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51화 (151/250)

151.

팔찌로 들어온 금액은 무려 378억. 우리가 기뻐하는 것과 달리 다른 사람들은 욕설을 내뱉었다.

“야, 이 새끼들아! 여기 연애하러 왔어? 뒈지고 싶어?”

한 CEO가 이를 갈면서 우리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함께 눈을 흘기며 그와 눈싸움을 했다. 그러자 직원이 와서 우리를 말렸다.

“하여간 요즘 헌터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니까! 개새끼가 주인 앞에서 건방지게!”

“흥!”

우리는 유리 벽으로 시선을 돌리며 다음 시합을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쪽이 김상팔 씨인가요?”

진중한 목소리. 큼지막한 뿔테 안경. 빡빡 민머리. 바로 랭킹 8위의 헌터 겸 변호사 오이해였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나에게 건넸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시겠습니까?”

“예?”

난 잠시 기기래를 보며 망설였다. 그런데 의외로 기기래가 내 등을 떠밀었다.

“가서 이야기하고 오세요.”

“예.”

우리는 모두와 떨어져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일이시죠?”

“먼저 김상팔 씨에 대해 제 나름대로 조사를 했단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헌팅 페스티벌의 투괴에서 꽤 대단하셨더군요.”

“그래서요?”

“김상팔 씨의 눈썰미라면 오늘 스페셜 매치에서도 대단한 성과를 내실 겁니다. 만약 그렇게 되신다면 그 돈으로 뭘 하실 겁니까?”

목적은 돈?

오이해가 나에게 접근한 이유가 납득이 가질 않았다.

“사냥 자금으로 삼을 건데요?”

“하하하.”

오이해는 건성으로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감히 추측하건대, 김상팔 씨는 그 돈으로 지부에 줄을 댈 생각 아니십니까? 김상팔 씨가 랭킹을 올릴 수 없단 사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난 미간을 찌푸리며 오이해의 말을 부정했다.

“랭킹을 올릴 수단은 따로 있는데요? 그 돈은 다른 일에 쓸 겁니다.”

“그래요?”

오이해는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나와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다른 팔을 뻗어 방 안의 다른 사람들을 가리켰다.

“당신도 랭킹 헌터로서 분명 로얄이 되고 싶을 겁니다. 만약 오늘 큰돈을 벌게 된다면 단번에 랭킹을 올릴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죠. 그럼 한 가지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게 뭐죠?”

내가 퉁명스럽게 묻자 오이해는 정색하며 답했다.

“‘어느 파벌에 들어갈 것이냐?’입니다.”

“파벌이요?”

“랭킹 헌터는 크게 세 파벌로 나뉩니다.”

오이해는 우선 김용을 가리켰다.

“김용의 어금니를 중심으로 지부에게 빌붙어 이익을 추구하는 ‘지부파’. 그리고 신진부의 슈퍼타이거를 중심으로 헌터 중심의 혁신을 추구하는 ‘개혁파’.”

오이해의 손은 천천히 움직여 태한에게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이태한, 그리고 남주나의 공포특급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활동을 추구하는 ‘자유파’.”

“그래요? 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오늘을 준비하기 위해 나름 철저히 공부를 했는데, 파벌 이야기는 정말 금시초문이었다.

“이름은 제가 임의로 붙인 겁니다. 하지만 대략 이렇게 부류가 나뉘어 있습니다.”

“오이해 씨는 어느 파벌이신가요?”

“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누구와도 일할 수 있죠.”

변호사란 직업에 충실한 건가?

오이해는 열심히 자신을 어필했다.

“김상팔 씨가 원한다면 어느 파벌과도 다리를 놔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 상응하는 비용은 받을 겁니다.”

“그렇군요.”

“당신은 이제 유명인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부당한 현실에 좌절하지 마십시오. 방법은 많습니다.”

난 오이해의 어깨동무를 풀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언 감사합니다.”

“다들 당신이 어디에 속할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고요.”

나와 오이해는 악수를 나눴다.

내가 기기래에게 돌아왔을 때 스크린에는 4경기 도전자로 루호가 선택되어 있었다. 루호는 조용히 도전 상대를 말했다.

“적지형 씨에게 도전하겠습니다.”

“오오!”

방 안이 크게 술렁였다. 도박을 떠나 다들 루호와 적지형의 대결을 기대하고 있었다.

“당연히 적지형이지!”

“조루호는 이미 상처투성이야.”

“이번 배팅은 쉽군!”

다들 팔찌에 대고 큰소리로 액수를 외쳤다. 하나 같이 백억을 가볍게 상회하는 금액. 필사적인 외침에서 그들의 절실함이 드러났다.

[조루호 VS 적지형 7]

“상팔 씨는요?”

기기래의 물음에 난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 이 방에 있는 사람 중에서 절 포함한 세 명은 ‘휴식’을 선택한 것 같아요.”

“그래요?”

우리는 함께 방 안을 둘러봤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소위 사회 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부류. 그러나 그런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어둡게 일그러져 있었다.

“얼굴이 평온한 사람은 이태한 씨랑 김익조 지부장뿐이네요.”

난 진심으로 루호를 응원했다.

적지형은 지금까지의 상대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루호도 그것을 알았는지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능력발현을 써서 사슴으로 변신했다.

“와!”

적지형도 능력발현을 써서 전신을 모래로 바꾸었다. 그리고 자신의 H력으로 모래를 만들어 몸집을 불렸다.

두 괴물은 필드 위에 서서 서로를 노려봤다. 다들 숨을 죽이며 둘의 싸움을 기다렸다.

“응?”

적지형의 등에서 흘러내린 모래가 스멀스멀 움직여 루호의 양옆으로 갔다.

루호는 적지형에게서 눈을 떼지 못해 그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다가 둘은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흰 사슴은 고개를 숙여 뿔을 겨누고, 모래 거인은 힘껏 주먹을 뻗었다.

뿔과 주먹이 만나는 순간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모래 주먹이 터졌다. 그리고 모래가 사방으로 날아가 우리가 있는 방 유리에까지 닿았다.

적지형은 형체도 남지 않고 무너져 내렸다.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모래는 바닥으로 뿌려져 필드 전체를 채웠다.

“주, 죽은 건가?”

방 안이 불안감으로 웅성거렸다. 그러나 그 이유는 적지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망할 자식! 뭐가 랭킹 40위야? 쓰레기 같은 자식! 뒈질 거면 이긴 다음에 뒈지란 말이야!”

다들 욕설을 내뱉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몇몇은 침까지 흘리며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루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계속해서 경계했다.

아직 이서현은 루호의 승리를 선언하지 않았다.

“앗!”

필드 위의 모래가 살아 움직이며 회오리처럼 빙빙 돌기 시작했다.

거대한 움직임은 지하 내 공기를 순환시켰고, 곧 거대한 모래 폭풍으로 변해 몰아쳤다.

모래 폭풍은 필드 전체 크기로 불어나 단숨에 흰 사슴을 집어삼켰다.

“루호야!”

유리 벽까지 모래들이 튀면서 높고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

방 안에 있는 나로선 필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다.

모래 폭풍은 강하게 몰아치며 필드 여기저기의 시설을 파괴했다.

모래의 거친 움직임에 조명이 깨지며 파편들이 날아다녔으며, 전선이나 쇳조각들도 폭풍 속에 섞여 있었다.

“이게 적지형의 능력?”

모래 폭풍은 점차 붉게 물들었다.

피를 잔뜩 머금은 모래는 질척이며 유리 벽을 더럽혔다.

“상팔 씨?”

기기래가 떨리는 손으로 유리 벽에 묻은 핏방울들을 가리켰다.

폭풍은 피를 머금은 채 도무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승자 적지형]

폭풍이 멈췄을 때 필드엔 피투성이가 된 루호와 의기양양하게 선 적지형이 있었다.

“어떠냐? 이게 바로 적지형 님의 실력이다!”

적지형은 유리 벽을 향해 혀를 내밀며 중지를 세웠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녀석은 기절한 루호를 발로 찼다.

“약한 녀석은 이 업계에 필요 없어! 나보다 약한 놈들은 어차피 송사리라고!”

“어서 말려요!”

난 유리 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직원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직원들은 지금 내 말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처리하고 있었다.

“이건 무효야! 이건 무효라고!”

“난 망했어! 히히히! 망했다!”

“이건 모두 지부의 음모야! 날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빚을 떠안긴 거라고!”

의원님 세 분이 사이좋게 파산했다. 직원들은 흥분한 세 사람을 제압하며 방에서 끌고 나갔다.

출입구와 이어진 통로에서 그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져 왔다.

“여러분, 곧 다음 배팅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부디, 동요 마시고 느긋하게 즐겨 주십시오.”

직원은 방 안의 사람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지금부터 스크린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난 스크린 대신 필드의 루호를 바라봤다. 다행히 루호는 직원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었다.

“적, 지, 형!”

이를 갈면서 다음 도전자인 적지형을 노려봤다. 그때 기기래가 다급히 날 불렀다.

“상팔 씨. 저것 좀 보세요!”

“엥?”

아주 잠시 동안 얼이 빠져 스크린을 쳐다봤다. 거기엔 지금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소지금이 띄워져 있었다.

[1. 김용, 소지금 : 1277억 / 대출 한도 : 2000억]

[2. 김익조, 소지금 : 1051억 / 대출 한도 : 2000억]

[3. 한현두, 소지금 : 785억 / 대출 한도 : 900억]

[4. 오이해, 소지금 541억 / 대출 한도 : 1000억]

[5. 이회종, 소지금 697억 / 대출 한도 : 700억]

[6. 이태한, 소지금 93억 / 대출 한도 : 1000억]

[7. 김상팔, 소지금 434억 / 대출 한도 : 200억(전액 대출 중)]

“지금부터 매 경기 후 이렇게 결산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직원의 발표에 김익조가 예의상 박수를 쳤다. 그러자 거기에 맞춰 두세 명이 호응해 줬다.

태한이 꼴찌?

의아스러워서 휙 태한을 돌아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까딱였다.

“이건 너무 비겁하네요.”

기기래는 빠르게 스크린의 내용을 암기했다.

“사실상 이 스페셜 매치는 보유 자금력, 그리고 대출 한도액이 높을수록 유리한 도박이에요. 물론 상팔 씨처럼 계속 승리해서 액수를 늘릴 순 있겠지만, 김익조 지부장의 경우 그냥 빚까지 내서 가장 확실한 사람에게 배팅하면 그만이거든요.”

“그렇죠.”

기기래의 말에 동의하며 김익조를 째려봤다. 그는 씩 웃으며 손에 든 술잔을 들어 올렸다.

“더구나 이렇게 각자의 소지금까지 공개하는 건 우리처럼 소지금이 적은 측에 있어 가장 악질적인 수단이에요. 얼마를 쓰면 깔아뭉갤 수 있는지 알게 되니까요.”

기기래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조루호 씨 경기가 끝났으니까, 그냥 여기서 포기하세요. 그럼 대출액인 200억을 변제하고도 234억. 남은 경기에서 10억씩 날리면 184억은 건질 수 있어요.”

냉정한 판단. 그러나 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왜요?”

기기래의 질문에 미간엔 주름, 입술엔 미소. 복잡한 심정으로 윙크를 했다.

“오늘 자리는 적당히 안 끝나요.”

나와 김익조, 혹은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허락지 않을 것이다.

본래 도박이란 상대방과 나, 둘 중 하나가 파멸해야 끝나는 법이다.

다음 도전자, 적지형은 잠시 동안 누구에게 도전할지 고민했다. 그보다 높은 랭킹의 헌터는…….

30위, 김경진.

20위, 이경신.

18위, 마바일.

14위, 이신지.

11위, 조기흥.

10위, 이준.

이렇게 여섯이었다. 그들 중 김경진과 이경신은 서로 랭킹이 바뀐 상태였다.

“후후후.”

적지형은 몸을 풀면서 외쳤다.

“약골, 김경진 나와!”

안 그래도 20위에서 30위로 떨어졌던 김경진은 잔뜩 얼굴을 구기며 필드로 올라왔다.

“가즈아!”

적지형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으며 기합을 넣었다. 기백만 보면 벌써 승부가 난 것 같았다.

[적지형 7 VS 김경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