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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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글쎄요?”
오이해하고는 적이 되지도, 아군이 되지도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아까 적지형과 김경진의 대결도 그렇고, 이 사람도 상당히 수상하다.
“두 분!”
멀리 떨어진 김익조가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건가요?”
“하하하, 아무 일도 아닙니다.”
오이해는 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필드에선 어느덧 승부가 나고 있었다.
“크아아악!”
마바일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채 자신의 손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멀리서 봐도 그의 손은 형체가 뭉개져 있었다. 아까의 공격으로 인해 역으로 그의 주먹이 다친 것이었다.
[승자 이준]
이번 경기에선 달랑 10억만이 내 팔찌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 경기 후에 휴식을 다 쓴 인물은 나와 김익조, 둘로 늘어났다.
더불어 이번에 대량으로 쉬었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선 다들 휴식을 할 수 없었다.
마바일이 실려 가고 이준은 몸을 풀면서 여유롭게 퇴장했다. 그리고 다음 도전자인 이신지가 필드에 올랐다.
바닥이 엉망진창이 되어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됐음에도 그는 가볍게 뛰어서 제자리에 섰다.
“전 조기홍과 싸우겠습니다!”
14위 이신지와 11위 조기홍의 대결.
이신지는 쉼표 머리에 와이셔츠, 검은 면바지 차림을 한 평범한 회사원 같은 느낌의 청년이었다.
그와 싸울 조기홍은 흰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대학생 패션이었다.
[이신지 VS 조기홍]
“엇비슷한데……?”
능력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두 사람의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 있다. 다만 랭킹도 비슷하고 명성도 비슷한 수준이라 예측이 힘들었다.
“기기래 씨 생각은요?”
“끄응…….”
기기래도 손톱을 씹으며 고심했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 역시 고민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들 쉽사리 어느 한쪽에 배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봐! 손님들께서 난감해하시지 않나? 빨리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김익조의 호령에 직원들은 허겁지겁 심판석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러자 이서현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이신지 씨는 어금니 소속, 조기홍 씨는 슈퍼타이거 소속입니다!”
그게 끝?
혹시나 뭔가 더 있을까 봐 스피커를 예의주시했다.
“훌륭한 정보야!”
김익조는 혼자 만족해서 박수를 쳤다. 그러자 스크린 위에 60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시간 안에 배팅을 하시지 않으면 랜덤 배팅 됩니다.”
와, 양아치네!
아마 김익조는 도전자들에 대한 개인 신상 정보를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신지 1 VS 조기홍 1]
또다시 일제히 휴식. 배팅을 한 사람은 나와 김익조뿐이었다.
내가 이신지에게 걸었으니, 김익조는 조기홍에게 건 것이 분명했다.
나야 최소 금액만 걸었지만 김익조는 과연 얼마를 걸었을까?
생각지도 못하게 기회가 왔다.
“시작!”
이서현의 신호와 함께 시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둘은 곧장 능력발현을 했다.
둘 다 H력으로 물건을 만들었는데 이신지는 쇠사슬, 조기홍은 커다란 말뚝이었다.
조기홍은 이신지를 향해 말뚝을 던졌다. 그러자 그가 던진 말뚝은 날아가면서 여러 개로 늘어났다.
이신지는 쇠사슬을 휘둘러 말뚝들을 쳐냈다.
유리 벽 너머로 금속음이 진동하며 필드를 울렸다. 그런 후 그 역시 쇠사슬을 던져서 조기홍을 노렸다.
조기홍은 몸을 날려 이신지의 쇠사슬을 피했다. 그러나 쇠사슬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방향을 틀어 계속해서 그를 추적했다.
이신지가 손 하나를 더 뻗으니 쇠사슬이 하나 더 생겨났다.
“하앗!”
조기홍은 공중제비를 도는 동안 손끝으로 공중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 말뚝이 발사되어 공중에 머물렀다.
마치 공중에 박힌 것 같았다. 그는 그 말뚝을 밟아서 공중에서 더 높게 도약했다.
“와!”
보고 있으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말뚝들은 계속해서 생겨났고, 조기홍은 그 위를 가뿐하게 밟으며 공중을 날았다.
이신지도 그를 따라 자신의 쇠사슬을 밟으며 그 위를 달렸다.
쇠사슬은 스스로 의지를 가진 듯 굉장히 정교하게 움직이며 조기홍을 뒤쫓았다.
말뚝과 쇠사슬은 서로 섞이면서 공중을 수놓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위를 달리며 때 아닌 추격전을 벌였다.
“꺄아아악!”
기기래가 비명을 지르며 내 뒤로 숨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곧장 유리 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도착하기 전, 그에 앞서 쇠사슬과 말뚝이 유리 벽으로 날아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두 물건은 유리 바로 앞에서 멈췄고, 두 사람은 그걸 밟고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받아라!”
방향을 틀자마자 조기홍은 뒤로 돌아서 이신지에게 말뚝을 발사했다.
말뚝은 여러 개로 늘어나며 산탄처럼 날아갔고, 막 방향을 튼 이신지는 이를 피하지 못했다.
“크윽!”
이신지의 몸에 세 개의 말뚝이 박혔다. 그리고 어깨와 팔, 다리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유리 벽으로 튀었다.
“으아아아!”
이신지는 양손으로 쇠사슬을 더 만들어 내서 각각 가로축과 세로축을 그었다. 그러나 최기홍은 대각선으로 몸을 날려 그것마저도 피했다.
“크윽!”
공격이 빗나가자 이신지는 공중에서 균형을 잃고 필드로 떨어졌다.
푹 꺼진 곳으로 떨어진 그는 잠시 필드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여기보다 아래층으로 떨어진 거 아닙니까?”
이회종이 다급한 목소리로 김익조에게 물었다. 그러자 김익조를 대신해 김용이 대답했다.
“여기가 가장 아래층입니다. 바닥이 부서져서 조금 공간이 생겼을 뿐, 추락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것보단 공중에서 떨어질 때의 충격이 더 크겠죠.”
김용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필드 바닥을 뚫고 수십 개의 쇠사슬들이 솟아올랐다.
흡사 줄기가 자라듯 쇠사슬은 출렁거리며 공중에 있는 조기홍을 노렸다.
“하앗!”
조기홍도 단번에 수십 개의 말뚝을 만들어 내며, 그것들을 동시에 바닥으로 뿌렸다.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쇠사슬과 말뚝이 부딪치며 필드 전체에서 수백 개의 불꽃이 튀겼다.
말뚝에 꿰인 쇠사슬은 그대로 바닥에 박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도 몇몇 쇠사슬은 말뚝을 쳐내며 나아갔다.
“크윽!”
조기홍은 몸을 비틀며 쇠사슬들을 피했다. 그러나 몇 개가 그의 몸을 스치면서 옷과 살갗을 찢었다.
“크윽!”
조기홍은 계속해서 공중을 뛰어다니며 유리 벽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곳에 흰색의 말뚝 하나가 생기며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그의 H력을 빨아들이며 점점 크기가 커졌다.
쇠사슬들은 계속해서 솟아올랐다.
양쪽 모두 자신이 가진 H력을 전부 쏟아부으며 소모전으로 가고 있었다.
조기홍은 더 이상 말뚝들을 만들지 않고 흰색의 것 하나에 올인하며 계속 피하기만 했다.
“승부가 났군.”
태한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김용과 오이해가 콧방귀를 뀌었다.
흰색 말뚝의 크기가 거의 트럭만 해졌을 때 조기홍은 그 위에 올라탔고, 그 순간 말뚝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필드에 말뚝이 박힌 순간 거대한 충격과 함께 방 안이 흔들렸다.
“앗?”
내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흰색 말뚝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밑에서 이신지가 높이 뛰어올랐다.
그는 자신의 양팔을 쇠사슬로 휘감고 있었다.
조기홍은 말뚝 파편과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으럇!”
이신지의 주먹이 조기홍의 안면에 적중.
조기홍의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주먹을 날린 이신지의 복부에는 조기홍의 말뚝 파편이 박혀 있었다.
커다란 조각은 그의 몸을 꼬치처럼 꿰고 있었다.
“크윽!”
이신지는 바닥에 잘 착지했지만 오히려 그 충격으로 인해 복부의 상처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는 피가 쏟아지는 배를 움켜잡으며 버티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승자 조기홍]
“멋진 승부였어요.”
난 박수를 치며 진심으로 두 사람의 승부에 경의를 표했다.
만약 지금 필드에 있는 사람이 나였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온몸이 떨렸다.
[1. 김용, 소지금 : 1369억 / 대출 한도 : 2000억]
[2. 김익조, 소지금 : 233억 / 대출 한도 : 2000억]
[3. 오이해, 소지금 : 1871억 / 대출 한도 : 1000억(전액 대출 중)]
[4. 이태한, 소지금 : 63억 / 대출 한도 : 1000억]
[5. 한현두, 소지금 : 85억 / 대출 한도 : 900억]
[6. 이회종, 소지금 : 263억 / 대출 한도 : 700억]
[7. 김상팔, 소지금 : 751억 / 대출 한도 : 200억(전액 대출 중)]
이제 마지막 9경기.
여전히 필드는 박살이 난 채로 도전자가 서 있었다.
바로 방금 전 시합을 마친 조기홍이었다.
“내 상대는 단 하나!”
이준이 필드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 승부는 그 결과가 불 보듯 뻔했다.
조기홍은 그 전 경기에서 족히 수백은 될 말뚝을 만들어 냈다.
H력의 물질화를 그렇게까지 다량으로 했으니 아무리 상위 랭커라도 H력이 바닥났을 것이다.
반면에 이준은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다.
[조기홍 VS 이준]
다들 어디에 걸지는 뻔했다.
그래서일까?
모두 배팅을 어디에 할 것인가가 아니라 배팅액을 고심하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크게 걸었다가 자칫 배팅액 순위에서 밀려나기라도 하면 역으로 큰돈을 잃을 수 있다.
“얼마 걸 거예요?”
기기래가 막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담담히 내 생각을 말했다.
“지금 스크린에 뜬 총 자금량 순서대로 배팅액 총액이 결정될 거예요. 그러니까 5위 이하는 확실하게 아웃이죠.”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4위 이상의 사람들이 5위인 한현두의 최대 자금 이상으로 걸어 버리면 끝이다.
그렇게 되면 한현두, 이회종, 나는 전액을 쏟아도 아웃되는 것이다.
당연히 여기선 최소액만 거는 것이 답이다.
“마지막이니까 다들 열심히 걸어 주십시오. 지부는 언제나 여러분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김익조가 방 안의 사람들에게 외쳤다. 그러자 김용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 100억만 걸겠습니다. 아직 못 따신 분들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엥?
1등인 김용이 빠진다면, 한현두까지 승리조에 들어갈 수 있다!
한현두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배팅했다. 이때 오이해도 손을 들면서 말했다.
“저도 100억만 걸 겁니다.”
오이해까지 선언하니까 이회종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상위권 두 사람이 최소한의 금액만 건다면 사실상 그까지 승리조의 영역이었다.
이제 할 일은 나보다 더 많은 금액을 거는 일 뿐. 실제로 그는 말을 듣자마자 팔찌에 배팅을 했다.
[조기홍 VS 이준 4]
100% 이길 수 있는 승부.
여기에 전력을 다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 잘 생각해 보면 태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10억씩만 건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스크린에 자금이 공개된 후에는 10억씩만 건 것은 분명했다.
그럼 나까지 승리조가 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돈이 엮이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때 이하란이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청첩장 미리 드릴게요. 저희는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바로 떠날 거거든요.”
그녀는 품속에서 타로카드 덱을 꺼내 그 중에서 한 장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