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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39화 (139/250)

139화

139화

우리가 도착한 곳은 상당히 독특한 지형이었다. 쉽게 말하면 고원, 하지만 엄연히 따져 고원이라 정의할 수는 없었다.

고원이라 하면 해발고도가 엄청나게 높아야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올라온 지형은 고작해야 높이가 10m 정도? 이 정도로는 고원이라 부르기에 부족했다.

다들 H력을 이용해 가볍게 절벽을 올랐다. 여기선 나도 겨우겨우 따라갔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이 짝퉁 고원은 거대한 하나의 바위였다. 즉, 우리는 지금 바둑판처럼 평평한 암석 위에 올라선 것이었다.

일명 고원바위.

“엄청 넓다!”

암석 위에는 자연이란 게 없었다. 그저 하나의 돌판. 회색의 바닥에는 사막과 다른 느낌의 삭막함이 있었다. 심지어 먼지조차 없어서 자연적인 지형이 아니라 인공 구조물로 느껴졌다.

남주나는 투덜대면서 태한의 바로 뒤에 섰다.

“날 저물기 전에 끝내자고! 또 쉼터에서 자기 싫거든.”

쉼터? 이런 곳에도 쉼터가 있나 보네? 근데 아무리 특수 유리 돔이라도 저런 괴수들한테서 안전할 수 있을까?

“그래? 난 꽤 좋아하는데? 의외로 여기 쉼터는 조용하잖아.”

마다랑은 윙크를 하며 모두를 둘러봤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최마군이 입을 열었다.

“나도 좋아해. 밥이 맛있어.”

“낄낄낄!”

갈리는 키득댔다. 그 소리에 맞춰 손평화가 탄 로봇이 몸통을 앞뒤로 흔들었다. 저건 둘 다 동의한 걸로 봐야 하겠지?

그때 태한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 그것은 주의하란 신호. 모두의 입이 다물어지며 시선이 앞으로 쏠렸다.

“저건?”

거대한 괴물이 우리 눈앞에 있었다. 녀석은 한가로이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자는 중이었다.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흉측해서 만드는 도중에 그만둘 디자인이다.

일단 머리가 3개인데, 가장 전방에 달린 머리는 딱 상어와 같은 형태였다. 무시무시하게 돌출된 이빨로 적을 갉아 댈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두 번째 머리는 몸통의 등에 해당하는 부분에 달려 있었다. 코끼리의 형태에 긴 코와 상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동물과 달리 큰 귀 대신 아가미처럼 보이는 기관이 달려 있었다.

세 번째 머리는 사실상 꼬리. 그러나 코브라 그 자체라 해도 될 만큼 많이 흡사한 형태였다. 진짜 코브라처럼 독을 가졌다면, 큰 문제였다.

비대한 몸통을 지탱하는 다리는 6개. 마치 사자의 그것처럼 발톱이 날카로웠다.

“완전히 살인 병기처럼 생겼네.”

“그럼요. ‘킹메라’는 말 그대로 엄청난 살인 병기입니다. 이 넓은 암석 위에 녀석 혼자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김대팔이 양팔을 최대한으로 펼치며 말했다. 지 딴에는 나름 대화를 효과적으로 하려는 수작이겠지만, 안타깝게도 티라노는 팔이 짧아 슬픈 짐승이다.

“그럼 이제부터 진형을 펼쳐야 하나요? 아님, 뭔가 설치를 하던가요?”

“그러면 좋겠는데……여기 분들은 아닌가 봐요.”

티라노는 앞발을 꼼지락거리며 공포특급을 가리켰다.

“엥?”

공포특급은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댄 후 묘한 짓을 하고 있었다.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당신들 지금 가위바위보 하고 있는 거야?

“서,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대팔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저게 뭐하는 거죠?”

“순서를 정하는 겁니다. 누가 먼저 태한 씨와 함께 싸울 지를요.”

“다 같이 싸우는 게 아니라요?”

이성이 가출하셨나? 7급 정도면 이해하겠는데, 여긴 9급이라고! 이 미친 정신머리……!

“가위, 바위, 보!”

“야호!”

남주나가 폴짝폴짝 뛰면서 무리에서 빠졌다. 그리고 가위바위보는 계속됐다. 차례로 갈리, 우태훈, 손평화, 최마군이 빠졌다.

“이런, 이런. 내 차례가 돌아오면 좋겠는데…….”

마다랑은 꼴지가 되어 멋쩍게 웃었다.

태한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의뢰 실패하면 돈은 한 푼도 없어.”

“흥! 우리가 그런 거에 연연할 것 같아?”

남주나는 혀를 쭉 내밀며 태한 옆에 섰다. 킹메라와 맞서는 사람은 이태한, 남주나, 김대팔,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었다.

나머지는 뒤에서 대기.

배낭을 내려놓은 후 리볼버에 총알을 장전. 캠코더를 꺼내 어깨에 달며 태한에게 물었다.

“고작 넷이서 이길 수 있겠어?”

“글쎄…….”

태한은 시큰둥했다. 네가 의뢰해서 온 건데 너무 무덤덤한 것 아니냐? 그래도 모두 촬영을 기꺼이 허가해 주었다. 단, 얼굴은 모자이크 할 것.

“젠장!”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킹메라가 자고 있으니까, 좀 낫겠지?

“야.”

야? 남주나가 나에게 손을 까딱였다.

“왜, 왜?”

“손 좀 줘 봐.”

“손?”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손을 건넸다. 남주나는 내 손목을 잡아 부드럽게 자신에게로 끌었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렸다.

“엥?”

뱀파이어, 남주나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내 손목 중심을 물었다.

“으악!”

순간 힘을 줘서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이미 남주나는 H력으로 능력발동까지 한 상태였다.

“으아아아!”

보통 미디어에서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는 행위에 대해 쾌감이나 무통쯤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흡혈귀란 존재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 내 손목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명백한 고통이었다.

살 속을 파고들어 핏줄을 끓는 행위, 그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트와인라잇!

“남자가 엄살은……! 잘 마셨어. 가서 마군이한테 치료해 달라고 해.”

입가심을 한 남주나의 입가에 내 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야말로 뱀파이어. 피를 빨려서인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치료해 주마.”

먼저 다가온 최마군이 내 손을 잡았다. 험상궂은 마스크와 투박한 손. 그러나 내 몸으로 들어오는 그의 H력은 참 따뜻했다. 아저씨만큼은 아니지만, 빠르게 피가 멎으며 조금씩 상처가 아무는 게 보였다.

“감사합니다.”

손목을 어루만지며 어깨를 떨었다. 갑자기 남의 손목을 물고, 피를 빨 줄이야. 아무리 상식을 뛰어넘은 랭킹 헌터라지만 이건 정말 깜짝 놀랐다.

“죄송해요. 우리 팀장이 좀 제멋대로죠?”

마다랑이 허겁지겁 대신 사과했다.

“대신 좋은 구경하게 될 겁니다. 주나의 능력은 ‘블러드 포스’라고 불리거든요.”

블러드 포스? 이건 뭔 중2병 돋는 이름이야? 피의 힘?

“흐하아아!”

남주나는 전신에서 H력을 뿜어내며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곤히 자고 있던 킹메라의 세 머리가 눈을 번쩍 떴다.

“훗. 킹메라가 제대로 날뛰기 전에 박살 내겠단 거군.”

태한은 재미있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하아아아!”

망토가 펄럭이며 남주나가 입고 있는 검은 양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풍스런 느낌의 양복은 뿜어져 나오는 H력에 의해 마구 펄럭였다.

앗! 남주나의 얼굴이 아주 붉게 물들었다. 얼굴 외 다른 신체 부위도 그런지는 손에 장갑까지 꼈기에 알 방법이 없었다.

“간다!”

남주나는 기합을 지르며 빠르게 박차 나갔다. 너무 빨라서 남주나의 형상이 순간 흐릿해져 보였다.

나도 서둘러 능력을 발동, H력을 두 눈과 귀에 집중했다.

“블러드 포스를 발동한 주나의 힘은 로얄 제일의 돌파력을 갖게 되죠. 저게 주나가 뱀파이어라 불리게 된 진정한 이유에요.”

마다랑은 흐뭇한 얼굴로 열심히 떠들었다.

벌떡 일어선 킹메라의 높이는 최소 30m 이상. 마치 아파트와 싸우는 기분이다.

“하앗!”

남주나는 폴짝 뛰어올라 단숨에 상어 머리의 턱에 닿았다. 그리고 주먹을 치켜들면서 힘껏 때렸다. 거대한 머리가 작은 주먹에 맞아 튕겨지듯 위로 꺾였다.

남주나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킹메라를 타고 달리며 수직에 가까운 각도를 올랐다.

“아자자자!”

남주나는 상어 머리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킹메라의 등에 있는 코끼리 머리가 그녀를 향해 코를 뻗었다.

남주나는 코끼리의 코를 피하며 높게 점프. 오히려 자신을 공격한 코 위에 착지해, 이번엔 코끼리 머리를 향해 달렸다. 그야말로 천방지축, 유아독존이었다.

킹메라는 코끼리 머리의 코와 뱀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남주나를 쳐내려 했다. 엄청난 크기 차이에도 녀석의 공격은 예리하게 남주나를 노렸다.

꼬리 끝에 달린 뱀 머리가 입을 쩍 벌리며 남주나를 코끼리 코째로 물려고 했다. 그때 이걸 보고 있던 태한과 김대팔이 나섰다.

“하앗!”

태한은 주특기인 검기, 김대팔은 광탄을 연사했다. 두 사람이 날린 공격이 탄환보다 더 빠르게 바람을 가르며 뱀 머리에게 직격했다. 수십, 수백의 빛 조각이 킹메라에게 쏟아졌다.

“나이스!”

남주나는 그대로 코끼리 머리에게 근접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양손을 모아 녀석에게 겨눴다.

“받아라, 크림슨 플래시!”

축하 폭죽이 터지듯 남주나의 손에서 단숨에 거대한 빛이 뿜어졌다.

붉은 빛은 번쩍이며, 코끼리 머리를 덮쳤다. 그리고 근접한 거리에서 발사된 H력 에너지는 순식간에 코끼리 머리를 삼키며, 킹메라의 하체에까지 다다랐다.

“저러다 잡는 거 아니에요?”

난 총을 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지금의 난 그저 팝콘이나 먹으며 마다랑에게 답을 구하는 형편이었다.

마다랑은 팔짱을 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건 아닐 걸요? 아무리 주나라도 혼자서 9급은 힘들죠. 게다가 뒤에 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이를 갈면서 고개를 저었다.

남주나의 크림슨 플래시에 코끼리 머리는 까맣게 탔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만 그을렸을 뿐이었다.

코끼리 머리는 코를 휘둘러서 기어코 남주나를 떨쳐 냈다.

“헤헤헤!”

남주나는 붉은 기운을 뽐내며 공중에서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손으로 붉은 광선을 쏘며, 그 반발력으로 몸을 날렸다.

남주나의 몸은 바람을 타다가 킹메라의 하체에 내려앉았다. 정확히는 코끼리 머리의 후방. 놀랍게도 코끼리 머리가 180도 뒤로 돌아가며, 그녀를 노려봤다.

“징그러!”

남주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코끼리 머리를 때렸다. 강력한 충격에 코끼리 머리가 앞으로 돌아가며 비틀거렸다.

기회를 노려 뱀 머리와 코끼리 코가 동시에 남주나를 노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의도한 바였다.

남주나는 살짝 점프하는 것으로 둘을 서로 충돌하게 했다. 그리고 뱀 머리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크림슨 플래시!”

거대한 빛줄기가 뱀 머리를 태웠다. 다른 두 머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뱀 머리는 남주나의 공격을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

“지금이다!”

태한이 펄쩍 뛰어올라 킹메라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까맣게 타고 있는 뱀 머리를 향해 검기를 날렸다. 수십 개의 칼날이 뱀 머리의 턱 아래를 노리며 집요하게 날아들었다.

결국 뱀 머리의 턱 아래가 세로로 갈라지며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코끼리 머리는 뱀 머리가 당하는 것을 감지했는지 갑자기 코를 꿈틀거렸다. 그리고 또 한 번 고개를 돌리며 코끝을 남주나에게 겨눴다.

“뭐, 뭐야!”

남주나는 하체에 착지한 채 멍하니 코끼리 코를 쳐다봤다.

“도망쳐!”

태한은 헐레벌떡 킹메라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코끼리 코끝에서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불꽃은 부채꼴로 넓게 퍼지며 하체를 집어삼켰다.

“히이이익!”

남주나는 망토에 불이 붙은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바닥을 구르며 몸에 붙은 불을 껐다.

“안 돼, 안 돼! 이 옷,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거란 말이야! 타면 안 돼!”

남주나의 패닉에 다음 차례인 갈리가 몸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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