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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43화 (143/250)

143화

143화

손을 이마에 대서 그늘을 만들었다. 그러나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 강해서 눈이 시렸다.

“킹메라는?”

빙고! 녀석은 너무 강한 눈부심에 그대로 경직되어 버렸다. 원래 고통이란 어느 정도까지만 되어야 몸부림치는 것이지, 그것도 버틸 수 있는 한계가 넘으면 꼼짝도 할 수 없게 된다.

“하앗!”

빠르게 놈에게 다가가 오른발로 힘껏 짓밟았다. 크윽! 엄청나게 딱딱한 킹메라 때문에 발바닥이 아팠다. 녀석을 힘껏 밟은 후 못 움직이게 짓이겼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이제 끝내 주마!”

나는 여태까지 손으로만 모았던 H력을 발바닥으로 집중했다. 단순 근육량으로 볼 때 하체에는 상체의 3배에 달하는 근육이 있다. 그렇다면 H력을 모으는 것도 더 강력할 것이다. 실제로 발차기를 주력으로 쓰는 주아란이 그 증거다.

“그렇다면, 나도!”

전신의 H력을 발바닥에 집중했다. 모이고 모인 에너지는 강화된 내 발바닥과 튼튼한 킹메라 사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조밀하게 응축됐다.

“하아아아!”

기합과 함께 아주 좁은 틈 사이로 많은 양의 H력이 모였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 정도로 강하게 압축하기도 전에 신체가 붕괴됐을 것이다.

“젠장!”

발아래 감촉을 통해 킹메라가 제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녀석을 밟았기에 본의 아니게 녀석에게 그늘을 제공한 것이었다.

“아직 시간이,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해!”

오른발에 더 힘을 줘 체중을 실었다. 그러나 진작 한계, 더 이상 킹메라를 붙잡아 두기에 힘이 부족했다.

“응?”

내 발 위에 붉은 색 발이 올려졌다.

“제법인데? 다시 봤어!”

어느새 멀쩡해진 남주나가 블러드 포스 상태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씩 웃으며 내 발에 자신의 발을 올리며 킹메라를 밟았다. 발등으로 느껴지는 그 무시무시한 힘은 발아래 킹메라의 그것 이상이었다.

“역시 로얄이네요!”

“마군이한테 고마워해.”

우리는 함께 킹메라를 밟았다. 녀석은 이제 꼼짝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잠깐 실례할게요.”

“응?”

남주나의 양손을 잡았다. 그러자 내 몸으로 그녀의 블러드 포스가 흘러들어 왔다. 내 몸은 흰 색에서 점점 붉어져 그녀처럼 전신이 새빨개졌다.

“너, 설마……!”

“하아아압!”

무려 두 명 분의 H력이 모였다. 질로만 따진다면 최상급. 위력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 공격이 완성된 순간이다.

“가즈아아아아!”

발아래 압축된 H력을 폭발시켰다. 강화된 내 발이 위로 뜨려는 것을 남주나가 힘으로 막아 주면서 겨우 버텼다. 거대한 폭발은 우리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모든 것을 아래로 향했다.

“으아아악!”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모래 먼지는 강풍에 휩쓸려 깨끗하게 날아갔다. 지면은 지진이 난 것처럼 갈라지며 파였다.

“괜찮아?”

남주나는 비몽사몽인 날 부축해 폭발 지점에서 물러나 있었다. 내가 직접적인 충격을 모두 받은 탓에 그녀는 상대적으로 멀쩡했다.

“너 엄청 튼튼하구나? 그 복장 덕인가?”

“아마도요.”

“저기 봐.”

남주나가 가리킨 지점에는 아주 크게 갈라져 있었다. 그런데 그 갈라진 금 끝이 보이지 않았다.

“와! 우리가 고원바위를 쪼갰어. 짱이다!”

남주나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다들 최마군의 치료에 간신히 몸을 움직일 정도였다.

“젠장! 이런 멋진 일을 하다니!”

우태훈이 뒤집어쓴 천 끝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다른 사람들도 바위에 간 금을 보며 놀라워했다.

“협회에서 뭐라고 할까요?”

걱정스런 김대팔의 질문에 태한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김상팔! 내가 분명히 핵은 다치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태한은 내 멱살을 잡으려다가 내 변신복에 잡을 부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포기했다.

“죽는 것보단 낫잖아!”

난 떳떳하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 이 일은 실패가 아닌 대성공이다.

“말 함부로 하지 마! 내가 어떤 심정으로 이번 일을 준비했는지 알아?”

그럼 좀 더 협동 사냥을 잘하는 팀을 구했어야지! 그게 내 탓이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그가 사냥을 주도한 당사자기에 존중해 주는 게 맞긴 하다.

“미안. 하지만 내 딴엔 그게 최선이었어.”

“젠장!”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왜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하지 않았어? 당신이라면 그럴 능력이 충분하잖아?”

태한은 한숨을 내쉬며 내가 만든 틈 앞으로 갔다. 난 그를 따라 걸었다.

“킹메라의 핵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가 있어. 그거 하나면 수십, 수백억은 갈 거야.”

“무슨 약 같은 거야?”

태한은 금 사이를 내려다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만능 치료약이야. 킹메라의 핵을 병자의 몸에 주입하면 그 어떤 병이든 완치하지. 심지어 장애나 뇌사도 재생시켜서 되돌려. 값을 따질 수 없지.”

“그, 그랬구나.”

“다른 빅4나 그에 준하는 팀을 부를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분명 이익에 욕심을 냈을 거야. 공포특급은 적어도 탐욕스럽진 않아.”

“소중한 사람이 아픈 거야?”

내 질문에 태한은 날 돌아보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어. 킹메라의 핵과 비슷한 힘을 지닌 부산물도 많지만 내 수준에선 구할 수 없었어. 방법은 이것뿐이었는데…….”

태한은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 갈라진 틈 사이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컥!”

“태한!”

킹메라는 탄환처럼 태한의 상반신을 관통해 날아올랐다. 녀석은 그 엄청난 위력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외피 부분만 좀 손상됐을 뿐 핵은 멀쩡했다. 정말 미친 생명력이다.

“마군 씨, 태한을 치료해 주세요!”

최마군이 빠르게 다가와 태한을 안았다. 난 그에게 태한과 리볼버를 맡긴 후 땅을 박찼다.

“하앗!”

내 점프가 킹메라를 따라잡았다. 그것은 녀석도 약해졌단 뜻! 조금 전 공격이 아주 소용없는 짓이 아니었다. 잽싸게 양손으로 녀석을 붙잡았다.

“가만히 있어!”

킹메라는 제자리 회전을 하며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변신 상태인 내 손바닥은 아직 충분한 방어력이 남아 있었다.

“흐읍!”

힘을 줘 킹메라의 회전을 멈추게 했다. 쫙 쥐여 잡은 탓에 녀석의 외형이 찌그러졌다.

바닥에 착지. 조심스레 치료를 받는 태한에게 킹메라를 보여 줬다.

“잡았어.”

태한은 내 손에 잡힌 킹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피로 엉망이었다.

“근데 이거 어떻게 열지?”

“그건 나에게 맡겨.”

태한은 검지와 중지를 붙여 곧게 폈다. 그리고 천천히 킹메라에게 가져가려 했다. 그런데 그의 몸에서 그 어떤 아지랑이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젠장!”

태한은 이를 갈면서 탄식했다. 그러자 대신 마다랑이 나섰다.

“내 능력으로 해 볼게!”

마다랑은 검지만 세워 킹메라를 겨눴다. 신중하고 세심한 조절이 필요했기에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검지 끝에서 다크마이트 드릴 빔이 천천히 나아갔다.

“제발, 제발, 제발…….”

모두 간절한 마음을 담아 광선을 바라봤다. 광선은 느릿느릿 킹메라에게 다가가 투명한 표면을 뚫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정지!”

광선이 핵에 닿기 직전, 손평화가 외쳤다. 그녀의 지시에 마다랑은 광선을 멈췄다.

“제 지시에 따라 주세요! 제가 이래봬도 아주 조밀하거든요.”

“좋았어!”

두 사람은 함께 호흡을 맞추며 핵을 중심으로 투명한 부분에 빙 둘러 구멍들을 뚫었다.

“좋았어. 이제 쪼개 봐.”

최마군은 내가 메온 배낭에서 아이스캡슐을 꺼내 담을 준비를 했다. 난 심호흡을 한 뒤 킹메라의 양쪽을 당겼다. 그러자 뽕 소리와 함께 투명한 부분이 깔끔하게 핵에서 떨어져 나갔다.

“앗!”

핵은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발악했다. 킹메라는 표면이 열리자마자 강하게 튀어나와 가까이에 있던 우태훈을 노렸다.

“으아아악!”

우태훈은 쫄아서 몸을 웅크렸다. 누구도 예상 못한 속도에 비극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큭큭큭…….”

갈리의 웃음소리. 그와 동시에 핵만 남은 킹메라는 힘없이 그녀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캭캭캭!”

갈리는 미친 듯이 웃으며 아이스캡슐 속에 핵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능력으로 킹메라는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의외로 갈리가 최강인 거 아니야?”

우태훈이 마른 침을 삼키며 박수를 쳤다. 이젠 그도 갈리한테 압도당한 모양이다.

“크크크, 쿨럭!”

갈리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도 엄청 무리하고 있던 것이다.

우리는 다친 사람들을 부축하며 고원바위에서 내려왔다. 해가 지는 것을 보니 제시간에 맞춰 사냥 구역에서 나가긴 그른 상태. 하는 수 없이 쉼터로 향했다.

“와!”

쉼터는 다른 사냥 구역과 달리 땅속에 있었다. 일단 입구부터 맨홀 형태! 뚜껑을 열듯 문을 여니 아래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내려가니 터널처럼 원형의 통로가 나왔다. 통로는 약간 비스듬한 경사였다.

“으아아악!”

통로를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땅속이 흔들렸다. 거대한 폭발처럼 쿵쿵 소리가 통로 가득 울려 퍼졌다.

“위에 괴물이라도 있는 모양이야.”

무차별 폭격처럼 울림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흔들리는 통로에 몸을 기대며 앞으로 향했다. 통로 안쪽엔 철로 만든 원형 문이 있었다. 핸들처럼 생긴 문손잡이를 돌리자 뻑뻑한 쇳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우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오오!”

그곳은 고급스런 숙소였다. 다른 헌터가 이용한 후인지 수납장이 열려 있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게 호화스러웠다.

“여기에 눕혀!”

최마군이 소리쳤다. 방 한쪽엔 응급치료를 할 수 있는 의료 장비도 있었다. 일단 상처가 부상이 심한 이태한, 마다랑, 갈리를 진찰대 위에 눕혔다.

“다행히 약은 충분하군.”

최마군은 진찰대 아래에서 갖가지 약이 든 상자를 꺼내 세 사람의 치료를 시작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찢어진 옷을 벗고 구비된 반팔,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김대팔만 빼고.

“꼭 찜질방 온 것 같네요?”

다들 진정된 얼굴로 벗은 옷을 세탁기에 넣었다. 여기엔 거의 모든 생활 용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음 같아선 여기서 살고 싶을 정도였다.

부엌엔 보존 식품이 잔뜩 있었다. 요리는 우태훈과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남주나와 손평화는 소지품을 정돈하고 그릇을 날랐다. 공룡 대가리는 혼자 방구석에 앉아서 쉬었다.

“섹, 시!”

천을 벗은 우태훈은 쌀을 씻으며 소리를 질렀다. 이 양반 관종은 낫지 않을 것 같다. 난 그의 옆에서 고기와 채소, 생선이 든 통조림을 땄다.

“와! 무슨 통조림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냐?”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그리고 알아듣지 못할 다른 나라의 말들. 전 세계에서 모인 통조림 안엔 여러 음식들이 들어있었다.

“음식은, 손맛!”

우태훈은 H력을 뿜어내며 모든 재료를 손으로 으깼다. 뭐랄까, 재료를 쥐어 짜내는 것 같은 그 손놀림이 참 더러웠다. 손 씻는 걸 직접 보지 않았다면 한 대 갈겨서라도 말렸을 것이다.

“맛이여, 솟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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