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47화 (147/250)

147화

147화

오늘 우리가 사냥할 괴물은 바로 가스고라니. 녀석들은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는 괴물로 뻥 뚫린 평지를 좋아하는 녀석들이었다.

우리는 한 시간을 더 걸어서 드디어 녀석들의 서식지에 도착했다. 바로 옆 정글과 달리 이곳은 황야처럼 삭막했다. 그리고 한쪽엔 거대한 절벽이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 저 절벽을 따라가면 저번에 내가 해치운 오독지네의 서식지였다.

모두 숨을 죽이며 무기를 들었다.

“지금부터 10명씩 1개조로 나누겠다.”

김경진은 즉석에서 조를 편성했다. 난 김대팔과 떨어져 초조선과 함께 4조에 들어갔다.

“한 조당 3마리만 잡으면 끝납니다. 그럼, 전진!”

조 순서대로 서서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가스고라니와 만나게 될 것이었다.

“응?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지진과 달리 뭔가 빠르고 가벼운 진동이었다. 거기에 전방으로 거대한 연기구름이 빠르게 다가왔다.

“서, 설마……!”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한 번만 틀려 주면 안 되나? 어금니를 씹으며 맨 앞을 살폈다.

“와.”

가스고라니 무리 등장. 녀석들은 우릴 향해 정면 돌격하는 중이다. 녀석들의 엄니에서 뿜어지는 연기의 크기로 보아 보통 숫자가 아니었다.

“양옆으로 흩어져요!”

내 외침을 들은 몇 개 조는 양쪽으로 흩어져 수풀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대부분의 헌터는 정면에서 오는 괴물들을 피해 뒤돌아서서 달렸다.

“아놔!”

가스고라니들은 직선으로 달려 도망친 헌터들을 추적했다. 수풀에 숨은 채 지켜보니 녀석들의 덩치가 거의 코끼리급이었다.

“도대체 몇 마리야?”

지나가는 가스고라니의 숫자가 도저히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녀석들을 감싸고 있는 뭉게구름 같은 연기는 모두 엄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모두 다 해서 297마리입니다.”

흠칫. 내 옆에 선 김대팔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의 인형 탈은 수풀 속 나뭇가지와 가시넝쿨에 찢겨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7조 아니었어요?”

“방금 조원들과 헤어졌습니다.”

태연한 티라노 대가리. 너 인마, 네가 너희 조 조장이잖아? 7조 조원들이 불쌍할 따름이다.

“원래 가스고라니 무리는 많아야 60~70마리 아니었어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저건 숫자가 과하네요.”

“무슨 자기들끼리 종족 대통합이라도 이룬 걸까요?”

“숫자로 볼 때 이 사냥 구역에 있는 개체가 전부 뭉친 것만은 확실합니다.”

나와 김대팔은 빠르게 주변의 다른 헌터들을 파악했다. 다행히 우리 조는 모두 무사. 그밖에 2조와 5조, 그리고 6조 일부가 있었다.

“1조는 첫 조우 때 전멸한 것 같군요.”

김대팔이 수풀 밖을 가리켰다. 가스고라니떼가 지나가고 남은 자리엔 사람의 형상이었던 시체조각들이 있었다.

각 조의 조장들이 내 주변으로 모였다. 다들 당혹스러워서 허둥지둥 댔다.

“경진 씨까지 당했으면 어쩌죠?”

“랭커는 그렇게 쉽게 안 뒤져!”

“저런 거에 깔리면 랭커가 아니라 랭커 할아버지가 와도 소용없어. 랭커가 무슨 무적이야?”

옥신각신. 나와 김대팔. 그리고 초조선은 남은 조를 규합해 가스고라니 무리를 쫓았다. 다행히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 추적 자체는 쉬웠다.

“앗!”

저 멀리 보이는 바위에 누군가 기대어 있었다. 겨우 앉아만 있는 걸 보니 부상을 입은 듯했다.

“이이 씨!”

초조선이 누구보다 먼저 앞으로 뛰쳐나갔다. 내 눈엔 누군지 안 보이는데 저 거리가 확인이 된다고? 정말 경악스러운 시력이다. 우리는 두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아요?”

예의상 한 말이다. 이이의 오른쪽 다리는 누가 봐도 괜찮지 않았다.

“아니. 다리를 다쳤어. 조원들을 구하려고 놈들하고 싸웠거든.”

“다른 사람들은요?”

설마 계속 도망친 건가? 하지만 서식지를 이탈하지 않는 괴물의 습성상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있었다.

“우선 이이 씨를 수풀로 옮겨요.”

초조선과 몇 사람이 이이를 번쩍 들었다. 그는 다리가 뭉개졌음에도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면목 없군.”

“괜찮아. 치료가 먼저야.”

초조선은 자신이 가진 개인용 치료키트를 꺼냈다. 그녀가 이이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우리의 눈에 다시 뿌연 연기구름이 들어왔다.

“돌아온다!”

누군가의 외침. 연기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일단 모두들 수풀로 숨었다. 가스고라니 무리는 바로 옆 정글의 수풀로 한 발자국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여기 숨은 채로 사격하면 안 되나?”

한 헌터가 이런 의견을 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행동하면 수풀로 넘어올 거예요. 놈들은 그냥 꽉 막힌 지형을 꺼리는 것뿐이거든요.”

그냥 싫은 것과 이성을 잃고 날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스고라니 무리가 수풀을 피하는 것은 아직 흥분하지 않았단 증거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만약 똥이 자신을 공격하면 더럽고 자시고 밟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가스고라니 무리가 다시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다 지나간 후 녀석들이 온 방향으로 갔다.

“으아아아…….”

참상. 누가 봐도 사람의 신체 일부로 보이는 것들이 땅바닥에 즐비했다. 식인을 하는 살인귀가 시신을 다진 고기로 만들면 딱 이런 광경일 것이다.

“거기 괜찮나?”

김경진과 살아남은 헌터들이 절벽 위에서 내려왔다.

“이게 전부인가?”

김경진은 빠르게 전체 숫자를 파악했다.

“젠장! 겨우 절반인가. 역시 신입들은 생존율이 낮군.”

신입? 신입을 데리고 5급을 잡으러 왔다고?

무슨 셀프 양육강식이냐? 사자는 자기 새끼를 벼랑으로 던져서 살아남은 새끼만 키운다지만……그건 짐승들 이야기잖아!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일단 티를 내지 않으며 김경진에게 말했다.

“너무 타격이 큽니다. 오늘은 철수하고…….”

“어금니에게 실패는 없어! 갈 거면 너나 가.”

아니, 왜 만나는 놈마다 반말이지? 내가 동안인가? 아니면 만나는 놈이 죄다 성격이 개차반인 거냐?

한숨을 쉬면서 입을 다물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떠나고 싶은데 아는 사람이 셋씩이나 있어서 그냥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좋아. 다들 모여서 임무를 수행한다.”

김경진은 조장 몇과 모여 작전을 의논했다. 그들은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팀을 둘로 나눠서 절벽을 따라 길 앞뒤로 배치하는 거야. 녀석들은 정면 돌진밖에 못하니 양쪽에서 번갈아가며 후방을 공격하면 이길 수 있어.”

가스고라니 무리가 오갔던 길은 일직선 형태다. 그러니 이 길 양쪽 끝에 서서 녀석들이 1조로 돌진할 때마다 2조가 후방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흥분한 녀석들이 자신들을 공격한 2조를 향해 방향을 틀 것이고, 그때 다시 또 1조가 후방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김경진의 말에 한 중년 헌터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다 녀석들이 노골적으로 한 팀만 공격하면요?”

“적어도 한 팀은 살아남겠지. 이건 실전이다. 겁쟁이는 필요 없어.”

미친……! 김경진은 거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강하면 살고 약하면 죽는 거야. 그게 헌터다.”

김경진을 제외한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나서서 그에게 말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다수의 사격수를 절벽 위로 올린 다음에 소수의 미끼로 주의를 끄는 게 낫지 않을까요?”

“뭐?”

김경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녀석들 하나하나는 일반적인 5급보다 약하니 랭커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나보고 미끼나 하란 거냐?”

“미끼나 하란 게 아니라 모두를 구하란 겁니다. 희생을 줄이면서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닥쳐!”

김경진은 내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나보다 랭킹도 낮은 주제에 주둥이를 함부로 나불거리지 마. 주목 좀 받으니 눈에 뵈는 게 없냐?”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이러다가 전멸하면 당신이야말로 어떻게 하려고?”

“상관없어. 신입이야 또 구할 수 있거든. 아랫것들은 그저 부품일 뿐이야. 어금니의 명성에 누가 될 약골은 필요 없어.”

김경진은 날 뒤로 밀쳐 내고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조를 재편성한다!”

김경진은 자신과 김대팔을 포함한 25명을 1조로, 나와 초조선을 포함한 나머지 25명을 2조로 편성했다.

심지어 부상을 당한 이이도 우리 조로 넣어 버렸다.

“부상자는 빼 줘야죠. 죽으면 어떻게 해요?”

초조선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김경진은 강경했다.

“명령에 불복종할 거면 바로 탈퇴 처리다. 책임자는 나야!”

조직이란 게 결국 최종 결정권은 책임자에게 있다.

그것이 옳고, 원론적으로는 책임자가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 책임자가 책임을 지지 않고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난 괜찮아.”

이이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쪽 다리로 몸을 가누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초조선은 그런 그를 부축하며 김경진을 흘겨봤다.

“싫으면 관둬. 너희 같은 삼류들은 넘쳐나거든.”

김경진은 날 지목하며 말했다.

“김상팔. 네가 책임지고 2조를 맡아라. 어디 그 잘난 능력 좀 보자고.”

각 조는 수풀을 통해 길 양쪽 끝으로 이동했다. 가스고라니 무리는 양쪽 조 사이에 서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초조선이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작전이 성공하길 바라야죠. 이이 씨는요?”

“수풀에 눕혀 놓고 왔어. 그래도 애인인데 죽으면 안 되잖아?”

“그러게요.”

총을 장전하는 다른 헌터들을 살폈다. 다들 얼굴이 사색이었다. 누가 봐도 이건 자살행위였다.

“후우.”

초조선은 2조를 일렬로 세웠다.

우리는 각자의 총기를 들어 멀리 떨어진 가스고라니 무리를 겨눴다. 나도 산탄총과 리볼버를 점검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준비 됐나?

초조선의 호주머니에서 김경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초조선은 무전기를 꺼내 대답했다.

“다 됐습니다.”

―좋아. 우리 조에서 먼저 시작하겠다.

“알겠습니다.”

무전이 끝나고 저편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가스고라니 무리가 연기를 마구 뿜어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시 대기하다가 초조선의 지시에 따랐다.

“사격 개시!”

총구가 불을 뿜으며 가스고라니 무리의 후방을 노렸다. 그리고 수십 발의 총알이 폭발에 가까운 위력을 내며 가스고라니 몇 마리를 풀썩 주저앉혔다.

계속된 사격에 무리 전체가 울부짖으며 방향을 틀었다.

“중지!”

가스고라니 무리가 정면에서 다가오는 모습은 과연 다리가 떨리는 광경이었다.

200여 마리의 괴물은 우릴 향해 무작정 달려왔다. 그러다 이번엔 1조에서 후방 사격. 물론 맨 앞까지 그 총알은 닿지 않는다. 그러나 무리 맨 뒤에서 들려오는 다른 개체의 비명이 선두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결국 무리는 방향을 틀어 또다시 1조를 향해 돌격했다.

이런 방식으로 몇 시간의 사냥이 계속됐다. 가스고라니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서 100여 마리가 되었다. 이 정도면 부산물을 챙겨서 철수해도 될 만큼 대박이지만 안타깝게도 완전히 전멸시킬 때까지는 그럴 수가 없었다.

“탄이 다 떨어져 가!”

“나도!”

“어떻게 하지?”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탄알이 고갈되면 총은 그저 쇠막대기일 뿐이다.

오늘 사냥에 참가한 헌터들이 대부분 정식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란 걸 감안하면 능력발현은 고사하고 광탄도 못 쓸 것이었다.

우리 조는 마지막 탄알을 소모했다.

“어?”

이제 1조의 차례. 그런데 이번엔 가스고라니 무리 후방에 공격이 없었다.

“서, 설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