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1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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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급 사냥 구역은 일종의 정글이다. 이곳엔 드릴소가 서식하는 늪지대도 있고, 높은 나무가 빽빽하게 밀집한 숲도 있으며, 빠른 유속으로 곧장 바다로 통한 강도 있다.
쌍두 하피나 나이트윙처럼 날 수 있는 괴물도 있지만, 모든 괴물은 기본적으로 육지에서 서식했다. 그렇기에 아직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다.
만약 괴물이 하늘과 물에서도 살게 된다면……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오박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오박을 따라 김미수, 아미니, 아미리가 날 배웅했다.
오늘은 드디어 고대하던 훈련 날. 만약을 위해 불타는 고구마를 데리고 왔다. 이들의 임무는 안전한 정문 앞에서 대기하다가 내가 호출하면 숲 지역으로 와서, 함께 오독지네 부산물을 옮기는 것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H력을 자력으로 만들 수 없는 나에게는 귀한 충전 인력이기도 했다.
오박의 반질반질한 대머리를 보고 있으니,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래. 이따가 보자.”
홀로 숲으로 향했다. 등에는 배낭, 배낭 옆에는 새로 산 산탄총, 허리엔 리볼버, 오른손엔 캠코더, 옷은 두툼하게 입었다. 옷 속엔 관절 방어구와 속옷형 특수복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다소 몸집이 커 보이기까지 했다.
장비도 빵빵, H력도 빵빵. 이제 날뛰기만 하면 된다.
정글 한가운데 나 있는 부자연스런 터널, 그곳을 지나며 빠르게 목적지로 걸었다.
오독지네가 서식하는 곳은 숲을 가로지른 통로 끝. 벽처럼 선 절벽과 그 갈라진 틈 속에 녀석이 있었다.
족히 수십은 될 틈 중 나에게 적합한 공간을 찾는 일은 순전히 운에 의지할 요소였다.
2, 3미터 사이의 넉넉한 너비, 4, 5미터를 가볍게 넘는 높이. 오독지네는 딱 자신의 몸 크기에 맞는 공간에서 서식한다. 즉, 입구 크기가 각 개체의 덩치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배낭에서 잘 포장된 나무 막대를 꺼내 안에 동봉된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나무 막대 끝 잘 말린 헝겊에 불이 붙으며 횃불이 커다랗게 타올랐다.
그렇다, 이거 ‘상품’이다.
횃불은 랜턴에 비해 빛도 약하고, 효율도 나쁘다. 그럼에도 묘하게 로망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물론 내 경우엔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구매한 것이다.
왼손에 횃불을 든 채 캠코더 전원을 켰다. 그리고 캠코더를 가슴까지 들며 전방 렌즈가 앞을 향할 수 있도록 했다.
“김상팔의 단독 사냥 영상!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동굴 탐사는 이걸로 두 번째. 처음은 드래건 사냥 때였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발에 뭔가가 채였다. 커다란 조각 같은 것이었는데, 허리를 숙이고 횃불을 가까이 대서야 확실히 모습을 드러냈다.
얇고 평평한 막. 무슨 사각 쟁반 같았다. 그런 것들이 눈앞에 타일처럼 깔려 있었다.
“허물?”
그때 동굴 안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크기가 아주 작았지만, 분명 뭔가가 미끄러지는 소리였다. 솜이나 면 같은 소재가 푹신거리는 소리 같았다.
오독지네일 리는 없고, 다른 야생동물? 이런 동굴에 살 만한 생명체라면 위협거리가 되진 않는다.
“응?”
소리가 또 들렸다. 이번엔 분명히 바닥의 허물이 바스러지며, 뭔가가 이동하고 있었다. 소리의 방향과 크기가 점점 커지는 점으로 봐서 내 쪽으로 이동해 오는 것이었다.
“후우.”
한숨을 쉬며 손에 쥔 캠코더를 어깨에 매달았다. 이렇게 하면 내 시선이 곧 캠코더의 시선.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영상은 계속해서 촬영될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허리에 찬 특대 리볼버를 뽑아 들었다.
계속해서 다가오던 뭔가는 횃불의 범위 가장자리에서 멈춰 섰다.
오독지네는 야행성, 지금은 동굴 가장 안쪽에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희미하게 비친 측면 윤곽으로 볼 때 이족 보행을 하고, 사람 크기였다. 그러나 사람이라기엔 어딘가 비율적으로 부자연스러웠다.
“곰?”
곰이라기엔 꼬리가 두툼하고 길다. 혹시 고릴라나 다른 유인원일까 싶지만, 그것도 아니다. 그러기엔 앞발, 혹은 팔이 너무 짧다.
마치 티라노사우루스 새끼 같…….
“이 새끼, 김대팔?”
나도 모르게 격한 표현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짐작은 정확했다.
“안녕하세요. 상팔 씨. 혼자신가요?”
익숙한 티라노 대가리가 불쑥 불빛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언제나 티라노 인형 옷을 입고 다니는 김대팔이었다.
와, 얘는 저 옷을 벗을 때가 있는 걸까?
“네. 안녕하세요, 김대팔 씨. 대팔 씨도 혼자신가요?”
굳이 아는 척하고 싶진 않은데……. 이 녀석도 나에겐 디마 못지않게 부담스럽다.
“네. 이런 곳에서 만난 걸 보면 인연인가 봐요, 그렇죠?”
티라노의 앞발이 꼼지락거리며 요염하게 움직였다.
“그러게요.”
그 수많은 굴 중에서 같은 곳에 들어올 확률은 엄청나게 낮다. 수련 시작부터 정말 운이 없다.
“방해가 될 테니까,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갈게요. 다른 굴을 찾아보죠, 뭐.”
어깨를 으쓱이며 조금의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잠깐만요, 상팔 씨. 오독지네를 잡으러 오신 거죠? 그럼 같이 하실래요?”
김대팔의 목소리가 발걸음을 붙들었다. 녀석에게서 꿍꿍이가 느껴졌다.
일단 의심부터 하자.
“왜죠? 애초에 여기 혼자 들어오신 걸 보면 저 없이도 충분하신 것 아닌가요?”
김대팔의 랭킹은 80위. 아무리 오독지네가 5급 중에서 다소 약한 축에 든다고 해도, 그걸 혼자서 잡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녀석이 여기에 혼자 왔단 건 나처럼 수련 중이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하하하. 서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어요? 괜찮으시다면, 여기선 제가 양보할게요. 서로 뒤를 봐주는 게 어떨까요?”
“사양하죠. 누가 지켜 준단 생각 자체가 각오를 누그러뜨리거든요.”
티라노는 짧은 팔을 최대한 빼서 턱 아래를 긁었다.
“그럼 알겠습니다. 즐거운 사냥 되세요.”
김대팔은 조용히 날 지나쳐서 바깥으로 향했다.
즐거운 사냥이라……. 일부러 비꼰 걸까, 아니면 녀석에게 오독지네는 그 정도로 만만한 상대란 걸까?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일정 거리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동굴 내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교묘하게 녹아들고 있지만, 예민한 내 청각엔 똑똑히 잡혔다.
아, 이 자식!
일단 이를 갈면서 모르는 체했다.
언제부턴가 어렴풋이 느낀 거지만, 나란 놈은 이상한 놈들한테 인기가 많은 것 같다. 하하하.
작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숨 돌리기로 했다. 계속 걸어온 터라 조금 피로가 쌓인 상태였다. 내가 멈춘 것을 감지한 김대팔의 움직임도 함께 멈췄다.
“후우.”
우선 손에 든 캠코더, 배낭, 산탄총, 총집이 달린 허리띠, 횃불을 바닥에 내려놨다.
물병을 꺼내 한 모금, 삼각 김밥을 꺼내 포장지를 벗긴 후 한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우물거리며 배낭 속에서 미리 준비한 물건들을 꺼냈다.
헌터용 정화 호흡기와 특수 차단막, 휴대용 네일건 그리고 평범한 코마개.
헌터용 정화 호흡기는 일반적인 방독면과는 형태부터 다르다. 일단 형태는 작은 원반 밑면에 입마개가 달린 모양, 간이 스노클처럼 보이기도 한다.
차단막은 정사각형의 방수포 같은 것으로, 특수 소재를 사용해 외부와 100% 완전 차단할 수 있는 물건이다. 사용은 군대의 판초우의처럼 하면 된다.
오독지네를 상대하기 위해선 이 두 가지 물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독’지네란 이름처럼 녀석에겐 무려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맹독이 있다. 능력발현 자체가 독에 저항하도록 타고 난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 준비는 기본이다.
헌터용 정화 호흡기를 입에 문다. 그 다음 코마개로 코를 막아 호흡을 막는다. 호흡은 오로지 입으로만 한다.
차단막은 아직 두르지 않고, 로프와 함께 허리에 묶었다. 네일건은 주머니에 넣고, 산탄총은 어깨에 멘 체 능력발동, H력으로 강화된 양손에 등반용 도끼를 쥐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등반 장비는 피켈, 그러나 직각 형태인 피켈로는 70도 이상의 경사는 올라갈 수 없다. 그런 피켈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등반용 도끼다. 생긴 건 곡괭이 같은데, 왜 도끼인지는……만든 사람한테 물어봐라. 나도 모른다.
동굴 내부의 벽은 외부의 절벽과는 천지 차이, 수분이 흐르고 있어서 엄청 미끄럽다. 맨손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끝이 뾰족한 등반용 도끼로 한 번, 한 번 확실하게 찍으면 올라가기 수월하다.
단숨에 천장까지. 등반용 도끼 두 개를 벽에 깊숙이 박은 후 허리에 맨 로프에 연결해서 몸을 지탱시켰다. 그 다음 주머니에서 휴대용 네일건을 꺼냈다.
네일건으로 못을 천장에 박고, 거기에 로프와 낚싯줄을 연결해 공중에 산탄총을 매단다. 총구와 손잡이, 그리고 수직 손잡이에 줄을 묶어서 그것으로 각도를 조절, 총구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방아쇠에 낚싯줄을 묶은 다음, 그 끝을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렸다.
방아쇠에 직접 연결된 낚싯줄과 총구와 수직 손잡이에 직접 연결된 로프. 이 세 가닥을 바닥까지 늘어뜨리면 아래에서 직접 공중의 산탄총을 조작할 수 있다.
H력도 완충, 컨디션도 좋다. 남은 일은 뒤에서 음흉하게 날 스토킹하고 있는 티라노를 조심하는 것뿐이다.
카메라를 어깨에서 떼어 내 적외선 모드를 작동, 횃불의 범위 밖 훨씬 먼 안쪽의 상황을 확인했다.
좁고 깊은 통로. 동굴의 형태는 한결같이 똑같았다.
“흠, 생각보다 굴이 깊은데? 유인하려면 힘 좀…….”
흐릿하지만, 확대된 영상에 뭔가가 잡혔다. 길고 가느다란 두 개의 줄 같은 형태. 더듬이 아니면 꼬리가 분명했다.
“생각보다 작은 것 같은데?”
나와 녀석의 거리는 대략 150미터 이상. 여유롭게 시작하기엔 딱 좋은 거리다.
“시작은 광탄!”
손바닥에 H력을 집중, 야구공의 형태로 만들어 가볍게 쥐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방출. 광탄은 빠르게 날아가 안쪽에서 폭발했다.
환한 빛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그리고 드디어 녀석이 움직였다.
동굴 바닥을 끊임없이 때리는 발소리, 수백 쌍의 다리가 지면을 때리고 있다. 발을 통해 전해지는 고동이 빨라질수록 내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캠코더를 다시 어깨에 고정, 만일을 위해 불이 붙은 횃불을 벽 쪽으로 치웠다. 그리고 두 눈에 H력을 불어넣어 시야를 확보했다.
“하아아압.”
있는 힘껏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능력을 쓰는 호규의 모습과 호규의 H력이 몸 안에 들어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떠올렸다.
미즈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얻은 게 있다면, 바로 내 능력의 올바른 이해였다. 처음 아저씨에게서 알약 4개를 받아먹은 것은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다.
H력을 성대에 집중, 지금 내 몸에 있는 H력은 호규의 것이 아니지만, 내 몸은 훌륭히 호규를 기억하고 있었다.
미량의 H력을 안구로 방출. 그러자 시각이 예민해지며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오독지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너비 약 1미터, 길이 약 10미터. 거대한 지네의 모습에서 추가로 머리에 다섯 개의 눈이 일렬로 달려 있는 모습. 미리 공부한 형태 그대로였다.
녀석과의 거리 5미터. 힘껏 소리를 질렀다. 태어나서 이렇게 크게 목소리를 짜낸 것은 처음이었다.
“으아아아!”
성대에서 끌어 올려진 목청. 그것은 H력이란 힘을 통해 확장되고, 또 확장되어 엄청난 파장으로 변했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나와 전방으로 퍼지며 통로 형태를 따라 하나의 벽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