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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20화 (120/250)

120화

120화

그날 이후로 나에게 후퇴란 없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12개의 시선으로 각 통로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요원들은 우리에게 없는 자동 화기를 쏘며 최대한 플레잉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각 통로에는 7~10명의 요원이 있는 상황. 가장 먼저 적과 조우한 통로는 5번, 검은 과부들이었다.

“와! 이것 봐라?”

여성의 목소리. 녀석들 옆에는 5번 통로를 지키던 요원들의 시체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5번 통로의 요원들은 전멸한 상태였다.

“혹시 최향자? 와!”

흰색 전신 타이즈를 입은 길쭉한 여성이 최향자를 가리키며 웃었다.

비실비실한 외모와 달리 여성의 몸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자기소개부터 할까? 내 이름은 ‘미즈 와이어’라고 해. 와!”

미즈 와이어는 공손히 허리를 숙여 검은 과부들에게 인사했다. 그것은 정중함이 아닌 한낱 조롱에 불과했다.

“피라미들?”

미즈 와이어 옆 다른 전신 타이즈 차림 여성이 말했다. 여성의 왼쪽 눈 아래 눈물점이 보였다.

“피라미라도 상관없어, 미즈 포인트! 중요한 것은 공을 세우는 것. 그러면 그분도 기뻐하실 거야.”

눈물점 여성을 ‘미즈 포인트’라 부른 여성도 역시 전신 타이즈 차림. 미즈 포인트는 여성에게 답하며 몸을 풀었다.

“그런 건 중요치 않아. 난 빨리 임무를 끝내고 쉬고 싶다고, 미즈 붐! 일이 늘어지는 건 딱 질색이야.”

세 여성 모두 흰색 전신 타이즈 차림이었다. 유일하게 머리만 드러난 타이즈는 무슨 체조선수나 비밀요원을 연상케 했다.

심하게 마른 미즈 와이어.

육감적인 미즈 포인트.

건장한 미즈 붐.

검은 과부들 4명 중 최향기는 뒤로 빠져서 원호, 오리지널 3명이 맞섰다.

검은 과부들은 손에 든 산탄총을 장전하며 적에게 겨눴다.

미즈 와이어는 손뼉을 치며 최향자에게 말했다.

“미스터 버드께서 말씀하셨던 최향자를 만나다니……. 와! 당신 말이야, 미스터 버드한테 남친을 잃었지?”

관자놀이 안쪽 혈관이 팽창하면서 피가 뇌를 쑤시는 감각. 최향자의 감각이 고스란히 내 것처럼 느껴졌다.

소위 말하는 ‘빡친’ 상태. 최향자의 분노를 공감하게 될 줄이야……! 최향자는 다짜고짜 방아쇠를 당겼다.

‘펑’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고무탄이 나와 미즈 와이어에게 날아갔다. 그러나 미즈 와이어는 손을 한 번 흔드는 것으로 고무탄을 간단히 잘라 버렸다.

반으로 잘린 고무탄의 조각은 양쪽으로 궤도가 휘면서 빗나갔다.

“와! 비겁하다. 혹시 내가 화나게 한 건가?”

미즈 와이어는 최향자의 눈앞에서 상체를 앞으로 내밀면서 45도 비틀었다. 그리고 고개를 쭉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때릴 거야?”

최향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미간의 핏줄이 부푸는 것이 느껴졌다.

“때릴 거야?”

네가 무슨 해달, 너구리랑 베프인 분홍다람쥐냐? 최향자는 또 대꾸하지 않았다.

“때릴 거야?”

최향자는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최향자가 쏜 고무탄은 쏘는 족족 미즈 와이어의 손길에 의해 모두 잘려서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와! 참 쉬운 성격이네? 듣자하니, 남친이 죽은 충격으로 남자를 싫어하게 됐다며?”

뭐?

“그래서 남자가 근처에만 오면 때린다며? 병원으로 보낸 남자가 세 자릿수라며? 와!”

미즈 와이어는 계속해서 최향자를 도발했다.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난 최향자는 빈 산탄총을 버리고, 실탄이 든 리볼버를 빼 들었다. 그리고 또 무차별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와! 와! 와……!”

미즈 와이어는 감탄사를 연신 뱉으며 빠르게 양손으로 허공을 저었다. 그러나 고무탄이 아닌 납탄에 의해 미즈 와이어의 손에 연결된 뭔가가 번쩍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뭐, 딱 예상한 것이었다.

가느다란 실. 보통 와이어가 아니라 무려 H력으로 만든 물건이란 점이 무섭다. 미스터 타이거의 물질화와 비슷한 능력으로 보인다.

“나에게는 그런 건 안 통해.”

미즈 와이어는 검지를 세워서 최향자에게 까딱거렸다.

“직접 와서 잡아 보시지, 미망인! 때릴 거야?”

미즈 와이어의 조롱에 미즈 붐과 미즈 포인트도 폭소를 터뜨렸다. 최향자는 자기 발 옆에 떨어진 돌격 소총을 집어든 후 마구잡이로 갈겼다.

미즈 와이어는 웃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 좀 전까지처럼 와이어로 총알을 막지 않았다.

총알이 명중한 것인지, 갑자기 플레잉 쪽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통로 전체에 먼지가 휘날렸다.

“흥!”

먼지를 뚫고 앞으로 걸어 나온 사람은 바로 미즈 붐. 그녀는 팔짱을 끼며 당당한 자세로 말했다.

“적당히 좀 하지 그래? 감정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죽으려고 나왔나?”

미즈 붐의 뒤에 숨어 있던 미즈 와이어와 미즈 포인트는 고개를 옆으로 쭉 내밀며 검은 과부들을 약 올렸다.

“미즈 붐의 폭발로 전멸했나?”

그럴 리가.

“와!”

미즈 와이어의 감탄사와 동시에 통로의 먼지가 가라앉으며 검은 과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과부들은 갑옷을 발현한 한유화 뒤에 숨어 있었다. 한유화는 몸소 팀 앞에 서서 폭발의 충격을 모두 받아 냈다.

“헤헤! 나도 한다면, 하거든?”

미즈 트리오의 타이즈에 맞서서 한유하는 머리를 제외한 전신을 검은색 장갑으로 덮은 상태였다.

“흐음…….”

미즈 붐은 흥미롭다는 듯 한유화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름은?”

미즈 붐은 엄숙히 한유화를 바라봤다.

“한, 유, 화!”

한유화도 양손을 옆구리에 대며 당당히 가슴을 폈다. 두 사람의 신장은 허리 하나 차이. 어른과 아이의 대결이었다.

가운데 선 두 사람. 미즈 붐은 호기롭게 한유화를 내려다봤다.

“내 폭발과 너의 갑옷, 어느 쪽이 더 우위일까?”

“헤헤! 그야 물론…….”

한유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폭발이 일었다. 두 사람을 제외한 양측은 최대한 뒤로 물러서며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폭발은 두 번, 세 번, 네 번……무려 일곱 번이나 더 일어났다. 두 사람이 서 있던 통로는 완전히 폐허가 됐다. 안 무너진 것이 다행일 정도다.

폭발이 멎고, 10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멀쩡히 서 있는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헤헤!”

한유화는 철없는 얼굴로 웃었다. 그 모습이 철없게 느껴지기까지 했지만, 상대인 미즈 붐의 얼굴은 심하게 구겨졌다.

“멀쩡해? 그렇다면…….”

미즈 붐은 오른손에 꽉 주먹을 쥐더니, 힘껏 한유화를 향해 휘둘렀다.

“이건 어떠냐?”

주먹이 한유화의 가슴 부분에 닿음과 동시에 폭발이 일.었다.

규모는 작아졌지만, 밀도가 높아진 충격. 한 방의 위력에 통로의 벽이 허물어지며 천장의 조각이 떨어졌다.

만약 이곳의 설계가 충격에 강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공격으로 무너졌을 것이다.

통로는 버텼지만, 한유화의 몸은 뒤로 휙 날아갔다.

“하하하!”

미즈 붐은 호탕하게 웃었다.

“내 폭발은 최고다!”

“아이고…….”

멀리 날아간 한유화는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미즈 붐의 웃음이 뚝 끊겼다.

“아이고, 엉덩이야.”

한유화는 엉덩이 부분을 문지르며 다시 앞으로 나섰다.

“너 때문에 엉덩이가 쓸렸잖아. 책임져!”

“말도 안 돼.”

미즈 붐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여유만만이던 다른 두 사람도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뒀다.

검은 과부들. 팀장인 최향자가 다른 헌터들과 싸움 문제만 일으키지 않았어도 진즉 헌터 랭킹에 들었을 팀이다.

능력치 총합은 다른 랭킹 헌터보다 조금 낮을 지라도 그것은 특정 능력이 극단적으로 발달한 결과.

즉, 장기에 한해선 무시무시한 헌터들이다.

“내 엉덩이 책임져!”

한유화는 씩씩거리며 이번엔 먼저 미즈 붐에게 다가갔다.

미즈 붐은 멀쩡한 한유화의 상황에 경악하며 또 주먹을 날렸다.

“이년이!”

한유화는 무식하게 주먹의 폭발을 견디며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으아아아!”

미즈 붐의 지르기는 연속으로 이어졌다.

한유화의 작은 육체를 향해 꽂히는 폭격의 향연. 한 발, 한 발이 사람을 죽이기에 차고 넘치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이번엔 제법 효력이 있었는지, 한유화가 몸을 웅크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내 최고 공격으로 아예 끝장을 내주마!”

미즈 붐은 양손을 모아 꽉 깍지를 꼈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H력을 손으로 모았다.

미즈 ‘붐’이란 이름처럼 H력을 폭발시키는 능력. 그것의 가장 극단적인 행태가 미즈 붐의 깍지 사이에서 벌어졌다.

양 손바닥 사이, 그 좁은 공간에서 무수한 폭발이 일어났다. 미즈 붐이 일으키는 폭발의 위력으로 보건대, 절대 예사로운 힘이 아니었다.

한유화는 정신을 추스르며 다시 미즈 붐을 향해 걸었다.

“좀비 같은 것! 이제 정말로 죽어라!”

미즈 붐은 끝없는 폭발로 인해 떨리는 손깍지를 앞세워 한유화에게 돌격했다. 거기에 맞서서 한유화는 그저 양팔로 상체를 감싸는 자세를 취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유화에게는 오직 방어밖에 없었다.

“헬파이어!”

손깍지가 한유화에게 닿는 순간, 미즈 붐은 깍지를 풀었다.

물러서 있던 최향자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최향기를 감쌌다. 그 뒤 장마리가 두 사람을 들어서 최대한 거기를 벌렸다.

한유화와 연결된 감각. 그것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폭발은 주변을 집어삼키며, 5번 통로 전체를 구워 버렸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요원들의 시체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해되어 사라졌다.

이름처럼 지옥과 같은 위력. 멀리 떨어져 있던 장마리와 최향자도 충격으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고비를 넘긴 직후 장마리는 다시 플레잉을 향해 움직였다.

“흐흐흐…….”

지옥 같은 폭발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한 사람. 미즈 붐은 유유히 공기 중의 먼지를 날리기 위해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아무리 너라도 이 기술을 맞고는 살아…….”

지하인데다가 연달아 일어난 폭발로 인해 5번 통로의 대기는 뿌옇게 스모그처럼 변해 있었다.

“에고고!”

한유화는 제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연거푸 기침을 했다.

“짜증나. 이게 뭐야? 샤워하고 싶어!”

미즈 붐은 부들부들 떨면서 마냥 한유화를 바라만 봤다.

“너……도대체…….”

한유화는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한유화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번쩍번쩍 윤기가 나던 검은 갑옷은 산산이 금이 가서 금방이라도 조각날 것 같았다.

“각오해! 이번엔 우리 차례야.”

한유화는 오른팔을 뻗으며 검지로 미즈 붐을 노렸다.

“우리?”

미즈 붐은 그 말에 잠시 얼이 빠졌다. 그리고 1초도 되지 않아 복부에 강한 타격을 받았다.

“꺼……어……억…….”

장마리의 주먹. 뒤에서 고속으로 달려온 장마리가 냅다 미즈 붐의 복부에 주먹을 지른 것이었다. 미즈 붐의 입이 쩍 벌어지면서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이건 팀플레이야. 명심하라고……!”

장마리가 주먹을 빼자, 미즈 붐의 몸이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헤헤…….”

미즈 붐이 쓰러진 것을 본 후에야 한유화도 쓰러졌다. 장마리는 뒤돌아서서 쓰러지는 한유화를 안았다. 최향자와 최향기도 서둘러 달려왔다.

“수고했어.”

한유화는 최향자의 칭찬 속에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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