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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12화 (112/250)

112화

112화

회오리는 하늘에서 링 위의 루호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려왔다. 이번엔 루호도 당혹스런 눈치였다.

검술의 경우 무기를 이용한단 조건하에 능력발현으로 상대를 직접 공격할 수 있다.

루호의 능력은 변신, 무기를 사용하기엔 부적절하다. 루호는 채찍을 말아서 잡은 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회오리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루호야, 피해!”

경고를 해도 루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채찍을 입에 문 후, 그대로 뛰어올랐다.

“앗?!”

루호는 그냥 뛰어오른 것이 아니었다. 링 바닥을 박차는 그 짧은 순간, 능력을 발현해 신체를 사슴의 형태로 바꾸고 있었다.

“빠르다?”

루호가 흰 사슴으로 변할 때까지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불어난 몸집은 그대로 중량으로 이어졌고, 무게와 속도는 곧 힘으로서 작용했다.

흰 사슴이 된 루호가 한 것은 목을 튕겨서 입에 문 채찍을 휘두른 것뿐.

인간의 영역을 초월, 거기에 H력으로 맹수의 영역도 초월. 그야말로 괴물의 영역이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채찍이 대기를 찢으며 경기장 전체를 울리는 굉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루호의 채찍 끝과 회오리바람이 부딪쳤다.

“말도 안 돼.”

옆에서 기기래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딱 그 말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대기를 찢은 채찍의 위력이 조금도 줄지 않은 채 회오리바람 속으로 뻗어 가 중심에 있는 이이를 정확하게 때렸다.

“억!”

물리적으로 박살이 난 회오리바람. 무방비가 된 이이는 무기력하게 높이 띄워졌다.

기기래 옆 아저씨는 박수를 쳤다.

“끌끌끌! 이이 녀석, 역시 능력발현의 영역엔 다다르지 못한 건가?”

그럼 방금 전 회오리공격이 능력발현이 아니라 그냥 H력의 응용이란 말이야? 그게 더 대단한 것 같은데!

“저런 실력에 능력발현까지 갖추게 된다면…….”

기기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빠르게 수첩을 꺼내 이이의 이름을 적었다.

기자의 감인 건가. 차라리 이대로 우리에 대한 관심이 이이에게 옮겨 가 줘도 고마울 텐데…….

루호는 사람으로 돌아와 링 위에 착지, 유유히 이이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루호의 변신은 신체 변화가 꽤 큰 데도 이상하게 옷이 찢어지거나 하진 않는다. 그것도 능력의 일부인 걸까?

“장외다!”

누군가의 외침. 이이는 아주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궤도를 계산할 때 장외가 확실했다.

“어딜!”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이이의 기합은 조금도 죽지 않았다. 이이는 손에 든 봉으로 지면을 밀었다. 그리고 그 힘의 반동으로 다시 몸을 띄워 링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떠냐!”

이이는 씩 웃으며 루호를 바라봤다. 이이의 호탕한 귀환에 관중들도 환호로 응했다.

“멋지다, 이씨 십형제!”

“이이! 조루, 호를 이겨 버려!”

“상대는 애송이 랭킹 헌터야,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루호를 응원하는 쪽도 만만치 않다.

“조루호, 저 콩진호 같은 놈을 꺾어 버려!”

“능력발현도 못하는 놈한테 쫄 거 없어!”

“엉덩이에 채찍질 좀 해 줘!”

이이는 봉을 돌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관객의 외침에 호응하듯 봉 돌리는 속도를 높이며, H력을 뿜어냈다.

“설마, 내 회오리공격을 막아 낼 줄이야. 역시 천재는 다른데?”

링 바닥에 설치된 특수 마이크, 그리고 경기장 전광판에 딸린 초대형 스피커는 두 사람의 작은 대화를 생생히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전 천재가 아닙니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전광판에 비친 루호의 얼굴은 땀투성이였다. 너무 땀을 많이 흘린다. 비정상적이다.

“어째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알고 싶냐?”

아저씨의 말에 나와 기기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저씨는 평소와 다르게 매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루호는 분명 강해졌어. 감각, 기술, 위력, 체력, 속력, 기백……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겠지. 하지만…….”

기기래의 눈치를 살피며 아저씨의 말에 집중했다.

“루호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편법을 택했어.”

“편법?”

기기래가 당장이라도 메모할 기세로 물었다.

“아마 나이트윙 때부터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라. 지금은 의지할 동료도, 치료술에 능한 나도 없어.”

나이트윙 사냥은 장기전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루호는 자신의 체질을 개의치 않고 끝까지 버텨냈다. 그래서 3분이란 제한시간이 사라진 줄 알았다.

“나이트윙 때 루호를 치료해 주면서 눈치 챘지. 역시 녀석은 천재야.”

그게 뭐지?

루호와 이이는 서로 거리를 벌린 채 무기를 휘둘렀다. 이이의 봉과 루호의 채찍이 일정거리에서 끝부분만 부딪치며 서로를 쳐냈다.

“아주 간단해. 지금 싸우고 있는 꼬라지를 자알……봐.”

자알……봐? 아저씨 말에 따라 전광판에 비친 화면, 그리고 멀리 떨어진 광경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디지털과 육안, 두 가지를 모두 보고 나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앗!”

“뭔데요?”

기기래는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깜짝 놀란 나에게 물었다. 일단 그녀를 무시. 다시 아저씨를 쳐다봤다.

“설마?”

“끌끌끌! 그래, 녀석은 필요할 때만 H력을 전개하고 있어. 조금 전 사슴으로 변신한 능력발현도 채찍을 휘두른 다음엔 바로 해제했어.”

그렇구나! H력을 계속해서 쓰지만 않으면……어느 정도 장기전이 가능한 거구나.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나서 나랑 팔씨름할 때도……. 과연 지금의 한계는 몇 분일까. 불안이 엄습했다.

마음껏 능력발동으로 강화된 이이의 봉술에 맞서 루호는 순수한 기술로 맞섰다.

봉이 찌르기를 하면 날렵하게 회피, 세로로 때리기를 하면 채찍치기로 응수, 가로로 때리기를 하면 채찍으로 휘감아 공격을 흐트러뜨렸다.

“너, 아까보다 지금이 더 편해 보이는데?”

이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서로 공방을 주고받는 와중에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눴다.

“이제야 겨우 준비운동이 돼서요.”

루호는 가뿐하다는 듯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자만? 루호가 그럴 리 없다. 아마 도발일 것이다.

“내 필살기가 준비운동이라고? 그래……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이이는 전신의 아지랑이를 끌어 모아 양팔에 집중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다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봉을 휘둘렀다.

H력이 실린 봉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루호를 노렸다. 이번엔 루호도 능력발동을 써서 이이의 공격을 피해야만 했다.

“제대로 덤벼!”

이이의 봉 끝이 루호의 복부를 제대로 찔렀다.

“루호야!”

기기래와 수갑으로 연결됐음에도 아랑곳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루호는 입이 벌어지며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제 시작이야!”

그 공격을 시작으로 이이의 난타가 시작됐다. 이이는 빗자루로 쓰레기를 쓸 듯 봉을 움직여 루호의 상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불과 30초 동안 이어진 난타에 루호의 상의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러고 보니까, 왜 루호의 옷은 변신을 해도 멀쩡한 걸까? 분명 박유화처럼 옷 위로 능력발현이 생기는 게 아니라 본인의 육체를 변신시키는 걸 텐데…….

그냥 적당히 넘어가자. 지금 급한 것은 승부의 행방이다. 난타의 마지막 공격이 루호의 뺨을 때렸다.

“윽!”

루호의 고개가 돌아가며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헉헉…….”

짧은 시간이었지만, 숨 쉬는 것조차 참으며 고속으로 움직인 탓에 이이는 거칠게 숨을 쉬었다.

루호는 난타가 끝나고 이이가 잠시 숨을 돌린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얏!”

루호는 자세를 낮추며 이이의 다리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앗?!”

난타를 위해 하체를 굳게 지탱하던 이이는 루호의 채찍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하고 말았다.

루호의 채찍이 이이의 한쪽 발목을 감았다. 루호는 양손으로 힘껏 채찍을 당겼다. 그러자 이이의 발목이 들리며, 이이가 링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루호는 이이가 몸을 추스를 시간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이이의 발목을 당겼다.

이이는 봉을 휘둘러 루호를 때리려 했지만, 누운 상태에서 제대로 된 공격이 될 리가 없었다.

“하앗!”

루호는 기합과 함께 능력발동, 몸 전체를 돌리며 중심축 삼아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에 끌려가던 이이는 원심력에 휘말려 링 가장자리로 날아갔다.

“조루호!”

이이는 H력을 내지 않고, 그냥 봉을 휘둘렀다. 당연히 H력을 쓰고 있는 루호에게 평범한 공격은 적중하지 않았다.

“크윽!”

이이가 링 가장자리에 있는 로프까지 날아가자, 루호의 채찍이 스르르 이이의 발목을 놓았다.

결국 이이는 맨 위 로프에 얼굴을 한 번 찧은 후 링 바깥으로 떨어졌다.

“하앗!”

이이는 순발력을 발휘해 봉을 아래로 뻗었다. 그리고 아까처럼 봉으로 지면을 짚어서 몸을 띄우려고 했다.

“앗!”

‘우지끈’소리와 함께 봉의 가운데가 부러지며, 그대로 이이의 안면이 지면과 충돌했다.

“끌끌끌! 이이 녀석, 봉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어.”

“네?”

기기래와 거의 동시에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봉, 채찍……긴 무기는 분명 거리상에서 우위를 점칠 수 있어.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강한 반동을 버텨야 해.”

맞는 말씀, 긴 무기일수록 잘못 사용했다간 오히려 사용자가 다칠 수 있다.

“이이 녀석은 줄곧 봉을 둔기처럼 휘둘렀어. 그래서 봉 자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훨씬 컸던 거야.”

기기래는 수첩에 뭔가를 써내려가며 아저씨에게 물었다.

“방금 전 난타 공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회오리공격’ 자체도 꽤 대단한 기술이었어. 봉이 금속 소재였으면 진작 휘었을 거야.”

머리부터 땅바닥에 떨어진 이이는 그대로 기절, 들 것에 실려 필드를 떠났다.

“이이의 봉 상태는 루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걸? 직접 몸으로 공격을 받아 내면서 눈치챘을 테지. 끌끌끌!”

루호는 직원의 간단한 응급처치 후 필드의 잔디에 앉았다.

훌륭한 시합 끝에 관객들은 멈출 줄 모르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동안 기기래의 질문세례가 이어졌다.

“지금 시합에서 보인 변신이 바로 조루호 씨의 능력발현이죠? 그렇다면 조루호 씨의 필살기인가요? 평소에도 채찍을 쓰시나요? 조루호 씨는 어떤 취향의 여성을 좋아하시죠? 이성에게 인기가 많나요? 혹시 지금 사귀는 사람이 있어요?”

아놔, 숨 좀 쉬고 말하세요. 듣는 내가 질식하겠네!

“젊은 언니, 나한텐 질문 없어?”

그 와중에 아저씨는 관심 받고 싶어서 계속 기기래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찌르는 중.

“히히히! 피, 피가 보고 싶어!”

아라는 음료 삼아 마신 맥주가 과해서 술주정 중. 여차하면 직접 필드로 난입해 한판 벌일 기세다.

“언니! 창피하게 나대지 좀 마.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아라의 옆에 앉은 아란은 열심히 언니를 말리며 진땀을 빼고 있다.

유정과 변해라는 함께 희희낙락거리며 따로 노는 중.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좀 해 주시죠? 안 그러면 수갑을 절대 풀지 않을 거예요!”

기기래는 협박이랍시고, 참 귀여운 말을 지껄인다.

“그것 참 흥미롭군요. 저도 상팔 씨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고 싶은데요?”

김대팔은 은근슬쩍 숟가락을 얹으려 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발끈 소리쳤다.

“어디서 인형옷 뒤집어 쓴 정체불명의 티라노대가리 주제에 끼어들어? 썩 물러가라! 꺼져!”

“그러는 한돈 씨야말로 정체불명의 난쟁이똥자루 아니신가요?”

“내가 왜 정체불명이야? 여기, 이 정식 헌터 자격증이 떡하니 있는데?!”

아저씨는 배낭 속에서 자격증을 꺼내 김대팔에게 들이밀었다. 그러자 김대팔의 티라노 주둥이가 입을 쫙 벌리며 인형옷 안의 진짜 두 눈이 안광을 번뜩였다.

“지금이다!”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멜론맛 우유를 입에 한 가득 머금은 후 ‘퉤엣!’하고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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