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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49화 (149/250)

149화

149화

“말씀하시죠.”

“당신의 능력과 활약엔 정말 탄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묻죠. 어떻습니까? 저희와 함께 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당신의 직위를 제가 보장해드리겠습니다.”

김경진이 팀원들을 다루는 태도, 그리고 그런 그조차 쩔쩔 매는 김용. 어금니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역시 거절하겠습니다.”

이런 팀이 있기에 한국 헌터 업계가 썩은 것인지, 아니면 현 헌터 업계에서 탑이 되려면 이런 팀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결코 내가 지향하던 바가 아니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어금니는 그렇게 철수했다. 그리고 장벽 밖으로 나오고 나서 한 번 더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오늘도 생존율이 100%군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100%? 그게 무슨 소리지? 어리둥절해서 함께 들어갔던 헌터들을 둘러봤다.

처음 돌입했던 100여 명 중 생환한 사람은 30여 명이었다. 다들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입을 열진 않았다.

“이게 어떻게 100%라는 거죠?”

내가 묻자 다들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특히 몇몇은 손까지 휘저으며 날 말리려 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특별히 대답해 드리죠.”

김용은 품속에서 빗을 꺼내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다듬었다.

“현 업계의 암묵적인 룰 중엔 사냥 중 사망할 경우 자기 몫을 받지 못한다는 게 있죠. 왜냐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협회에서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다. 다만 무조건 보상을 주는 것은 아니고 협회에서 일정 기간 조사를 한 후 정말 사냥 행위를 하다 사망했다고 판단되면 유가족에게 돈이 나온다.

“그런데 저희 같은 랭킹 팀의 경우엔 사망자가 많을수록 패널티를 받게 됩니다. 마이너스는 적을수록 좋죠. 사업에 있어서 불확실한 요소는 철저히 배제하는 게 제 철칙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죽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그 말은 어금니에 패널티도 없고, 유가족에게 갈 보상금도 없다는 뜻이다.

난 흥분해서 버럭 소리쳤다.

“동료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도 같은 팀이잖아요!”

아무리 헌터 업계가 빡빡해도 최소한이라는 게 있다. 더구나 업계 정상이라는 팀에서 이런 식으로…….

실망감과 분노가 몰려왔다.

“김상팔 씨. 우리가 하고 있는 건 비즈니스지, 애들 장난이 아닙니다. 이성과 감성 사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평생 이류로 살아야 합니다.”

김용는 말을 마치고는 그대로 주차장에 세워진 고급 세단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의 차에는 운전기사가 따로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차를 타고 떠나고 주차장에 남은 사람은 나와 김대팔뿐이었다.

“뭐, 그럭저럭 성공했네요. 축하드립니다.”

김대팔이 티라노 발톱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이 자식, 지금 날 놀리는 건가?

미간을 찌푸리며 김대팔에게 물었다.

“김대팔 씨는 계속 어금니에 계실 거예요?”

“네. 여기 있으면 한국 지부랑 접촉하기 엄청 편하거든요.”

접촉? 지부랑 접촉해서 뭐하려고?

김대팔을 째려보자 그는 휙 돌아서서 딴청을 피웠다.

“어휴.”

내가 티라노랑 무슨 대화를 하냐. 저거 가만 보면 완전 한돈 아저씨2야.

우리도 차를 타고 사냥 구역을 떠났다. 물론 마지막까지 운전은 내가 했다.

***

―괜찮으면 너희 팀에 들어가도 될까?

“예?”

가스고라니를 사냥한 주말. 갑자기 이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 병원에 있는 모양인데, 초조선과 상의한 결과 결국 어금니를 탈퇴했다고 한다.

“들어오셔도 되는데, 저희 당분간은 팀 활동 안 할 거예요.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다른 팀원들 번호를 알려 드릴 테니까 개인적으로 접촉해 보세요.”

―그래, 잘 부탁한다. 나중에 또 연락할게.

난 전화를 끊고 가던 발걸음을 마저 움직였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헌터 협회 한국 지부 건물의 지하. 지상으로부터 수십 미터 아래에 있는 이곳은 스페셜 매치가 벌어지는 장소였다.

어두운 방 안은 사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헌팅 페스티발의 투기장처럼 방 아래에는 넓은 필드가 있었다.

특수한 날, 특수한 시간, 그리고 특수한 인원만이 행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합법 도박.

날 포함해 모인 사람은 모두 아홉 명이었다.

나, 금배지를 단 사람이 셋, 뉴스에 나온 경제인이 둘, 랭킹 헌터가 셋.

우리는 매치에서 배팅을 할 수 있는 자격으로 손에 금색 팔찌를 차고 있었다.

팔찌는 일종의 전자식 지갑으로, 사전에 미리 협회에 입금한 돈이 바코드로 새겨져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화장실을 다녀온 기기래가 내 옆에 섰다. 스페셜 매치에선 동행자를 한 명 데려올 수 있는데, 그녀가 오늘 내 파트너였다.

“잘 지냈어?”

태한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의 옆에는 매우 살갑게 팔짱을 낀 여성이 서 있었다.

“이쪽은 저번에 말했던 내 약혼녀.”

“안녕하세요, 이하란이라고 합니다. 제 목숨을 살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쌀쌀맞았던 태한이 약혼녀 하란 옆에선 부드러워 녹아 버릴 지경이었다.

“우리 다음 달에 결혼해. 네가 꼭 참가해 줬으면 좋겠어.”

“그래? 축하해.”

“그런데 좀 의외군. 이런 자리를 좋아하는 타입이었나?”

태한의 질문에 난 뒤통수를 긁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사정이 있어서, 넌?”

“난 마지막으로 온 거야. 이제 여기 올 일이 없거든.”

태한은 후련하다는 듯 씩 웃었다. 난 그런 그의 얼굴에 마음이 풀어져 농담을 건넸다.

“결혼식은 뷔페야, 테이블이야? 우리 쪽에 먹성 좋은 사람이 있거든.”

“그럼 호텔 뷔페로 해야겠군. 아직 정하진 않았어. 그동안 밀린 일들을 하나씩 하고 있는 중이거든.”

태한은 하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살짝 부럽기까지 했다.

“저기 봐요! 지부장이에요.”

기기래의 말에 우리의 시선은 일제히 출입구 쪽으로 쏠렸다. 그녀의 말대로 거기엔 10여 명의 호위를 받고 있는 김익조가 서 있었다.

“이제 다 모였네요.”

배팅자격을 갖춘 열 명.

판돈으로는 최소 수백에서 수천억이 웃돌 것이다. 지금 내 손에 있는 자금은 딱 10억. 지금까지 번 돈과 원룸의 보증금, 그리고 튜트리팟에서 받은 광고 수익금, 거기에 아저씨한테 빌린 돈까지 합한 것이었다.

이 금액이 스페셜 매치에 참석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고작 10억 갖고 되겠어요?”

기기래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 난 억지로 미소 지었다.

“걱정 마세요. 이 돈이 곧 불어날 테니까요.”

“거짓말하는데 소질은 없네요. 얼굴에 불안하다고 쓰여 있거든요?”

그녀를 데리고 온 이유는 그녀의 직업이 기자이기 때문이다.

여기 온 것부터가 내게는 도박의 시작. 두려움이 묻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 스페셜 매치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이크를 지닌 이서현이 필드 위에 나타났다. 지하임에도 마치 대낮처럼 밝은 공간에서 그녀는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오늘 진행은 지부장 직속 총괄팀장인 저 이서현이 맡겠습니다. 아무쪼록 손님 여러분께선 스페셜 매치를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뒤로 스크린이 내려왔다. 그리고 벽에 설치된 프로젝터에서 영상이 비춰졌다. 거기엔 오늘 우리가 배팅할 대상이 띄워져 있었다.

“오늘 경기의 주제는 무려 랭킹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강의 헌터들이 자신들의 명예와 긍지를 걸고 싸웁니다.”

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박수와 함성 소리가 재생되었다.

소수의 진짜 관객 중 어느 누구도 이서현의 말에 호응하는 이는 없었다.

“그럼 자랑스러운 선수들을 보시죠!”

“오오!”

필드로 걸어오는 헌터들을 보자 드디어 방 안이 웅성거렸다. 나도 스크린에 비친 그들의 신상에 깜짝 놀랐다.

랭킹 10위 이준. 팀 로얄가드맨.

랭킹 11위 조기홍. 팀 슈퍼타이거.

랭킹 14위 이신지. 팀 어금니.

랭킹 18위 마바일. 팀 폭발대제.

랭킹 20위 김경진. 팀 어금니.

랭킹 30위 이경신. 팀 슈퍼타이거.

랭킹 40위 적지형. 팀 폭발대제.

랭킹 75위 조루호. 팀 헌한발.

랭킹 79위 박산. 팀 로얄가드맨.

랭킹 96위 장마리. 팀 검은 과부들.

“루호? 마리 씨? 적지형!”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내가 여기 왜 왔는지도 잊어버렸다.

기기래가 내 옆구리를 찌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한참 이서현이 배팅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오늘은 모두 9번의 경기가 진행됩니다. 참석하신 분들은 의무적으로 각 경기당 최소 10억 이상의 금액을 배팅하셔야 합니다. 최대 2번까지 배팅을 불참하실 수 있으며, 연속으로는 불참하실 수 없습니다.”

최소한으로, 아홉 경기 중 중간에 2번을 쉬어도 70억. 재미있는 규칙이다.

이서현의 설명은 계속됐다.

“배팅액에 제한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차신 전자 지갑에 있는 금액 이상도 배팅하실 수 있습니다. 돈은 지부에서 빌려드립니다. 다만 모든 돈을 잃었을 경우 포기를 선언하시면 이곳에서 퇴장하시게 됩니다.”

지부에서 돈을 빌린다. 그것은 그야말로 자기 목에 쇠사슬을 차는 격이다.

“스페셜 매치의 배팅은 간단합니다. 누가 이길지를 예상하셔서 돈을 거시면 됩니다. 매 경기마다 A와 B에 거신 참가자 수는 똑같이 맞춰질 겁니다.”

“엥?”

무슨 소리지? 그걸 어떻게 맞춰? 배당 비율로? 매 경기마다? 그게 가능한 건가?

난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날 보며 피식 비웃었다.

이서현의 설명이 이어졌다.

“참가자 수를 어떻게 맞추는가?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1경기에서 A, B에 거신 분들 수가 2대8로 나왔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B에 거신 여덟 분 중 배팅하신 금액 순으로 5명까지만 원래 고르신 B를 선택하신 것으로 처리됩니다.”

아이고, 그 말은 소극적으로 걸었다간 자신이 고른 것과 상관없는 곳으로 배팅이 옮겨진단 뜻이다!

뭐 이딴 도박이 다 있냐?

나는 어이없어서 기기래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지었다.

“또한 맞추셨을 때 배당은 거신 금액 순으로 정해집니다. 즉 1경기가 A의 승으로 결정되었을 때 A에게 배팅한 다섯 분의 금액이 각각 192억 한 분, 2억 네 분, 총 200억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에 따라 배당도 가장 많이 거신 분이 따낸 금액의 96%, 나머지 분들이 각각 2%씩 나눠 갖게 됩니다.”

즉 많이 따고 싶으면 많이 걸면 되고 적게 따고 싶으면 적게 걸면 된다. 다만 적게 건다고 무조건 안전한 게 아니다.

자칫 뒤로 밀려나 의도와 다르게 돈을 잃을 수도 있다.

“만약 뒤로 밀려나신 분들 중 금액이 같은 경우가 있다면, 이땐 랜덤으로 처리됩니다.”

규칙은 대략 알겠는데 여전히 미지수인 점은 고작 이런 걸로 수백에서 수천억이 오갈 수 있냐는 점이다.

난 조급한 마음에 슬쩍 기기래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팍팍 돈을 걸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그건 염려하실 필요가 없어요.”

기기래는 금배지 단 중년 남성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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