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129화
김익조는 날 겨눈 채 미즈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발로 차면서 생사를 확인했다.
미즈 드래곤은 발에 채이면서 입에서 피를 토했다. 총알이 지나간 배에선 피가 쏟아졌다.
“이런, 지부장과는 다르게 명이 길군요. 그럼 일단 상팔 씨, 갖고 있는 총을 모두 버려 주시겠습니까?”
순순히 손에 든 것과 주머니에 든 리볼버들을 바닥에 놓았다. 김익조는 내가 내려놓은 총을 보더니, 박장에게 명령했다.
“총을 거두십시오. 리볼버 한 정은 박장 씨가 직접 들고 계시고, 다른 한 정은 제게 주시면 됩니다.”
박장은 내 총들을 모두 수거해 방구석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중 리볼버 2정을 집어서 김익조의 말처럼 한 정은 자신이 들고, 다른 한 정은 김익조에게 주었다.
김익조는 양손에 총을 든 후 하나는 나에게, 다른 하나는 아저씨에게 겨눴다.
“이제야 좀 안심이 되는군요. 아무리 같은 능력자라고 해도 총이 끼면 이야기가 다르죠.”
김익조는 말을 하면서 무심코 날 쐈다. 총알이 다리를 스치며 살갗을 찢었다.
크윽!
속으로 통증을 삼키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김익조는 그런 내가 재미있단 듯이 팔다리에 각각 한 발씩 총을 쐈다. 이번에도 총알은 내 몸을 직접 뚫지 않고 그저 스쳐만 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격은 상당했다.
줄이 끊긴 꼭두각시 마냥 자유롭게 꺾인 사지가 손쉽게 쓰러졌다. 그리고 몸에 난 구멍이란 구멍에서 온갖 액체가 쏟아졌다. 눈물, 침, 체액, 피, 소변 등등. 온몸이 축축해졌다.
김익조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독하군요. 겨우 이 정도로 죽기 직전이란 건가요?”
“김익조, 차라리 날 쏴라!”
보다 못한 아저씨가 김익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김익조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김익조와 박장이 든 총이 불을 뿜으며 아저씨에게 사정없이 총알을 날렸다.
뿌연 연기와 탁한 냄새.
아저씨는 무려 열 발이 넘는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선생님은 절대 봐드릴 수 없습니다. 이유는 잘 아시겠죠? 이젠 좀 죽어 주시죠?”
김익조는 연기가 나는 총구를 입으로 훅 불었다.
“비명 한 번 안 지르신 건 칭찬해 드리겠습니다.”
김익조는 한 번 더 총구를 미즈 드래곤에게 향했다. 이번엔 꼭 죽이겠단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럼 끝장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잘 가십시오, 미즈 드래곤!”
김익조가 자동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방아쇠에선 ‘찰칵찰칵’소리만 나면서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탄창이 빈 것이다.
“운이 좋군요. 그렇다면……!”
김익조는 다른 손에 든 리볼버를 겨눴다. 아무리 권총이라도 한 손으로 사격하는 건 상당히 웃기는 행동이지만, H력으로 신체가 강화된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제길, 뭐라도 해 보자!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김익조는 내 말에 잠시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뺐다.
“아니요. 죽여야 합니다. 다음은 상팔 씨 차례니까, 기다리십시오.”
김익조는 다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이 인간, 설마? 그런 거였나?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밑져야 본전. 그냥 내 추측대로 지껄였다.
“당신이 흑막이군요.”
이 말에 김익조가 흠칫거리며 멈췄다.
“당신은 플레잉을 사주해서 지부장을 암살하려 한 거예요. 아마 그전부터 플레잉과 접촉하고 있었겠죠? 지금까지 저희 팀에게 우호적이었던 것도 다 오늘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김익조는 미즈 드래곤에게 향했던 총구를 나에게로 돌렸다. 그것은 위협보단 그저 시점의 이동이었다.
“계속해 보시죠. 일단 들어드리겠습니다.”
난 그런 모습을 본 덕에 역으로 두려움이 가셨다.
“당신이 노린 건 처음부터 지부장 자리였어요. 현재 지부를 좌지우지하는 건 지부장과 당신이죠. 겉으론 3인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2인자니까요. 즉, 당신과 지부장의 천하죠.”
김익조는 딱히 내 말에 대꾸하지도, 그렇다고 방아쇠를 당기지도 않았다.
“지부장을 제거할 때 2가지 필수적인 조건이 필요했어요. 하나는 지부장을 제거해 줄 플레잉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 옆에서 증명해 줄 증인이었죠. 왜 굳이 우릴 골랐는지 모르겠네요. 아저씨 때문인가요? 참 힘드셨겠네요. 플레잉과 헌한발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신 셈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나이트윙 때 마지막엔 박장의 모습이 안 보였었지?
김익조는 총구를 내 뺨에 가져다 댔다.
이렇게 압박한단 것은 내 말이 어느 정도 일리 있단 뜻. 우리는 서로를 노려봤다.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한돈 아저씨도 쏘신 분이 뭘 망설이세요?”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다르긴 뭐가 달라? 이 배은망덕한 놈아!”
“닥쳐.”
김익조는 권총을 휘둘러 손잡이 아랫면으로 내 턱을 때렸다. 고개가 45도로 비틀리며 시야가 흔들렸다.
맞은 건 확실한데, 전혀 아프지 않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맛이 간 모양이다. 대신 시야의 초점이 안 맞는다.
‘배은망덕’에서 폭발했다는 건 아저씨한테 죄책감을 느끼고 있단 건가?
그때 바닥이 흔들리며 몸이 바짝 짓눌렸다. 감각이 없어서 느낄 수는 없었지만, 두 눈에 몸이 눌려지는 게 보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뭔가에 눌려서 바닥에 몸을 엎드렸다.
시야 밖에서 미즈 드래곤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네가 시간을 벌어 준 덕이야.”
이게 녀석의 능력? 작고 가느다란 손이 내 머리를 쓸었다.
촉감이 마비된 게 아쉬운 순간이다.
“하지만 아저씨랑 꽤 가까워 보이네?”
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야!
“살짝 질투 나.”
미즈 드래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몸통이 찌그러졌다.
“쿨럭!”
상체가 납작하게 눌리며 입에서 피를 토했다.
감각이 마비돼서 다행이다. 빌어먹을 새옹지마!
미즈 드래곤은 내 시야 안으로 걸어왔다.
“더 이상 방심하는 일은 없어.”
미즈 드래곤은 자신의 복부에 손을 댔다. 총을 맞은 복부는 출혈이 멈춰 있었다.
미스터 블루도 그렇고, 이 녀석도 인간의 범주는 아니군.
“그러니까 아저씨…….”
미즈 드래곤은 손을 내리고 아저씨를 바라봤다. 그리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수줍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줍게 빨개진 얼굴, 망설이듯 꿈틀거린 입술에서 고백이 튀어나왔다.
“빼고 모두 죽여줄게.”
하하하, 뭘 기대한 거야? 얘 범죄조직 두목이라고! 썅! 아저씨는? 눈알을 굴려 아저씨를 확인했다.
총알을 잔뜩 맞은 아저씨는 피투성이가 된 채 벌러덩 누워 있었다. 기절했는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쟨 어떻게 상처를 완화한 거지? 미스터 블루는 능력이 신체 조작이니까, 짐작이 가는데 얜 도저히 모르겠어. 딱 보면 중력 조종 같은 데, 그걸로 출혈을 막을 수 있나? 혈압이 높아져서 피가 더 나야 정상 아니야?
김익조는 몸에서 아지랑이를 뿜어내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하긴, 몸 상태만 좋다면 신체능력을 강화시켜 그냥 깡으로 일어서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다.
김익조는 겨우 총을 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미즈 드래곤이 날 보고 있는 틈을 타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리며 총알이 날아갔다.
허걱!
총구에서 튀어나온 총알은 일직선으로 날아가다가 도중 바닥으로 경로를 꺾었다. 그리고 바닥에 튕겨 불꽃을 튀겼다.
이게 미즈 드래곤이 말한 거리의 중요성이군. 미즈 드래곤은 총소리를 듣고는 김익조를 쳐다봤다.
“한심하네. 헛똑똑이인 건 여전한가 봐? 하긴, 그러니까 아저씨를 배신했겠지.”
배신? 김익조가 아저씨를?
“크윽!”
김익조의 손이 힘겹게 내려가며 겨우 버티던 몸 전체가 무너졌다. 김익조는 바닥에 바짝 달라붙으며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몸이 바짝 눌린 걸 보면 갑자기 중력의 세기가 강해진 것 같다.
미즈 드래곤은 휘둥그레진 내 얼굴을 보더니, 까르르 웃었다. 웃는 얼굴에서 또래의 순수함이 묻어났다.
순수한 악이라고 해야 하나?
“내 능력이 신기해?”
“어.”
누가 봐도 사기잖아. 어떻게 싸워야 하지?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미즈 드래곤은 땅에 떨어진 권총을 가리켰다. 그러자 다른 모든 것들이 바닥과 하나가 되려는 이 와중에 그것만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한 번 손가락을 까딱이자 권총이 뒤틀리더니 여러 방향으로 쪼개졌다.
분해가 아니다. 그냥 찢어 버린다!
“내 능력은 끌어당기는 힘. 세밀하게 하면 이런 것도 가능해.”
그럼 자기 몸속에도 비슷한 방법을 써서 상처를 최소화하고 있는 건가? 끌어당기는 걸 반대로 해서 밀어낼 수도 있겠군! 미스터 블루보다 더하네.
후후후, 하지만 이쪽도 마지막 노림수가 있지. 솔직히 말하자면, 아까까진 없었는데 이젠 생겼어! 미즈 드래곤, 네 덕분에……!
“정말 죽어줘야겠어.”
미즈 드래곤은 엄포 후 방 안의 중력을 높였다. 난 누운 상태에서 내 몸이 어떻게 되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옷은 완전히 피부와 하나가 되어 살 속에 있는 뼈의 형태를 나타냈다. 심지어 상체는 갈비뼈가 안쪽으로 구부러지는 것까지 훤히 보였다.
현재 미즈 드래곤은 김익조를 노골적으로 노려보는 중.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 하긴, 전방위 능력이니까 굳이 후방을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지만, 미즈 드래곤은 오히려 이런 점에선 미스터 블루보다 빈틈이 많을지 모른다. 미스터 블루가 무서웠던 것은 능력이 강력해서가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능숙했기 때문이다.
후읍,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한다. 이제 물리적으로는 깊게 숨 쉬기가 힘들 지경이다.
능력발동. 마른 오징어를 쥐어짜듯 마지막 남은 H력을 내뿜었다. 모두의 H력이 내 안에서 용솟음쳤다.
하하하. 몸이 움직인다. 심지어 조금도 미즈 드래곤의 능력을 받지 않고 있다. 이거라면 평소 움직임을 낼 수 있다.
아까 녀석이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소량의 H력을 얻었고, 그 H력 덕에 몇 배의 중력이 무효화되었다.
조용히 일어서서 양손을 모으고 무광탄을 준비한다. 극소량 초소형이지만, 무방비 상태의 미즈 드래곤에게는 충분한 충격이 될 것이다.
쳇, 이런 식으로 기습밖에 못하는 수준 차이라니……!
미즈 드래곤은 김익조를 중력으로 누르며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곧 김익조와 그 옆의 박장은 의식을 잃고 기절했다. 지금까지 버틴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앗!”
내 손바닥을 보고 경악. 무광탄이 모이지 않는다. 겨드랑이까지 H력이 이동하는 건 느껴지는데, 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거지?
망했다.
드디어 약물의 부작용이 왔나 보다. 갑자기 겨드랑이가 간지럽더니, 희고 긴 털이 소매에서 빠져나왔다.
겨드랑이 털? 왜 하필 지금 이런 상황에서?
겨드랑이 털이 부풀어 오르며, 소매가 갈가리 찢어졌다. 그리고 훤히 드러난 양팔을 겨드랑이 털이 휘감으며 형태가 변했다.
“이런 미친……!”
양팔은 마치 흰색 고릴라의 그것처럼 변했다.
루호의 H력을 받은 영향인가?
최향자, 주아라, 주아란, 한유화, 호규. 모두의 H력이 내 것과 섞이며 몸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리고 본래의 능력에서 새로운 뭔가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