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78화 (78/250)

78화

78화

“협회에 김상팔 씨를 팀장으로 한 ‘헌한발’이란 팀이 정식 등록되어 있더군요. 무슨 줄임말인 것 같은데…… 무슨 뜻이죠?”

헌, 한, 발.

이런 망할 아저씨가! 헌터협회, 한국 지부장은, 발기부전! 아오! 아, 아오! 당장 가서 팀이름 바꿔야지!

“그, 글쎄요……?”

김익조는 웨이터로부터 블랙카드를 돌려받은 후 레스토랑을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그리고 내게 함께 타자며 손짓했다.

엘리베이터는 레스토랑 전용이라 다른 층은 서지 않은 채 쭉 내려갔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은 잘 지내십니까? 쌍두하피 건으로 제법 버셨을 것 같은데요?”

“네. 그냥, 뭐…….”

아저씨와 김익조 사이를 물어보고 싶지만, 왠지 그러기가 겁난다. 괜히 말 잘못 했다가 아저씨 기억을 훔쳐본 것을 들켰다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주차장에서 멈췄다.

김익조는 주차장에 대기 중이던 검은색 외제차 뒷자리에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을 조심하십시오.”

“네?”

조심하라고?

“저기, 뭘……?”

김익조는 그대로 차 문을 닫고 멀리 떠나갔다.

이런 망할, 썅!

말은 끝까지 하고 가야지! 너만 말해! 네 입만 입이고, 내 입만 주둥이냐?

“그러니까…… 그 망할 김익조 놈이 감히 나한테 일을 시켰다?”

한돈 아저씨는 ‘김익조’란 이름에 일단 화부터 냈다.

예상한 반응. 그러나 정작 화를 낼 사람은 나다!

“아저씨가 아니라 우리한테요! 그건 그렇고…….”

김익조에게 의뢰를 받은 다음 날, 우리 팀은 한 번 더 카페에 모였다.

난 김익조에게 들은 내용을 모두에게 전했고, 팀원들은 어제의 나처럼 매우 놀라워했다. 다만 여기서 미스터 버드에 관한 것은 최소한으로만 이야기했다.

너무 많이 떠들면 김익조가 싫어할 것이 분명하다.

“정말로 하는 거예요?”

호규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호규의 경우 예전 동료들 일도 있고, 쌍두하피 때 일도 문제다.

“피하기만 해선 해결되지 않아요. 이번 사냥이 호규 씨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지 몰라요.”

“네…….”

호규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혹시 내가 하기 싫은 사람한테 억지로 권한 건가?

“연합할 팀은 어떻게 모으실 거죠?”

별다른 의견이 없자, 루호가 손을 들며 말했다.

역시 루호! 이야기가 빠르다.

“일단…….”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최향자. 하지만 검은 과부들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진다.

미스터 버드란 놈이 최향자와 악연이 있다면…….

과연 말을 하는 게 옳은 걸까,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게 옳은 걸까?

아직 그 부분에 확신이 없다.

“일단 김익조가 말하길…… 협회에서 인력이 10명 파견 나온다고 했어.”

우리 팀 7명하고 협회 측 10명을 더하면 17명. 드래건 사냥 때가 30명이었으니까, 최소 13명 이상은 더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냥이 아니라 체포에 주력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가?”

루호의 질문으로 숫자는 원점이라 할 수 있는 7명으로 낮아졌다. 어디서 23명을 구하지? 인터넷 구인게시판에 올릴까? 하지만 이런 일을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건 좀……. 크으으윽! 역시 검은 과부들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혹시 다른 팀하고 연락하고 지내시는 분……?”

내심 루호나 유정 정도면 아는 팀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지만…….

하하하. 기대란 원래 배신당해야 제맛이다.

아란이나 호규는 당연히 없을 테고, 아저씨한테 의지……하기 싫어!

“끌끌끌! 뭣하면 내가 아는 사람 좀 부를까? 그 대신…….”

아저씨가 음흉한 눈길을 띄운다.

저 눈은 분명 돈 달라는 눈이다! 크윽, 왠지 9억 받으면 한 3억은 그냥 날로 드실 것 같은데…….

일단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자.

“다른 사람 의견부터 듣고요.”

제발! 누구라도 좋아. 아저씨 인맥 말고, 다른 사람! 간절한 눈빛으로 팀원들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저기…….”

아란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언니한테 연락해 볼까요?”

언니? 앗! 주아라가 있었구나! 내가 왜 세손가락을 잊고 있었지?

걔네랑 일하다가 캠코더 잃어버려서……. 으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땐 정말 죽고 싶었지. 나름 사활을 건 프로젝트였는데…….

“제가 직접 연락할게요. 아라 번호는 핸드폰에 있거든요.”

당장 주아라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주아라의 목소리. 우와,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순간 목 뒤로 소름이 쫙 돋는다.

얘, 설마 또 괴물 피 뒤집어쓰고 있나?

“어. 나 상팔인데, 잘 지냈어?”

주아라는 대뜸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팔아. 이러면 곤란해.”

뭐가? 나 아직 본론은…….

“난 우리가 그냥 좋은 친구 사이로 지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지?”

엥? 아니, 이보세요. 우리가 언제 그런 사이였다고 이러세요!

“그, 그게 아니라…… 같이 사냥…….”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었고, 주아라는 그냥 자기 할 말만 계속했다.

“앞으로는 이렇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끊을게! 아 참, 내 동생 잘 부탁해.”

이 정신 나간 계집애가 그냥 전화를 끊어 버렸다. 크으으윽! 도대체 얜 뭔 생각으로……! 아오, 화가 난다! 속이 아주 그냥 부글부글 끓어요!

화를 억누르기 위해 이를 갈았다.

이 가는 소리에 팀원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저기…… 역시 제가 할까요?”

아란이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후우, 그냥 아란한테 맡기는 게 속 편하겠네.

“부탁해요.”

어차피 뚜껑 열린 김에 검은 과부들 쪽에도 연락하기로 했다. 차마 전화 걸 용기는 없으니, 가볍게 문자.

내용은 대충 ‘좋은 의뢰가 들어왔는데 도와주시겠어요?’라고 보냈다.

더 공손하게 보낼까 고민이 됐지만, 최향자의 성격상 너무 공손하면 그것대로 화를 낼 것이 뻔했다.

한편, 아란은 주아라와 소위 ‘자매 대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언니보다 어리거든? 그랬으니까 양보해 줘야지. 그러니까 양보해 주라고!”

쟨 또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거야? 같이 사냥하자고 물어보면 끝날 일을…….

아란은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 내가 싸우면, 싸우면! 언니가 때리니까, 양보해 주라고 하지! 그래! 양보해 줄 일이다! 어!”

뭔 소리야? 뭘 양보해?

“우리 팀장님은 언니 같은 타입 안 좋아해! 우리 팀장님은 취향이 독특하신 분이야! 알았어? 우리 팀장님은 변태라고! 언니 안 좋아한다고!”

이보세요! 내가 주아라 안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변태로 몰면 어떻게 해?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다들 하나같이 얼굴에 ‘저것들은 뭐야?’라고 쓰여 있다.

“그래! 팀장님 변태야. 응, 응! 진짜라니까!”

아니라니까! 왜 사람을…….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 얼굴에 환한 꽃이 폈다. 그렇게 좋으세요? 제가 욕먹는 게 그렇게 좋으시냐고요!

어찌어찌 세손가락과의 연합은 성공. 그러나 그 대가로 내 자존심은 갈가리 찢겼다.

때마침 최향자에게서 답장이 도착.

다행히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그럼 이제 우리 팀 7명, 세손가락 3명, 검은 과부들 3명. 다해서 13명…….”

혼잣말에 가까운 푸념. 그러자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아무도 눈치 못 챈 것 같아서, 일단 내가 말하는 거야! 왜 우리가 7명이지? 너, 나, 조루, 호구, 유정, 아란을 합하면 6명인데? 끌끌끌.”

다 아시면서 일부러 묻는 질문. 하지만 적절하다. 어차피 말할 것이라면 말이 나온 김에 하는 것이 낫다.

“변해라라고, 일종의 임시 멤버인데……. 이번 사냥에 참가하기로 했어. 사정이 있어서 오늘은 오지 못했지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연합 사냥에선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는 편이 이득이다.

“검은 곰이라면 괜찮은 전력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성격이 거칠어서 그렇지, 발은 꽤 넓은 분이거든요.”

유정의 말에 뭔가 머릿속에서 번뜩임이 스쳐 갔다.

그래! 드래건 사냥 때 연합했던 팀들이 있었지!

급하게 최향자에게 추가로 문자를 보냈다. 이번엔 혼날 각오를 하며 염치없는 부탁을 강행했다.

문자에는 ‘드래건 사냥 때 함께 싸웠던 분들을 부르고 싶습니다. 힘을 빌려주십시오.’라고 썼다.

이번엔 금방 답장이 왔다. 그리고 염려한 대로 답장엔 ‘뒤질래?’라고 쓰여 있었다.

“하하하. 갑자기 목이 마르네.”

내 앞에 놓여 있는 아이스커피를 집어 단숨에 원 샷! 그래도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최향자 설득을 시도했다.

이번엔 문자에 ‘붕대남에 대한 정보 있음’이라고 써서 전송. 보내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받기 싫다. 이거 받자마자 뭔가 엄청난…….

“하아…….”

일단 받는다. 안 받으면 진짜로 죽을 테니까! 최근엔 좀 친해진 것 같지만,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김상팔.”

낮고, 어두운 음성. 벌써 열이 한 번 뻗친 다음에 숙연해진 상태인 것 같다.

“넵.”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됩니다.

“너, 어디까지 알고 있어? 뭘 알고 그딴 문자를 보낸 거야?”

“누님이 미스터 버드한테 원한이 있단 것밖에 몰라요.”

잠시 스피커 저편이 조용해졌다.

혹시 내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건가? 만약 그렇다면 어쩌지?

오들오들 떨면서 최향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좋아. 알았어.”

분노를 억누르는 목소리. 저 멀리서 날 잘근잘근 씹고 싶어 하는 최향자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덤으로 날 조롱하고 싶어 안달이 난 박유화의 얼굴도!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그리고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하이퍼맨, 최고의최고 가능.]

“좋았어!”

누님! 존경합니다. 무슨 도깨비방망이도 아니고……이렇게 뚝딱뚝딱 나오다니……!

역시 일처리 하나는 일류다.

최향자에게 감동한 사이, 루호가 뭔가를 생각해 냈다.

“검은 과부들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 건데…… 불타는 고구마는 어떨까요?”

“그 녀석들?”

음…….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일단 개과천선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일단 불러 볼까? 괜히 불러서 사고라도 치면 안 부른 것만 못한데……. 게다가 전력으로서 쓸모가 있을까?

“좋은 생각이야!”

한돈 아저씨의 찬성 발언. 아저씨가 간만에 루호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흠, 아저씨는 그냥 불타는 고구마 녀석들을 괴롭히고 싶으신 것 같은데……. 뭐, 최향자가 같이 있으면 함부로 이상한 짓은 못할 것이다.

아저씨든, 불타는 고구마든…… 둘 다 말썽의 원인이 되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요즘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한데……. 조만간 종합검진이라도 받아 봐야겠다.

“그럼 어디 보자. 대충 숫자가 되는 것 같은데?”

우리 팀, 검은 과부들, 하이퍼맨, 최고의 최고, 불타는 고구마, 세손가락.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미스터 버드인지, 뭔지 각오해라! 그놈의 붕대를 모두 풀어서 알몸으로 만들어 주마.

“흠…… 혹시 모르니까…….”

만약을 대비해 지원군 개념으로 문자 서너 개를 전송시켰다. 이 중 하나만 성공해도 큰 전력이 될 것이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정말 작은 티끌 하나 안 남기고 총동원한 인맥.

이제 모든 인원이 모였다.

상대는 6급의 괴물, 거기다 플레잉의 간부.

김익조가 준 서류에 지정된 기한은 2주. 그동안 광탄 연습만 열심히 했으니, 남은 시간 동안은 내 능력발현에 집중해 볼 생각이다.

“그런데…… 말이지.”

훈련하니까,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다.

“다들 훈련은 잘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