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136화
오독지네의 질주는 목소리 벽에 막혀 저지됐다. 이제 다음으로 녀석이 할 일은 이름의 유래가 된 다섯 가지 독을 쓰는 것이었다.
오독지네는 제자리에 서서 머리를 천장까지 들어 올렸다.
다섯 개의 눈. 그중 맨 왼쪽 눈이 반으로 갈라지며 그 사이에서 녹색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첫 번째 독, 마비 가스. 극소량만 들이마셔도 1분 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되는 기체다.
“하하하!”
하지만 나에게는 헌터용 정화 호흡기가 있다. 코에는 코마개로 여독이 들어갈 가능성을 차단했으니, 호흡은 오로지 입을 통해서만 할 수 있었다.
“받아라!”
리볼버의 총구로 가스가 나오는 눈을 겨눈 채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총성과 동시에 붉은 섬광이 날아가 오독지네의 눈을 때렸다.
오독지네는 크게 울부짖었다. 녀석의 눈에서 화염과 함께 오징어 타는 냄새가 굴 가득 퍼져 나갔다.
“하나 해결.”
녀석의 집게 입에서 타액으로 추정되는 것이 질질 흘러내렸다. 눈 하나를 그냥 다 태워 버렸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두 번째.”
녀석의 왼쪽 두 번째 눈이 열렸다. 그리고 이번엔 거기서 보라색 가스가 빠르게 뿜어져 나왔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피부에 닿기만 해도 즉사하는 맹독. 그러나 이를 대비해 특수 차단막을 준비해 왔다.
보라색 가스는 대기 중의 공기보다 가볍다. 그렇기에 아주 바닥까지는 내려오지 않는다. 이곳 지형으로 볼 때 내 허리 밑이면 충분히 안전할 것이다.
특수 차단막 표면에 그려진 점선을 따라 종이접기를 하듯, 막을 접었다. 그런데 도중 녀석의 다른 눈이 열렸다.
“저건!”
오른쪽 두 번째. 활짝 열린 눈 사이로 노란 가스가 뿜어졌다.
차단막 접기는 중지. 즉각 산탄총에 연결된 낚싯줄과 로프 쪽으로 달렸다.
노란색은 바로 산성. 닿으면 녹는다. 저기엔 특수 차단막도 소용없다.
“엄청 열 받았나 보네.”
보통은 독을 하나씩만 쓴다고 하는데…….
하지만 잘됐다. 저 노란색 가스에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불에 닿으면 폭발한다는 것.
“드래곤 브레스탄이라고 들어봤냐?”
드래곤 브레스, 그것은 용이 내뿜는 불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얼른 특수 차단막을 뒤집어쓴 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로프를 움직여 조준, 낚싯줄을 힘껏 당겼다. 그러자 산탄총 탄창에 미리 장전된 특수탄이 발사됐다.
리볼버로 쏜 것이 대구경 소이탄이라면, 산탄총에서 발사된 것은 확산 소이탄. 사실상 소규모 폭격이나 다름없다.
낚싯줄을 당길 때마다 산탄총의 총구가 브레스를 뿜었다. 그리고 여러 갈래의 불꽃은 딱 오독지네의 머리로 날아들며, 특히 활짝 열려진 두 눈에 집중적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엔 기대했던 대폭발.
오독지네의 오른쪽, 노란 가스를 내뿜던 눈이 터지며, 커다란 진동이 울렸다.
“이, 이거 예상보다 훨씬 심한데? 설마 동굴이 무너지는 거 아니겠지?”
폭발을 동반한 충격에 오독지네가 앞으로 쓰러졌다. 녀석의 축 늘어진 머리가 내 바로 앞에 떨어졌다.
“생각보다 싱거운데?”
폭발의 여파로 주변 독가스는 밖으로 몽땅 날아갔다.
특수 차단막을 걷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폭발하면서 차단막 표면이 까맣게 그을렸지만, 내 몸은 아무 이상 없었다.
“다음!”
3급이나 4급이었다면, 지금의 폭발로도 치명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괴물은 5급. 쌍두 하피보다 더 강하다고 알려진 오독지네다.
오독지네는 바닥에 누운 채 꿈틀거렸다.
지금이라면 놈의 숨통을 완전히 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난 이 녀석을 해치우려고 비싼 장비를 구한 게 아니다.
오독지네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맨 오른쪽 눈을 열었다.
“그렇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저 눈에서 발사되는 독은 좁은 공간에서 당하면 큰일이었다.
“따라와!”
로프를 힘껏 당겨서 산탄총을 회수, 리볼버로 오독지네의 전진을 막았다. 녀석같이 몸이 긴 타입은 머리만 잘 공격해도 몸 전체의 움직임을 제압할 수 있다.
산탄총을 어깨에 걸고, 바닥에 내려놓았던 배낭을 챙겼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전력질주. 단숨에 동굴을 빠져나왔다.
화가 잔뜩 난 녀석은 순순히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오독지네란 이름이 무색하게 녀석의 독 3개를 무력화시킨 덕이었다.
리볼버를 집어넣고, 산탄총을 들었다. 그리고 탄창 교환. 브레스탄이 든 탄창을 빼고, 슬러그탄이 든 탄창을 넣었다.
오독지네가 동굴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로 총을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슬러그탄답게 반동이 심했다.
“쳇!”
첫 발은 시원하게 빗나갔다. 역시 산탄총으로 먼 거리를 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H력을 다리로 보냈다. 그리고 주아란의 각력 강화를 떠올리며 다리를 움직였다.
강력한 발차기를 쓸 정도의 능력이라면, 미스터 점프만큼은 아니더라도 땅을 박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하앗!”
제자리를 차며, 높이 뛰어올랐다. 머리를 높게 든 오독지네와 시선이 일직선으로 일치,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산탄총을 발사했다.
목표는 맨 오른쪽 눈. 녀석이 그 독을 쓰기 전에 막아야만 했다.
오독지네는 고고히 날 노려보다가 오른쪽 눈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내가 쏜 슬러그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눈 속에서 독을 발사했다.
“으악!”
내가 한 발 늦고 말았다. 설마 맞교환을 할 줄이야!
“썅!”
얼른 산탄총을 집어던졌다. 총에는 오독지네가 쏜 무색의 독이 묻어 있었다.
무색은 점점 하얀색을 띄더니 반죽이 발효하듯 부풀다가 폭발했다.
“젠장!”
작은 폭발로 인해 파편이 튀기며 왼팔에 박혔다. 예상치 못한 부상. 그러나 그것은 오독지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쏜 슬러그탄은 확실하게 오른쪽 눈에 명중했다. 그리고 다른 눈과 다르게 맨 오른쪽 눈은 머리끝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이제부터다.
지금까지 쓴 돈은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내가 오독지네를 고른 이유, 그리고 녀석을 수련 상대로 고른 이유. 그것은 마지막 다섯 번째 독 때문이었다.
네 가지 독을 잃은 오독지네는 가운데 눈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위로 치켜들며 몸을 세웠다.
“멋지다!”
순수한 감상이 튀어나왔다.
타르 같은 검은색 독이 눈에서 흘러내리며 오독지네의 전신을 감쌌다. 마치 석고로 본을 뜰 때처럼 오독지네는 자신이 뿜어낸 독에 잠겨 단단하게 굳었다.
지금 오독지네의 모습은 명장이 빚은 검은 색 석탑 같았다.
괴물을 생물체로 보긴 좀 뭣하지만, 이것만큼은 한 생명이 모든 것을 걸고 싸우려 한단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나도 준비를 해 볼까?”
배낭을 벗어서 최대한 멀리 놔뒀다. 그 다음 산탄총과 리볼버도 그 옆에 고이 내려놨다.
“흠, 캠코더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깨에 그대로 놔두면 파손될 수도 있는데…….
캠코더를 어깨에서 분리해 배낭 위에 잘 고정시켰다. 그리고 시야를 최대한 넓게 세팅해서 근처가 싹 다 들어오도록 준비했다.
“이러면 되겠지?”
다음으로는 탈의. 속옷형 특수복과 관절 방어구 외에는 싹 다 벗었다. 아무리 수련이라도 이것까지 벗는 건 좀 불안했다.
“좋았어!”
무거운 옷은 아니었지만, 옷을 벗으니 몸이 다소 가볍게 느껴졌다.
제자리 달리기로 몸이 식는 것을 방지하며 오독지네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녀석의 마지막 독은 상대가 아닌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용도는 천연 특수 합성물. 쉽게 말하면, 생물용 강화 콘크리트다.
저거 떼다가 팔면 꽤 짭짤하다.
“와라!”
검은 탑이 움찔거리며 표면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십 개의 다리가 껍데기 밖으로 튀어나왔다.
탑이 무너졌다. 그것은 말 그대로 속 빈 강정. 갈라진 껍데기에서 수많은 무리가 기어 나왔다.
오독지네의 긴 몸을 이루고 있던 수많은 마디가 개별의 개체로 분리되어 움직였다. 수십 마리의 미니 지네의 표면은 검은 독으로 코팅되어 있었다.
“후후후.”
녀석들 앞에 섰다. 나와 대치한 수십 마리의 지네를 보자, 예전 변해라네 아버지에게 수련 받을 때가 떠올랐다.
주먹을 풀면서 녀석들에게 소리쳤다.
“덤벼라!”
그 소리에 미니 지네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H력을 양 주먹에 집중. 뛰어오른 녀석 하나를 가볍게 쳐냈다.
“좋았어!”
예상대로다. 묵직한 녀석의 무게에 강화된 주먹이 저려 왔다. 수련 상대로 딱이다.
“한 방 더!”
빠르게 연타. 그제야 미니 지네가 시원하게 날아갔다. 하지만 이것도 치명타는 아니었다. 녀석은 금방 다시 일어나 기어 왔다.
“다 덤벼!”
이번엔 동시에 십여 마리가 뛰어들었다.
“나도 간다!”
주아라의 전신 강화, 최향자의 근력 강화. 두 능력을 섞어 양팔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난타를 하듯 주먹을 질러 댔다.
“아뵤, 아뵤, 아뵤!”
둘의 능력이 섞여서인지 주먹이 전과 비교도 안 되게 빨라졌다.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크윽!”
몇 마리가 내 등에 매달려 보호복을 갉아 대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소리에 목뒤로 소름이 돋았다.
“젠장!”
팔을 뻗어 녀석들을 하나하나 떼어 냈다.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다른 녀석들을 견제,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보기보다 무겁네?”
아마 겉에 두른 검은 독 때문일 것이다.
몸이 가벼워지자, 녀석들과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녀석들이 나에게 한 줄을 서며 다가오도록 유인했다.
“연타다!”
하나씩 상대하며 녀석들을 날려 댔다. 침착하게 속도가 붙은 것은 좋았지만, 주먹 자체가 단단해진 것은 아니었다. 빠르게 미니 지네를 때리는 만큼 주먹 자체의 손상도 빨라졌다.
“하앗!”
아픔을 참으며 계속 주먹을 날렸다. 내가 힘들고 지친다고, 괴물들이 봐주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실전이나 다름없는 훈련. 이겨 내지 못하면 죽을 뿐이었다.
미니 지네를 때릴 때마다 내 손에서 피가 휘날렸다.
“이건 어떠냐!”
주아란의 각력 강화. 제자리에서 몸을 회전, 낮은 돌려차기로 미니 지네 몇 마리를 쓸어 냈다. 거기서 회전을 멈추지 않고 계속 유지. 팽이처럼 돌면서 주변의 미니 지네를 날려 버렸다.
“쳇!”
수도 없이 미니 지네를 날리며 몸으로 알 수 있었다. 유효타는 하나도 없었다. 역시 5급 괴물. 거기에 검은 독의 경도 강화 덕에 장난이 아니었다.
“이래야 수련이지!”
전신이 깨질 각오로 공격을 날렸다. 주먹 지르기, 돌려 차기, 손날 치기, 주먹 내려치기, 뒤꿈치 내려찍기, 손날 찌르기, 발끝 찍기, 뒤차기, 손바닥 치기, 앞차기, 무릎 찍기, 팔꿈치 치기, 박치기, 올려치기, 옆차기. 녀석들의 강화된 표면은 흠집은커녕 광만 번쩍번쩍 났다.
“이건 어떠냐!”
오른쪽 주먹에 대량의 H력을 모았다. 그러자 주먹이 전구처럼 빛나며 주변의 미니 지네를 몰아냈다.
“하압!”
미스터 타이거와 싸울 때 느꼈던 물질화를 떠올렸다. H력이란 에너지를 형태가 있는 물체로 바꾸는 과정. 주먹이 환한 빛으로 덮이며 점차 밝기가 줄어들었다.
“이, 이건……?”
주먹은 새하얀 상아처럼 변해 있었다. 매끈한 광택에서 완벽함마저 느껴졌다.
“이제부터 이건 ‘광권’이다!”
주먹을 뻗어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미니 지네를 때렸다.
주먹이 지네에게 닿는 순간 무거운 바위를 때린 듯 엄청난 무게가 전해져 왔다. 좀 약간 속도가 줄었지만, 주먹은 끝까지 뻗어졌다.
“앗!”
감탄과 함께 미니 지네가 완전히 분쇄됐다. 바삭한 파이 과자처럼 가루로 바스러지며 한 마리가 멀리 사라졌다.
“광권 다음엔 이거다!”
오른손에 쥔 광권에 계속해서 H력을 응축했다. 그러자 광권의 크기가 점차 줄어들더니, 이내 스멀스멀 색감이 사라졌다.
“역시, 응용 원리는 같아!”
무광권. 다음은 이걸 시험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