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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28화 (128/250)

128화

128화

제어실은 다른 통로들 못지않게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제어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누운 신세. 몇몇은 형체가 망가졌고, 몇몇은 널브러져 있었다.

그 중엔 우리 멤버도 있었다.

“다들 괜찮아요?”

변해라, 공미, 유정, 장마리, 그리고 최향기.

차례차례 몸을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다행히 다들 숨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와 골절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변해라는 경악하면서 방 중앙에 있는 어떤 물체를 가리켰다.

“미스터 빅이……찌그러졌어.”

짧은 원기둥 형태의 미스터 빅.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압착된 채 있었다. 굳이 생사를 확인해 볼 것 없이 통조림처럼 변한 갑옷 틈으로 살점과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 걸까.

최향기는 울먹이면서 날 바라봤다.

“죄송해요.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괜찮아요.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요.”

최향기를 위로하며 한돈 아저씨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한돈 아저씨는요?”

“아저씨는 한백년을 뒤쫓아 가셨어요.”

장마리는 제어실 안쪽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아까는 분명 서로 엇갈려 닫혀 있던 문이 지금은 활짝 열려 있었다.

“서두르면 막을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다들 조금만 참고 기다려요. 곧 지원이 올 거예요.”

제어실 멤버들은 H력이 완전히 바닥났다. 마지막까지 소량의 H력을 남겨두었던 통로 쪽 사람들과는 대조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제어실에 떨어진 무기와 탄창을 확인하면서 장마리의 질문에 답했다.

“다들 무사해요. 지금은 쉬고 있어요.”

세상에! 성한 장비가 없다. 모두 하나같이 완전히 박살이 나서 못 쓰겠다. 무슨 망치로 내려친 것같이 자잘하게 쪼개져 있다.

“그럼 갔다 올게요.”

배낭을 내려놓은 후 필요한 것만 주머니에 넣었다. 진압용 산탄총보단 실탄을 장전한 리볼버만 챙겼다.

***

5층으로 통하는 문을 통과했다. 문 뒤에는 특별할 것은 없고, 아래로 이어진 긴 계단이 있었다.

벽을 짚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한돈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

분명 의식이 끊어진 것은 아닌데, 왜 대답을 안 하고 계시지?

계단의 끝에서 내가 본 것은 목적지로 이어진 긴 통로였다. 아무래도 5층엔 방이 하나인 모양이었다.

‘상팔아, 들리냐?’

한돈 아저씨!

드디어 아저씨와 연결됐다. 달리면서 아저씨와 대화했다.

‘아저씨, 왜 이렇게 대답이 없으세요?’

‘너 지금 어디냐?’

지금 누가 누구한테 질문을 하시는 거야?

‘저 지금 5층이에요.’

‘그 더럽게 긴 통로?’

‘네. 지금 미즈 드래곤하고 있으세요?’

‘그런 셈이지. 지금 여기에 나하고, 지부장하고, 김익조하고, 박장이 있다.’

더욱 달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시간이라도 멈췄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주세요. 지금 가고 있어요.’

‘안 그래도 지금 수다로 버티는 중이야. 근데 티가 나서, 감당이 안 된다!’

어이구, 서로 아는 사이라고 했을 때부터 불길했는데……!

똑같은 통로의 풍경을 달려가면서 시각과 청각이 점차 마비되어 갔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계속해서 반복되는 감각, 최면에 걸린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질 것만 같았다.

얼마나 뛰었는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게 반복되니까, 시간 감각이 무뎌진다.

크윽! 입술을 씹어서 그 고통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입술 틈으로 들어와 혀에 닿은 피가 미각을 자극했다.

“죽을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죽겠네!”

다친 다리로 뛰면서 서로 엇갈리지 않게 신경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미처 몰랐다. 금방이라도 힘이 풀려서 바닥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으아아아!”

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나에게는 우리 팀 모두의 의지가 담겨 있다.

아아! 빛이 보인다. 활짝 열린 문, 그 안에서 흰빛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방하고 조금 거리가 있는 지점에서 달리기를 정지, 리볼버를 꺼내서 손에 쥐었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인 채 방 앞까지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통로 끝에서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방 안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저씨의 목소리.

“이 이야기, 아까부터 계속한 것 같은데? 난 글쎄, 너랑 같은 편이 될 생각이 없다니까?”

아저씨한테도 제의를 한 건가? 하긴, 아저씨의 치료술이면 어딜 가든 환영받겠지.

“지금 그런 걸 따질 땐가요? 일단 목숨을 구하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익조의 목소리? 뭐지? 김익조가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야? 둘이 이야기하고 있었던 거야?

다시 아저씨의 목소리.

“네가 왜 저 녀석을 대신해서 사정하는지 모르겠는데? 넌 배신자잖아? 이 배은망덕한 자식아!”

“죽고 싶지 않은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겁니다. 아닌가요? 왜 선생님은 항상 그렇게 혼자 다른 척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흠, 김익조가 아저씨를 설득하는 건 자기 목숨을 구해기 위해? 근데 도대체 아저씨랑 김익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너희 둘 다 마음에 안 들어! 하나는 날 죽이려 했다가 실패했고, 다른 하나는 지금 날 죽이려고 하잖아?”

과거에 김익조가 아저씨를 죽이려 했던 게 확실하구나!

조금씩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한참 모자라다. 아저씨는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텐 미안하지만, 난 어딘가에 얽매이는 건 딱 질색이야. 그건 네가 가장 잘 알잖니?”

“그래도 난…….”

이건 미즈 드래곤의 목소리!

“얼마를 원하지? 내 목숨 값을 말해 봐! 원하는 대로 주겠어! 어서 대답해!”

이건 지부장 천민일의 목소리.

“돈으로 안 되는 건 없어! 명예, 여자, 권력……원하는 건 다 손에 넣었단 말이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순 없어. 난 더 살아서 많은 즐거움을 누려야 해! 그것이 나와 같은 사람의 숙명이다.”

천민일은 필사적으로 자신이 생존해야 하는 이유를 주장했다.

“한국지부 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었는지 아나? 지부의 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지 아나? 지부 덕에 모두가 먹고 사는 것이다! 괴물을 통제하고, 시민들을 위험에서부터 보호하는 게 바로 지부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지부를 지배하는 게 바로 나!”

뭔가 위험한 소리가 시작되려…….

“한국지부를 탄생시키고, 지금껏 번영시킨 건 전부 내 덕이야! 정부 배를 불리고, 군인들을 다독이는 것도 전부 내 덕이다! 힘없는 것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도 전부 내 덕이야.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기업의 버러지들도 전부 나한테 고개를 조아린다고! 모든 게 내 덕! 이 나라의 일등 공신이 바로 나야!”

‘지부 덕’이 ‘내 덕’으로 바뀌었군. 하긴, 저 영감님한텐 자기가 곧 지부나 마찬가지겠지. 독재자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니 날 살려라! 대신 이 방에 있는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허락하겠다. ‘내’가 허락한다! 나 천민일의 이름으로 명한다! 날 살려라, 그리고 다른 놈을 죽여!”

노망이 난 건가. 미친 소리를 하시네?

“어려운 말은 몰라.”

미즈 드래곤의 대답. 직후, 방안에는 침묵이 돌았다.

천민일은 거의 이성을 상실한 언행을 보였다.

“건방진 년! 천한 것! 아주 천해! 너 같이 어리고 천한 게 감히 말대꾸를 해? 평소 같았으면 엄마를 울부짖을 때까지 사랑해 줬을 거다! 때리고, 또 때려서 온몸이 나처럼 쭈글쭈글 늘어져야 해! 싸구려! 천민! 노예! 소유물! 네년의 내장을 팔아도 내가 한 달 동안 버는…….”

총성. 단 한 발의 총성으로 모든 게 끝났다.

천민일은 말을 다 끝마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어디까지 막말을 지껄일지 궁금했기에, 참 아쉬운 결말이었다.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방안으로 돌입, 미즈 드래곤의 옆구리에 총구를 대며 소리쳤다.

“꼼짝 마!”

뭔가 데자뷔가 느껴지지만, 사소한 건 넘어가자.

미즈 드래곤은 순순히 두 손을 들었다.

“항복.”

엥? 미즈 드래곤의 손에는 총이 없다?

당황해서 천민일을 쳐다봤다.

초점 없는 눈,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몸. 분명 천민일은 총에 맞아 쓰러져 있었다. 가슴에서 피가 콸콸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누가 총을……?”

아저씨는 당연히 아니고, 김익조도 아니다.

헐!

“박장 씨?”

박장의 손에는 자동권총이 들려있었다.

박장은 벌벌 떨면서 조심스레 권총을 내려놓았다.

“전부터 죽이고 싶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많았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김익조는 권총을 주워서 박장을 겨눴다.

“자네답지 않게 경솔했어. 하지만 상황을 생각해 정상참작 해 주겠네.”

뭐지? 왠지 김익조의 입에서 금방이라도 ‘아주 잘했어.’란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 게다가 김익조와 박장의 눈빛이 수상하다.

지금 김익조에게선 슬금슬금 아지랑이까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저기 말이야.”

흠칫.

내가 자기 몸에 총을 대고 있음에도 미즈 드래곤은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왜?”

“지부장은 죽은 것 같은데, 난 이만 가도 될까?”

이 상황에 가겠다고? 지금 장난하냐!

“그건 안 되겠는데? 넌 범죄자잖아?”

“그렇지만 지부장을 죽인 건 내가 아닌데?”

“지부장은 안 죽였어도 여기로 오면서 많은 사상자를 냈어. 그건 절대 용서받지 못할 죄야!”

“흠, 그건 그렇겠네.”

아까부터 이상하다. 얜 왜 이렇게 반응이 이상하고, 저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부자연스럽지?

뭔가 놀아나고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아무리 나라도 바로 앞에서 총을 겨누면 방법이 없어. 조금만 거리가 있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데…….”

자기 입으로 술술 이야기하네? 근데, 조금만 거리가 있으면 총알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미스터 블루, 그 인간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의 사격은 그냥 다 피해 버린 괴물이었는데……. 얜 그보다 더한 괴물이란 건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김익조는 미즈 드래곤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정보군요. 그럼 지금은 아무것도 못한단 뜻이겠죠?”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김익조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가 드러났다. 그리고 총구가 이동, 미즈 드래곤를 향했다.

설마?

김익조는 그대로 미즈 드래곤을 쐈다. 누구도 예상 못한 행동이었기에 미즈 드래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순순히 총에 맞았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렸다. 배를 움켜진 것으로 봐선 그 부분에 총을 맞은 것이었다.

아저씨는 당장이라도 김익조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그러나 김익조의 동작이 한 발 더 빨랐다.

“이 자식!”

김익조는 미즈 드래곤을 쏘자마자 바로 날 겨눴다. 그 때문에 아저씨는 이를 갈면서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엔 상팔 씨를 쏘겠습니다. 그러니 움직이지 마십시오.”

지금 김익조는 확실하게 능력발동한 상태.

“김익조!”

아저씨는 분노에 가득 차서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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