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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97화 (97/250)

97화

97화

아무래도 아까 말한 노점상을 정말로 할 생각인 것 같다.

중간중간 아저씨처럼 감시의 틈새를 노려 물건을 파는 노점상도 보였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파는 물건은 대부분 짝퉁과 파손품, 게다가 어디선가 협회 직원이 나타나면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저씨는 노점상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난 저놈들과 달라. 저놈들은 불량품을 팔지만, 난 좋은 품질의 물건을 팔 거란 말이야!”

“어쨌든 불법이잖아요?”

“난 허락 안 맡아도 돼! 아니꼬우면 한번 잡아 보라지?”

확 그냥, 협회에 신고해 버려?

만원인 것은 투기장도 마찬가지. 스타디움 형태의 건축물은 이미 인산인해로 터질 지경이다.

투기장 중앙에 있는 다용도 목적의 필드. 인조 잔디로 뒤덮은 푸른 평지에는 벌써부터 거대한 우리가 운반되고 있었다.

“아직 시작 전이에요!”

지금야말로 랭킹 헌터의 신분을 이용할 때!

근처의 협회 직원을 붙잡고는 내 정식 헌터 자격증을 보여 주었다.

직원은 내 자격증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앗! 랭킹 헌터?”

후후후. 그래, 놀라워해라!

직원은 우리를 객석 가장 꼭대기에 마련된 VIP룸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협회 관계자나 아주 비싼 가격을 지불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장소였다.

룸은 3면이 벽, 필드와 닿은 1면이 통째로 유리로 된 구조였다. 내부에는 가죽 소파와 침대, 심지어 샤워실까지 딸려 있었다.

먼저 온 사람들 40여 명은 선 채로 유리벽에 바짝 붙어 있었다.

“오셨군요.”

한 사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김익조?”

덥수룩한 수염의 김익조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입과 턱을 덮은 수염이 무슨 산타클로스 같았다.

“안녕하세요.”

일단 예의상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김익조는 목례로 짤막하게 답했다.

“이리 오시죠. 이제 막 배팅을 시작할 겁니다.”

배, 팅! 바로 헌팅페스티발의 첫 행사인 ‘투괴’에 돈을 거는 것이다.

투괴란 투견이나 투계처럼 괴물의 싸움을 보고 즐기는 것을 뜻한다.

동물 학대 관련 법률로 인해 동물의 싸움이 금지된 덕에 투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중이었다.

김익조는 아저씨에게 손을 건넸다.

“오늘은 선생님께서 환장하시는 돈에 얼마든지 미치셔도 됩니다.”

김익조는 다른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저씨는 자신에게 내밀어진 김익조의 손을 향해 ‘퉤엣’ 하고 침을 뱉었다. 그러나 김익조는 아저씨의 입에서 타액이 나옴과 동시에 손을 빼서 피해 버렸다.

“이런……! 언제나 어른답지 못하시군요. 나이에 맞게 행동하셔야죠.”

“끌끌끌! 나이를 먹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무치가 허락되는 건 어린놈의 자식들뿐이거든?”

또 두 사람의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나와 루호는 서로 마주 보다가 웃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형도 배팅하실 거예요?”

루호의 질문. 일단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 통장 잔고는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이번 헌팅페스티발로 랭킹도 올리고, 잔고도 쌓는 것이 내 목적이다.

“아저씨, 부탁드려요.”

김익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저씨를 힘을 써서 억지로 떼어 냈다.

앞으로 1주일간 내 모든 지출은 한돈 아저씨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돈 좀 빌려주세요.”

‘돈’이란 말에 아저씨는 휙 고개를 돌렸다.

“끌끌끌! 대신 ‘대가’는 확실하게 받을 거다?”

“그러세요.”

아저씨가 말한 ‘대가’가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른다. 말씀하시는 뉘앙스로 볼 때 돈은 아닌데…….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우리 대화를 끊었다.

“실례합니다.”

손에 서류철을 든 협회 직원이 들어왔다.

“지금부터 20분 동안 배팅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배팅하실 분들은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참고로…….”

직원은 서류철에서 펜을 빼서 유리벽 저편을 가리켰다.

거대한 전광판. 거기에는 20분 뒤 싸우게 될 두 괴물의 이름과 괴물의 배팅 비율이 적혀 있었다.

[제1시합 : 네팔구미호 ― 5 VS 거북악어 ― 5]

같은 3급 괴물끼리의 대결. 비율도 5대 5로 똑같다. 참고로 투괴의 경우에는 배팅한 사람들 사이에서 돈이 오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팅 비율이 같아도 맞추기만 하면 무조건 건 돈의 2배를 받을 수 있다.

단, 건 돈의 10%가 수수료로 빠지기 때문에 양쪽에 돈을 절반씩 나눠서 걸면 적자를 보게 된다.

“배팅액은 무제한입니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최대 100만 원까지, 무제한은 VIP에게만 허용된 일종의 특권이다.

“일단 가볍게…….”

“천만.”

허걱! 갑자기 옆에서 어처구니없는 숫자가 나왔다.

“어? 너는…….”

나존귀. 정식 헌터 자격시험 이후 오랜만에 보는 재수 없는 얼굴이다. 녀석은 고개를 까딱이며 직원에게 마저 말했다.

“네팔구미호한테 천만. 알았지?”

“네. 나존귀 님.”

나존귀를 시작으로 한두 명씩 돈을 걸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거는 금액은 적으면 수십만, 많으면 수천만.

“그쪽 분들은 안 거시는 건가요?”

직원이 우리를 바라봤다. 이제 시합 시작까지 몇 분 남지 않은 모양이다.

슬슬 결정해야 한다. 방 안 사람들의 배팅도 반반씩으로 나눠진 상황.

여기선 내 경험을 믿고 건다!

“거북악어에 백만 원!”

내 말에 아저씨는 등에 멘 배낭을 내려놓은 후 그 안에서 현금을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알겠습니다. 김상팔 님, 백만 원.”

날 제외한 팀원들은 돈을 걸지 않았다.

변해라와 공미는 일찌감치 소파를 끌고 와서 유리벽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호규도 두 사람을 따라 소파에 앉았다.

“유정 씨와 아란 양, 그리고 아라 씨에게는 여기로 오라고 문자를 보내 놨어요. 우리도 가서 느긋하게 구경해요, 형.”

루호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너네 사귀냐? 방 잡아 줄까?”

뒤에서 아저씨의 비아냥거림이 들려온다. 다 같이 긴 소파에 앉아 시합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소파나 의자를 끌어와 유리벽을 빙 둘러쌌다.

“필요하신 음료나 간식은 전화로 주문하시면 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직원은 번호 하나를 알려 주고는 방을 나갔다. 혹시 돈을 갖고 튀는 건 아니겠지?

유리벽 아래.

필드 위 우리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객석과 완벽하게 분리된 필드에 자유의 몸이 된 두 마리의 괴물이 우뚝 섰다.

네팔구미호.

세손가락 팀과 함께 상대한 괴물. 겉모습은 팔 4개에 꼬리 9개 달린 여우가 두 다리로 서 있는 형태다. 흔히들 생각하는 ‘구미호’란 요괴와 다르게 육체파라 역삼각형의 상체가 근육으로 비대하다.

거북악어.

악어거북과 혼동하면 안 된다. 악어거북이 악어를 닮은 거북이라면, 거북악어는 거북과 악어가 섞여 있는 겉모습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거북의 등껍질을 뒤집어쓴 거대악어. 일단 덩치는 네팔구미호보다 거북악어 쪽이 더 크다.

투기장 전체에 큰 경고음이 들리며, 필드 위로 거대한 유리 막이 씌워졌다.

“시작됐군요.”

김익조가 훈훈한 목소리로 말했다. VIP룸 사람들은 그것을 시작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두 괴물은 서로를 마주 보며 포효했다.

네팔구미호는 성대에 물 찬 것 같은 괴성을, 거북악어는 폐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먼저 달려든 것은 네팔구미호. 녀석은 익숙한 자세를 취했다. 다리를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네 개의 팔을 뒤로 젖힌 다음 마구잡이 펀치!

네팔구미호의 전매특허인 주먹 난타다.

거북악어는 대수롭지 않게 등껍질 안으로 몸을 숨겼다. 양쪽 다 자신의 육체에 의존한 전법을 택한 것 같다.

네팔구미호의 펀치는 몇 분간 계속됐다. 마치 흥겹게 장구를 두드리는 사물놀이패, 연주에 심취한 난타 연주자 같았다.

강렬한 주먹의 세례에도 거북악어의 등껍질은 깨지기는커녕,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역시 전문가가 아니면 싸움은 몸무게가 순서인 건가. 주먹 난타가 통하지 않자, 네팔구미호는 주먹을 멈췄다. 그리고 상체를 숙여 4개의 팔로 몸을 지탱했다.

필살기! 의외로 빨리 결판날 것 같다. 한번 겪어 봐서 그런지 싸움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뻔히 보였다.

네팔구미호는 9개의 꼬리 끝을 빳빳하게 세워 마치 기관총처럼 9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의 순서로 앞을 향해 뻗었다.

주먹 난타가 무차별적이라면, 꼬리 기관총은 규칙적이다. 속도는 육안으로도 후자가 절대 위. 이번엔 거북악어의 등껍질이 무사하기 힘들 것이다.

9개의 꼬리가 돌아가면서 등껍질을 두드리기 시작하자마자, 거북악어의 등껍질이 앞뒤로 흔들렸다. 그 폭은 점점 커지면서 빨라졌고, 결국 거북악어의 등껍질이 뒤로 굴러가기까지 했다.

“힘내라, 거북악어!”

“네팔구미호, 너한테 이번 휴가비 걸었단 말이야! 지면 안 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VIP룸 아래 일반 객석에서 별별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음 같아선 나도 목청껏 거북악어를 응원하고 싶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방 안의 분위기가 내 입을 억지로 틀어막았다.

계속된 9단 꼬리 찌르기. 결국 거북악어가 버티다 못해 등껍질 밖으로 나왔다.

길게 튀어나온 악어의 꼬리가 네팔구미호의 머리를 강타, 묵직한 충격을 주며 뒤로 밀어냈다.

네팔구미호는 고개가 45도 꺾인 채 비틀거렸다. 겨우 한 방, 수비 일도에서 나온 그 기습 공격에 관중도 입을 다물었다.

네팔구미호는 무너진 자세를 두 다리와 아래쪽 팔로 고정, 위쪽 팔로 머리를 잡고는 다시 똑바로 맞췄다.

흔히 액션 영화에서 빠진 관절을 끼어 맞추는 접골 장면이 나오곤 하는데, 실제론 거의 불가능한 짓이다. 성공하더라도 상당한 염증과 고통이 남아 전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네팔구미호는 원래대로 된 고개를 치켜들며 거북악어와 눈싸움을 했다.

거북악어도 제대로 싸울 생각인지 이번엔 등껍질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악어 같은 주둥이를 위아래로 쫙 벌리며 네팔구미호를 위협했다.

네팔구미호는 다시 주먹 난타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첫 번째 주먹을 지르기 전, 거북악어가 빠르게 다가왔다.

벌려진 주둥이의 돌진. 멀리서도 네팔구미호가 당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그대로 주먹을 내지르는 것을 포기, 거북악어의 깨물기를 피해 뒤로 돌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더 커다란 실수였다.

덥석. 9개나 되는 꼬리는 곧 약점. 거북악어는 그중 2개를 물었다.

네팔구미호는 꼬리를 빼내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거북악어는 잽싸게 몸을 등껍질로 집어넣었고, 네팔구미호의 꼬리는 거북악어의 주둥이를 따라 함께 등껍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몇 번의 몸부림, 그리고 몇 번의 비명. 네팔구미호는 나머지 꼬리를 휘둘러 거북악어를 떼어 내려 했다. 그러나 꼬리 기관총에도 멀쩡했던 등껍질이 고작 꼬리 치기에 어떻게 될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세 좋던 네팔구미호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졌다.

괴물이더라도 일단은 생명체. 무한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팔구미호가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게 되었을 때 거북악어의 등껍질 속에서 쏙 꼬리가 빠졌다.

정확히는 빠진 것이 아니라 놓아준 것. 네팔구미호는 빠진 꼬리를 확인하며 몸을 비틀거렸다. 아무래도 체력이 방전된 모양이다.

거북악어는 다시 한번 등껍질 밖으로 몸을 빼냈고,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네팔구미호는 4개의 팔로 거북악어를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체중과 덩치로 밀어붙이는 거북악어의 힘에 자세가 무너지며 탈진, 쓰러진 뒤론 다시 일어서지 않았다.

경고음과 같은 종료 알람이 울리며 유리 막 안의 바닥에서 수면 가스가 올라왔다.

운영 측에서 사실상 승부를 판정, 두 괴물을 잠재우려 하는 것이다.

[거북악어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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