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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13화 (113/250)

113화

113화

아저씨가 뱉은 초록색 우유 줄기는 김대팔의 진짜 두 눈에 명중, 티라노의 주둥이가 다시 닫히며 고통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끌끌끌! 인과응보다!”

인과응보는 개뿔!

“인과응보를 왜곡하지 마세요.”

김대팔은 냉정하게 말하며 한 번 더 인형옷의 입을 벌렸다. 그리고 티라노의 발톱에 손수건을 쥐고 주둥이 속의 진짜 얼굴을 닦았다.

맨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쭉 뺐지만, 정말 교묘하게 김대팔의 얼굴에 그늘이 져서 보이지 않았다.

“어딜 보는 거예요? 어서 제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앞에는 티라노대가리요, 옆에는 기레기와 드워프다. 답이 없다. 그냥 버티는 수밖에…….

***

인고의 30분이 지나고,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8강 2번째 시합.

헌터랭킹 72위, 최상길 대 이씨 십형제 다섯째, 이오. 나이는 둘 다 20대. 최상길은 양손에 칼을 들었다. 오른손엔 장칼, 왼손엔 단칼을 든 모습은 영락없는 이도였다.

그에 맞서는 이오의 무기는 손잡이 부분까지 강철로 된 대형 낫이었다. 저런 것까지 구비되어 있구나. 참 대단하네.

심판은 두 사람이 링 위에 선 후 힘차게 공을 울렸다.

“처음은 양보하지.”

최상길은 장칼을 거꾸로 쥐어 날이 바닥을 향하게 했다. 사실상 단칼로 싸우겠단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배려, 그러나 상대인 이오에겐 기만이었다.

“그래? 그럼 사양 않고 한 방에 끝내주지.”

이오는 기분 나쁜 미소와 함께 H력을 오른손에 실었다. 그러자 이오의 오른손이 검게 물들었다.

“재미있는 능력발현이군.”

최상길은 왼손의 단칼로 이오를 가리켰다. 이오는 검은 손으로 낫의 날 가장자리를 쓸면서 최상길에게 달려들었다.

“재미? 이래도 재미있을까?”

이오는 낫의 몸통을 높게 잡아 몸통의 아랫부분을 봉처럼 휘둘렀다. 곤봉처럼 휘둘러진 낫의 몸통은 최상길의 왼손에 명중, 무려 손에서 단칼을 놓치게 만들었다.

“아직 안 끝났어!”

이오는 낫을 한 바퀴 돌리며 손잡이를 낮게 쥐었다. 그리고 이번엔 날 부분으로 정확히 최상길의 왼팔을 벴다.

“벴어? 날이 없는 낫으로?”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아저씨는 팔짱끼며 작게 웃었다.

“어린 녀석이 잔재주를 부렸군. 제법인데?”

기기래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저씨에게 물었다.

“잔재주요?”

이젠 아저씨를 보는 기기래의 눈빛에서 약간의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저 녀석은 즉석에서 날을 간 거야. 바로 저 시커먼 오른손으로……!”

날을 갈아? 획기적인 발상이다.

“끌끌끌! 아무래도 녀석이 바로 ‘철권’인 모양이군. 예전에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는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나도 몰랐거든.”

역시 이씨 형제들은 만만치 않아! 최상길의 왼팔은 절단까지 되진 않았다.

낫의 날 끝이 팔을 찍는 순간 폭발적으로 H력을 발동, 최상길은 몸을 뒤로 살짝 빼면서 대낫의 공격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뛰어올라 이오와 거리를 벌렸다.

이오는 뒤돌아서서 의기양양하게 최상길에게 외쳤다.

“이래도 봐줄 거냐?!”

최상길은 이오를 노려보다가 곁눈질로 왼팔의 상처를 살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답했다.

“한 방 먹었군. 훌륭한 능력발현이었어.”

최상길의 왼팔에서 흐른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떨어지는 속도와 양으로 볼 때 분명 중상이었다.

시간을 끌면 과다출혈로 쓰러질 수 있다. 최상길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번엔 몸통에 꽂아 주마!”

이오는 낫을 머리 위로 든 다음 또 달려들었다. 이번엔 수직으로 휘두를 심산이었다.

“뒈져라!”

어……뒈지게 하면, 실격패일 텐데? 이오는 힘껏 낫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공격은 정확히 최상길을 반으로 갈랐다. 엇? 정정한다, 가른 것처럼 보였다.

이오의 낫이 가른 최상길은 허상, 흔히들 말하는 ‘잔상’이었다.

진짜 최상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이동, 무려 이오의 뒤로 돌아가 있었다.

“멋진 가르기였어. 맞았다면, 정말로 반 토막이 났겠는데?”

이오는 재빨리 몸을 뒤로 돌리려 했다. 그러나 최상길은 거꾸로 들고 있던 장칼을 똑바로 고쳐 쥔 후 그대로 이오의 머리를 내리쳤다.

“억!”

이오는 고개를 반쯤 돌린 채 흰자위를 드러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숫자를 셀 것도 없이 누가 봐도 확실한 기절이었다.

“승자, 최상길!”

이겼음에도 최상길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왼팔의 부상이 심각해 이긴 후 내려오면서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

“어서 응급처치를……!”

직원들이 우르르 달려와 최상길의 팔에 치료를 시작했다. 최상길은 팔에 붕대가 감기는 와중에 멀리 떨어진 루호를 빤히 쳐다봤다.

다음은 루호와 최상길의 대결.

자신보다 랭킹이 높은 상대와 싸워야 하는 루호에게는 최상길의 부상보다 희소식은 없을 것이다. 루호도 이이에게 두들겨 맞아 타박상이 많았지만, 심각하진 않았다.

***

8강 3번째 시합.

존나게 귀한, 나존귀. 그리고 이씨 십형제의 셋째, 이삼. 두 사람이 링 위에 섰다.

검은 검, 쓰는 사람에 따라 무기는 살인도구도, 무도의 정수로도 바뀐다.

이삼은 잔뜩 오만상을 찌푸리며 루호를 째려봤다. 이삼뿐만 아니라 이사도 루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긴, 형이 당하는 걸 봤으니……. 근데 너희 이오를 이긴 최상길은 왜 안 보니?

루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절대 시선을 들지 않았다. 루호야, 힘내라. 대결이란 게 원래 그런 거야.

“이봐, 어때? 생각해 봤어?”

나존귀가 뜬금없이 이삼에게 말을 걸었다. 나존귀의 표정은 평소처럼 구린내가 풀풀 나는 귀한 집 아들내미 얼굴이었다.

이삼은 왼손으로 귀를 후비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가 겨우 천만 원 받고 기권할 것 같아! 아까였다면 모를까, 지금은 4강에 올라가서 때려눕혀야 할 상대가 생겼거든?”

“뭐? 그, 그럼 이천만! 어때?”

저 자식……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심지어 이삼은 이이가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돈에 혹했던 건가. 그런 얘길 잘도 대놓고 하네? 이삼은 그다지 ‘바른 사나이’타입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

빡빡 민 스포츠머리에 두꺼운 미간 밑으로 그늘이 져서 눈가가 까맣다. 꽉 다문 입은 사각 턱에 의해 다부진 인상, 그리고 양손에는 용과 호랑이 문신이 있다.

“16강도 그런 식으로 통과했나 보지?”

이삼은 검날을 어깨에 기댄 채 씩 웃었다.

“아, 알 것 없잖아? 넌 그냥 돈 받고 링에서 내려가면 돼!”

나존귀에게 딱 하나 부러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돈’이다. 어제 투기장 배팅도 그렇고, 오늘 뇌물도 그렇고……없는 놈만 서러운 세상이다.

“말했지? 형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이오의 원수는? 심판이 공을 울리자, 나존귀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럼 삼천만!”

“아, 이 자식! 어지간히 말귀를 못 알아먹네?”

이삼은 아지랑이를 뿜어내며 천천히 나존귀를 향해 다가갔다. 험악한 인상의 이삼을 본 나존귀는 완전히 쫄아서 링의 코너까지 뒷걸음질 쳤다.

그냥 기권해라.

“포, 포…….”

나존귀는 구역질을 하듯 입을 오물거렸다.

이삼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쳤다.

“차라리 남자답게 덤벼! 그럼 한 방에 보내 주마!”

“히익!”

나존귀는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고는 제자리에 웅크려 앉아 벌벌 떨었다.

저런 녀석이 정식 헌터라니……. 그대로 1분 경과, 무기를 들지 않은 나존귀의 실격패가 되었다.

1분 동안만이라도 이삼이 나존귀를 두들겨 팰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차분히 기다린 점은 좀 의외였다.

“승자, 이삼!”

이삼은 나존귀가 놓친 검까지 집어서 양손에 하나씩 검을 쥐었다.

쌍검. 이삼은 양 어깨에 칼날을 얹더니 링 주변 잔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8강 4번째 시합.

이씨 십형제의 넷째, 이사와 정체불명의 파란양복, 블루스 김의 대결.

“블루스 김이라…….”

기기래는 펜 끝을 입에 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다행히 기기래가 수갑을 찬 손은 왼손, 거기에 오른손잡이라 내 손이 들려질 염려는 없었다.

뭐, 보나마나 블루스가 이기겠지? 하지만 다른 형제들 실력을 봤을 때 이사의 실력도 분명 엄청날 것이다. 문제는 대진운이 하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기대가 안 되는데요?”

기기래의 솔직한 발언.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분명 무서운 수를 준비해 뒀을 거예요.”

저 녀석들이 정말 그 ‘카리 강간범 이일’의 동생들이란 말이지……. 정말로 십형제가 다 모이면 엄청난 전력이 되겠는데?

공이 울리고, 블루스는 또 똑같은 수법을 썼다. 던져진 단검은 역시나 똑바로 날아갔다.

이사는 단검을 피하지 않고, 곤봉으로 받아 냈다. 단검은 쭉 날아가 이사의 곤봉에 박혔다.

“똑같잖아…….”

1분 제한. 블루스는 또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달려들었다. 이사는 야구의 4번 타자처럼 타격 자세를 취하며 블루스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타이밍 싸움!

블루스가 이사에게 주먹으로 한 방 먹이느냐, 이사가 먼저 곤봉으로 후려치느냐, 둘 중 하나다.

어차피 1분이 지나면 승패가 결정된다. 서로의 공격권에 든 두 사람은 이렇다 할 움직임 없이 가만히 멈춰 섰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내가 감각이 예민한 걸까? 두 사람의 공격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둘은 거의 동시에 곤봉과 주먹을 휘둘렀다.

블루스의 주먹이 공기의 저항을 창호지 찢듯 뚫으며 나아간다. 거기에 맞서 이사의 곤봉은 위에서 아래로 기울어진다.

양복 소매가 접혔다가 펴지는 소리, 그리고 곤봉이 바람을 가르며 우는 소리. 양쪽 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결과만 기다릴 뿐…….

소리의 끝에서 두 사람은 원하는 바에 공격을 명중했다.

“무승부?”

앗! 블루스의 목표는 처음부터 곤봉이었다. 블루스의 주먹에 맞은 곤봉은 두 동강이 나며 부러졌고, 공격 무기를 잃은 이사의 얼굴엔 패배자의 기운이 서렸다.

“H력을 담아서 휘두른 무기를 부수다니…….”

이사의 곤봉은 이이의 봉과 두께부터가 다르다. 애초에 봉은 길이에서 오는 탄력도 이용하는 한편, 곤봉은 때리는데 특화된 무기다. 단단함에선 차원이 다르다.

블루스는 이사가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움직여 이사의 목, 어깨, 옆구리를 가격해 깔끔하게 이사를 쓰러뜨렸다.

동작 사이사이의 연결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빈틈이 없었다.

“빠르네요. 검술 종목에 참가한 선수 중 제일 빨라요.”

기기래는 메모하는 것도 잊은 채 넋을 잃고 쳐다봤다.

확실히 블루스의 움직임은 루호보다 빠르다. 루호가 싸우게 된다면, 절대 거리를 좁히도록 하면 안 될 것이다.

“4강이 다 정해졌네요. 조루호, 최상길, 이삼, 블루스 김. 누가 우승할 것 같으세요?”

기기래가 수첩을 편 채 물었다. 솔직하게 지금의 내 생각을 말해 줬다.

“글쎄요? 넷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역시 블루스겠죠.”

“그럼 배팅할 때 블루스에게 거셨나요?”

배팅에 대해서 알고 있어? 날 훔쳐보고 있었나? 그럴 리가 없어.

“글쎄요? 가능성은 가능성이고, 배팅은 배팅이죠.”

수영은 완전 쪽박이지만, 검술은 상황이 180도로 다르다. 일단 4강까지는 내 예상이 적중했다. 문제는 저 넷의 등수다.

시합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준결승 첫 번째 시합.

조루호 VS 최상길.

랭킹 헌터끼리의 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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