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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33화 (133/250)

133화

133화

[업로더 등급 : 플래티넘 / 누적 조회 수 : 140,000,000회]

어? 뭐, 뭐지? 너무 뇌를 혹사시켰더니 시각이 맛이 간 건가?

눈을 비비고 한 번 더 0의 개수를 셌다. 그리고 그제야 실감이 났다.

“뭐야, 이게? 무서워……!”

1억 4천만. 가장 최근 영상이 지부의 의뢰로 괴물을 생포한 영상이니까, 사실 영상을 올린 지 꽤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각 영상 아래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즉, 내 영상들은 꽤 희소한 괴물을 소재로 했기에 꾸준히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었다.

“이거……돈으로 하면 얼마나 나올까?”

영상을 올리게 된 계기는 헌터를 소재로 한 방송을 만들고 싶단 열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실 그것은 정식 헌터가 되지 못해서 생긴 일종의 현실 회피였다. 정식 헌터가 되고, 차근차근 본래의 꿈인 랭킹 1위를 향하게 된 지금으로선 상당히 미지근한 열정이 되었다.

초심을 잃은 걸까? 아니, 그렇지 않아!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실력을 키울 겸 훈련도 해야 할 참이었다.

“다음 영상은 나 혼자 찍는 거야!”

그럼 혼자서 사냥할 대상을 물색할 차례. 트튜리팟을 뒤지며 적당한 괴물 사냥 영상을 물색했다. 덕분에 시간은 잘만 갔다.

“오, 상팔 씨! 여기 계셨군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드미트리 안토노프, 줄여서 디마. 짜증나게 찰랑이는 황금빛 모발과 빌어먹게 잘생긴 얼굴이 내 앞에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디마의 윙크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늘의 첫 번째 약속인 한돈 아저씨와의 만남은 내가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두 번째 약속은 디마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앉으세요.”

“그럴까요?”

디마는 내 몫까지 커피 두 잔을 시켰다. 마침 처음 시킨 걸 다 먹어 가던 참이었다.

“무슨 용무로 부르셨죠?”

디마는 맞은편에 앉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하하하. 천천히 이야기해요. 시간은 많잖아요?”

자기가 먼저 만나자고 해 놓고 왜 저러지? 용무가 있을 거 아니야?

디마 같은 부류는 속을 알기 어렵다. 김대팔이 시각적으로 속을 가린다면, 디마는 도저히 진심이란 게 느껴지질 않는 것이다. 녀석이 짓는 모든 표정이 연기처럼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이 녀석의 잘생긴 외모에 정신이 팔려 모르지만, 일종의 ‘불편한 골짜기’현상과 같다.

“그래요.”

장단이나 맞춰 주자. 시간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엥?

창밖에 다시 ‘뉴 월드’무리가 나타났다. 무리는 경찰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강제 기부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저게 뭔지 아세요?”

디마는 흥미로운 눈으로 무리를 가리켰다.

“아니요.”

사이비는 엮이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요.

“새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흥 종교예요. 아직은 그 수가 미비한 편이지만, 빠르게 신도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죠.”

“그래요?”

“네. 예카테리나란 성녀를 섬기며, 그녀의 치료술을 신의 기적이라고 속이는 모양이에요.”

치료술이 기적? 뭐……일반인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느껴질 부분이 있을 것이다. 손만 슥 갖다 대는데, 상처가 아물고 신체가 재생하는 걸 보고 있자면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긴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걸로 종교를 만든 건 좀…….

“예카테리나란 사람의 실력이 좋은가 봐요?”

그저 그런 치료술사도 수가 적지만, 실력 좋은 치료술사는 정말 귀하다. 의사가 노력, 시간, 재능, 돈으로 되는 직업이라면, 치료술사는 거기에 체질까지 타고나야 한다. 일류 치료술사는 일류 의사보다 몇 배나 많은 연봉을 번다.

“확실히 치료술사로선 일류라고 하더라고요. 다만 직접적으로 헌터활동을 하는 건 아니라서 협회에 등록되어 있진 않대요.”

“그렇군요. ‘예카테리나’라는 이름이면, 러시아 사람인가요?”

디마는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다만 예카테리나를 ‘센’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에요.”

“‘센’이라면……? 그 센!”

세계 최초의 H세포 능력자 8인. 협회에서는 그들을 가리켜 ‘H8’이라 명명했다. H세포가 공식적으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50년 전인데, 이들은 이미 그때 세계적인 수준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인성이나 인품에 대해선 다소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최초’라는 개념에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치료술사 센, 다른 이름으로는 ‘성인 센’이다. 국가에 따라 센, 옌, 혹은 찌엔, 티엔이라고 발음하는데 정확한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센은 주로 중동에서 활동했는데 가난한 병자들을 치료해 주며 명성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1982년 포탄에 맞아 최후를 맞이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센의 이름을 파는 건 좀…….”

다른 H8과는 달리 센은 좀 신성한 영역으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디마는 입술을 비틀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뭐, 저러다가 나중에 자멸하지 않겠어요? 지부에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겠죠.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얼른 이 대화를 끝내고 훈련 계획을 짜고 싶은 마음이다.

디마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그냥 제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현재 랭킹 100위인 상팔 씨가 상위로 올라갈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알고 계시죠?”

불난 집에 미사일을 쏘네? 이젠 불태우는 게 아니라 그냥 폭압으로 박살 내는 거냐? 그것도 아니면 그냥 깐 데 또 까는 거냐? 악취미네.

“네. 알고 있어요.”

“상팔 씨와 지부 상층부간의 불화는 대충 알고 있어요. 아마 지금까지의 한국지부 운영 방식으로 볼 때 상팔 씨 랭킹이 올라갈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에요.”

두 가지? 난 하나밖에 모르겠던데? 근데 이 인간, 왜 이렇게 내 걱정을 해 주는 거지?

일단 담담한 표정으로 내가 아는 것을 먼저 밝혔다.

“하나는 알고 있어요. ‘랭킹 대전’이잖아요.”

랭킹 대전. 일종의 편법 같은 건데, 쉽게 말하면 즉석으로 랭킹을 올릴 수 있는 시합이다. 로얄과 2군은 참여 금지. 팀 단위 시합을 해서 이기면 랭킹 상승, 지면 랭킹 하락이다. 모든 사항은 공개적이고,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금의 내 처지에선 최고의 방법이다. 다만, 이걸 하기 위해선 1년에 한 번 랭킹 헌터가 소속된 팀끼리 쌍방 동의를 해야만 한다.

지부가 이런 시합을 대놓고 하는 이유는 투괴처럼 ‘배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마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랭킹 대전은 상대가 없으면 할 수가 없죠. 게다가 팀원들의 동의도 필요하고요.”

그게 문제다. 상대는 나름대로 점찍어 둔 팀이 있다. 녀석은 절대 내 도전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팀원들의 동의는……모르겠다.

난 짜증을 섞어 디마에게 물었다.

“다른 하나는요?”

디마는 자신의 품속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런 다음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내게 내밀었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 / 1등 서기관 / 드미트리 안토노프]

1등 서기관? 이거 꽤 높은 직책일 텐데……?

“오! 근사하네요.”

확실히 이런 번듯한 명함은 사람을 달라 보이게 만든다. 이참에 나도 쓸데없이 세련된 명함이나 만들어 볼까?

“명함 뒤에 제 번호가 있어요.”

번호? 번호는 휴대전화에도 저장되어 있는데?

눈살을 찌푸리며 명함을 돌렸다. 뒷면엔 전화번호가 아닌 웬 숫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이게 뭐죠?”

“직통번호예요.”

뭐지, 뭔데 이렇게까지? 되게 찝찝하게 구네.

디마는 지갑을 도로 품속에 집어넣었다.

“전부터 상팔 씨를 유심히 지켜봤는데, 좀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혹시 나중에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힘닿는 데까진 도와드릴게요.”

그러니까 내가 랭킹을 올릴 수 있게 압력이라도 넣어 주겠단 거야? 러시아 외교관이? 날 위해? 너……나 좋아하냐?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던데…….

조심스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도와준다고 하니까 고맙긴 한데, 이건 좀 수상하잖아? 지나치게 노골적이기도 하고…….

“후후후.”

디마는 고개를 쭉 빼서 내 왼쪽 뺨에 자기 왼쪽 뺨을 댔다. 그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감이에요.”

감? 고작 그런 걸로? 너 지금 나랑 농담 따먹기 하니?

그 와중에 얼굴은 더럽게 부드럽다. 디마는 고개를 떼면서 평소처럼 밝은 얼굴로 말했다.

“인연이란 건 기회가 있을 때 만들어 둬야 하거든요. 오늘은 도와주지만, 내일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인생이죠.”

내 가능성을 인정해 준다는 건가?

디마는 커피를 홀짝였다.

“상팔 씨에겐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 반드시 로얄에 들어 주세요. 이건 제 진심이에요.”

“하하하.”

역시 불편하다. 이 녀석 너무……노골적으로 가증스러움이 넘쳐흐른다. 내 눈에만 녀석의 가면이 보이는 걸까? 녀석은 분명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아, 갑자기 한돈 아저씨가 보고 싶네.

커피를 다 마시고, 디마와 헤어져 집을 향해 걸었다. 오던 도중 길에서 뉴 월드 무리와 마주쳤지만, 마침 녀석들은 한창 경찰과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훔쳐 들은 내용으로는 아무래도 전원 경찰서로 갈 것 같았다.

진심으로 궁금한데, 저거 만든 놈은 무슨 생각일까?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켰다. 너무 지긋지긋해서 정 따윈 안 붙을 것 같은 원룸. 그래도 이곳이야말로 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였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하아, 이제야 마음이 좀 진정되네.”

병원에서 고아원, 그리고 카페. 정신없는 하루였다.

한숨 돌릴 겸 휴대전화로 내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지난 10개월의 성과, 통장에는 떡하니 5억이 찍혀 있었다. 투괴에서 번 2억과 이서현에게 1인당으로 받은 위로금 겸 입막음 3억. 이거면 최고의 장비를 살 수 있었다.

“언제 이사 가냐?”

일단 부모님께 용돈을 좀 보내 드렸다.

확실히 요즘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다. ‘돈’만 많다면! 이렇게 누운 채로 엄청난 액수를 마음대로 옮길 수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예상한대로 많이 놀라신 모양이었다. 적당히 둘러대며 안부를 묻는 답장을 보냈다.

볼일이 끝난 휴대전화는 충전기 연결. 아까보다 말은 괴물 영상을 마저 시청했다.

“이 녀석이 괜찮을 것 같은데…….”

다섯 개의 눈, 기다란 몸체, 수많은 다리, 더듬이와 가시, 그리고 더러운 성질머리.

바로 ‘오독지네’다. 이름은 꽤 재밌지만, 이 녀석은 무려 5급의 괴물.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런 5급 괴물을 나 혼자 사냥한다. 그게 바로 나 자신에게 주는 훈련이자, 시련이다.

“일단 한숨 자자. 자고 일어나서, 내일 사냥 장비 사러 가는 거야.”

아저씨도 없고, 루호도 없다. 그리고 다른 팀원도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준비가 중요한 사냥이다. 설사 내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도 여전히 내가 약세다. 하지만…….

그래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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