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134화
***
시내의 한 가게. 이곳은 평소 지나다니면서 점찍어 놓은 곳이었다. 유리창에 진열된 무기와 도구들 가격이 기본 수백, 많게는 ‘억’단위. 예전엔 바라보면서 군침만 흘리곤 했었다.
“어서 오십시오!”
카운터의 주인은 자동문이 열리는 것에 맞춰 호령하듯 소리쳤다. 그러자 종업원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내 옆에 섰다. 허리는 90도, 얼굴엔 밝은 미소, 용모는 단정, 가슴엔 명찰, 부담스러울 정도의 친절이었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하, 한 번 둘러볼게요.”
“네, 네!”
종업원은 그림자처럼 내 뒤에 서서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내가 걸으면 따라 걷고, 내가 멈춰 서면 멈춰 섰다.
일단 총……이 아니라 배낭을 살펴봤다. 혼자 싸우려면 당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기에 웬만한 물건은 종류별로 갖고 다녀야 했다. 배낭 코너에서 가장 큰 것 바로 아래 사이즈를 가리켰다.
“한 번 메 봐도 되나요?”
종업원은 말 대신 배낭을 진열대에서 꺼내 내밀었다.
“하하하.”
종업원의 도움을 받아 메 보니 너비는 내 몸통의 두 배, 높이는 딱 몸통만 했다. 착용감은 나쁘지 않고 뒤로 쏠리거나, 아래로 쳐지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실제 이 안에 뭔가를 넣어 봐야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저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종업원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종업원은 작은 몸집에도 바로 아래 칸에서 30kg짜리 바벨 추를 꺼냈다.
“넣어 드릴까요?”
“예?”
종업원은 내 되물음을 대답으로 착각하고는 바로 배낭 안으로 추를 넣었다. 순간 아래쪽에서 무게가 느껴지며 몸이 살짝 뒤로 젖혀졌다. 하지만 벽에 설치된 전신을 거울을 통해 확인한 결과, 배낭 자체는 형태가 함몰되거나 변형되지 않았다.
오호? 나쁘지 않은데?
종업원을 보며 물었다.
“하나 더 괜찮을까요?”
이건 좀 과한 부탁이겠…….
“알겠습니다.”
종업원은 똑같은 추를 꺼내 배낭에 넣었다. 두 개 합쳐 60kg. 최고 수준의 완전 군장과 흡사했다. 그러나 배낭은 여전히 제 형태를 유지하며 신통하게 중심까지 잡아 줬다.
“이…….”
“알겠습니다.”
뭐, 뭐야, 독심술이라도 하는 건가?
종업원은 추 두 개를 한 손으로 척척 꺼내 원래 자리로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내가 배낭 벗는 걸 도와주었다.
“이걸로 하실 건가요? 아니면 다른 걸 보여 드릴까요?”
“일단 이거랑요. 다른 것도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종업원은 자신이 배낭을 멘 후 계속해서 내 뒤를 따랐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하나 필요한 장비를 확인했다. 종업원은 항상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어느새 종업원이 멘 내 배낭에 물건이 가득 찼다.
“마지막으로…….”
“무기 보셔야죠?”
종업원이 또 내 말을 가로챘다. 하지만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됐다.
수련을 하는 입장에서, 무기는 막 쓰기 좋은 게 최상. 가지각색의 총기가 진열된 방탄유리 진열장에서 하나를 가리켰다.
“이 산탄총, 사거리가 어떻게 되나요?”
종업원은 진열장에서 총을 꺼내어 내밀었다.
“이 총은 군용으로도 쓰이는 모델입니다. 강력하고, 고장이 적어서 아주 좋은 총이에요. 사거리가 좀 아쉽지만 위력 면에서 으뜸이죠. 충격용, 진압용으로 그만입니다.”
총을 받아들고 시험 삼아 총열 아래에 달린 장전 손잡이를 당겼다.
광택이 나는 검은 몸체와 손에 착착 감기는 손잡이의 그립감, 그리고 철컥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부속품의 움직임. 무게도 가볍고, 장전 손잡이엔 수직 손잡이가 달려 있다. 거기에 총열 옆에 레이저 조준기, 장전은 탄창식이다!
확실히 ‘비싼’ 총이다.
“이거 얼마인가요?”
“네. 할인된 가격! 부가세 포함, 2천5백만 원입니다.”
와, 이거 대량생산된 모델이라 미국에선 아무리 개조를 해도 백만 원쯤일 텐데? 세관 통행비랑 가격 거품이 껴도……스무 배 이상은 너무하잖아! 내가 열 배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지금 사시면 특수탄 종합 세트를 사은품으로 드립니다.”
“주세요.”
졌다. 그리고 샀다.
이런 좋은 총을 어떻게 마다하겠어? 게다가 펌프 액션이라면 한 손만으로도 장전이 가능하다. 여차하면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기동성과 신속함은 생명. 보험이라 생각하고 무기는 가급적 좋은 것으로 구입할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사냥에서 사용한 총기는 모두 대여 반납하거나 되팔아 버린 것을 감안하면, 이제 정말 내 전용 무기가 생기는 것이다.
“다음은…….”
“권총을 보시겠어요?”
못 당하겠네. 이 사람, 혹시 능력자인가?
지금까지 사용한 휴대용 화기는 조명탄과 리볼버뿐. 솔직히 두 가지를 다시 써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자동권총은 구입할 수 없다. 한 정에 다수의 총알을 장전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냥 리볼버는 싫은데…….
종업원은 내 마음처럼 범상치 않은 권총을 꺼냈다.
“이건 현존하는 양산 리볼버 중에 가장 강력한 거예요. 일반적으로는 44구경을 최고로 치지만, 이건 무려 50구경이거든요. 이거면 곰의 두개골도 뚫을 수 있어요.”
와, 크다! 일단 보자마자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난다.
“하하하.”
리볼버가 아니라 무슨 기관권총 같았다. 긴 총열은 탄환의 크기와 위력을 상징하고 거대한 실린더는 이 총의 가치를 나타냈다. 확실히 이거라면 곰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여긴 확실히 좋은 가게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종업원도 친절하고 물건도 좋다. 왠지 여기라면……더 좋은 물건도 있을 것 같다.
“혹시 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종업원은 50구경 리볼버를 집어넣더니, 카운터로 향했다. 그러고는 주인의 허락하에 카운터 밑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이건 저희 가게에서 딱 한 정밖에 없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손님께선 랭킹 헌터시니, 특별히 보여 드릴게요.”
응? 내가 내 입으로 랭킹 헌터라고 한 적이 있나?
“저기…….”
“랭킹 헌터 김상팔 씨 맞으시죠? 헌한발 팀장이시고요.”
“어……네.”
종업원은 활짝 웃으며 상자를 열었다. 거기에는 50구경보다 더 커다란 리볼버가 들어 있었다.
“와, 이건……!”
“45-70, 거버먼트탄 규격의 리볼버입니다. 50구경보다 크기가 작은 45구경이지만, 화약을 세 배로 넣었기 때문에 위력은 현존 최강이죠. 이거면 코끼리 두개골도 박살 낼 수 있어요.”
곰에서 코끼리로 파워 업 했네.
종업원은 리볼버를 들어 보였다. 총열 길이는 내 팔뚝 길이였고, 은빛 총신을 지탱하는 나무 손잡이는 매끈한 디자인 덕에 고급스런 분위기를 냈다.
“이거면 어떤 괴물도 해치울 수 있을 겁니다.”
종업원이 두 손으로 리볼버를 들어서 건넸다.
“그 ‘어떤 괴물’의 범주에 5급도 들어가나요?”
나도 두 손으로 리볼버를 받아 들었다. 양손에 느껴지는 무게감은 탄창식 리볼버를 들었을 때 이상으로 묵직했다. 마치 바벨 추를 드는 것 같았다.
종업원은 처음으로 자신감을 잃었다.
“5, 5급을 한 방에는 좀……. 하지만 제 역할은 충분히 할 겁니다. 그건 제가 보증하죠!”
어떻게든 팔아먹겠단 의지가 가득했다.
한 손으로 리볼버를 들어 몸이 판단하게 했다. 실전에서 쓰려는 물건이기에 꼼꼼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순수한 위력만 놓고 보면 산탄총보다 더 강하겠네요?”
총 크기로만 놓고 보면, 그냥 둔기로 써도 손색이 없다.
“일반 산탄이라면 그렇겠지만, 슬러그샷에 비하면 다소 약할 겁니다.”
‘다소’ 약하다고? 무서운 소리네.
“얼만데요?”
종업원은 사악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부가세 포함 3천5백만 원입니다. 지금 사시면…….”
“특수탄도 준다는 거죠? 주세요.”
종업원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고른 산탄총과 리볼버를 카운터로 가져갔다.
대충 다 샀나? 아참, 방어구!
일단 가장 속에 입을 것으로는 나이트윙 사냥 때 입었던 속옷형 특수복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가장 겉에 입을 방어구를 구할 참이었다.
“활동하기 편한 보호구나 특수복이 있나요?
“이쪽에 있습니다.”
종업원은 가게 맨 끝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내가 소유한 속옷형의 간단한 것부터 무슨 우주 비행복 수준의 복잡한 것까지 다양한 방어구가 있었다.
“활동하기 편한 것이라면…….”
종업원은 꽤 신중하게 방어구를 골라 줬다. 그리고 의외로 전신이 통짜로 된 옷이 아닌 부위별로 나뉜 보호구를 가리켰다.
“인체에서 가장 많이 쓰는 관절에 특화시켜 하나의 방어구로서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전신에 모두 착용해서 하나의 특수복을 이루는 이 방어구들은 모두 다 해서 1억입니다. 용암에 던져도 버티는 내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인체공학적으로 착용자에게 전달되는 충격을 최소한으로 만들어주죠.”
방어구를 손으로 만져 보니, 질감이 좀 달랐다. 딱딱한데, 부드러운 느낌. 혹 고급스런 유아용 플라스틱 같았다.
“이거 혹시……?”
“네. 괴물의 부산물로 만든 거라고 합니다. 정확한 재료는 비밀이지만요.”
역시.
“이걸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보조 장비는 간단히 골랐다. 달랑 접이식 나이프 하나, 칼날이 긴 것은 필요 없었다.
주인은 즐거운 얼굴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부가세 및 사냥 수수료 포함하고…… 거기서 정식 헌터 공제에 랭킹 헌터 공제까지 하면…… 다 해서 2억 1천만 원입니다.”
엄청 나왔네. 내가 그렇게 많이 샀나 싶더라도, 종업원이 구입한 물건을 배낭에 담아 주는 것을 보니 수긍이 간다. 하하, 엄청 샀네. 이 많은 물건을 혼자 쓴다고 생각하니까, 좀 쓸쓸해진다.
“또 오십시오!”
주인과 종업원은 가게 밖까지 날 배웅했다.
두 사람의 인사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길 건너편으로 익숙한 두 얼굴이 보였다.
“엥?”
호규, 그리고 변해라. 저 요망한 두 연놈이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걸어가고 있었다.
쟤네……사귀는 사이였어? 와, 카이저소재네!
둘은 내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지 어느 가게로 들어갔다. 간판을 보니 주방용품과 요리용품 전문점이었다.
그러고 보니……호규는 요리를 잘하고, 변해라는 ‘살인적으로’ 잘 했지? 그래서 친해진 건가?
역시 팔자라는 것은 정해진 건가 보다. 생과 사가 오가는 와중에 저렇게 눈이 맞다니……부럽다. 뭐, 둘이 좋으면 그만이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두 사람의 행복을 빌었다.
근데 저러다가 둘이 팀을 나가는 건 아니겠지? 그, 그건 좀 곤란한데……. 호규의 목소리는 꽤 강력하고, 변해라의 능력은 활용 방안이 무궁무진하다. 두 사람 다 소중한 인재다.
“부럽다.”
내일은 하루 종일 정보 수집과 장비 점검. 그리고 모레,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