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24화 (124/250)

124화

124화

미스터 점프는 공중에서 자세를 바꿔 발을 나아가는 방향으로 뻗었다.

녀석이 노린 방향에는 변해라와 유정이 있었다. 두 사람은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했다.

변해라와 유정의 교차사격. 그러나 미스터 점프는 벽과 천장을 긴 다리로 비스듬히 차면서 방향을 바꿨다. 애꿎은 탄환 사이로 날아다니는 녀석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이 정도론 날 맞출 수 없어. 이런 통로에서라면 공중에서도 얼마든지 방향을 바꿀 수 있거든!”

마치 고무공처럼 미스터 점프는 양쪽 벽 사이를 오가며 지그재그로 점프했다.

“하하하!”

미스터 점프는 우선 변해라의 바로 앞으로 이동, 높이 뛰어오른 다음 세게 천장을 차서 빠르게 내리꽂았다.

“찜!”

가벼운 지껄임과 무거운 발차기. 미스터 점프의 발끝이 변해라의 가슴을 밀쳤다.

아무리 말라도 기본적인 체중이란 게 있는 법. 미스터 점프의 다리 뻗기에 변해라의 몸이 뒤로 쓰러졌다. 반면에 녀석은 그 반동을 이용해 다시 전방으로 점프했다.

“해라 양!”

유정은 침착하게 산탄총으로 미스터 점프를 겨눴다. 겨눈 각도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수평. 설사 약간의 오차가 있다고 해도 고무탄의 크기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겨우 이 정도냐? 하하하!”

미스터 점프는 날아온 고무탄을 발차기로 쳐냈다. 진압용 고무탄의 속도로는 녀석을 맞추기에 부족한 것이었다.

한편, 미스터 점프와 우리 팀 두 사람이 후방으로 가고 전방엔 플레잉 두 명과 공미만 남았다.

“하하하! 오랜만이야.”

미스터 블레이드가 공미를 보고 웃었다. 그러자 공미는 아예 녀석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 주아라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오갔었다고 한다.

즉, 전 썸남썸녀!

물론 미스터 블레이드가 공미에게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땅벌’에 잠입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여튼 공미에게는 가장 껄끄러운 상대란 뜻이다.

“예전처럼 놀아 볼까?”

미스터 블레이드는 단도에 H력을 담아 던졌다. 녀석의 단도들은 빙그르르 회전하며 공미에게로 날아갔다.

공미는 리볼버를 꺼내 신속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가 불을 뿜을 때마다 총성과 함께 박살난 단도가 땅에 떨어졌다.

6발이 모두 소진되고, 공중에 남은 것은 5개.

남은 단도는 공미의 양옆을 돌아 뒤로 날아갔다.

공미는 빈 리볼버를 버리고, 산탄총을 집어서 뒤로 돌았다. 진압용 비살상 고무탄이지만, 규격이 산탄총 정도 되면 위력에서는 절대 꿀리지 않는다.

“하앗!”

리볼버보다 훨씬 묵직한 반동과 함께 고무탄이 날아가 단도와 부딪쳤다. 납탄이 단도를 깨뜨렸다면, 고무탄은 단도에 충격을 줘서 뭉개는 것에 가까웠다.

고무탄이 단도에 들러붙어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은 단도 전부를 멋지게 격추. 마지막 단도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공미는 등에서 강한 통증을 느꼈다.

살갗에서 시작된 고통은 그대로 내장까지 전해졌다.

“크윽……!”

공미의 등에는 단도 하나가 박혀 있었다. 공미가 8개의 단도에 정신이 팔린 사이, 미스터 블레이드가 다른 단도를 날린 것이었다.

“방심은 금물이야. 예전에도 그러다가 나한테 넘어간 거 잊었어?”

미스터 블레이드의 조롱. 공미는 분한 듯 거칠게 단도를 뽑았다. 그러자 단도가 빠진 상처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런, 이런! 상처에서 함부로 칼을 뽑으면 오히려 더 상처가 벌어진다고?”

미스터 블레이드는 다시 바지춤에 손을 넣어 단도 8개를 꺼내 들었다.

“방금 그건 맛보기였어. 하지만 이제부턴 쉴 새 없이 몰아칠 거야.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바람구멍이 날 걸?”

녀석의 수다스러움은 공미에게 있어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었다. 실제로 공미는 등에 상처를 입은 직후, 빠르게 냉정을 잃고 있었다.

공미는 뽑은 단도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산탄총의 총구를 미스터 블레이드에게 겨눴다.

“너 같은……너 따위를……!”

공미는 단호히 방아쇠를 당겼다.

산탄총의 남은 탄수는 4발. 탄환이 떨어지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미스터 블레이드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애원해 보지 그래? 그럼 내가 마음이 약해져서 널 받아 줄지도 모르잖아?”

녀석은 조롱과 함께 단도를 날렸다.

“후웁……!”

공미는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떨리는 손가락에는 지난날의 울분과 잔불처럼 남은 연심이 담겨 있었다.

“하하하! 벌써 숫자에서 밀리는데? 그런 걸로 잘도 …….”

줄지어 날아간 고무탄들은 비행하는 단도 따윈 가볍게 지나쳤다.

“썅!”

미스터 블레이드는 깨달았다. 이번 고무탄의 목적은 단도 격추가 아니었다.

“크아아악!”

고무탄 4발이 각각 2발씩 미스터 블레이드의 가슴과 사타구니에 명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단도 8개가 모두 공미의 몸에 꽂혔다.

방어를 포기한 공격. 그것에 의해 두 사람이 쓰러졌다. 미스터 블레이드는 통증을 삼키는 데 주력했다. 녀석은 그저 다리를 꼭 모은 채 사타구니를 감쌌고, 미친 듯이 숨을 쉬면서 가슴의 고통을 날리려 애썼다.

공미는 빈 산탄총을 던진 후 몸에서 단도를 뽑았다. 하나하나를 뽑을 때마다 신음소리가 통로를 가득 매웠다.

“죽일 거야.”

공미는 주머니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미스터 블레이드에게 걸어갔다.

“죽이고 싶어!”

공미는 메말라 버린 눈으로 미스터 블레이드를 내려다봤다. 공미의 눈에 비친 미스터 블레이드에게선 아직도 지난날 장달이라 불렀을 시절의 얼굴이 남아 있었다.

“고, 공미야. 하하……하…….”

미스터 블레이드는 공미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공미의 단도는 녀석의 머리 목뒤로 올라갔다.

“죽어 줘.”

“지, 진정해.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미스터 블레이드는 떨었다. 녀석은 지난날 자신이 공미에게 행한 것을 잊은 채 비참한 희생자 역할에 충실했다.

“그만, 그만! 내가 누군지 잊은 거야?”

“죽어.”

공미의 손에 힘이 들어가려는 게 느껴졌다. 더 이상은 방관할 수 없었다.

‘공미 씨! 그만둬요. 그럴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요!’

다급한 내 외침에 공미의 손에 실린 힘이 멈췄다. 그러나 공미의 마음은 쉽게 설득할 수 없었다.

‘난 그동안 이 자식 때문에 괴로웠어요. 그런데 이제 보니, 나만 그런 거였어요. 나만, 바보였어요.’

‘공미 씨는 지금까지 잘 버텼어요. 이겨낼 수 있어요. 공미 씨 손을 더럽히면 안 돼요! 그거야말로 정말 안 될 일이라고요!’

‘이 자식은 조금 전까지……날……날…….’

공미는 드디어 참아 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날 죽이려 했다고요! 날 죽이려 했어. 날 죽이려고……!’

그때 또 한 번 공미의 감정에 커다란 파란이 일었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 공미의 초점 없던 눈동자가 아래를 응시했다.

피 묻은 날, 떨리는 손잡이. 미스터 블레이드의 손에 들린 단도가 공미의 복부를 찌르고 있었다.

“히히히! 어딜 너 따위한테 내가……!”

미스터 블레이드의 실성. 그리고 공미의 마음이 구겨지는 감각.

공미와 미스터 블레이드의 눈은 꽤 오랫동안 서로를 마주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공미는 녀석을 찢어 죽이는 상상을 했고, 미스터 블레이드는 단도를 든 손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난……여전히……이 자식을……!’

공미는 단도를 쥔 채 미스터 블레이드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오열을 터뜨리며 몸을 비틀었다.

신체의 고통보다 정신의 고통이 공미를 쥐고 흔들었다.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공미의 울음에 복부에서 피가 뿜어졌다. 그것을 본 미스터 블레이드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히이이익, 미친년!”

미스터 블레이드는 허겁지겁 도망쳤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던 미스터 빅에게 소리쳤다.

“저거 치워! 싹 다 죽여!”

미스터 블레이드의 외침에 미스터 빅은 양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맹수처럼 울부짖었다.

유정과 변해라를 상대 중이던 미스터 점프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전방을 돌아봤다.

“미친 자식! 나까지 죽일 셈이야?”

미스터 점프는 전방으로 철수, 미스터 빅을 높게 뛰어넘어 미스터 블레이드 옆에 섰다. 그리고 미스터 블레이드의 멱살을 잡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미스터 블레이드는 넋이 나가서 그저 미스터 점프의 손에 몸을 맡겼다.

‘공미 씨 피해요!’

미스터 빅이 공미의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녀석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로봇. 그저 묵묵히 걷고 있음에도 그 무게와 힘이 절로 느껴졌다.

미스터 빅의 주먹이 엎드린 공미를 노렸다. 녀석의 주먹은 강한 파괴력과 함께 바닥에 구덩이를 만들었다.

다행히 공미는 죽기 직전, 유정에 의해 구출되었다. 유정은 공미의 뒷덜미를 잡아서 힘껏 끌고 갔다.

“공미 씨! 배가……?”

공미는 반응하지 않았다.

‘팀장님, 어떻게 하죠? 계속 싸우기엔 상태가 너무 안 좋아요.’

유정의 의견에 동감이다.

‘지금 다른 곳 상황이 좀 복잡해서 지원을 보내 주기 힘들 것 같아요. 제어실로 철수하세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철수하는 것도……. 2번 통로만 정리돼도 나랑 호규가 도우러 갈 수 있다. 우리 쪽은 시간이 문제다.

유정은 공미를 최대한 뒤쪽으로 옮겼다. 그동안 변해라가 산탄총을 난사해 미스터 빅을 쐈다.

미스터 빅의 몸통에 사정없이 고무탄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고무탄은 흠집도 내지 못하고 갑옷에 튕겨 나갔다.

“그걸로는 미스터 빅을 못 쓰러뜨려! 녀석이 입고 있는 갑옷은 ‘히말라야거북’의 껍질로 만든 거라고!”

미스터 점프는 미스터 블레이드를 바닥에 내팽개친 후 미스터 빅 뒤를 따라 걸었다.

“내 발차기에 맞아 황홀하게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미스터 점프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미스터 빅 뒤에 숨었다.

미스터 빅은 가장 가까운 변해라에게 걸어갔다.

갑옷과 갑옷끼리 마찰되면서 나는 쇳소리, 그리고 눈에 뚫린 구멍에 드리운 그림자.

절대 뛰지 않는다.

느릿느릿한 움직임은 곧 강함을 뜻하며 거대한 덩치의 움직임 자체가 공포였다.

공미는 장전을 한 번 더 해서 끝까지 사격을 했다. 그러나 고무탄으로는 절대 미스터 빅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미스터 빅과 불과 2m 남짓한 거리. 변해라는 산탄총 대신 리볼버를 들었다. 그리고 미스터 빅의 헬멧을 향해 총구를 조준했다.

“받아라!”

변해라가 쏜 납탄은 강하게 헬멧을 때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관통 대신 튕겨 나가고 말았다.

대신 실탄의 위력이 더 강한 탓인지 납탄에 맞자마자 미스터 빅의 걸음걸이가 움찔거렸다.

둘의 거리는 1m 내외.

“으아아아!”

변해라는 모든 총알을 발사했다.

한 발, 한 발 화약내와 총성이 통로에 울릴 때마다 미스터 빅의 헬멧에는 흠집이 늘어났다.

“세상에……말도……안…….”

모든 실탄을 쓴 변해라는 무력하게 미스터 빅의 주먹을 바라봤다.

거의 변해라의 몸통만 한 주먹이 가녀린 소녀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변해라는 비명도 못 지르고 주먹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변해라가 떨어진 곳은 유정이 옮겨 놓은 공미의 위. 기가 막히게 두 사람이 포개졌다.

유정은 입술을 깨물며 두 동료를 바라봤다.

공미는 배에 구멍이 뚫린 채 헐떡였고, 변해라는 온몸에 멍과 피로 뒤덮여 숨만 쉬고 있었다.

“용서 못 해.”

유정은 입술을 더 강하게 깨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제대로 눕힌 뒤, 두건을 풀어서 공미의 배 위에 내려놓았다. 두건 속에 감춰진 단발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왔다.

“역시 여자였군! 딱 내 스타일이야.”

미스터 점프는 입꼬리가 귀에 걸리며 활짝 웃었다. 표정만 놓고 보면 딱 시상식 때 여자한테 찝쩍대던 지부장이었다.

유정은 두 사람의 무기를 챙겨 일어섰다. 그리고 총을 재장전.

“히히히! 미스터 빅, 너무 망가뜨리지 마.”

미스터 점프의 혀가 뱀처럼 길게 늘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