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123화 (123/250)

123화

123화

사슴도 그 말을 남긴 채 쓰러졌다. 그리고 그것으로 루호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자기보다 더 강한 상대와 싸워 승리. 오직 조루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리 씨 서둘러 주세요!’

‘네.’

장마리가 한돈 아저씨를 업고 루호에게 향하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다.

2번 통로.

호규와 미스터 터틀의 대결은 의외로 지루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미스터 터틀의 능력은 H력을 이용한 장벽.

호규의 능력은 목소리를 이용한 충격파.

능력만 보면 이쪽도 단순 힘겨루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 두 녀석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기란 참 힘든 일이었다.

처음 한 번은 호규가 목소리로 공격, 그러나 미스터 터틀은 장벽으로 간단히 막아냈다. 그리고 시작된 시간 끌기!

호규는 산탄총을 최대한 느리게 장전, 발사. 미스터 터틀은 그렇게 날아온 고무탄을 장벽으로 막고 있었다.

공격, 방어. 다른 통로와 다르게 얘네만 둘이서 턴제 게임을 하고 있다.

호규의 눈을 통해 본 미스터 터틀은 이 상황을 나름 즐기는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 호규가 하는 공격으로는 미스터 터틀의 장벽을 깰 수 없다. 그리고 미스터 터틀도 장벽 외 다른 수단이 없는 이상 공격은 힘들 것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말이 있지만, 이 상황은 조금 예외적이다.

호규의 능력은 루호 이상으로 단발성.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규에게는 능력의 부재를 보완할 기술이 전무하다.

산탄총의 총이 떨어지면, 장전을 하면서 곧바로 목청껏 목소리 공격.

굵고 짧은 충격파가 미스터 터틀의 장벽을 때렸다.

장벽이 출렁이며 물결 표시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빈틈이 생겼다.

“지금이다!”

호규는 한 번 더 충격파를 질렀다. 이번 공격은 장벽의 형태를 타고 측면으로 돌아가 미스터 터틀을 노렸다.

“크윽!”

드디어 미스터 터틀에게 목소리가 명중. 첫 타격으로 녀석의 안경에 금이 갔다. 그리고 추가로 양쪽 귓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양쪽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호규는 아예 쐐기를 박으려 목소리를 높였다,

“후훗.”

미스터 터틀은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씩 웃었다.

‘여유?’

미스터 터틀은 양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장벽이 반구 형태의 방어막으로 변하며 완전히 사방을 차단했다.

기껏 힘내서 지른 목소리는 빈틈없는 방어막만 두들길 뿐 다시 닿지 않게 되었다.

“전 거친 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껏 공격해 보세요. 당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 드리죠.”

미스터 터틀은 여유 그 자체였다. 녀석은 호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호규의 SOS. 현재 상황으로선 내가 가는 수밖에 없다.

‘시간을 끌고 계시면 도와드리러 갈게요. 최대한 버텨…….’

“혹시 알고 계신가요? 당신 능력은 참 쓰레기예요.”

미스터 터틀의 도발. 덕분에 호규와 내 대화가 끊어지고 말았다.

“내 능력이 쓰레기라고? 그럼 당신 능력은 보물인가? 그래봐야 거북이 등껍질이잖아?”

미스터 터틀은 안경을 고쳐 쓰며 어깨를 으쓱였다.

“좋은 비유군요. 하지만 말이죠, 그 거북이 등껍질이 당신의 몸을 뭉갤 수도 있답니다. 시험해 볼래요?”

호규는 재장전이 끝난 산탄총으로 방어막 속 미스터 터틀을 조준했다. 만약 미스터 터틀이 공격을 위해 방어막을 해제하면 곧바로 쏠 기세였다.

“해 보시지.”

호규의 응수에 미스터 터틀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걸었다.

‘뭐야?’

미스터 터틀을 따라 방어막도 함께 움직였다.

“어……?”

놀란 것은 호규도 마찬가지. 미스터 터틀은 느긋하게 호규에게로 향했다.

“버티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당신 따위가 어찌할 수 없는 힘이거든요.”

호규는 산탄총을 연달아 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고무탄 정도로 미스터 터틀의 전진을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냥 그렇게 물러서세요. 어차피 당신은 제 행보를 막을 수 없습니다.”

다음은 장전된 리볼버. 호규는 주머니에서 꺼낸 리볼버를 연속으로 발사했다. 그러나 방어막으로 날아간 총알은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가며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빈 실린더가 돌아가며 애꿎은 방아쇠만 철컥거렸다.

호규는 ‘철컥철컥’소리를 들으며, 뭔가 결심이 선 듯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숨을 들이마셨다.

미스터 터틀은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호규의 행동을 바라봤다.

“한번 해 보시죠. 까짓 거 맞아 드리겠습니다.”

이미 미스터 터틀에게 호규는 위협의 대상이 아니었다. 호규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었다.

“흐읍……!”

입을 꼭 닫고 2초간 침묵. 그 뒤, 호규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야아아아!”

호규가 내지른 고함은 H력에 의해 폭발적으로 커졌고, 그로 인해 물리적인 힘까지 갖게 되었다.

호규의 목소리는 방어막째로 통로 전체를 두들겼다. 통로의 천장, 벽, 바닥이 목소리에 의해 깎여 나갔다.

“젠장…….”

호규는 헉헉대면서 방어막을 바라봤다.

마감재가 다 벗겨진 천장엔 내장마냥 전선과 철심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무너진 벽 여기저기엔 뜯겨 나간 철판의 빈자리가 구멍처럼 비어 있었다.

바닥은 파편투성이. 그러나 방어막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물론 방어막 안의 미스터 터틀도 마찬가지였다.

“다 한 겁니까?”

미스터 터틀은 보란 듯이 하품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짧게 기침을 두 번 했다.

“좀 덥군요.”

미스터 터틀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 정도 땀 몇 방울은 호규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헉헉……헥헥…….”

호규는 쉴 새 없이 폐를 움직여 산소를 들이마셨다. H력은 바닥, 갖고 있는 무기는 무용지물이었다.

‘팀장님, 저 여기까지인가 봐요.’

포기 선언. 팀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왜 포기해요?”

난 호규의 어깨를 잡으며 물병을 건넸다. 아슬아슬하게 2번 통로 도착! 호규가 싸우는 동안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덕에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좀 쉬고 있어요.”

호규는 처음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가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팀장님…….”

호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이쪽은 교대해도 되겠지?”

“그럼요.”

미스터 터틀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드디어 붙어 보는군요. 당신에겐 꽤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김상팔 씨.”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 이왕이면 예쁘고 착한 분들이면 안 되냐? 그래도 호규가 싸워 준 덕에 녀석에 대해선 대충 감이 왔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미스터 터틀에게 보여 줬다.

“그건……!”

미스터 터틀의 미간이 구겨졌다.

검은색 원통.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이다.

“연막탄. 하지만 이건 좀 특별한 물건이야. 수면마비 기능이 있거든.”

설명을 하면서 침착하게 미스터 터틀의 방어막을 가늠했다.

반투명한 막은 대략 미스터 터틀의 키보다 조금 큰 높이, 깔끔한 반구인 걸로 봐선 그리 넓은 공간이 아니다.

연막탄 뚜껑을 열고, 심지에 불을 붙여서 방어막을 향해 굴렸다.

“조금이라도 들이마시면 바로 끝장이야!”

원통은 끝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단숨에 방어막에 도달, 회색 연기로 방어막을 삼켰다.

“어떠냐?”

연기는 자욱하게 퍼져서 방어막과 그 주변을 뿌옇게 흐렸다.

“이런, 큰일이군요.”

미스터 터틀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곤란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앞이 안 보이면 나아갈 수가 없는데요? 이거 참! 정말, 정말 큰일입니다. 후후.”

은근히 기분 나쁘네. 미스터 터틀은 가만히 제자리에 앉았다.

“그럼 연기가 걷힐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죠. 그래야 당신과 저의 실력 차이를 깨달으실 테니까요.”

녀석은 무작정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그래, 그거야. 미스터 터틀의 방어막을 응시하며, 나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제법 긴 기다림이 될 터인데, 마냥 서 있기는 싫었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통로를 확인하기로 했다. 육안으로는 연기에 싸인 방어막을 보면서, 능력으로 연결된 감각으로는 3번 통로를 주시했다.

3번 통로의 인원은 변해라, 공미, 유정. 다들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지만, 상대는 무려 플레잉!

둘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하나는 구면이었다.

미스터 블레이드. 예전에 나 하나 구경하자고 다른 헌터들에게 동료인 척하며 접근해 잔인하게 살인한 녀석이다.

“하아, 왜 하필 또 여자냐?”

참고로 녀석은 그 사건 때 공미와 주아란에게 아주 제대로 밟혔다. 그리고 김여개에게 좀 더 심하게 당한 후 군단개미의 여왕에게…….

‘살아 있는 게 용하네.’

평상복 차림의 미스터 블레이드 양옆의 두 사내는 그 외모가 범상치 않았다.

일단 키는 둘 다 2m 내외. 상대적으로 작은 쪽은 근육돼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근육이 빵빵했다. 너무 근육질이 심해서 유연성하곤 담을 쌓았을 것 같았다.

거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을 뒤집어써서 맨살을 조금도 노출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큰 쪽은 미즈 와이어 이상의 마른 체형, 특히 다리가 무슨 꼬챙이마냥 길었다.

마치 홍보할 때 착용하는 키다리 장대 같다. 복장은 체크무늬 양복.

“일단 자기소개를 할까?”

꼬챙이 다리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내 이름은 미스터 점프. 가운데 있는 잘생긴 친구는 미스터 블레이드, 맨 끝에 있는 큰 친구는 미스터 빅이라고 해. 하하하!”

미스터 점프는 위에서 아래로 찬찬히 여자들을 바라봤다. 너무 노골적인 감상용 시선이었다.

“흠……70점, 65점, 90점 정도인가?”

미스터 블레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병이야. 왜 여자만 보면 점수를 매기는 거야? 내가 보기엔 한 년만 빼곤 다 괜찮…….”

미스터 블레이드의 시선이 유정에게서 멈췄다.

“옷 입은 걸로 봐선 남자 같은데, 얼굴은 좀 헷갈리고……옷을 잘라서 벗겨 봐야 하나?”

미스터 점프는 다리 사이를 긁으며 배시시 웃었다.

“하나씩 나눌까? 아니면 셋이서 공유할까?”

반면 우리 팀원들 얼굴이 아주 험하게 일그러졌다. 미스터 블레이드는 뺨을 긁으며 갸우뚱거렸다.

“글쎄? 내 관심사는 정해졌는데……. 넌 어떻게 할래, 미스터 빅?”

미스터 블레이드는 미스터 빅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양손을 귀에 모아 과장되게 행동한 것은 덤.

“뭐라고? 저 작은 애를 짓뭉개서 비명소리가 듣고 싶다고?”

와, 이런 미친……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를……?

큰 놈, 긴 놈, 미친놈.

‘제가 알고 있는 미스터 블레이드의 특징을 알려 드릴게요.’

칼날을 날려 조작하는 것. 제대로 된 방어능력이 없다면, 상당히 치명적인 기술이다.

“그럼 3 대 3으로 즐기지, 뭐!”

미스터 블레이드가 허리춤 뒤로 손을 넣었다가 뺐다. 그러자 녀석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단도가 끼워져 있었다.

“난 일단 구면인 년한테 인사나 할게.”

공미. 평소처럼 갑옷 차림이 아닌 평상복 차림, 거기에 능력자도 아니다.

어깨에 멘 산탄총과 주머니의 리볼버, 허리에는 진압봉. 사실상 우리 팀에서 가장 약한 맴버일 것이다.

“그럼 내가 나머지 좀 놀아 주지!”

미스터 점프가 다리를 접으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힘차게 바닥을 차면서 개구리처럼 앞으로 뛰었다.

저 자세, 저 움직임?

낯이 익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