겨우겨우 팔을 들어 적지형을 겨눴다. 그리고 간신히 만든 무광탄을 발사했다.

빠르게 날아간 무광탄은 적지형의 바로 앞에서 터졌다.

“아……타이밍이…….”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목을 짓누르는 느낌에서 해방되며 내 몸이 바닥에 널브러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끊겼다.

***

응?

이 느낌, 익숙하다!

아마도 지금 난 기절한 상태, 그리고 누군가의 H력이 내 몸으로 들어온 것 같다.

아마 지금부턴 그 누군가의 기억이 시작될 것이다. 이젠 이것도 꽤 할 만하다.

역시 사람이란 뭐든 하다 보면 적응하나 보다. 하하하.

“이건 말도 안 돼!”

화들짝!

누군가의 고함에 기억이 제대로 시작됐다.

지금 기억의 주인이 있는 공간은……배팅룸?

방 안에 있는 사람들로 봐선 나와 적지형이 싸운 시간대였다.

“이건 말도 안 된단 말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은……놀랍게도 김익조!

그가 이런 모습을 보여 주다니 좀 의외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내 계획이 성공했다는 의미다!

“진정하십시오!”

기억의 주인과 함께 몇몇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김익조를 말렸다. 그러나 눈이 뒤집힌 그는 H력까지 뿜어내면서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집어던졌다.

아무래도 기억의 주인은 직원 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어떻게 내가 질 수 있지? 내가 건 돈은 자그마치 2724억이다! 억 단위란 말이야! 3000억 이상 동원할 수 있는 김용을 빼고 누가 나보다 많은 자금을 투입할 수 있단 거야?”

그렇다. 김익조는 무려 배팅 순위에서 3위로 밀려 내게로 배팅이 옮겨진 것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난 적지형에게 이기지 못했다.

다른 건 몰라도 H력을 흡수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하긴, 100위에서 한번에 40위로 점프하는 건 좀 오버긴 했다. 덕분에 파산하긴 했지만, 김익조 역시 파산했다!

승자는 적지형에게 배팅한 김용과 이태한! 이태한이 김익조 이상으로 배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이해가 자금을 밀어 줬기 때문이다.

나와 태한이 따로 방을 나가는 것을 본 오이해는 단번에 내가 자기 옆구리를 찌른 이유를 눈치챘던 것이다.

역시 사법고시는 고스톱 쳐서 딴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다른 시합이었다면 이런 방법까지 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터들을 동물처럼 싸우게 하면서 돈까지 거는 행위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게다가 가능한 김익조에게 큰 타격을 주고 싶었다.

아무리 지부라 해도 갑자기 2000억 이상의 손해가 나면 휘청거린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모든 책임은 바로 지부장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과연 김익조는 이걸 어떻게 수습할까? 사퇴할까? 아니면 기자회견에서 철면피 사과?

일단 그를 곤경에 빠뜨렸단 점에서 대성공이었다.

“김, 상, 팔!”

김익조는 침을 흘리며 내 이름을 울부짖었다.

방 안에 있던 헌터들은 그 모습을 보며 낄낄거렸다.

김용은 가장 먼저 퇴장, 오이해는 태한과 가볍게 고개인사를 하고 나서 김용의 뒤를 따랐다.

태한과 이하란은 기기래와 함께 서둘러 방을 나섰다.

한편, 폭발대제는 하나 같이 복잡한 표정이었다.

마바일은 후련한 듯 웃으며 유리 벽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갈면서 분을 참지 못했다.

특히 팀장인 하상구는 전신을 벌겋게 달구면서 치를 떨었다.

“이런 못난 새끼! 등신! 머저리!”

하상구의 주변이 빠르게 달아올라 불꽃이 생길 틈도 없이 새까맣게 탔다.

마치 영역을 표시하듯 검게 탄 재가 그의 주변에 깔렸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리며 그 부근에게서 떨어졌다.

“이건 치욕이야! 우리 폭발대제의 랭커가 저런 조무래기한테 수모를 겪다니……!”

“티, 팀장. 그래도 승리했잖아요?”

아까 날 놀린 멸치 같은 놈이 히죽 웃으며 하상구에게 말했다. 그러자 하상구는 입에서 불을 내뿜으며 소리쳤다.

“닥쳐! 저게 어떻게 이긴 거야? 저건 진 거나 마찬가지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 한 번만 더 주둥이를 나불거리면 태워 죽이겠어!”

“히익!”

폭발대제의 다른 팀원들까지 하상구를 두려워하며 가까이 가지 못했다.

공포특급은 어수선한 방 안 분위기에 질색하며 후다닥 퇴장했다.

“김, 상, 팔!”

김익조와 하상구가 우연히도 동시에 내 이름을 외쳤다.

둘 다 이성을 상실한 상태였기에 방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헌터들은 그냥 퇴장하는 사람과 이 난장판을 구경하는 사람으로 나뉘었고, 누구도 두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

지금 이 방 안의 모습이 현재 한국 헌터 업계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끝났다. 그리고 난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으랏차차!”

기지개를 펴면서 몸을 살폈다. 상체는 붕대로 갑갑하게 매여 있고, 하체는 대체로 멀쩡했다.

“어머!

바로 옆에 간호사들이 있었다. 내가 현재 누워 있는 곳은 바로 지부에서 운영하는 헌터 전문 병원이었다.

다행히 내가 일찍 깨어나서 전문적인 검사가 실행되기 전이었다.

일반적인 의료 검사로는 H력 관련 장기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김상팔 씨. 기분은 좀 어떠세요?”

의사가 다가와 나에게 물었다.

난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좋아요. 최대한 빨리 퇴원할 수 있도록 해 주실래요?”

“혹시 모르니 정밀 검사를 해 보시죠. 가격은 얼마 안 합니다. 김상팔 씨 같은 경우는 랭킹 헌터이시고, 또 지부에서 다치셨으니까 아주 싸게 해 드리겠습니다.”

너희 평소에는 이렇게 안 친절하잖아? 되게 친절하게 구네?

갑자기 친절하게 대해 주니까 오히려 경계심만 생겼다.

“그냥 빨리 퇴원하게만 해 주세요. 검사는 간단한 것만 해 주시고요.”

“그냥 온 김에 받으시죠. 아주 쌉니다. 지원금이 나오니까 김상팔 씨께서 내시는 금액은…….”

되게 끈질기네.

“괜찮습니다.”

“아니요, 괜찮아도 받아 보십시오. 생각보다 안 비싸요. 대부분의 비용은 국가에서…….”

“싫, 습, 니, 다.”

의사는 거듭된 내 거부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딱히 그 이상 말을 하진 않았다.

그렇게 난 간단한 검사 후 붕대를 감는 정도의 치료를 받고 병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난 병원을 나온 즉시 조물주 의원으로 가서 입원했다.

***

한 달 뒤. 입원비는 빚으로 남았다.

원룸에서도 쫓겨나 빈털터리 신세로 모든 짐을 거대한 배낭에 짊어진 채 거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왠지 아저씨 신세 같잖아.”

한돈 아저씨와는 연락이 끊겼다.

아저씨가 알려 준 연락처는 없는 번호가 된 상태고, 고아원에 연락한 결과 아저씨는 고액의 후원금을 남긴 채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지금의 나로선 아저씨를 찾을 방도가 없다.

“배고프다.”

버스 탈 돈도 없어서 무려 4시간을 걸어갔다. 오늘은 바로 태한과 이하란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으으, 냄새! 뭐야, 이 거지는? 누가 불렀어?”

“저것 봐. 잡상인이 왔어! 누가 좀 내쫓아!”

“보기 흉하군. 말세야, 말세. 이 좋은 자리에 저런 천한 게 오다니…….”

식장 1층에서부터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다.

다들 코를 잡으며 손가락질을 했다. 마음 같아서 저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다 잡아서 부러뜨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지금 내 상태가 좀 구리긴 했다.

“어디보자, 식장이…….”

[5층 신랑 이태한 님, 신부 이하란 님]

“5층이면…….”

양심상 엘리베이터는 못 타겠다.

결국 계단으로 5층까지 올라갔다.

“김상팔!”

흰색 양복을 입은 태한이 빠르게 걸어왔다. 녀석은 날 포옹하려고 하다가 잠시 멈칫거리고는 악수로 대신했다.

“옷 좀 갈아입어야겠는데?”

“미안.”

“아니야. 대충 사정은 알고 있어. 저쪽 방에 대충 준비해 놨으니까, 갈아입어 줘. 그래도 결혼식인데 이런 패션은 좀 아니잖아?”

난 고개를 끄덕인 후 태한이 가리킨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양복 한 벌이 있었고 안쪽 문을 통해 샤워실과 연결되는 구조였다.

“꽤나 배려해 줬네.”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가 땀을 씻어 냈다.

그때 반대편에 있는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샤워실로 들어왔다. 난 황급히 타월로 중요 부위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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