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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15화 (115/250)

115화

115화

“항복!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루호가……이겼어?

“대단해요! 조루호 씨가 이겼어요.”

기기래는 신이 나서 내 오른팔을 끌어안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얼이 빠져서 기기래 옆의 아저씨와 눈을 마주쳤다.

아저씨도 상당히 놀란 눈치다. 그러나 내가 놀란 이유는 내 배팅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루호는 심판에게 부축당하며 링에서 내려왔다. 반면에 패자인 최상길은 가뿐한 몸놀림을 보여 주며 필드를 걸어 나갔다.

진 사람보다 이긴 사람이 더 만신창이라니…….

객석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아까 야유를 날리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만약 조루호 씨가 우승하게 되면 꼭 독점 인터뷰를 하게 해 주세요, 알았죠? 알았죠?!”

기기래는 완전히 분위기에 빠져서 거듭 내게 말을 걸었다.

일단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자 기기래는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였다. 이제 남은 고비는…….

이삼 VS 블루스 김.

저 둘이 얼마나 서로를 깎아 내느냐의 문제다. 가급적이면 최상길처럼 승자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길 바랄 뿐이다.

블루스 김은 먼저 링에 오르고, 이삼은 링 옆에 설치된 마이크 장비에 다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두고 봐! 이기는 건 바로 나, 이삼이야! 우리 이씨 십형제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이겨 주겠어!”

이삼은 양손에 든 칼을 위로 번쩍 치켜 올렸다. 그 당당한 모습에 관객은 박수와 환호로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힘내라, 이삼! 저 퍼렁이를 물리쳐!”

“멋진 형제애다! 응원해 줄게!”

“먼저 간 형들의 복수를 해!”

이일하고 이이가 언제 죽었지?

이삼은 링에 올라서서 죽일 듯이 블루스를 노려봤다. 기기래는 수첩을 닫으며 나에게 물었다.

“둘 다 몸 상태는 최고예요. 능력수치로만 본다면 블루스의 압승이겠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변수란 늘 있는 법이에요. 승부란 두고 봐야 해요.”

가급적이면 루호한테 유리한 쪽으로 말이죠?

공이 울리고, 또 똑같은 패턴. 블루스는 이삼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이제 그것은 다른 의미로 무시무시한 선전포고와 같았다.

이삼은 직선으로 날아온 단검을 쌍칼의 날로 잡아내는 묘기를 보였다. 그리고 잡은 단검의 손잡이를 입으로 물었다.

양손에 든 칼과 입에 문 단검. 그 모습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저건……?”

‘그거’잖아? 삼검류!

심지어 블루스가 돌진해 오자, 이삼은 고개를 비틀어 단검의 날을 세웠다. 그리고 세 개의 날을 교차시키며 똑같이 블루스를 향해 돌진했다.

“끌끌끌! 저거 표절이잖아?!”

아저씨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칼 3개 들면 다 표절이에요? 그렇게 따지면, 예전에 엉덩이로 검을 물어서 삼검법 하던 인간도 있는뎁쇼?

이삼은 세 개의 날을 동시에 휘둘러 블루스를 공격했다.

세 개의 날이 세 방향에서 블루스를 베는 것처럼 보였지만, 확실히 블루스는 빨랐다. 블루스는 잔상만 남긴 채 이삼의 뒤로 돌아가 주먹을 날렸다.

“하!”

이삼은 자신의 허리 뒤에 꽂힌 블루스의 주먹에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삼을 때린 블루스가 황급히 주먹을 떼면서 뒤로 물러섰다.

놀랍게도 이삼의 허리 뒤에는 ‘꼬리’처럼 보이는 뭔가가 붙어 있었다. 분명 링에 올라갈 땐 없는 물체였다.

능력발현? 이삼은 천천히 뒤로 돌아서서 블루스를 마주했다. 허리 뒤에 달린 꼬리는 쭉 늘어나서 이삼의 입에 문 단검을 받았다.

“‘이삼’식 삼검법이라고 보면 돼.”

블루스는 주먹을 고쳐 쥐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이삼을 향해 돌진했다.

“이번엔 어디냐?!”

이삼은 쌍칼을 교차하며 전방을 방어, 꼬리를 뒤로 빼서 후방을 경계했다.

블루스는 초인적인 속도로 이삼의 주변을 돌았다. 그저 빙글빙글 도는 행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제기랄, 멀미가 나려고 하네.”

이삼은 투덜댔지만, 불리한 쪽은 블루스였다. 제한시간이 불과 10여 초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 10초, 여전히 블루스는 돌기만 하고 있었다. 화면에 비친 이삼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인해 온통 땀범벅이었다.

블루스는 이삼의 정면에서 정지, 느린 동작으로 주먹을 뒤로 젖혔다가 뻗었다.

누가 봐도 힘이 실린 펀치. 뻗게 만들거나, 링 밖으로 날려 버릴 심산이었다.

“하압!”

이삼은 펀치를 막지 않았다. 대신 꼬리와 양손의 칼로 바닥을 찍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생각보다 터프한 놈이다.

이삼은 블루스의 주먹을 ‘이마’로 받아 냈다. 분명 능력발동으로 육체를 강화했겠지만, 블루스의 주먹이 닿은 직후 충격이 울리며 이삼의 상체가 갈가리 찢겼다.

이삼의 눈, 코, 귀,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단 한방에 이삼은 루호 못지않은 피해를 입었다.

어쨌든 이삼은 쓰러지거나, 날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제한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만약 이삼이 칼을 교차해서 블루스의 주먹을 막으려고 하거나 바닥에 고정시키지 않았다면, 주먹 자체의 힘에 의해 날아갔을 것이다.

“승자, 이삼!”

심판의 외침에 경기장은 혼돈으로 둘러싸였다. 대부분 배팅을 한 사람들의 절규였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이건 무효야!”

“내 돈 내놔, 이놈들아! 이건 승부 조작이야!”

“날아오르라, 주작이여!”

워워, 다들 너무 흥분했는데? 물론 나도 돈을 잃었다. 결국 오늘 2천만을 고스란히 날렸다. 뭐, 그래도 아직 1억 9천만이나 있으니까…….

도박은 역시 정신 건강에 해롭다.

그래도 완전한 패배는 아니다. 적어도 우리 루호가 결승에 올라갔고, 잘만 하면 우승할 수도 있다.

결승은 특별히 30분간 휴식 후 치러지기로 했다.

“간식거리 좀 사러 다녀올게요.”

뭣 좀 먹어야지, 안 그러면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목이 터져라 응원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일어나시죠, 기자님?”

안 그러면 이놈의 수갑을 끊어 버리겠습니다. 이거 은근히 걸리적거리네.

기기래는 흔쾌히 날 따라 일어섰다.

“둘이 이참에 방을 잡지 그래?”

아저씨의 비웃음. 예상 가능한 범위다.

“대신 좀 잡아 주시죠?”

우리는 함께 매점 구역으로 갔다. 대충 팝콘 10인분이면 되겠지?

팝콘 가게.

가장 큰 사이즈인 5인분짜리 팝콘 2개를 주문했다. 나와 기기래가 각각 하나씩, 거대한 팝콘통을 들었다.

“이렇게 많이 사면 누가 다 먹죠?”

“내가!”

등 뒤에서 나타난 한돈 아저씨.

“꺄아아악!”

기기래는 괴물을 본 듯 놀라며 들고 있던 팝콘을 모두 쏟았다. 당연히 기기래가 손을 휘저은 덕에 수갑으로 연결되어 있던 내 손도 휘둘러졌다.

내 팝콘통은 손을 떠나 자유로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거꾸로 뒤집히며 내용물을 모두 탈출시킨 뒤 장렬히 한돈 아저씨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끌끌끌! 아주 그냥 쌩쇼…….”

거대한 팝콘통은 아주 정확히 아저씨 머리를 덮으며 무슨 투구처럼 씌워졌다.

아저씨는 양팔로 허공을 저으며, 마침 주변에 즐비해 있던 여성들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꺄아아악! 어딜 만져요?!”

“누가 저 난쟁이똥자루 좀 말려 줘요!”

“내 몸이 오염됐어. 도와줘요!”

여성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와중에 몸소 아저씨를 제압하는 이들이 있었다.

“헉!”

팝콘통을 뒤집어 쓴 아저씨는 ‘검은 옷’의 여성들의 주먹에 쓰러진 후 단도처럼 날카로운 구두 굽에 사정없이 짓밟혔다.

여성들은 아저씨를 둘러싼 후 검은 옷의 해결사들을 응원했다.

“여성의 적! 죽어라!”

“접촉만으로 기분 나빠! 책임져!”

“피의 응징! 피의 복수! 피의 원수!”

아저씨는 정말……눈물겨울 정도로 털렸다. 배낭이 없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왜소해 보이는 아저씨가 참 불쌍해 보였다.

아, 물론 지금 일은 맞아도 싸다. 충분히 고의였을 것이다. 여성들은 분풀이가 끝나고, 홀가분하게 자리를 떠났다.

아저씨를 완벽하게 처리한 최향자는 아저씨의 머리를 밟으며 내게 인사했다.

“관리 좀 똑바로 안 하냐?”

“죄, 죄송합니다.”

근데 그분이 제 능력 밖이거든요? 머리에 썼던 팝콘통은 걸레짝이 되어 분해, 아저씨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너무하잖아? 난 앞이 안 보여서 그런 거라고……!”

“상관없어.”

최향자는 한손으로 뚱뚱한 아저씨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날 향해 집어던졌다.

반사! 순간적으로 H력을 발동, 아저씨를 쳐냈다.

최향자는 되돌아오는 아저씨를 가볍게 피하고, 나와 기기래 사이의 수갑을 손날치기로 끊었다.

“뭐, 뭐하는 거예요?!”

기기래는 내 뒤에 숨어 최향자에게 항의했다.

“기분 나쁜 취미인데? 그런 취향이었어?”

최향자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화, 화난 건가?

“언니……일단 진정을…….”

“어?”

최향자를 말린 사람은 그녀의 양옆에 있는 장마리와 한유화가 아니라 뒤에 있는 한 소녀였다. 소녀는 최향자의 옆구리로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앗!”

최향자의 동생, 최향기. 그리고 인터넷 방송인 출신의 연예인 카리였다. 카리는 커다란 빵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혹시 카리 씨 아니에요?”

기기래는 단번에 카리를 알아봤다. 수첩을 들고 카리를 향해 전진! 그러나 최향자의 앞을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비켜요! 난 최향자 씨한테 관심 없어요.”

어떤 의미론 참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 감히 검은 곰한테 맞서다니…….

최향자는 손을 들어서 따귀를 때릴 준비를 했다. 준비 동작을 천천히 하는 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뭐, 뭐예요? 난 기자예요?! 기자를 적으로 돌리면 후회할 걸요?”

기기래는 살짝 쫄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여자의 기싸움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사이에는 끼고 싶지 않다. 저건 끼어들었다간 무조건 피 보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순간! 모두의 행동이 멈추며 코를 붙잡고 얼굴을 찌푸렸다.

“코, 코가……. 코가 썩을 것 같아!”

똥방귀, 출처는 명확하다. 다들 바닥에 누운 한 드워프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미안.”

아저씨는 순순히 사과했다.

“아저씨 지금, 땅에 떨어진 팝콘 드시고 계세요? 더러워요, 드시지 마세요. 제가 새 거로 사 드릴게요.”

제발, 이 이상 헌한발의 명성을……젠장! 팀 이름부터 바꿔야 했는데……!

“끌끌끌! 맛있다!”

진짜 돼지 같네. 일단 아저씨의 똥방귀 덕에 두 사람의 성질을 죽일 수 있었다. 감사의 표시로 아저씨를 번쩍 들어서 똑바로 세워 드렸다. 그리고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쥐어 드렸다.

“가서 간식 사 와 주세요.”

“끌끌끌!”

아저씨는 소풍가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쪼르르 달려가는 아저씨를 보고 있자니, 왠지 걱정이 태산이다. 또 사고 치시면 안 되는데…….

상황이 정리되고,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카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네. 저기…….”

카리는 쭈뼛거리며 말을 하지 못했다. 후유증? 아직 완치되지 않은 건가……?

“고맙대.”

최향자가 대신 말을 맺었다. 그러자 카리가 무려 최향자의 옆구리를 때리며 항의했다.

“내가 직접 전할 거란 말이야!”

와, 얘 지금 검은 곰을 때리고 있어? 쩐다! 역시 동생에겐 관대하구나.

“응? 카리의 복장이……?”

카리의 얼굴 아래, 복장은 평범한 셔츠와 바지였다. 다만, 색깔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이었다.

“복장이 너무 튀는데요?”

내 말에 카리는 황급히 주머니에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V를 만들어 내밀었다.

“저 정식으로 ‘검은 과부들’에 들어갔어요!”

“엥?”

카리의 말에 귀를 후비며 최향자를 바라봤다. 그러자 최향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와, 지금 최향자가 내 시선을 피한 거야?! 오늘 참, 믿을 수 없는 일이 많이도 일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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