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81화
아저씨의 호통에 변해라는 눈을 흘기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숙인 얼굴 옆으로 이를 가는 게 훤히 보인다.
참, 얘도 은근 성깔 있었지?
트럭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변태신이 아닌 웬 정장 차림의 남성, 바로 협회에서 나온 감시원이었다.
세바스찬은 협회에 등록된 괴물, 변해라가 사유지에서 데리고 나올 땐 항상 이렇게 감시가 붙는 게 원칙이다.
“전 사냥이 끝나실 때까지 트럭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감시원은 트럭 화물칸을 연 후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내 예상대로라면 아마 1박 2일이 될 가능성이 큰데……. 오늘 야근 수당 듬뿍 받으시겠네?
화물칸에서 내린 세바스찬. 무려 4급의 뿔개! 그 독보적인 존재감에 다들 눈을 떼지 못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게 뭐야?”
언제 일어났는지 한광일이 부리나케 달려와 세바스찬을 구경하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을 향해 사람이 다가오자, 세바스찬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세바스찬의 양 옆구리에 난 상아 같은 부분이 길쭉하게 부풀어 오르며 전방을 향해 돋았다.
저기에 찔리면 진짜로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겠는데?
“흐이이익! 누가 이 똥개 좀 말려 줘!”
한광일은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얼굴이 되었다.
“진정해!”
변해라가 세바스찬에게 손을 뻗으며 H력을 내보냈다.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아지랑이는 허공을 날아 그대로 세바스찬에게 전달, 그것을 흡수한 세바스찬의 뿔은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저렇게 다루는 거구나.”
대단하다!
딱 그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H력의 특성 중 하나는 바로 휘발성, 즉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육체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육체 강화인 ‘능력 발동’은 H력을 가졌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광탄’과 같은 기술의 경우 상당한 훈련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광탄이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지속적으로 그 힘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변해라의 H력은 세바스찬이 완전히 진정할 때까지 계속 공급되었다. 일정한 양을 일정한 세기로 뿜는 것은 단순히 광탄을 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든든한 지원군이네요.”
루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4급의 괴물과 그 괴물을 능숙하게 다루는 변해라의 모습은 모두에게 신뢰를 주기 충분했다.
“다들 사양 말고 장비를 집어요. 남는 짐은 불타는 고구마한테 들게 할 거니까요.”
저번 쌍두하피 때 번 돈과 지금까지 모은 통장 잔고를 모두 부어 팀원 전체를 위한 장비를 구매했다.
일단 보호구, 변태신에게 수련을 받으면서 ‘좋은 방어구가 생존율을 높인다.’란 점을 몸소 체험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그냥 두꺼운 옷을 입는 정도, 하지만 오늘 사냥은 다르다. 정면조로 설명을 해 볼까?
하이퍼맨은 미식축구복처럼 생긴 보호복을 입고 있다. 덕분에 드래건 사냥 때 하이퍼맨은 가장 많이 공격당했음에도 생존율이 7할이나 됐다.
박유화는 고유의 능력발현으로 갑옷을 만들어 냈다. 그 강도는 드래건의 공격을 맞고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경도만 놓고 보면 미스터 타이거의 물질화보다 더 대단하지 않을까 싶다.
다움 형은 아예 처음부터 완전무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세 기사의 것 같은 갑옷을 입고 있다. 게다가 손에는 대형 방패. 그야말로 방어에 올인한 스타일이다.
반도의 자식들 같은 경우 잡팀의 느낌이 나긴 하지만 팀 방침 중 하나로 전원이 상의 속에 사슬 갑옷을 입고 있다. 방어력으로만 보면 네 팀 중 꼴찌지만, 그래도 안 입는 것보단 낫다.
우리 팀 중에 정면조는 없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생존은 중요한 과제다. 사냥에 성공했더라도 죽으면 실패한 것만 못한 일. 실패하더라도 살아만 있으면 다음에 또 도전할 수 있다.
“꼭 입어요!”
오직 우리 팀 7명만을 위해 제작된 특수복. 비용 문제로 보호하는 면적은 상의가 민소매 언더웨어, 하의가 사각 팬티 정도의 크기였다. 헌터 협회 홈페이지 추천으로 알게 된 가게에서 구매한 것인데, 일단 성능은 믿을 수 있다고 사장이 호언장담을 했다.
다들 옷 안에 특수복을 착용했다. 여자들은 밴 안에서 갈아입고, 남자들은 밖에서 서로 마주 본 채 허겁지겁 껴입었다.
무기는 다양하게 냉병기, 열병기를 준비했다.
전신이 30cm인 검.
톱날이 달린 군용 나이프.
시퍼렇게 날이 선 손도끼.
쟁반 크기의 원형 방패.
싱글 액션 리볼버.
반자동 소총.
싱글 배럴 산탄총.
저축해 놓은 예금은 물론, 살짝 대출까지 받게 한 구성이다.
나이트윙의 방어력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상황, 그렇기에 철저한 준비는 필수!
“무기는 괜찮습니다. 전 제 전용이 따로 있으니까요.”
루호는 쇠줄에 쇠구슬이 달린 유성추를 보여 주며 환하게 웃었다.
“그것만으로 괜찮겠어?”
“네. 세 달간 훈련한 덕에 많이 강해졌거든요.”
루호 같은 애가 자만을 할 리 없지. 그렇다면 기대해 볼까?
오늘도 변함없이 후드티를 입은 호규의 선택은 4정의 리볼버. 쌍권총으로 포즈를 잡는 모습이 참 오글거린다. 나머지 2정은 허리에 착용.
머리에 붉은 두건을 두른 유정은 소총 2정과 긴 검을 선택. 검은 허리춤에, 소총 한 정은 등에 멘 후 나머지 한 정은 끈으로 어깨에 걸었다.
삐삐 머리 격투 소녀 아란은 방패와 나이프 두 자루를 골랐다. 왼팔에 방패를 낀 후 손가락으로 방패를 두드리는 얼굴이 해맑아 보여 다행이다. 나이프는 칼집째 트레이닝복 상의주머니에 넣었다.
유사 군복을 입고 온 변해라는 소총, 산탄총, 리볼버를 각각 1정씩 선택. 솔직히 얜 무기가 없어도 되지 않나? 변해라의 경우 고른 무기를 자기가 직접 들지 않고 무려 세바스찬의 몸통에 매달았다. 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다음은 한돈 아저씨. 손으로 무기 상자를 가리키며 권했다.
“고르세요.”
“됐다.”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양했다. 아무리 후방조라도 호신용 무기 정도는 고르셔야 할 텐데? 아저씨의 도구는 언제나 똑같이 본인 몸집만 한 거대 배낭이 끝이다.
도대체 저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걸까? 저거 은근 만물상 같던데…….
마지막으로 나! 아저씨가 멘 배낭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나름대로 산악 배낭을 꽉꽉 채웠다. 내 돈 주고 산 귀한 무기인데 안 쓰고 남으면 너무 아깝다! 소총과 산탄총은 각각 1정씩 배낭 양옆에 매달고, 나머지는 배낭 안으로 들어갔다. 어깨엔 손전등 크기의 소형 캠코더를 장착, 이걸로 나이트윙 사냥 영상 촬영도 걱정 없다.
“와, 대박! 마리 언니, 이리 와 봐. 여기 무기가 엄청나게 있어!”
어느 틈에 접근한 박유화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리 팀 짐을 뒤지고 있었다.
“우리도 좀 빌려줄래? 깨끗이 쓰고 돌려줄게!”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박유화는 벌써 무기들을 헤집고 있었다.
네가 퍽이나 잘도 깨끗이 돌려주겠다? 감히 박유화 따위가, 내 피 같은 무기를……!
“실례되는 행동은 하는 게 아니야.”
뒤따라온 장마리가 얼른 박유화를 붙잡았다. 두 사람의 신장 차이는 머리 하나 이상. 언니에게 잡힌 박유화는 발버둥 쳤다.
“이렇게 많은데 좀 빌리면 어때? 어차피 같은 팀이잖아? 동료끼리 돌려쓰겠단 건데?”
이럴 때만 말이 청산유수군.
“호후호!”
앗, 이 재수 없는 웃음소리는……! 박유화와 장마리 옆으로 한광일까지 다가와 우리 팀 무기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상팔이 돈 많이 벌었나 보네? 형하고 좀 나눠 쓰자. 예전에 형한테 신세진 적 있잖아.”
“신세요?”
이 인간이 어디서 약을 팔아? 내가 언제 너한테 빚을 졌어?
“그래. 이 형이 네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줬잖아? 아무도 끼워 주지 않으려고 했던 널 내가 끼워 준 거 아니야?”
순간 뇌 깊은 곳에서 화가 뻗쳐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끝까지 도달한 분노는 머리끝을 날카롭게 세우며 몸 밖으로 뿜어졌다.
날 향해 입을 벌린 괴물과 잡아먹히지 않으려 도망치는 나.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치는 한광일.
심지어 다른 반도의 자식들 팀원이 한광일을 나무라던 것까지 생생히 기억났다.
이번엔 독수리 슛 말고, ‘총알’ 슛으로 해 볼까? 마침 총알도 많은데…….
“이건 또 어디서 온 거지들이야?”
오오, 드디어 우리 팀 밑바닥이 움직였다! 아저씨는 코를 후비며 한광일과 박유화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우! 드러워, 이 꼬질꼬질한 아저씨는 뭐야?”
한광일은 질색을 하며 아저씨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더 보란 듯이 가래를 긁어모아 한광일 앞에 ‘퉤!’ 뱉었다.
“어린놈의 자식이……!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나왔다, 꼰대의 필살기! ‘너 내가 누군 줄 알아?’다! 과연 한광일은 어떻게 받아칠 것인가?
“누군지 알아도 아저씨가 더럽고 추잡하단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좀 떨어져 주실래요? 병균이 옮을 것 같거든요? 오늘 아침은 특별히 비싼 크림을 바르고 와서 피부를 오염시키고 싶지 않네요.”
와, 세다. 역시 이 사람도 보통은 아니야. 저질 대 저질의 싸움은 언제나 흥미진진해. 내가 ‘당사자’만 아니라면……!
아저씨는 양 볼을 실룩거리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내가 바로 한돈이다!”
한돈. 그 두 글자에 한광일의 입이 쩍 벌어졌고, 두 눈은 동공이 떨렸다.
“한돈? 한돈이라면…… 그 전설의…….”
전설? 아저씨한테 전설이 있어? 왜 아무도 모르는 걸 한광일이 알고 있지?
“끌끌끌! 잘 알고 있군.”
아저씨는 만족스러운지 배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전설의…….”
전설의……?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시간 끄는 거냐? 한광일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다음에 또박또박 말했다.
“전설의…… 안, 타, 는, 쓰, 레, 기!”
“뭐라고?”
나도 모르게 육성이 터져 나왔다. 그딴 것도 전설이 되나?
“8년 전에 은퇴한 어느 노땅한테 들은 적 있어. 안 타는 쓰레기, 한돈! 당신, 동료들이 타 죽는 와중에 혼자만 살아남은 비겁자잖아? 상팔이가 아무리 질이 떨어져도 당신 같이 재수 없는 인종을 팀에 넣어 줬을 줄이야…….”
8년 전 은퇴한 분한테 들은 전설이면, 도대체 몇 년 전 일이지? 이 아저씨, 사실은 39살보다 많으신 것 아니야? 하긴, 외모만 보면 50은 넘어 보이시니까…….
“끌끌끌! 그래, 내가 바로 그 전설의 ‘안 타는 쓰레기’다! 세상 모든 걸 다 태우는 용의 숨결에 태워지고도 살아남았지! 어쩔 테냐? 해볼 테냐?”
한광일은 정말로 무슨 역병 걸린 사람을 본 듯 치를 떨며 자신의 팀에게로 뛰어갔다. 아저씨는 멀어져 가는 한광일을 보며 중지를 세웠다.
“크고 아름다운 나의 손가락이나 느껴라! 끌끌끌!”
그때 뜬금없이 다움 형이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다.
“괜찮겠냐? ‘안 타는 쓰레기’의 전설은 형도 알고 있거든. 설마 저 아저씨가 안 타는 쓰레기일 줄이야…….”
다움 형도 알고 있었어? 더욱 놀라며 형에게 물었다.
“뭐 아는 것 좀 있으세요?”
말해요. 그러려고 온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