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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22화 (122/250)

122화

122화

“윽!”

발이 어긋나며 장마리의 발목이 흉하게 꺾였다. 그리고 장마리와 최향기는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달리기가 주특기 아니었어?”

미즈 포인트의 비웃음과 함께 레이저 10발이 쓰러진 장마리의 몸을 난도질했다.

장마리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등 뒤의 최향기를 가려 주며 최대한 몸부림쳤다.

“재미있네.”

미즈 포인트는 레이저를 거둔 후 느긋하게 걸어서 최향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쓰러진 최향기를 내려다봤다.

“꽤 훌륭한 능력이야.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이겼을 거야.”

장마리는 실신. 최향기는 공포에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미즈 포인트는 오른손 검지를 뻗어서 아예 최향기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너 같은 능력은 일찌감치 싹을 잘라 내야 해.”

미즈 포인트의 검지 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최향기의 떨리는 눈동자 아래서 참던 눈물이 흘러넘쳤다.

“미안. 유감은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최향자의 목소리.

분명 쓰러져 있던 최향자가 어느새 미즈 포인트의 옆에 서 있었다. 미즈 포인트가 시선을 돌리기도 전에 최향자의 주먹이 미즈 포인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것으로 끝. 미즈 포인트는 벽에 부딪친 후 바닥에 널브러졌다.

“언니?”

최향기가 멍하니 최향자를 바라봤다.

“끌끌끌!”

최향자 뒤에서 최향자 허벅지에 손을 대고 있는 한돈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변태?”

최향기는 멍한 얼굴로 아저씨를 바라봤다.

“아니야! 생명의 은인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아저씨는 최향자의 다리에서 손을 떼더니 다음으로 장마리에게 다가가 치료를 시작했다.

난 최향기가 능력을 드러낸 직후 보안실에 있던 아저씨를 곧장 5번 통로로 달려가게 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모양이다.

미즈 포인트가 최향기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최향자를 치료, 마지막 일격을 날리게 한 것이다.

최향기는 아직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 불의의 기습 정도라면 모를까, 상대가 프로인 이상 정면 승부는 힘들다. 하지만 그런 최향기의 잠재력과 기백 덕에 작전이 성공한 것이기도 하다.

“끌끌끌! 내 치료는 아주 비싸다고!”

아저씨는 신이 나서 검은 과부들을 치료했다. 내 생각엔 돈보단 다른 부분에 더 좋아하시는 것 같지만…….

일단 5번 통로는 일단락되었다.

다른 곳은? 5번 통로에 온 정신이 팔린 사이, 다른 통로에서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1번 통로에서 루호가 마주한 상대는 미스터 타이거.

루호는 챙겨간 장비를 놔두고, 주머니에서 꺼낸 유성추로 싸우고 있었다.

크기는 작지만, 효율은 극대. 물론 그것은 조루호란 천재가 다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최대한 버티며 적의 체력을 소모시키는 작전. 미스터 타이거가 H력을 물질화시켜 만들어낸 이빨과 발톱은 루호에게 조금도 닿지 않았다.

녀석이 돌진해 오면 루호는 그 이상으로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고, 녀석이 팔을 뻗으면 유성추를 날려 팔의 방향을 살짝 옆으로 밀었다.

“도대체 뭐냐? 그 공 같은 건……?”

미스터 타이거가 잠시 공격을 멈추고 물었다.

“유성추라는 겁니다. 본래는 금속 재질로 만들지만, 이번엔 조금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 봤습니다.”

“특별한 재질?”

루호는 차가운 얼굴로 유성추를 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공 부분이 튕겨 올라 다시 루호의 손으로 돌아갔다.

“고무?”

“비슷한 거죠.”

루호는 줄을 잡고 추를 회전시켰다. 빠르게 회전시킬수록 더욱 큰 힘이 실렸다.

“이런 것도 가능하죠.”

루호는 가벼운 손놀림으로 유성추를 날렸다.

미스터 타이거는 공격에 대비해 몸을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유성추는 미스터 타이거가 아닌 그 옆에 있는 벽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벽에 맞고 천장으로 튕긴 다음 거기서 한 번 더 튕겨 미스터 타이거의 머리에 부딪쳤다.

“크윽!”

제법 묵직한 소리와 함께 유성추가 튕겨 나가 루호에게로 돌아왔다.

미스터 타이거는 손톱이 난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보기보다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이, 망할 녀석!”

루호는 묵묵히 유성추를 돌렸다.

“이건 어떠십니까?”

루호는 곧장 유성추를 바닥으로 던졌다. 그러자 구슬은 바닥에 튕긴 다음 천장으로 높게 튀었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움직임이었다.

“하앗!”

루호는 줄을 위로 뻗었다.

똑바로 나아가던 구슬은 돌연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벽에 한 번 튕긴 후 미스터 타이거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미스터 타이거는 이를 갈면서 고함을 질렀다.

“비겁한 자식!”

루호는 아랑곳 않았다.

“실력입니다.”

루호는 구슬을 회수해 이번엔 유성추를 빙글빙글 돌렸다.

“타아아아!”

미스터 타이거는 입을 크게 벌리며 무작정 돌진했다. 이빨과 발톱을 루호에게 겨눈 그 눈빛에서 맹수의 살기가 느껴졌다.

루호는 냉정하게 미스터 타이거를 주시하며 뒷걸음으로 몇 초의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손목을 튕겨 돌리던 유성추를 아래 대각선으로 튕겼다.

구슬은 날카롭게 날아가 미스터 타이거의 왼쪽 발목을 휘감았다.

“타앗!”

미스터 타이거의 일격. 루호는 고개를 옆으로 빼며 발톱을 피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줄을 당겨 미스터 타이거의 발목을 당겼다.

“뭐야?”

미스터 타이거는 안쪽으로 올라간 자기 다리에 걸려 벌러덩 넘어졌다.

루호는 그런 미스터 타이거의 뒤통수를 밟은 다음 뒤로 멀리 점프해 다시 거리를 벌렸다.

“이 새끼!”

고개를 든 미스터 타이거는 ‘퉷!’하고 침을 뱉었다. 바닥에 떨어진 침에는 붉은 피가 섞여 있었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괴력의 장사를 쓰러뜨린 루호의 얼굴엔 어떤 미동도 없었다.

딱 평소와 같은 스타일. 그러나 그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왜 좀 더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루호의 오감을 직접 느끼고 나서야 깨달았다. 침착한 것도, 냉정한 것도, 냉철한 것도……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루호는 적과 싸우는 와중에 자기 자신과도 싸우고 있었다.

“제기랄…….”

미스터 타이거는 몸에서 아지랑이를 뿜어냈다. 지금까지의 양이 전신을 휘감을 정도라면, 지금 뿜어내는 것은 통로를 가득 채울 기세였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각오하라고!”

아지랑이는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고, 기분 나쁜 촉감마저 느끼게 했다. 위기감을 느낀 루호는 훨씬 더 뒤로 물러섰다.

“타타……타타…….”

아지랑이를 헤치며 걸어 나온 것은 말 그대로 타이거, 통로를 꽉 채울 덩치의 호랑이가 서 있었다.

수정처럼 번쩍이면 엄니, 면도날처럼 얇고 길게 벼려진 발톱, 유리 공예품처럼 투명하게 광택이 흐르는 몸체.

호랑이의 두 눈은 푸른색 에메랄드처럼 고고한 빛이 흘렀다.

“굉장하군요. 능력의 응용이란 걸 이렇게 극단적으로 해낸 사람은 아마 당신밖에 없을 겁니다.”

루호는 적이란 사실도 잊은 채 미스터 타이거를 칭찬했다. 그만큼 지금 녀석의 상태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미스터 타이거의 변신은 루호의 사슴보단 손평화의 로봇에 가깝다.

즉, 신체를 직접 변형시킨 것이 아니라 신체 위에 H력으로 만든 인공의 형태를 덧씌운 것이다.

저 정도의 물질화라면 고도의 정신력은 물론이고, 무지막지한 양, 그리고 튼튼한 육체도 필수. 내 상대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호랑이는 자세를 낮췄다. 고양이과 동물에게 그것은 돌격의 신호.

루호는 유성추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속전속결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별수 없군요.”

루호는 미스터 타이거가 그랬듯이 H력을 뿜어냈다. 그러나 양에서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고작 신체를 휘감을 양, 루호의 몸이 H력에 물들며 짐승의 형상으로 변했다.

‘루호야, 너무 위험해!’

‘괜찮아요. 어떻게든 해 볼게요.’

‘괜찮을 리가 없잖아!’

다른 사람을 보내서 도와주고 싶어도 전부 애매하다.

2번 통로의 호규는 미스터 터틀과 대치 중.

3번 통로는 아직 대기 중, 그러나 전략적으로 여기서 누굴 한 명 빼는 것은 힘들다.

4번 통로의 주아란, 주아라 자매는 이제 막 적과 조우.

5번 통로는…….

‘루호야, 내가 어떻게든 도와줄게. 조금만 기다려!’

“하하하.”

루호는 육성으로 웃으며 보이지 않는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슴. 태초에 살았을 것 같은 흰색 영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신비스런 분위기에 호랑이도 몸을 움츠리며 경계했다.

사슴으로 변신함으로써 루호의 내부도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두 마물은 서로를 노려봤다. 양쪽 모두 사람일 때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 봤자, 애송이의 발악이지.”

호랑이가 입을 열며 이빨을 보였다.

하나하나가 H력의 물질화로 만들어낸 칼날. 사슴의 뿔이라도 간단히 끊어 버릴 무기였다.

사슴도 고개를 숙이며 뿔을 앞으로 세웠다. 흰색으로 빛나는 뿔은 단순하면서도 굵고 가지런히 적을 향해 뻗어졌다.

“그 애송이한테 질지도 모릅니다.”

루호는 당당히 맞받아쳤다.

신경전은 여기까지. 통로를 가득 채운 거대한 덩치 탓에 화려한 움직임이나, 기술 따윈 없었다.

미스터 타이거가 원하던 싸움. 힘과 힘의 대결. 두 괴물은 서로의 무기를 앞세워 돌진했다.

충돌의 위력만으로 통로가 일부 비틀어졌고, 바닥과 천장에 금이 갔다. 호랑이의 엄니와 사슴의 뿔은 서로 얽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눈동자, 루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발굽이 바닥을 파면서 사슴이 조금씩 뒤로 밀렸다.

역시 힘에서는 안 되는 건가.

호랑이는 포효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유리한 태세를 맞이하여 더욱 눈을 번뜩였다.

“죽어라.”

호랑이가 고개를 비틀자, 사슴의 뿔에 금이 갔다. 루호의 내면은 아직까지 평온.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사슴은 하반신을 낮추며 최대한 버텼다. 바닥의 자재들이 박살나며, 사슴의 뒤로 작은 벽을 만들었다.

사슴은 그 벽에 엉덩이를 기댔다. 그러는 동안 뿔에 난 금은 점점 커지며, 머리로 향했다.

“죽어라.”

호랑이는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아까까지 흥분해서 날뛰던 미스터 타이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죽어라.”

마침내 사슴의 뿔이 하나 부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이 정지하듯 사슴의 감각이 빨라졌다.

휘날리는 파편, 날리는 뿔 가루, 그리고 떨어지는 뿔.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기분이다.

하나 남은 뿔도 절단. 두 번째 뿔이 부러지자 사슴은 몸을 움직였다.

아래로 숙이고 있던 하반신, 그것이 뒷다리의 강한 발차기에 의해 앞으로 띄워졌다. 사슴은 앞으로 나아가며 입으로 부러진 뿔 하나를 물었고, 그 상태로 순식간에 호랑이에게 근접했다.

승리의 환호에 호랑이의 반응 속도는 사슴을 따라오지 못했다.

사슴은 입에 문 뿔을 무기처럼 휘둘러 아래에서 위로 호랑이의 턱을 때렸다.

호랑이의 턱은 뿔에 의해 밀리며 강하게 올라갔고, 그로 인해 아래쪽 이빨이 위쪽 이빨과 충돌했다.

힘은 힘으로, 충격은 충격으로 전파되며 호랑이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휘청거리는 야수. 사슴은 거기서 한 번 더 뿔을 휘둘러 호랑이의 머리를 후려쳤다.

불과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의 연속 공격. 무기로 쓰인 뿔은 한 번 더 부러져 반쪽이 되었다. 그리고 위아래를 한 번씩 얻어맞은 호랑이의 머리는 수직으로 뒤틀려 버렸다.

강력한 갑옷에 둘러싸여 있어도 내부는 사람. 직접 호랑이 머리를 잡고 흔든 것이나 다름없는 충격을 받은 것이다.

호랑이는 고개를 도로 돌리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호랑이의 형태가 사라지며, 그 속에 있던 미스터 타이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자위가 뒤로 돌아간 상태. 뇌진탕이 제대로 온 모양이다.

‘상팔 형, 뒤를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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