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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37화 (137/250)

137화

137화

“엥?”

아차! H력이 빠르게 떨어졌다. 역시 스스로 H력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주제에 너무 나댔나 보다.

“하는 수 없지!”

도주. 아까 내려놓은 리볼버를 들었다. 재빨리 실린더를 열고, 그 안에 특수탄을 장전했다.

“간다!”

녀석들의 움직임은 위협적이지 않다. 어느 정도라면 H력이 없어도 피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결정타. H력이 없다면, 그걸 이 리볼버로 대체하면 그만이었다.

“받아라!”

녀석들 사이로 뛰어들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튀어나온 것은 십여 개의 작은 쇠구슬, 리볼버용 산탄이었다.

광권만큼은 아니지만, 분명히 타격이 있었다. 산탄에 맞은 미니 지네의 껍질에 흠집과 함께 금이 가 있었다.

“하하하!”

나머진 녀석들을 피하며 장전, 사격을 계속하는 것뿐이었다. 리볼버용 산탄이 떨어지면, 일반탄으로 대체. 사격을 계속 이어 갔다.

“헉, 헉. 아이고!”

숨이 차지만, 다리를 멈추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미니 지네들의 집게입이 일반인이 된 내 몸을 찢을 것이었다.

일반탄까지 소비. 남은 탄으로는 녀석들에게 충격을 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철수할 때란 뜻이었다.

“도와드릴까요?”

어디선가 티라노 대가리가 나타나 양손으로 광탄을 마구 쏘아 댔다. 기관총 수준으로 난사되는 광탄에 남은 미니 지네는 순식간에 전멸했다.

“쳇!”

혀를 차며 어떻게든 폄하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김대팔의 광탄은 전보다 위력이 훨씬 강해져 있었다. 역시 한국 최강 헌터팀 소속답다.

“도움은 필요 없었는데요?”

일단 튕겨나 보자.

“그래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상팔 씨가 당하실 것 같아 보이기에 끼어들었습니다. 상팔 씨의 약함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한 저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이, 이 자식! 지금 시비 거는 거냐? H력만 멀쩡했어도 확 그냥……!

수련은 끝. 마음 같아선 더 하고 싶지만, H력이 바닥난 이상 철수가 상책이다.

“챙겨 갈 건…….”

미니 지네는 잔해랄 것도 없었다. 남은 것은 오독지네가 분열하기 전 뒤집어쓰고 있던 검은 독의 탑 껍데기. 저거라도 잘라서 가져가야 했다.

“신호탄이 남아서 다행이야!”

리볼버에 특수탄을 장전, 하늘 높이 발사했다. 신호탄은 그 이름처럼 붉은 빛과 연기를 내며 파란 하늘 높이 날아갔다. 낮에는 빛보단 연기가 더 확실한 연락 수단이었다.

미리 짐을 정리. 채취는 내 몫이 아니었다. 캠코더에 찍힌 영상은 집에 돌아가 정리할 것이었다.

붉은 고구마를 기다리는 동안 바위에 기대앉았다. 김대팔도 내 옆에 앉았다.

“저기, 상팔 씨.”

“왜요?”

“수련하고 계신 거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하하하. 요즘 왜 이렇게 나 도와준다는 사람이 많아?

“왜 도와주시는 거죠?”

넌 뭐라고 둘러댈 거냐?

“상팔 씨와 친해진 다음, 상팔 씨를 저희 팀으로 모셔 가고 싶거든요.”

티라노 주제에 돌직구. 그래도 시원시원해서 마음에 든다.

“사양할게요. 전 저희 팀이 좋거든요.”

“상팔 씨의 방법은 잘못됐습니다.”

“예?”

김대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제가 듣기론 상팔 씨의 목표는 헌터 랭킹 1위라고 하더군요. 맞나요?”

“맞아요.”

그건 또 어디서 주워들었어?

“그래서 팀을 꾸리고, 동료는 모으신 거겠죠. 하지만 그렇게 해선 절대 1위가 되실 수 없습니다.”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는 말이다. 내가 대꾸하든 말든 티라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최고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기존 최고인 곳에 들어가 그곳을 장악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레 1위가 될 수 있죠.”

말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어금니의 팀장은 헌터 랭킹 1위, 김용. 무려 7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는 진짜 괴물이다.

“김용은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닐 텐데요? 어떻게 어금니를 장악하시려고요?”

내 질문에 김대팔은 웃기만 했다.

“후후후. 다 방법이 있죠.”

그때 기다리던 불타는 고구마가 도착했다. 네 사람은 부랴부랴 검은 독의 탑 껍데기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헤헤헤!”

오박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검은 독 껍데기 속에 다이너마이트를 집어넣었다. 무섭게도 대피나 안전 점검은 없었다. 잠시 후, 거대한 폭음과 함께 껍데기가 산산조각 났다.

“무, 무식한 녀석들!”

나와 김대팔은 멍하니 불타는 고구마의 작업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야말로 ‘몸으로 때운다’의 정석을 보여 주는 행동이었다.

폭발에 의한 연기 속에서 넷은 열심히 검은 독 조각을 주웠다. 빈 껍데기였지만, 의외로 네 사람의 배낭이 꽉 찰 만큼 양이 많았다.

우리는 모두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냥 구역을 빠져나왔다. 김대팔은 어쩐 일인지 우리를 쫄랑쫄랑 따라왔다.

“대팔 씨. 무슨 볼일로 오독지네의 동굴에 계셨던 거예요?”

김대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상팔 씨처럼 오독지네와 싸울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팔 씨를 만나기 전 깨달았습니다. 녀석은 저에게 너무 약하단 걸요.”

빌어먹을 파워 인플레! 너무 약하다고?

“대단하시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팔 씨 같은 분이 대단하신 거죠. 면접 때부터 눈여겨봤습니다.”

“면접 때부터요?”

그때 분명 우리는 정반대였을 텐데?

“예. 어렸을 때부터 여러 군상의 인간들을 많이 봐 왔죠. 그래서 상팔 씨 같은 타입도 잘 압니다.”

티라노는 앞발을 꼼지락댔다.

“상팔 씨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입니다.”

엥? 너, 아까까진 날 스카웃하려고 했잖아?

“오해는 마십시오. 상팔 씨의 능력은 존중합니다. 그저……공과 사를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후우, 그러니까……공적으로는 저를 인정하고 원하시지만, 사적으로는 아니란 말씀이시죠?”

얘도 어지간히 불편한 성격이다. 이런 놈은 또 처음이네!

“맞습니다. 역시 상팔 씨와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군요.”

병 주고 약 주냐? 썅! 너도 어지간히 성격 나쁜 놈이구나. 사회생활 잘 하겠네?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인형 탈은 왜 쓰고 계신 건가요?”

“이건 제……개성입니다.”

무슨 북한에 있는 개성이냐? 개뿔! 이 자식, 하나부터 열까지 날 얕보고 있다.

마침 불타는 고구마가 부산물을 모두 챙겨 짐을 꾸리는 게 보였다.

“그럼 여기서 이만 헤어져야겠네요. 다음에 봬요!”

“같이 가죠. 저도 슬슬 나가려고 했거든요.”

이 자식, 설마 집까지 따라오려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으로 배낭을 멨다. 그러고 보니까, 김대팔은 인형 탈 이외엔 그 어떤 장비나 도구도 없었다.

우리는 순조롭게 철수했다. 그리고 주차장까지 나와 짐을 차에 실었다.

“이제 정말로 헤어지죠?”

“상팔 씨, 저와 좋은 곳에 가시지 않겠습니까?”

엥?

뜬금없는 김대팔의 발언에 불타는 고구마의 여성 셋이 환호를 질렀다.

“예쁜 사랑 나누세요!”

무시하자.

“그게 무슨 뜻이죠?”

“수련을 하실 거라면, 제대로 하셔야죠. 안 그래요?”

“아무리 그러셔도, 전 어금니에 안 들어갈 겁니다.”

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 밑엔 안 간다!

“하하하.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한 번 가 보기만 해 주세요. 손해 볼 일 없습니다. 상위 랭커들과 어울릴 기회거든요.”

상위……랭커!

아오, 썅! 이 자식, 날 너무 잘 알아. 유혹이 너무 달콤하다.

결국, 난 불타는 고구마와 헤어져 김대팔과 함께 가기로 했다.

“형님! 그럼 다음에 뵐게요.”

오박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래. 부산물은 그냥 너희 가져라.”

“예? 저, 정말로요?”

오박이 고개만 들며, 아주 불편한 자세를 취했다.

“어. 내 목표는 돈이 아니었거든.”

“하, 하지만…….”

머뭇거리는 입과 달리 녀석의 눈은 활짝 웃고 있었다. 알기 쉬운 녀석이다.

“잘 가라!”

쿨한 척 뒤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김대팔이 타고 온 차량은 무려 고급세단. 아니, 괴물하고 싸우러 가는 놈이 이런 걸 타고 와?

“타시죠.”

김대팔은 뒷자리에 앉아 말했다.

“어?”

“상팔 씨가 운전하세요. 전 이 복장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거든요.”

“그럼 올 때는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운전석에 착석. 와, 시트가 엄청 편안하다. 마치 시트 전체가 내 몸에 맞춰 형태가 변하는 것 같다. 비싼 게 좋긴 좋구나.

“어디로 갈까요?”

“7급 사냥 구역이요.”

7급! 심장이 두근거렸다. 역시 랭커들은 노는 물이 다르다.

부드럽게 나아가는 세단을 몰며 7급 사냥 구역인 ‘마굴’로 향했다. 7급부턴 정식 헌터라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다른 사냥 구역보다 두 배나 높은 철벽. 마치 별천지가 숨겨진 모습이다.

그런 철벽 주변으로 육군 막사가 쭉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막사 옆에는 자주포, 야포 등이 포구를 철벽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7급 사냥 구역의 주차장. 거기엔 우리가 타고 온 세단 말고도 여러 대의 차량이 있었다.

“랭커들이다!”

세단에서 내리자마자, 문 앞에 모인 랭커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6명이었다.

“설마……공포특급!”

공포특급. 한국 최고의 헌터팀이라 일컬어지는 ‘빅4’의 하나였다. 특히 공포특급의 대단한 점은 소수 정예란 것. 지금 보이는 저 6명이 팀 맴버 전부, 거기에 전원 랭커다.

“젠장! 엄청난 사람들이 왔잖아?”

공포특급은 팀 이름에 걸맞게 모두 호러틱한 별명을 가지고 있다.

검은 망토로 두른 금발 여성. 공포특급의 팀장인 ‘남주나’다. 헌터 랭킹은 무려 6위, 로얄이다. 별명은 뱀파이어.

전신에 검은 타이즈를 입은 남성. 머리에는 뿔, 등에는 날개를 달고 있다. 남주나처럼 로얄인 헌터 랭킹 9위의 마다랑. 별명은 악마.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을 뒤집어써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남성. 헌터 랭킹 12위, 2군에서 강자에 속하는 우태훈이다. 별명은 유령.

하키 마스크를 쓴 거구. 키도 크지만, 떡 벌어진 어깨너비가 엄청나다. 헌터 랭킹 15위의 최마군. 별명은 도살자.

레인코트 차림에 붉은 마스크를 쓴 여성. 아는 사람이다. 최단 기간 2군 진입 기록을 가지고 있는 헌터 랭킹 17위의 갈리. 별명은 빨간마스크.

2~3m 사이의 뭉툭한 로봇. 저 안에는 손평화가 타고 있다. 헌터 랭킹은 여전히 60위. 팀 내에선 꼴찌지만, 로봇의 성능은 무시무시하다. 별명은 골렘.

로봇의 몸통이 앞뒤로 갈라지며 내부에 탑승하고 있던 손평화가 내렸다.

“상팔 씨!”

손평화는 한걸음에 달려와 내 손을 잡고 와락 끌어안았다.

“아, 안녕하세요?”

그나저나 김대팔하고 공포특급은 또 무슨 관계야? 내가 알기론 공포특급은 웬만해선 잘 뭉치지 않는 팀인데?

손평화의 손을 잡은 채 팀장인 남주나와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김상팔이라고 합니다.”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지만, 남주나의 키는 160cm 정도. 얼굴은 열심히 꾸며서 예쁘장하다. 약간 한유화와 비슷한 분위기가 난다.

“아하! 김상팔 씨?”

남주나의 목소리가 늘어지며 그녀는 손평화와 묘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고는 팔꿈치로 내 가슴을 툭툭 찔렀다.

“잘 해 봐요!”

“하하하…….”

묵직한 음성.

“너.”

최마군이 날 내려다봤다. 이미 그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히익! 네?”

“다쳤군. 너도 우리처럼 방금까지 괴물과 싸운 거냐?”

“예.”

5급 정도는 이 사람들한테 엄청 쉬운 상대일 터. 자신 없는 목소리가 기운을 떨어뜨렸다.

“치료해 주마.”

최마군이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와, 손 무게가……! 환한 빛과 함께 몸이 점차 가벼워졌다. 거기에 H력 충전은 덤.

“어머? 어떤 괴물인데요? 듣고 싶어요!”

손평화가 과한 관심을 가져 주며 굳이 질문을 했다.

“하하……하. 그, 그냥 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김대팔을 노려봤다. 티라노 대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좀 있으면 의뢰인께서 오실 겁니다.”

의뢰인? 이 정도의 랭커들을 모을 정도의 사람이라고? 혹시 랭킹 1위인 김용일까? 그 정도라면 가능하겠지!

기다리는 동안 공포특급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무리 개인 활동을 지향하는 팀이어도, 제법 팀다운 분위기가 있었다.

남주나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심심풀이로 제노스네이크를 잡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잘 안 가더라고!”

그 말에 갈리의 마스크가 들썩였다.

“킥킥킥! 아무리 팀장이라도 혼자선 버거웠을 텐데? 캬캬캬!”

저 안에 든 큰 입이 쫙 찢어진 것을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그때 우리 뒤로 스포츠카 한 대가 들어왔다. 그리고 거기엔 또 내가 아는 얼굴이 타고 있었다.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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