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121화
“이게 뭐야? 재미없어.”
미즈 와이어는 하품을 하면서 쓰러진 미즈 붐의 머리를 발로 꾹꾹 밟았다.
“그러게 넌 너무 단순해서 탈이라니까? 사람이 좀 재밌는 맛이 있어야지…….”
미즈 와이어는 양손에서 실을 뽑아내더니 그걸로 실뜨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때? 나랑 놀아 줄래?”
미즈 포인트는 그냥 뒤에서 느긋하게 미즈 와이어를 바라만 봤다. 아무래도 녀석들에게 협동심 따윈 없는 모양이었다. 뭐, 우리야 그렇게 해 주면 땡큐지만…….
최향자는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이내 장마리가 최향자보다 먼저 앞으로 나섰다.
“언니. 저한테 맡겨 주세요.”
미즈 와이어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잘 부탁해.”
장마리는 미즈 와이어를 노려보며 산탄총을 장전했다. 최향기는 한유화를 데리고 묵묵히 뒤로 물러섰다.
“같이 덤벼도 돼. 그게 더 재밌잖아?”
“물론 그럴 생각이야.”
최향자는 진압봉을 들고 장마리 뒤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대검을 든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와! 미즈 붐보다 대접이 후한데?”
미즈 와이어는 양손을 휘둘러 실을 날렸다.
뭐지? 미즈 와이어의 손을 떠난 실은 천장과 벽, 그리고 바닥을 향해 넓게 퍼졌다. 사방으로 꽂힌 실은 흡사 거미줄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뭐하고 있어? 안 싸울 거야?”
장마리는 곧바로 능력발현을 했다. 말총머리, 혹은 포니테일이라 부르는 머리에 활활 불이 붙으면서 머리카락 자체가 불꽃으로 바뀌었다.
장마리의 제자리 뛰기.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에 통로가 울렸다.
“와! 종마 같네?”
미즈 와이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마리는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자 미즈 와이어는 기다렸다는 듯 양손을 모아 실을 당겼다.
통로에 박혔던 실들은 끝에 파편 하나씩을 붙든 채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파편의 무게로 인해 아래로 떨어지며 절묘하게 장마리를 덮쳤다.
일사분란하게 떨어지는 파편들은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더 빨리!”
장마리의 뒷머리 불꽃이 두 배로 커지며 다리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마치 추진을 시작한 로켓처럼, 대기에서 타오르는 유성처럼 장마리는 달렸다.
장마리는 파편들이 닿기도 전에 그냥 직진으로 제쳐 버렸다.
“와!”
미즈 와이어는 더 크게 웃으며 실을 거둬서 교차했다. 그리고 서둘러 실들을 그물망처럼 만들어 자신의 앞에 세웠다.
“이건 어때?”
장마리는 급하게 스톱. 급정거의 충격으로 몸이 앞으로 붕 떠서 구르고 말았다. 그리고 가장 염려하던 그물망과 충돌. 응?
미즈 와이어의 그물망은 평범한 그것처럼 장마리를 받아 줬다. 오히려 그물망의 탄성 덕에 장마리는 멈출 수 있었다. 만약 전속력으로 부딪쳤더라면…….
잘려 나간 총알들이 생각난다.
와이어의 강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 제대로 휘두르면 장마리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근데 왜 지금은 순순히 받아 줬지? 단순한 장난? 혹시……?
일단 해 보자.
‘마리 씨. 들려요?’
내 생각을 빠르게 전달했다.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작전이 떠올랐다.
미즈 와이어의 실은 강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뭔가 복잡한 구성을 이룬 상태에선 제대로 된 위력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것이든 제대로 조작하기 위해선 엄청난 훈련과 집중이 필요하다.
장마리는 빠르게 몸을 추슬러 최향자가 있는 부분까지 물러났다.
미즈 와이어는 그물망을 해제, 양손의 실로 허공을 저으며 두 사람을 도발했다.
“뭐하는 거야? 싸우는 사람 어디 갔나? 과부랑 종마랑 사이좋게 겁먹은 거야? 와!”
그 말에 최향자의 이성이 끊어졌다. 최향자는 주변의 파편을 집은 다음, 미즈 와이어를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미친 듯이 이어지는 파편의 폭격. 미즈 와이어는 또 실을 휘둘러 파편들을 잘라냈다.
“이런 건 안 통한다니까?”
최향자는 아랑곳 않고, 자기 몸의 2배만 한 파편을 집어던졌다.
“학습 능력이 없는 거야?”
미즈 와이어는 또 간단히 절단.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달랐다.
“와……?”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파편 뒤에 장마리가 붙어 있었다.
파편은 속임수. 진짜는 바로 근접 범위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미즈 와이어의 실은 강력하지만, 의외로 빈틈이 많은 무기다. 가르는 면적이 적기에 그만큼 파고들 공간도 많은 것이다.
장마리는 파편에서 떨어져 머리의 불꽃을 태웠다. 그리고 빠른 속도를 이용해 미즈 와이어와 몸을 부딪쳤다.
“와아아악!”
미즈 와이어와 장마리는 한 덩이가 되어 굴렀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최향자가 성큼 다가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미즈 와이어의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복수에 가득 찬 검은 곰의 한 방. 주먹에 맞은 충격으로 미즈 와이어의 팔다리가 위로 번쩍 올라갔다. 그리고 정확히 두 번 움찔거린 후 미즈 와이어의 사지가 축 늘어졌다.
최향자는 주먹을 떼고 가만히 미즈 와이어를 내려다봤다. 미즈 와이어는 반쯤 눈을 뜬 채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최향자는 시원하게 손을 푼 후 옆에 있는 장마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언…….”
방심.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극악이다. 주둥이를 함부로 놀린 미즈 와이어를 쓰러뜨렸단 생각에 우리 모두 안도하고 있었다.
최향자는 장마리를 일으켜 주기 전 알 수 없는 공격에 의해 옆구리에서 피를 뿜어냈다.
“크윽!”
최향자는 옆구리를 붙들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상처는 마치 길고 가느다란 송곳으로 꿰뚫어서 구멍이 난 형태. 가늘고 힘찬 핏줄기가 최향자의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새어 나왔다.
“날 잊으면 안 되지.”
미즈 포인트였다.
장마리는 최향자가 당한 것을 본 직후 스스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미즈 포인트는 최향자에게 했던 공격을 그대로 장마리의 다리에 행했다.
“크윽!”
장마리의 허벅지에 작은 붉은색 원이 비춰지더니 허벅지 뒤까지 관통되는 피해를 입혔다.
장마리는 허벅지를 부여잡고 절뚝이며 몸을 일으켰다.
미즈 포인트의 자세. 그것은 흡사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아는 어느 초록 아기 공룡’의 초능력 자세와 같았다.
쉽게 말해 검지 하나만 펴서 그 끝으로 H력을 쏘고 있었다. 일종의 손가락 레이저다. 미즈 포인트는 양손의 검지로 최향자와 장마리를 가리켰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다음엔 가슴을 쏠 거니까……!”
젠장! 장군. 외통수. 체크메이트. 전부 내 탓이다. 사령탑인 나까지 방심했으니…….
미즈 포인트의 검지에서 레이저 같은 빨간 빛이 각각 두 사람의 가슴 위로 비췄다.
순간 모두가 흠칫했지만, 좀 전처럼 관통상이 생기진 않았다.
“쫄지 마. 지금은 그냥 조준만 하는 거야. 하지만…….”
미즈 포인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지금부터 셋을 셀 거야. 그때도 그냥 조준만 할까?”
망했다.
한유화는 기절.
장마리는 다리 부상.
최향자는 옆구리 부상.
남은 사람은 최향기뿐이다.
“하나.”
카운트가 시작됐다.
“둘.”
‘최향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지금 내가 갈 테니까, 그동안 시간을…….’
‘아니요.’
“세엣……?”
미즈 포인트의 레이저가 두 사람을 꿰뚫기 전 알 수 없는 힘이 작용, 미즈 포인트의 몸이 뒤로 날렸다.
“뭐, 뭐야?”
미즈 포인트는 옆으로 몇 바퀴를 구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향기야. 그러면 안 돼.”
최향자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최향기를 바라봤다.
최향기, 혹은 카리. 그녀의 손바닥이 확고하게 미즈 포인트를 향해 있었고, 몸 주변으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능력자세요?’
나도 모르게 집중 중인 최향기에게 말을 걸었다.
‘네. 최근에 알게 됐어요.’
냉정히 생각해 보면 친언니인 최향자가 능력자니까, 동생인 최향기도 당연히 능력자일 확률이 높다. 어쩌면 쌍두하피 때도 H력 덕에 살았을지 모른다.
“뭐야? 염력!”
한참 구른 미즈 포인트는 부스스해진 머리를 정돈하며 일어섰다.
그 사이 최향자와 장마리는 최향기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지는 핏줄기가 두 사람의 상태를 대변했다. 최향기는 앞으로 걸어가며 외쳤다.
“언니는 항상 날 지켜 주고, 돌봐 줬어. 이젠 내가 언니를 지켜 줄 거야!”
그것은 다짐, 세상을 향해 외치는 신출내기 헌터의 고백이었다.
“웃기지 마. 그런 대단한 능력을 너 같은 꼬맹이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리 없어.”
미즈 포인트는 냉정하게 최향기를 파악했다. 그리고 열 손가락을 모두 폈다.
“전력으로 죽여줄게.”
열 개의 레이저. 그것들이 오직 하나의 표적을 노리고 있었다.
빨간 빛은 눈 깜짝할 새에 최향기의 전신에 닿았고, 그 다음은 구멍이 뚫릴 일만 남았다.
“언니?”
레이저가 최향기의 몸에 닿자마자 최향자가 앞으로 튀어나와 몸을 활짝 펼쳐서 동생을 가렸다. 그리고 10개의 작은 레이저가 최향자의 몸을 뚫었다.
본래 레이저는 빛,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즉, 앞에서 누가 맞아 줘도 일단 빛이 관통하면 뒷사람도 당연히 똑같은 공격에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즈 포인트의 레이저는 능력으로 만들어진 공격이라서 그런지 좀 다르다.
일단 최향자에게 공격이 명중하면, 살 속으로 구멍이 뻥 뚫리더라도 레이저가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어쩌면 레이저 자체가 소멸한 것이거나, 공격의 유지 시간이 짧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어머, 안쓰러워라.”
미즈 포인트는 최향자의 얼굴을 보며 즐거워했다. 최향자의 얼굴은 고통과 분노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서로 감싸 주기만 하다가 죽는 것도 괜찮겠네.”
미즈 포인트는 레이저를 거둔 다음 한 번 더 최향자의 몸을 조준했다.
미즈 포인트와 검은 과부들 간의 거리는 약 8m. 도박이다!
최향기가 싸울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
‘마리 씨, 그리고 향기 양.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요.’
최종 작전.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마리의 다리 부상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직 달릴 수 있단 뜻. 장마리는 최향기를 등에 업고 최향자 뒤에 섰다.
“가자!”
최향자는 당당히 앞으로 나아갔다. 장마리는 바로 뒤에서 최향자를 따라 걸었다.
“인간방패? 재미있네!”
미즈 포인트는 열 개의 레이저를 최향자의 다리에 집중했다.
“큭!”
레이저가 최향자의 다리를 꿰뚫었다. 순간 최향자의 걸음이 멈칫 했다.
“후후후!”
최향자는 이를 악물면서 한걸음, 한걸음 다시 나아갔다.
“오호?”
미즈 포인트는 또 레이저 공격.
레이저 10발이 한 번, 한 번 최향자의 다리에 적중될 때마다 최향자의 살점과 피가 뒤따라오는 장마리에게 튀겼다.
“언니…….”
최향기는 언니 뒤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차곡차곡 슬픔을 분노로 바꿔 축적시켰다.
무려 4m나 전진. 더 이상 최향자의 육체가 버티질 못했다.
최향자는 만족스런 얼굴로 순순히 눈을 감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제 다음은…….”
미즈 포인트는 당연히 최향자 바로 뒤, 장마리를 노렸다.
“언니, 죄송해요!”
장마리는 무려 최향자의 등을 밟고 그것을 발판 삼아 앞으로 뛰어올랐다.
장마리에게 겨눠진 첫 번째 레이저 10발은 빗나갔다.
“뭐야?”
미즈 포인트는 서둘러 손가락 방향을 올렸다. 그러자 장마리는 거기에 맞춰 몸을 기울여 옆으로 이동, 벽을 타고 달렸다. 그렇게 두 번째 레이저 10발도 빗나갔다.
남은 거리 2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