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84화
“내려온다!”
정면조의 노구가 모두에게 경고했다. 땅바닥에 내려온 나이트윙은 문서의 정보처럼 갑옷을 입은 박쥐의 모습이었다.
날기 위한 날개는 비행이 아닌 보행을 위한 수단으로써 기능하고 있고, 어둠을 보는 눈과 초음파를 감지하는 귀는 투구처럼 생긴 피부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확실히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까, 녀석이 어떤 놈인지 실감이 난다.
“정면조 준비!”
무전기에 대고 정면조에 있는 노구와 한광일에게 외쳤다.
두 사람은 내게 들은 말을 똑같이 외치며 나이트윙을 마주했다.
“제발…….”
하이퍼맨은 전기톱을 꺼내 들고, 반도의 자식들은 직사각형 모양의 방패를 들었다.
박유화는 능력을 발현해 전신을 검은색 갑옷으로 물들였고, 다움 형은 들고 있는 대형 방패를 앞으로 세웠다.
나이트윙은 날지 못하는 날개를 양옆으로 쫙 펼쳤다.
강철 같은 피부로 뒤덮인 날개는 그 끝이 칼날처럼 번뜩인다. 녀석은 저 특유의 갑옷 피부 때문에 비행은 할 수 없지만, 대신에 무지막지한 전투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
“온다!”
나이트윙은 정면에 있는 정면조를 향해 냅다 뛰어들었다.
갑작스러운 충돌. 흙먼지가 일면서 정면조와 나이트윙의 모습이 사라졌다. 고함과 비명, 그리고 포효가 한데 뒤섞이며 고막을 때렸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금 지휘자는 바로 나다!
“측면조 준비!”
무전기에 외친 소리에 2개로 갈라진 측면조가 언제든 나이트윙을 향해 뛰어들 준비를 했다.
오른쪽 조엔 검은 과부들 두 사람과 주아라 자매.
왼쪽 조엔 루호, 유정, 호규, 변해라.
양쪽 조에선 각각 주아라, 변해라가 무전기를 갖고 있었다.
“이 녀석!”
무전기로 노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직후, 흙먼지를 가르며 나이트윙의 양쪽 날개가 땅을 향해 내려찍는 것이 보였다.
날개는 그 자체가 날카로운 검이 되어 정면조를 노렸다.
“피해!”
날개가 땅을 내려치며 생긴 바람으로 인해 흙먼지는 단번에 날아갔다.
나이트윙의 날개는 그대로 땅바닥에 박혔고,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지금이야! 달라붙어!”
정면조는 우르르 달려들어 나이트윙의 날개와 배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두 부분 모두 갑옷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피해는 극히 미비, 그러나 나이트윙을 흥분시키기엔 차고 넘쳤다.
양쪽 날개가 땅에 박힌 나이트윙은 검은색 줄 같은 꼬리를 휘두르며 정면조를 위협했다. 그러나 아무리 꼬리를 채찍처럼 빠르게 휘둘러도 하이퍼맨의 전기톱에 걸리면 그대로 토막 신세. 반도의 자식들도 총, 칼을 마구잡이로 쓰며 나이트윙을 공격했다.
지금이야!
“측면조 돌격!”
나이트윙이 움직이지 못하고, 정면조에게 정신이 팔린 지금이 바로 최적의 순간!
양쪽에 대기 중이던 측면조가 동시에 나이트윙의 머리를 노렸다.
정확히는 딱딱한 투구와 몸통 갑옷 사이의 틈. 저기라면 목의 움직임을 위해 다른 부위보다 부드러울 것이다.
“달려, 세바스찬!”
변해라가 세바스찬 위에 올라타 지시를 내리자, 세바스찬은 뿔을 정면으로 세우며 미친 듯이 달렸다.
6급 괴물 대 4급 괴물.
나이트윙은 뿔개인 세바스찬이 접근하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정면조를 향해 많이 짧아진 꼬리를 휘둘렀다.
세바스찬은 풀쩍 뛰어올라 나이트윙의 투구 밑을 뿔로 찔렀다. 그러나 뿔은 피부에 막혀 살을 꿰뚫지 못했고, 나이트윙은 그것으로 측면조가 자신을 향해 오고 있단 것을 눈치챘다.
“제길!”
변해라는 산탄총을 집어 들어 세바스찬이 찌른 부위에 대고 영거리사격을 했다. 그리고 사격과 동시에 펌프를 앞뒤로 움직여 장전, 거의 빈틈이 없이 연속으로 쐈다.
그사이 능력을 발현한 장마리도 불이 붙은 머리로 빠르게 나이트윙에게 접근, 높이 뛰어올라 세바스찬의 맞은편에 착지해 변해라에 이어 산탄총을 난사했다.
“쳇!”
두 사람이 총에 장전된 총알을 전부 쏘았음에도 나이트윙의 목덜미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단순 갑옷 피부뿐만 아니라 그냥 몸뚱이 전체가 엄청난 방어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정보에 나온 것보다 훨씬 강한 개체다.
변해라와 장마리가 영거리사격을 하는 동안 나머지 측면조가 나이트윙에게 도달, 양옆에서 쉴 새 없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최향자는 대검을, 주아라는 쌍도끼를 들어 사정없이 나이트윙의 다리를 내리쳤다. 그것은 벤다는 개념보단 때린다는 개념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나이트윙은 순순히 맞고만 있을 바보가 아니었다.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날개를 땅에서 뽑아냈고, 위기를 느낀 변해라는 세바스찬과 함께 녀석에게서 떨어졌다. 장마리도 세바스찬을 따라 땅으로 내려가 최향자 옆에 섰다.
나이트윙은 양쪽 날개로 각각 오른쪽 측면조와 정면조를 공격했다.
최향자는 장마리의 등에 올라타고, 주아라 자매는 능력 발동을 통한 잽싼 동작으로 유유히 날개를 피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면조. 측면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작이 굼뜨고, 무거운 장비를 착용한 정면조는 이번엔 미처 날개를 피하지 못했다.
“으악!”
소리만 들어도 끔찍하다. 생과 사가 갈리는 신호. 누군가의 몸이 두 동강 나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익숙한 상반신, 그리고 익숙한 얼굴. 바로 다움 형이었다.
“형!”
내 뒤에 있던 문일이 헐레벌떡 다움 형에게로 뛰어갔다. 같은 팀의 죽음은 평소 이성적이던 그의 냉정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설마 다움 형이 당할 줄이야……. 나이트윙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동안 문일은 용케도 다움 형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러나 완벽하게 돌아온 사람은 문일뿐이었다. 다움 형은…….
하반신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요.”
문일은 울먹이며 다움 형의 손을 놓지 않았다. 다움 형은 이미…….
“‘그건’ 뒤에다가 적당히 내려놔. 저기 다친 사람이 있어.”
한돈 아저씨가 문일의 손에서 다움 형을 떼어 놓았다. 그러자 문일은 고함을 지르며 아저씨의 멱살을 잡았다.
“다움 형을 ‘그것’ 취급하지 마!”
아저씨는 평소와 다르게 냉정한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죽은 사람은 죽은 거야! 살릴 수 있는 사람한테 집중해!”
아저씨와 문일이 잠시 눈싸움을 하는 동안 정면조는 무참히 박살이 나고 있었다.
측면조의 공격이 별 효력이 없자, 사냥은 처음 계획했던 단기전에서 예기치 못한 장기전으로 변했다.
“가서 구해 와. 난 다리가 짧아서 못 달려.”
문일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다가 아저씨의 멱살을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말없이 정면조에게로 달려갔다.
“그래도 아주 바보는 아니군.”
아저씨는 불타는 고구마에게도 호통을 쳤다.
“너희도 가서 부상자를 구해 와! 안 그러면 확 저 박쥐 놈한테 던져 버린다?”
불타는 고구마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정면조를 향해 걸어갔다.
“저도 가서 가세할게요.”
이대로 뒤에서 느긋하게 있을 수는 없다. 원래는 진작 끝났어야 하는데……. 이건 순전히 내 판단 착오다.
“오냐. 다녀와라. 여차하면 후방조에서도 사람 추려서 지원 보내 주마.”
아저씨가…… 이렇게 든든한 분이셨나? 고개를 끄덕인 후 전력으로 달렸다.
산탄의 영거리사격에도 꿈쩍하지 않았다면……. 녀석에게 한 방 먹을 곳은 이제 하나다.
나이트윙의 얼굴 정면은 투구에 달린 눈가리개 같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 눈가리개에는 중세 기사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시야를 위한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다.
일단 무전기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알렸다.
“눈가리개 부분의 구멍을 노리세요. 녀석의 피부는 총으로 상처를 줄 수 없어요. 하지만 눈이라면 다를 거예요.”
만약 눈에도 공격이 안 통한다면 때려죽이는 방법이 있다.
때려죽이는 것은 말 그대로 계속 충격을 주어 그 손상을 누적시키는 것.
녀석은 피부가 단단한 것이지, 내장까지 단단하진 게 아니다. 설사 피부를 뚫지 못하더라도 내부를 파괴할 정도의 충격을 주면 된다.
각 팀장들은 정보를 공유, 총을 든 측면조의 총구가 눈가리개를 노렸다. 그러나 거대한 괴물이 날뛰는 가운데 작은 구멍 속으로 총알을 넣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탄환은 계속해서 눈가리개를 노렸지만 어느 것도 구멍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정면조. 녀석의 주의를 확실하게 끌어 주세요!”
정면조가 제 역할을 못 하면 공격 담당인 측면조가 제대로 싸울 수 없다.
정면조를 사지로 내모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나, 지금 우리는 여기에 놀러 온 것이 아니다.
“해 볼까?”
배낭엔 갖가지 무기가 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 가장 효과적인 공격 수단은 바로 나 자신! 정면조 바로 뒤에 서서 나이트윙을 노려봤다.
“네가 감히 다움 형을 죽여?”
냉정하게 따지자면 난 다움 형의 죽음에 미쳐 날뛸 만한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다움 형은 언제나 털털한 태도로 날 대해 주었고, 그 덕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양 손바닥을 들어 나이트윙에게 겨눴다. 그리고 H력을 방출, 손바닥에 각각 H력의 힘을 모았다.
오른손은 H력을 계속해서 응축.
왼손은 H력을 둥글게 형상화.
왼손에 광탄이 만들어지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 지부에서 만난 김대팔이란 티라노보단 느리지만……. 오른손에 만든 것은 광탄이 아닌 ‘무광탄’이다.
“받아라!”
왼손의 광탄을 나이트윙의 눈가리개에 발사했다.
광탄이 눈가리개를 때리며 폭발했다. 섬광처럼 밝은 빛이 나이트윙의 눈에 뭔가 영향을 주길 바랐다.
평범한 수준인 내 광탄으로는 눈가리개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충격은 제법 있었는지 나이트윙의 고개는 오른쪽으로 휙 돌아갔다.
녀석은 고개가 돌아간 채 몇 초간 움직이지 않았다.
“쏴!”
있는 힘을 다해 외친 한 글자. 그 소리에 측면조인 유정이 재빨리 방아쇠를 당겼다.
“와!”
드디어 총알 하나가 눈가리개 구멍을 통과, 나이트윙의 눈에 명중했다.
나이트윙은 멈춰 있던 고개를 쉴 새 없이 흔들며 고통을 드러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날개를 펄럭이며 난동을 부렸다.
“물러…… 크아아아악!”
정면조에게 지시를 하던 노구가 나이트윙의 날개에 치여 멀리 날아갔다.
높이 띄워졌다가 도로 땅을 향해 곤두박질. 쓰러진 노구는 스스로 일어서지 못했다. 다행히 그런 노구를 오박과 김미수가 발견, 후방조로 옮겨 갔다.
“이건…… 내, 내가 꿈꾸던……!”
한광일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아예 꼼짝하지도 않는 상태. 바로 옆에서 팀원이 나이트윙의 날개에 다리가 으스러지는 동안에도 그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단순 겁을 먹은 것을 뛰어넘어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하긴,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긴 하지.
왼손에 한 발 더 광탄을 준비.
오른손에서 만들던 무광탄이 완성되자, 두 개의 광탄이 발사 준비를 마쳤다.
“이것도 받아라!”
한쪽은 밝게 빛나는 광탄, 다른 쪽은 무색의 투명한 무광탄. 두 개를 동시에 나이트윙에게 조준!
이번엔 그냥 몸통을 향해 발사했다. 똑같이 쐈지만 광탄은 무광탄과 거리를 벌리며 먼저 날아가 나이트윙의 몸통 정면에서 폭발했다. 그러나 머리 때와 달리 이번에는 나이트윙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위력이 모자란 걸까?
“괜찮아. ‘위력’은 따로 가고 있으니까……!”
광탄보다 느리나 위력에선 월등한 무광탄. 미스터 블레이드를 한 방에 보낸 기술이다. 참고로 저 무광탄은 내가 스스로 개발한 나만의 필살기다.
광탄이 폭발한 부분에 무광탄이 적중. 눈에 훤히 보이는 환한 폭발 대신 보이지 않는 힘의 파동을 일으키며 주변 대기를 찌그러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