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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09화 (109/250)

109화

109화

“응?”

명치를 문지르며 정신을 추스르던 도중, 스타트라인에 선 손평화가 날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발견했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다. 정확하게 ‘날’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상팔 씨!”

손평화가 손을 흔들수록 ‘그것들’이 흔들린다. 거기에 덤으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저 자식은 뭐야? 기생오라비, 기둥서방인가?”

“딱 보니 양아치처럼 생겼는데?”

설마 내가 질투를 받는 입장이 될 줄이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좋으시겠어요?”

아란이 주먹을 들어 보였다. 아란의 뒤로 아라의 얼굴이 보이며 자매가 쌍으로 주먹을 보여 줬다.

이, 이것들이 왜 이래?

“험험.”

주변의 살기를 피해 휴대전화로 시선을 도피했다. 간만에 트튜리팟이나 확인할까?

별생각 없이 트튜리팟 앱을 실행, 그리고 계정에 로그인했다. 그러자 또 한 번 깜짝 놀랄 일이 펼쳐졌다.

[축하드립니다! 귀하는 ‘파워 업로더’로 선정되셨습니다.]

파워 업로더. 쉽게 말하면 내가 올린 영상과 반응, 그리고 그에 따른 영향력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파워 업로더가 되면 내가 올린 영상이 훨씬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최근 동영상은 랭킹 의뢰 때 찍은 것. 세 괴물의 각 동영상 조회 수가 평균 오백만 정도 된다.

“캬아, 오백만이라……!”

그러고 보니 이걸로 수익 창출도 가능하다고 하던데? 각 동영상 설정으로 들어가서 광고 삽입 버튼을 눌렀다.

“후후후, 얼마나 벌릴지 기대되는데?”

심판이 각 레인의 선수들을 소개하는 동안 느긋하게 요즘 화제의 동영상을 감상했다.

[화제의 동영상 : 헌터 랭킹 2위의 실력.]

오오! 누가 이런 귀한 영상을? 랭킹 헌터의 전투 영상은 좀처럼 드물다. 다들 자신의 실력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서로 견제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냥 2위가 아니다. 대한민국 랭킹 헌터 2위다!

“앗?”

영상에 나온 까무잡잡한 얼굴. 낯이 익다. 예전에 랭킹 모임 때 주차장에서 타로카드를 줬던 그 녀석 같은…….

“그 녀석이?”

헌터 랭킹 2위 이태한. 듣기론 다른 헌터들과 섞이지 않고 혼자 활동하길 좋아한다고 한다.

“엄청난 녀석이었구나.”

영상 속 이태한은 혼자서 무려 7급의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6급부터는 나도 아는 수가 적은데, 이건 내가 아는 괴물이다.

기가트라우. 발음은 ‘기가, 트라, 우’라고 하면 된다. 심히 콩글리쉬스러운 이름이다.

외관을 쉽게 설명하자면, 얼굴이 3개인 미노타우로스. 흔하게 볼 수 있는 소머리에 뿔 대신 똑같은 얼굴이 달려 있다.

머리는 아수라와 비슷한데, 몸은 아니다. 아수라가 얼굴 3개, 팔 6개라면 기가트라우의 얼굴 아래는 미노타우로스와 비슷하다.

‘기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대하다. 덩치만 높고 보면 드래건과 나이트윙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크다. 그러나 진짜 거대함은 ‘너비’다.

엄청난 근육으로 인해 절로 ‘근육 돼지’란 말이 튀어나오는 몸매를 갖고 있다. 단순 근육의 크기만 놓고 보면 나이트윙보다 3배는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이태한은 혈혈단신, 심지어 맨손이다!

기가트라우가 내지른 발굽 주먹이 이태한에게 날아들었다.

거대한 발굽이 지면을 강타, 땅바닥이 깨지며 흙이 유리처럼 갈라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 이미 이태한은 없었다.

이태한은 발굽이 닿기 전에 한발 먼저 점프, 거의 날다시피 높게 뛰어올라 단숨에 기가트라우의 눈높이에 도달했다.

“이게 사람 점프야?”

이태한은 손날을 만들어 그대로 기가트라우의 정면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손에서 초승달 모양의 H력이 발사되어 기가트라우의 미간으로 날아갔다.

초승달은 기가트라우의 미간에 명중! 기가트라우의 미간을 시작으로 양쪽 눈까지 베이며 수평으로 얼굴 하나가 베였다.

기가트라우의 가운데 얼굴은 눈을 찌푸리며 비명을 질렀다.

“이, 이건 H력의 물질화?”

미스터 타이거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구나!

최초의 한 방, 그것을 시작으로 이태한의 난도질이 시작됐다. 무슨 소드마스터의 검기처럼 이태한은 양손의 손날을 휘두르며 수십 개의 초승달을 날렸다.

기가트라우의 얼굴 3개는 순식간에 6개의 눈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곧 이어 전신에 날아든 초승달 참격에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보통 장르 매체 속 미노타우로스의 취급을 생각하면 참 안습이었다. 언제나, 그리고 꼴사납게 주인공에게 당하는 역할이다.

쉽게 말하면 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존재. 즉, 전투력 측정기다.

이태한의 실력으로 볼 때 기가트라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7급은 역시 7급이었다.

처음엔 눈을 다친 고통에 속수무책이던 기가트라우가 어느 순간,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다시 발굽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정확도. 이태한이 떠 있는 동안, 기가트라우의 발굽이 정말 아슬아슬하게 이태한의 주변을 때렸다.

거대한 덩치에서 뿜어지는 강력한 충격에 대기가 출렁이며 이태한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이태한은 안전하게 착지. 그러나 곧 기가트라우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녀석은 어떻게 안 것인지 이태한이 있는 곳으로 아주 정확하게 발을 찼다.

이태한이 계속해서 참격을 날렸지만, 그냥 덩치로 밀어붙이는 녀석의 막무가내에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결국 영상의 끝은 이태한의 철수.

“흠…….”

랭킹 5위인 한유리가 6급의 드래건을 생포한 것으로 봐선 10위권 내 랭킹 헌터의 전투력은 6급 이상 7급 이하로 추측된다.

영상 속 싸움은 후퇴란 결말에서 사냥 실패, 그러나 사실상 무승부라 봐도 무방하다.

“하긴, ‘6급 이상’에서부터 이미 인간이 아니지. 그것도 혼자서 저렇게…….”

“야!”

“깜짝이야!”

옆자리 한돈 아저씨의 외침에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칠 뻔했다.

“왜요?”

“영상 그만 보고 응원해! 소개 다 끝났어.”

“어, 그래요?”

얼른 앱을 종료,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역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모든 레인의 소개가 끝나고, 다들 준비 자세를 취했다.

“오!”

아저씨가 감탄사를 내며 호규를 가리켰다.

“저기 봐라! 호규 녀석, 의외로 엉덩이 라인이 섹시한데?”

“예?”

아저씨 말에 최면이 걸린 듯 유심히 전광판을 바라봤다.

음……. 엉덩이만 높고 보면……. 너무 크지도, 펑퍼짐하지도, 마르지도, 뾰족하지도 않은 이상적인 곡선. 수영복 소재의 판판함으로 인해 흑진주처럼 보인다.

“끌끌끌! 어때? 내 눈이 정확하지?”

“예…….”

젠장, 호규한테 저런 마성의 엉덩이 라인이 있을 줄이야.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공평하게 무시무시하다.

“성상품화, 호! 끌끌끌!”

아저씨의 개드립은 무시하자. 이젠 그냥 이산화탄소처럼 느껴진다.

심판이 신호총을 쏘자 선수들이 일제히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무제한 자유형’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다들 똑같은 ‘크롤영법’으로 수영을 했다.

‘자유형’이 영법 이름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자유형은 영법 이름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자유형이라고 착각하는 영법의 이름은 ‘크롤영’이다.

순위는 딱 능력 수치 순서. 안타깝게도 호규의 순위는 5등이었다.

물론 12명 중에 5위를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다만, 상위 2명이 수영모 없이 수영을 했음에도 압도적이었단 사실은 전신 수영복을 입은 호규에게 참 뼈아픈 패배다.

“끌끌끌! 열심히 응원할 틈도 없는데?”

“장거리 할 땐 있겠죠.”

장거리는 1000m. 20번 왕복이기에 지금처럼 쏜살같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단거리가 끝나고, 30분 동안 휴식 시간 후 장거리가 시작되었다.

단거리와 마찬가지로 참가 선수는 12명. 아까보다 훨씬 경직된 표정이 심정을 짐작케 했다.

“토 나오겠는데?”

아저씨는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흠, 육상 장거리 3등 하신 분치곤 이상하게 저질 체력이란 말씀이지…….

“그나저나 너 배팅한 건 어떻게 됐냐? 수영 단거리는 땄냐? 나머지 두 개는 어떻게 배팅했어?”

흠칫.

“비, 비밀인데요?”

내가 3가지 모두에 배팅한 걸 어떻게 아신 거지?

심판의 시작 신호와 함께 수영 장거리 시작. 이번엔 단거리와 달랐다.

단거리에는 12명 전원이 크롤영이었지만, 장거리에는 다른 영법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

호규의 선택은 접영.

양팔을 나비의 날개처럼 퍼덕여 상체를 띄운 다음 벌처럼 앞으로 쏘아 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격렬하게 몸을 튕겨야 하는 만큼 체력 소모가 극심한 영법이기도 하다.

접영으로 끝까지 완주가 가능할까?

한백년과 손평화는 극과 극의 선택을 했다.

한백년은 아예 잠수를 한 상태로 잠영. 인어처럼 다리를 차며 가장 빠르게 나아갔다. 보는 눈을 의심케 하는 폐활량에 경의를 보낸다.

반면 손평화는 배영. 전면을 위로 향한 채 물 위에 떠서 여유로운 모습이다. 물론 남성들의 시선은 상체에 꽂혔지만…….

장거리 시합임을 감안하면 체력을 보존할 수 있는 적절한 선택이다. 아마 저렇게 하다가 막판에 자세를 바꿔서 속도를 낼 것이다.

관객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지지 않게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호규 이겨라!”

10번째 왕복. 호규의 등수는 4위였다. 1위는 아가미 호흡이 의심되는 한백년, 2위는 의외로 한유화, 3위는 평범한 여자 헌터였다.

흠, 1위부터 3위가 다 여성이네.

여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4위인 호규를 제외하면 하위권이 죄다 남성이다. 유일하게 배영을 택한 손평화는 6위.

“호규 씨! 한 명만 제쳐요! 그러면 수상할 수 있어요!”

목표는 3등. 욕심만 버리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현 3위와 호규의 거리는 아주 근소하다.

“이런, 이런…….”

디마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디마는 언제 사 왔는지 손에 팝콘 든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누가 이길지 뻔히 보이네요.”

지금 나한테 말한 건가? 목소리 크기로 봐선 절대 혼잣말이 아니다.

“그래요? 그럼 말씀해 주실래요?”

갑자기 심술이 나서 디마에게 물었다. 그러자 디마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건 비밀이에요.”

“아, 그래요?”

이쯤 되니 슬슬 짜증이 난다. 아저씨는 그렇다고 쳐도 갑자기 튀어나온 녀석이 ‘비밀’ 타령이라니…….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디마는 내 미간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너무 그렇게 짜증 내지 마세요. 전 상팔 씨랑 친하게 지내고 싶으니까요.”

“전 아닌데요?”

당신이 남장 여자가 아닌 이상 내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하하하.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디마는 품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제 연락처예요. 나중에 둘이 만나서 커피 한잔하죠.”

내가 왜 너랑 커피를 마셔야 하냐고? 그것도 비밀이냐? 일단 예의상 명함을 받았다. 명함에는 정말, 딱 전화번호만 있었다.

명함의 본래 뜻을 생각하면 상당히 부조리하다고 볼 수 있다.

“제가 연락하면 되나요?”

평생 내가 먼저 연락할 일은 없을 거다!

“아니요.”

디마는 고개를 저으며 윙크를 날렸다.

“제가 연락드릴게요. 적당한 때에 말이죠.”

그럼 명함은 왜 준거니? 어이가 없었다.

“너 남자 좋아하냐?”

대뜸 옆자리 아저씨가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디마는 재빨리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전 그저 비즈니스를 하려는 것뿐입니다.”

“흥! 또 따귀를 때려 줄까?”

“하하하! 또 실수를 하시려고요?”

“해야 한다면, 해야지! 끌끌끌!”

앞만 보는 디마와 디마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아저씨. 참 낯선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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