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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38화 (138/250)

138화

138화

헌터 랭킹 2위, 이태한. 정기 모임 때 주차장에서 타로카드 점을 봐준 녀석이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적당히 걸친 재킷. 공포특급과 비교해 엄청나게 평범한 복장이었다.

“어? 당신이었군.”

태한이 손을 올리며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이 녀석한테는 존대를 하고 싶지가 않다. 처음부터 반말인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김대팔이 고개를 끄덕이며 태한에게 말했다.

“제가 말한 추가 인원입니다. 발목을 잡진 않을 거예요.”

태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군. 당신, 이름이 아마 김상……중하?”

김상중하? 그건 연예인 이름인데?

“김상팔이다. 사람 이름 정도는 똑바로 기억해 둬.”

“이번 사냥에서 도움이 되면 기억해 주지.”

쳇! 이 녀석도 결국 제 잘난 맛에 사는 부류인가?

태한은 가까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리는 하지 마. 오늘 사냥은 당신한테 좀 버거울 거야.”

“기가트라우라도 잡으러 가나?”

내 말에 태한의 눈썹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그보다 더한 거.”

태한은 공포특급에게 외쳤다.

“그럼 이동하지!”

이동? 태한은 다시 스포츠카에 올라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다시 이동하는 거예요?”

김대팔에게 묻자, 망할 티라노 대가리가 갸웃거렸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집합 장소는 여기였거든요.”

각자 타고 온 차를 타고 7급 사냥 구역에서 더 나아갔다. 거기서 무려 1시간을 달리자, 과거 판문점이라 불렸던 곳에 당도했다.

지금 이곳은 거대한 철벽으로 둘러싸인 채 9급 사냥 구역인 ‘지뢰밭’으로 불린다. 넓은 평야에 무차별적으로 깔린 지뢰가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곳이다.

7급과는 달리 주차장에 들어갈 때부터 군인들의 검문을 받았다.

“트렁크 열고, 차에서 내려 주십시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각 차량마다 양옆으로 군인들이 붙었다. 모두 어깨에 총을 멘 채 경례를 하고 있었다.

김대팔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군인들은 우리가 타고 온 세단의 내부와 트렁크를 확인했다.

“이상 없습니다. 다시 차량에 탑승해 주십시오. 도로에 그어진 흰 선만 따라서 운전하시면 됩니다.”

다시 차량에 탑승. 맨 앞에 선 태한의 스포츠카를 따라 모두 일렬로 운행했다.

정문. 그 앞엔 탱크들이 줄지어 있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비한 것이었다.

모두들 차에서 내려 정문 앞에 섰다. 배낭을 멘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그래서인지 군인 하나가 나에게 웬 강철봉들을 건넸다. 방향 지시봉 정도 크기의 물건이었다.

“위치 전송기입니다. 사냥이 끝나시면 이걸 작동시키신 후에 땅에 꽂으시면 됩니다.”

“예?”

설마 지금 내가 짐꾼 포지션인 거야? 일단 얼떨결에 받아서 배낭에 넣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이렇다 할 짐이랄 게 없었다. 그저 간단히 허리나 등에 찬 무기가 전부였다. 지금이 늦은 오후임을 감안하면 아마 1박 2일은 걸릴 것이었다.

“준비 같은 건 필요 없다는 건가?”

살짝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구역과 똑같이 경고음이 울리며 정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군인들의 총구와 탱크의 포구가 정문 안쪽을 노렸다.

“들어가지.”

태한의 말과 함께 우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절로 나오는 감탄. 지뢰밭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단순 이름에서 추측될 황량함과는 반대로 무슨 몽골 초원 같은 지형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무한히 펼쳐진 푸르른 대지 속에 지뢰가 묻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깃발이 꽂힌 부근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김대팔이 친절하게 짧은 팔을 뻗어 설명했다. 인형 팔의 끝이 가리킨 곳에는 초원을 가로지르는 깃발의 줄이 있었다. 초원 군데군데 거대한 구덩이와 깨진 바위들이 즐비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여기 사는 괴물들에게는 특별히 ‘영역’이란 게 없습니다. 그러니 조심해 주세요.”

“영역이 없어요? 그렇다는 건……!”

때마침 대지를 울리며 강력한 진동이 대기를 찢었다. 그 다음 소닉붐과 같은 굉음과 자잘한 폭음이 고막을 흔들었다.

“크윽!”

자세를 낮추며 몸의 균형을 잡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잘한 폭음은 그 녀석이 지뢰를 밟아서 생긴 소리였다.

“지뢰 따윈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데…….”

역시 수준이 다르다.

“저기 좀 봐. 오늘은 운이 좋은데?”

선두에 선 태한이 지평선을 가리키며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운?”

지평선 멀리에서 두 개의 물체가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태한은 잠시 멈춰 서서 게슴츠레 뜬눈으로 설명을 계속했다.

“괴물 둘이 서로 싸우고 있어. 잘하면 떡고물 좀 생기겠는데?”

눈살을 찌푸리며 최대한 초점을 맞췄다. 거대한 물체들은 서로 뒤엉켜 분명 싸우고 있다. 먼 거리 때문에 실감은 잘 안 나지만, 대기를 통해 전해지는 파장과 소음으로 대충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한은 제자리에 털썩 앉았다.

“잠시 여기서 상황을 지켜보자고.”

정문은 완전히 닫혀 있었다. 다시 열릴 때는 여기서 나갈 때뿐이었다.

두 괴물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재앙이었다. 발길질 한 번에 구덩이가 파이고, 땅속에 묻혀 있던 바위가 파헤쳐져 하늘을 날았다.

“여기선 이게 보통이니까, 익숙해지도록 해. 다들 처음이지?”

태한이 느긋하게 말했다. 그 말에 남주나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난 처음 아닌데? 나도 당신이랑 똑같은 로얄이거든! 한 번 붙어 볼래?”

“하하. 진정해. 벌써부터 힘 빼는 거야? 우리 팀장님.”

마다랑이 얼른 남주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남주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얌전해졌다.

“킥킥킥. 서로를 찢고, 파괴하고, 생명을 태운다! 죽어라!”

갈리는 혼자 폭소를 터뜨리며 괴수급 괴물들의 싸움을 관람했다.

흰 천을 뒤집어쓴 우태훈은 온몸을 비비 꼬았다.

“나도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고!”

우태훈은 흰 천의 끝을 펄럭이며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러자 마다랑이 헐레벌떡 다가와 그의 천을 붙잡았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숙녀 분들 눈 버린다고요!”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피차 마찬가지인데!”

우태훈의 외침에 남주나가 버럭 소리쳤다.

“피차는 얼어 죽을! 난 너 같은 관종이랑 달리 인기 많거든? 저번 주에도 잡지사에서 화보 촬영도 했잖아!”

“알 게 뭐야! 나한텐 너 따위보다 내가 더 주목받는 게 중요해!”

우태훈과 남주나는 이를 갈면서 서로를 노려봤다. 그러자 마다랑과 최마군이 각각 한 사람씩 맡아서 말렸다.

“참 화기애애하네요.”

그냥 별생각 없이 옆 사람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옆 사람이 하필 갈리였다.

“화, 기, 애, 애? 캭캭캭!”

내가 뭘 잘못 말했나?

태한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저쪽 싸움이 길어질 것 같군. 조금 가속화시킬까?”

태한은 벌떡 일어서서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란 지시를 한 후 혼자 괴물들을 향해 걸어갔다.

“뭘 하려고 저러는 거죠?”

내 질문에 김대팔은 앞발로 주둥이를 긁었다.

“‘정리’하시려는 거겠죠.”

“혼자서요? 태한은 7급인 기가트라우도 못 잡았는데요?”

“영상을 보신 모양이군요. 기가트라우는 분명 7급 최강의 맷집을 갖고 있죠. 아마 그 부분만 놓고 보면 9급에 필적할 겁니다.”

“예?”

너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럼 태한이 9급의 강함을 지니고 있단 거야?

“로얄 분들의 능력 수치를 확인해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죽을 힘을 다해 수련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거든요”

“그런가요? 근데 남의 능력 수치는 함부로 볼 수 없잖아요?”

공룡이라 그러냐? 요즘 개인 정보 보호에 얼마나 민감한데!

“예외적으로 로얄 분들의 능력 수치는 공개되고 있거든요. 아! 물론 랭킹 헌터에 한해서요.”

“그래요?”

몰랐던 사실인데…….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다.

저 멀리 작은 점이 된 태한이 폴짝 뛰어올라 괴물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괴물들은 태한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며 자신들의 싸움을 계속했다.

“앗!”

빛 같은 것이 태한에게서 튀어나와 괴물들에게 향했다. 몇 번의 반짝임. 그러자 괴물들이 쓰러졌다.

“와…….”

역시 로얄은 인간이 아니야. 오독지네로 쩔쩔매던 내 자신이 떠올랐다.

태한이 돌아오자, 남주나가 무성의한 박수를 치며 비아냥거렸다.

“대단하시네! 이렇게 강한 분이 왜 우리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을까?”

“주나야. 너무 그러지 마. 너도 대충 짐작하고 있잖아? 오늘 우리가 온 이유는…….”

마다랑의 말에 남주나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알고 있어. 나도 전부터 그걸 잡으려고 벼르고 있었어.”

그게 뭐지? 어떤 괴물이야? 슬쩍 김대팔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이 정도의 맴버가 필요한 거죠?”

김대팔은 진중한 목소리로 작게 답했다.

“몰라요.”

몰라? 모르면 인생 끝나? 이를 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태한은 내게 다가와 자신이 쓰러뜨린 괴물들을 가리켰다.

“가서 위치 전송기 꽂고 와. 그러면 군인들이 와서 괴물의 시체를 회수해 갈 거야.”

“그래?”

근데 역시 내가 짐꾼인 거야? 하는 수 없지. 여기선 내가 가장 수준 미달이니까…….

깃발을 따라 괴물들에게 달려갔다. 마침 나도 저 괴물들의 정체가 궁금하던 참이었다.

H력 없이 뛰니까, 정확히 15분. 쉬지 않고 뛰어서 걸린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거리가 멀다. 평지가 아니었다면 진작 시야가 가려졌을 것이다.

“와!”

영화 속에서 나오던 거대 괴수. 이야기로만 듣던 ‘살아 있는 재앙’이었다.

나보다 훨씬 큰 눈알, 고층 아파트 이상의 몸집. 가까이에 서면 전신이 내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그만큼 거대하고, 그만큼 웅장하다.

“하하하.”

허탈은 웃음과 함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녀석들의 몸에는 군데군데 깊은 상처가 있었다. 아마 이 치명상은 서로에게 당한 상처일 것이다.

태한이 날린 결정타는 훨씬 크기가 작았다. 영상에서 봤던 H력의 검기. 칼날에 의해 난도질된 괴물들의 미간으로 뇌로 추정되는 장기가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효율이라는 건가.”

배낭에서 위치 전송기를 꺼내 군인의 설명대로 작동시켰다. 철봉 위에 달린 빨간 램프에 불이 들어오며 끊임없이 깜빡였다.

“시작하자마자 9급 두 마리 획득이라니, 운도 좋지.”

욕심은 버린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위치 전송기를 괴물들 옆 지면에 하나씩 꽂았다.

다시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모두들 아까 그대로 바닥에 앉아 널브러져 있었다.

“와, 나비다!”

손평화는 로봇에서 내려 한가로이 나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내내 비슷했다.

“어때? 조금은 공부가 됐나?”

태한이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조금.”

드래건과 나이트윙이 하찮아 보일 정도였다. 이제야 랭킹 헌터가 된 게 피부로 느껴졌다.

“이런 걸 기다려 왔어!”

내 대답에 태한은 팔짱을 꼈다.

“이제 시작이야. 기뻐하긴 일러.”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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