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44화 (144/250)

144화

144화

우태훈은 으깬 재료를 쌀과 함께 냄비에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된장, 쌈장, 고추장을 넣어 전기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렸다.

“불이여, 솟아라!”

좀 닥쳐요! 내가 대신 전기레인지를 작동시켰다. 그동안 치료와 정리가 얼추 끝나 모두 식탁 앞에 모여 있었다.

“몸은 좀 어때요?”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을 열진 않았다. 특히 마다랑과 태한은 상반신 전체에 붕대를 칭칭 감아서 누가 봐도 중환자처럼 보였다.

“이 정도는 약과야. 로얄이 되면 항상 이런 식이지.”

남주나는 마다랑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자 마다랑은 그녀의 손가락을 잡으며 부정했다.

“아니거든? 매번 이랬다간 헌터 그만둬야지, 안 그래?”

다들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태한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처음부터 다 같이 덤볐으면 의외로 손쉽게 끝났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

그 말에 남주나가 대답했다.

“아니! 우리 팀원들은 각자 개성도 강하고, 힘의 위력도 강해서 오히려 서로를 다치게 할 수 있어.”

그건 남주나의 말이 맞다. 나도 사냥이 끝날 때까진 태한처럼 팀플레이를 절실히 느꼈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공포특급에겐 그것이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9급이 이 정도라면, 그 위는 얼마나 강한 걸까요?”

“9급 이상은 아무리 로얄이 있는 빅4라도 한 팀으로는 안 돼.”

태한의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경험이 있는 걸까?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대뜸 그에게 물었다.

“사냥해 봤어?”

“10급 민머리용.”

태한의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민머리용은 용중에서 약한 축에 들지만 아주 강해. 한국엔 딱 두 마리가 있었는데, 작년에 한 마리가 사냥됐지.”

“그리고 2군이 갈려 나갔죠.”

내 옆에 앉은 손평화가 몸을 떨면서 내 손을 잡았다. 그러자 우태훈이 이를 갈면서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난 하나도 겁 안나! 지금 또 민머리용이랑 싸울 수 있어!”

큰소리치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우태훈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영화, 게임과 달리 용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존재였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저기…….”

대화 주제를 돌리기 위해 태한에게 물었다.

“킹메라의 핵으로 누굴 치료하고 싶은 거야? 애인?”

“어.”

앗, 그냥 찍은 건데……. 태한은 처음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허공을 응시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내 전부를 바쳐도 아깝지 않아.”

아이고, 아이고, 푹 빠지셨구먼. 솔로 부대원의 한 사람으로서 커플 브레이크를 하고 싶지만 상대가 너무 강하기에 일단 참았다.

“보수와는 별개로 여기 있는 모두에게, 정말 고마워.”

태한의 감사로 인해 분위기는 다시 훈훈해졌다. 최마군은 그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생명엔 지장 없겠지만 그래도 내일 당장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 봐. 알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태한, 마다랑은 꼭 가!”

하키 마스크의 눈구멍에서 강렬한 눈빛이 튀어나왔다.

“섹, 시!”

우태훈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펄펄 끓고 있는 냄비로 갔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후 호탕하게 외쳤다.

“완, 성!”

우태훈은 냄비를 식탁에 옮겼다. 우리는 국자로 냄비 속 음식을 각자의 그릇에 덜었다.

“죽?”

죽 같기도 하고, 스튜 같기도 했다. 정체불명의 음식은 여러 재료가 밥과 섞여 걸쭉했다.

“먹어라! 이것이 바로 나의 섹, 시, 죽이다!”

우태훈은 식탁 앞에 서서 하반신을 튕겼다. 그의 시각적 테러에 식사도 하기 전 입맛이 떨어졌다. 그러나 음식에서 솔솔 풍기는 냄새가 다시 식욕을 돋우었다.

“아암.”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다행히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엄청나게 맛있거나, 맛없진 않네요.”

김대팔의 평가에 모두 피식 웃었다. 그는 인형옷의 입 구멍을 통해 팔을 빼서 숟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정체를 숨기고 싶은 거냐? 한숨을 쉬며 녀석의 한심함에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허겁지겁 그릇을 비웠다. 시장이 반찬인지라 허겁지겁 퍼먹었다. 일단 막 먹기엔 딱 좋았다.

다음날. 우리는 무사히 사냥 구역을 나왔다. 정문을 지키는 군인들은 돌아온 우리를 보며 경례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주차장에서 헤어졌다. 손평화는 매우 아쉬운 얼굴로 나와 헤어졌다.

“또 봐요!”

나는 김대팔과 함께 차에 올랐다.

“집이 어디세요?”

여전히 운전은 내 차지. 이 인간을 데려다 준 후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 했다.

“네오서울 호텔이요.”

엥? 한국 최고의 5성급 호텔! 차를 몰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다. 김대팔의 정체가 뭘까? 처음엔 그냥 금수저 정도로 생각했는데 계속 만나다 보니 좀 위화감이 들었다.

“상팔 씨, 수련은 어떠신 것 같아요? 성공한 것 같나요?”

“성공……이라 말하고 싶지만……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더 정확하겠죠.”

수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 다른 상위 랭킹과 대적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럼 제가 한 번 더 도와드릴까요?”

“네?”

“사실 이번에 저희 팀에서 대규모 사냥을 기획 중이라 사람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저희 팀? 그렇다면……!

“어금니요?”

“네.”

한국 최고의 사냥팀, 어금니. 거기엔 한국 최고의 헌터들도 속해 있다. 어제 오늘 만난 공포특급도 국내 정상급 실력자들이었지만 어금니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약세. 누가 뭐래도 한국 최강은 어금니였다.

“언제죠?”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러면 혹시라도 내 능력이 완성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 의욕이 솟았다.

“제가 상팔 씨 번호로 문자 보내 드릴게요. 아마 일주일 후가 될 거예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꿈꾸던 정상. 그 경치를 구경하고픈 마음에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호텔에 도착한 후 난 김대팔과 헤어져 곧장 조물주 의원으로 갔다. 그리고 의사의 권유대로 사흘 간 입원. 퇴원 후엔 운동을 하며 다음 사냥을 준비했다.

***

“후웁!”

이른 아침. 가벼운 조깅을 하며 몸을 데웠다. 변신 능력을 손에 넣은 이후 몸이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이름 : 김상팔 / 성별 : 남 / 나이 : 29세]

[힘 : 60 / 속도 : 60 / 지구력 : 60 / 기술 : 60 / H력 : 0 / 기타 : 100]

내 첫 능력 수치를 생각해 보면 기타를 제외하고 항목당 두 배씩 올랐다. 거기에 한 번에 충전 가능한 H력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드디어 오늘!”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원룸으로 돌아가 마음의 준비를 했다.

“후후후.”

아직 변신 상태의 호칭을 안 정했지만 능력은 꽤 능숙해졌다. 다만 여전히 H력을 충전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은 어금니와의 사냥 전 중요한 만남이 있는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조물주 의원으로 향했다. 접수처엔 수습 간호사 노건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일단 유쾌하게 인사. 그러나 노건은 무덤덤한 태도로 대답했다.

“예. 안녕하세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내 튜트리팟 계정을 보여 줬다.

“제 영상 잘 보고 계시죠?”

그러자 노건이 흠칫 놀라며 눈을 떨었다. 더불어 목소리도 떨렸다.

“아, 아닌데요?”

가장 최신 영상인 킹메라 사냥. 거기 밑에 달린 댓글 중 하나를 가리켰다.

“이거 노건 씨 맞죠?”

너무 정직하게 아이디를 ‘노건’이라 만들었다. 물론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

[병원에서보다 잘 싸우네?]

이 정도면 거의 확인 사살. 만약을 위해 다른 영상에 달린 댓글도 찾아봤다.

[방어가 약하네. 이 팀 약점은 맷집인가?]

[누군가 앞장서서 돌격해 줄 사람이 없네. 아쉽다.]

[너무 계획적이고 신중한 것 같아요. 저 같았으면 과감하게 했을 거예요.]

말투가 다 다르지만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엔 한 사람이 연상됐다. 광전사, 노건. 과거 무차별적이고 강력한 힘으로 랭킹에까지 올랐던 사람이다.

“그때 말했죠? 전 두 번 다시 헌터로 복귀할 생각이 없어요.”

“진심으로요? 이렇게 꾸준히 댓글을 달고 시청했다는 건 아직 마음이 있단 뜻 아닌가요?”

노건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는 내 말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며 분노했다.

“아니야! 난 두 번 다시 헌터 따위가 되고 싶지 않아!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작은 체구인 노건에게서 엄청난 H력이 뿜어졌다. 또 여기서 싸우는 것은 크나큰 민폐. 일단 그를 진정시키며 내 의사를 전했다.

“그럼 내일 한판 붙을래요?”

“뭐?”

노건은 눈알을 부라리며 코웃음 쳤다.

“제정신이야?”

“그래!”

이젠 나도 반말이다! 서로 말을 터놓으니 대화하기 한결 수월하다.

“이번에도 날 이기면 두 번 다시 널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좋아.”

우리는 서로를 노려봤다. 그러나 그때 진찰실 안에서 의사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안 돼, 노건 씨! 내일 당직이잖아? 어딜 가겠다는 거야? 평생 수습하다가 끝날 거야?”

“아, 아닙니다!”

노건은 화들짝 놀라며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날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주말로 하죠? 주말에 시간 되죠?”

다시 존댓말. 참 어렵다, 어려워. 노건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접수처를 떠나 진찰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의사 혼자 있었다.

“어디가 아파서 왔나?”

“아니요.”

난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 의사에게 내밀었다.

“응? 이, 이건!”

의사는 방 안에 우리 둘밖에 없음에도 누가 볼 새라 안절부절 떨며 수표를 집었다.

“워, 원하는 게 뭐지?”

“노건 씨의 능력 수치를 보고 싶어요. 자료 있죠?”

의사는 내가 준 수표와 자신의 자리에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를 번갈아 봤다. 그는 아랫입술을 물면서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왜요?”

“욕심나는 액수이긴 한데,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건 좀…….”

수표를 한 장 더 내밀었다. 그러자 의사는 두 장을 주머니에 넣은 후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자네. 점점 하는 짓이 한손, 그 친구를 닮아 가는군?”

한손? 순간 누구 이름인지 깨닫지 못했다. 너무나 오랜만에 듣는 이름. 한돈 아저씨의 본명이 바로 한손이었다. 한돈은 어디까지나 별칭이다.

“그래요?”

“그래. 자! 자네가 원한 자료 여기 있네.”

의사는 모니터를 돌려 내가 볼 수 있게 해 줬다.

[이름 : 노건 / 성별 : 남 / 나이 : 25세]

[힘 : 110 / 속도 : 50 / 지구력 : 110 / 기술 : 50 / H력 : 110 / 기타 : 50]

뭐 이런 수치가 다 있지? 숫자만 봤는데 벌써 벽에 처박힌 것 같다. 힘, 지구력은 거의 내 두 배다. 내가 앞서는 부분은 속도, 기술, 기타인데 그 차이가 크지 않다.

“이런 사람이 고작 랭킹 100위였다고?”

협회에서 안 좋게 볼 사고라도 쳤나? 이 정도면 손평화한테도 비벼 볼 만할 텐데? 이러니 내가 어쩔 도리 없이 당했던 것이다.

“후후후.”

하지만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다. 오히려 노건과의 대결은 내 훈련 성과를 평가할 좋은 과업이 될 것이다. 그렇게 결의를 불태우며 병원을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