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85화
마치 둥근 아지랑이처럼 빠르게 커지는 진동!
이번엔 효과가 있었다.
나이트윙은 뒤로 밀려나며 균형을 잃었고, 우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예 넘어뜨려요!”
내 말이 들렸든, 들리지 않았든 우리는 모두 한마음이 되었다.
나이트윙의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쏠린 상황,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왼쪽으로!”
정면조는 한목소리로 말하며, 왼쪽으로 몰려가 무기로 나이트윙을 왼쪽 다리를 공격했다. 그러자 측면조는 재빨리 나이트윙의 오른쪽으로 가서 녀석의 머리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나이트윙은 양 날개를 허공에 허우적대며 우스꽝스러운 춤을 췄다.
“세바스찬!”
결정적으로 변해라가 세바스찬 위에 올라탄 채 나이트윙과 충돌.
결국 나이트윙은 왼쪽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간다!”
정면조는 쓰러지는 나이트윙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다.
녀석이 쓰러지면서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고, 녀석에게 깔린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못 일어나게 해요!”
이젠 무전기도 필요 없을 거리.
그냥 시장바닥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이트윙은 갑옷 피부로 인해 강력하지만, 그로 인해 움직임이 둔하다.
처음에 최루탄을 없앨 때도 나무 위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꼬리에 의지했던 것은 이러한 문제 때문이었다.
내려와서도 녀석의 공격은 단순했다.
그저 날개를 휘두르는 것. 드래건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다. 갑옷 피부의 강도는 드래건의 비늘보다 상위지만…….
딱 거기까지다.
“밟아!”
정면조와 측면조. 20여 명의 남녀는 우르르 나이트윙의 위로 올라갔다. 나이트윙은 허둥지둥 대며 자신의 위로 올라온 헌터들에게서 몸부림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많이 올라가도 금방 떨쳐내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은 몇몇을 제외하고 전원 H력 능력자!
신체 능력 하나만큼은 다들 올림픽 선수급이다.
“눌러!”
나이트윙의 목, 날개, 몸통, 다리는 금방 제압되었다.
거대한 녀석이 이런 식으로 제압되니까 갑자기 김이 팍 샌다.
“이제 끝장을 내야겠지?”
이번엔 양손으로 더블 무광탄을 먹여 주마! 양 손바닥에 H력을 방출. 투명한 구슬을 만들며, 나도 나이트윙의 위로 올라갔다.
크게 뛰어올라 단숨에 녀석의 목덜미에 착지, 얼굴에 있는 눈가리개를 조준했다.
“이걸 맞고도 무사한지 보자!”
눈가리개에 나 있는 작은 구멍들. 그 속으로 무광탄이 직접 들어갈 수는 없으나, 무광탄이 터지며 생기는 파동이 구멍을 통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다들 내려가요!”
열심히 총칼로 공격하던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갔다. 솔직히 나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무광탄을 쏘는 것은 처음이다.
어쩌면 쏘는 당사자인 나도 큰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너 죽고, 나 죽자.
“썅!”
모두들 대피. 나이트윙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내 양손에서 무광탄이 발사되었다.
폭발. 그리고 힘.
처음엔 좀 어리둥절했다. 무광탄을 쏜 직후 내 몸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거의 채이다시피 해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아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머리가 아찔했다. 순간적으로 숨통이 턱 막히니까, 차분하게 숨을 참을 때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누군가가 억지로 내 기도에 손을 집어넣어 양쪽 폐를 헤집는 것 같았다.
“우웩!”
충격은 위장에도 가해져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다행히 구토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으나 배 속이 엉망진창인 것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공중으로 떠올라서 좋은 것 하나는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
정면조 중 대여섯 정도가 후방조로 옮겨졌고, 측면조는 한 번 더 나이트윙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세바스찬에 의해 후방으로 운송 중인 유정이 보인다. 온몸이 피에 젖은 것으로 봐선 심각한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착지하지? 노구처럼 그냥 떨어져? 내가 노구처럼 튼튼한 사람이었나? 귓가에 들리는 바람 소리가 점점 거세진다.
공중으로 최대한 떠올랐던 몸이 이제 다시 중력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살려 줘!”
누가 나 좀 받아 줘! 물론 받는다고 그냥 척 받아 내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
실제로는 그런 상황이 되면 받은 놈이나, 받쳐진 놈이나 둘 다 죽는다. 떨어지는 사람 자체가 포탄이니까!
땅바닥이 가까이 온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땅으로 가는 거지만……. 미치겠네! 아무리 H력을 총동원해 허우적거려도 속도가 줄지 않는다.
“잘 있어라, 이 거지 같은…….”
순순히 눈을 감았다. 향년 29세. 참 더럽게 재미있는 인생이었다.
충격.
땅바닥이 푹신하게 나의 몸을 받……. 잠깐, 푹신하게? 얼굴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부드럽다!
왜 땅바닥이 폭신하지? 땅바닥이 부드럽다? 재빨리 눈을 떼서 상황을 확인.
난 땅바닥에 곤두박질친 것이 아니라 어느 흰 사슴의 위에 누워 있었다.
“루호야!”
복슬복슬한 사슴털이 이럴 때 좋을 줄이야. 이런 아름다운 자식!
거대한 흰 사슴으로 변한 루호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루호는 날 후방조가 있는 곳에 내려 주었다.
“이런, 제법 다쳤군?”
최고의 최고 팀원이 내 몸에 손을 대고는 H력을 주입했다. H력에 의한 회복력의 증대, 아저씨와는 다른 방식의 치료술이었다.
에너지 음료 한 박스를 먹은 것처럼 두 눈이 충혈되며, 몸 안의 피가 펄펄 끓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루호야, 벌써 변신하면 어떻게 해?”
흰 사슴은 씩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루호는 그렇게 말하고 나이트윙을 향해 돌진했다.
세바스찬 못지않은 속도와 움직임. 흰 사슴은 정면조를 공격 중인 나이트윙을 향해 머리의 뿔을 내밀었다.
나이트윙은 루호를 발견, 루호를 향해 날개를 내리쳤다. 똑바로 세운 내려치기!
날개의 끝이 루호의 뿔과 충돌했고, 그 여파로 질풍이 휘몰아쳤다.
나이트윙에 정신없어 하던 정면조는 그 바람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엇?”
초원이기에 멀리서도 잘 보일 수 있었다.
검은색 나무 아래 군청색 박쥐와 흰 사슴이 무려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둘의 덩치 차이는 어림잡아도 4배 이상, 그럼에도 루호의 뿔은 나이트윙의 날개를 상대로 꿋꿋이 버텨 냈다.
한돈 아저씨가 감탄을 늘어놓으며 말했다.
“역시 천재는 천재군. 제대로 마음잡고 훈련하니까, 잘만 하는데?”
“그러게요.”
아저씨가 지금 치료 중인 사람은 장마리. 그녀의 오른팔은 반만 남아 있었다. 현재 아저씨의 치료술로 잘린 단면에서 무려 ‘새살’이 돋아나는 중.
최고의 최고는 아저씨의 치료술을 넋 놓고 바라봤다. 그러다가 환자들의 독촉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치료에 전념했다.
다들 저마다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저도 왔어요.”
그때 호규가 쌍둥이 중 하나인 아미니에게 부축받으며 후방조에 도착했다. 나이트윙을 피하다가 잘못 넘어지면서 다리가 삐었다고 한다.
“호규 씨, 치료가 끝나면 함께 가요.”
비교적 가벼운 부상인 탓에 내 치료가 끝날 때쯤 우리는 함께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전신 타박상에 내장까지 부상을 입었지만, 모두 말끔히 회복. 확실히 이럴 때 보면 치료술사는 정말 사기다.
나와 호규 모두 완전 부활! 우리는 함께 나란히 서서 나이트윙을 향했다.
루호는 변신을 푼 후 유성추를 휘두르며 나이트윙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무려 혈혈단신! 그러나 능력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한계다. 사실 혼자서 저렇게 버틴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덕분에 후방조는 원활한 치료를 할 수 있었고, 나이트윙이 루호에게 정신이 팔린 동안 정면조와 측면조가 적지 않은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었다.
처음 봤을 때 광택이 나던 나이트윙의 갑옷 피부는 어느덧 수많은 흠집과 패임으로 인해 울퉁불퉁해져 있었다.
묵직한 한 방이 없어서 그렇지, 확실히 공격을 받긴 받는 것이다.
“그거 아세요? 루호는 이제 변신이 풀려도 싸울 수 있어요. 함께 수련하면서 단련했거든요.”
호규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루호와 호규는 함께 수련했었지? 루호가 저렇게 비약적으로 강해졌다면……. 호규도?
“호규 씨의 능력이 기대되네요.”
슬쩍 호규에게 기대를 했다. 루호와 함께 수련했으니 못해도 상당한 성과를 냈을 것이다. 다만 호규의 능력 특성상 끝내기 개념이 강하다 보니 마음대로 쓰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네. 저도 강해졌어요. 그…… 지속력은 아직이지만요.”
후드 아래로 드러난 호규의 두 눈에 자신감이 엿보인다. 평소에 소심하던 그 호규가 아니다.
“호규 씨 능력은 아껴 두세요. 제가 적당할 때 신호해 드릴게요.”
“네, 팀장님!”
우리는 정면조에 도착, 루호는 그때를 맞춰 뒤로 물러섰다. 루호만 바라보던 나이트윙은 그제야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 갑자기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는 가만히 서 있었다.
“뭐지? 왜 갑자기 멈춘 거야?”
최향자가 무전기를 통해 물었다. 그러나 섣불리 답하기가 애매한 상황.
이건 공격을 할 수도, 공격을 안 할 수도 없다!
“다들 함부로 다가가지 마세요. 이건…….”
나이트윙의 얼굴에 달린 눈가리개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눈가리개에 뚫린 구멍들에서 아지랑이까지 피어올랐다.
불길하다!
“전원 눈가리개를 사격!”
모두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리고 다들 내 말에 따라 눈가리개의 구멍들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아지랑이는 총알들이 부딪쳐 일어난 충격파에 밀려 사라졌지만, 여전히 나이트윙은 움직이질 않았다.
“받아라!”
주아라의 고함. 나이트윙 위에 주아라와 최향자가 서 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뛰어올라 녀석의 뒤통수를 노렸다.
정면에서 총탄이 쏟아지고 있는데, 참 대단한 깡들이다.
최향자와 주아라는 각각 대검과 쌍도끼를 같은 지점을 향해 거의 동시에 휘둘렀다.
약간 먼저 주아라의 도끼들이 뒤통수 한가운데를 적중, 그 직후 최향자의 대검이 도끼의 머리 뒤를 정확하게 때렸다! 그야말로 뒤집은 모루와 망치. 모루로 망치를 내려찍은 모양새다.
“아오!”
주아라는 신음 소리를 내며 도끼에서 손을 뗐다. 직접적으로 대검에 손이 찍히지 않아도 손잡이를 통해 적지 않은 충격이 전해졌을 것이다.
도끼는 대못처럼 나이트윙 뒤통수를 감싼 갑옷 피부 속으로 쑥 박혔다. 그러나 그럼에도 피는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합동 공격에도 갑옷을 뚫지 못한 것이다. 단단함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
무기가 없으니 주아라는 후방조로 도주. 도중 변해라와 세바스찬이 다가왔다.
“어서 타!”
또 반말이네.
“땡큐!”
주아라는 세바스찬 위에 올라 변해라의 뒤에 앉았다. 최향자는 지상에 착지 후 한 번 더 뛰어올라 주아라의 도끼를 또 때렸다.
날이 다 닳은 대검의 타격.
순수하게 힘만을 도끼로 전달, 파괴력이 도끼날을 통해 갑옷 피부를 때렸다. 그리고 그제야 도끼들 틈으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아, 아까비!”
주아라의 탄식. 저 피를 뒤집어쓰지 못해서 아쉬운 걸까?
“좋았어! 드디어 녀석이 다쳤다!”
나이트윙의 붉은 피를 보며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애타게 기다려 온 유전이 터진 것을 본 탐사 팀의 심정이랄까?
상처 크기와 피의 양으로 볼 때 나이트윙에게는 작은 피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큰 도약, 녀석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런데…….
“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