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76화 (76/250)

76화

76화

어쩔 테냐! 또 아령을 던질 거냐?

“후후후.”

응? 변해라가 굉장히 기분 나쁘게 쪼갠다. 그렇다. 이것은 ‘미소’나 ‘웃음’이 아니다.

지금 쟤, 쪼개고 있다?

“세바스찬!”

이런 세바……! 세바스찬이라면 뿔개?

“자, 잠까…….”

한발 늦었다.

변해라의 호출에 거대한 물체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4급의 괴물 세바스찬. 녀석이 변해라에게 고개를 내밀며 날 째려봤다.

“잠깐! 쟤는 ‘규격 외’잖아?”

이건 반칙이잖아? 이름이 뿔‘개’인 것이지, 진짜 개도 아닌데…….

망했다.

망할 세바스찬은 나와 변해라를 번갈아 본 후 단번에 모든 것을 이해했다.

녀석은 머리가 좋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괴물이 살육이란 범위 내에서 프로페셔널하단 점이 녀석에게도 해당된다면…….

나에게 승산은 없다. 게다가 H력도 거의 소모해 버린 상태.

“공격!”

세바스찬은 다른 개들과 달리 변해라의 명령에 즉각 달려들지 않았다.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렁설렁 걸어 내 주변을 돌았다.

진짜로 사냥당하는 느낌이다.

“젠장…….”

특수복을 벗은 의외성, 그리고 개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대범함.

그것이 내가 찾은 해법, 즉 ‘발상의 전환’이었다.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남은 H력은 딱 따귀 한 방.

짜내고 짜낸 H력이 오른손에 머문다. 손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눈앞의 뿔개. 양쪽 모두 참 사람 미치게 만든다.

녀석은 괴물, 사정 봐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전력으로 부딪쳐도 모자랄 것이다.

그렇다면…… 필살기를 쓰자!

오른손에 모인 H력을 압축, 구슬 모양을 형성하게 하며 크기를 작게 줄였다.

더, 더, 더……!

더 작게, 더 강하게, 더 단단하게!

처음엔 유리구슬만 했던 무광탄은 BB탄처럼 작아졌다.

포기하지 마!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한창 H력을 응축하던 중 돌연 세바스찬이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아직 무광탄을 쏠 때가 아니기에 일단 몸을 날려 옆으로 굴렀다.

“아이고……!”

이빨과 발톱이 번갈아 가며 내 옆구리를 노린다. 이 자식, 진심으로 날 죽일 셈인가?

몸을 일으킬 새도 없이 계속 몸을 굴렸다.

내 몸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내 주변으로 몰아치는 살인적인 공격을 피하는 것이 고작. 그나마 오른손에 쥔 무광탄이 거의 다 완성되어 다행이다.

구르기를 잠시 주춤하며 슬쩍 고개를 돌려 세바스찬을 바라봤다. 그리고 후회했다.

녀석의 주둥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물리면 죽는다!

누운 상태에서 왼쪽 무릎을 45도로 들어, 왼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허리도 30도 정도 돌렸다.

상체 오른쪽은 어깨, 팔꿈치, 손목을 순서대로 가동!

오른손을 녀석의 주둥이를 향해 뻗었다. 1초, 혹은 10분의 1초를 아끼기 위한 몸부림.

녀석의 대못 같은 이빨이 이마에 닿았다!

“이거나 먹어!”

‘쾅’이나 ‘쿵’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건 그런 차원의 공격이 아니다.

손바닥에서 나온 충격은 세바스찬의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폭발.

무광탄이 터지면서 생긴 공기의 진동이 내 오른손과 얼굴, 그리고 세바스찬의 입안을 때렸다.

실핏줄이 터지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오른손은 뒤로 쭉 밀리며 어깨가 빠졌다. 하지만 내가 입은 피해는 세바스찬이 당한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녀석의 입안은 보기 좋게 터지며 폭죽처럼 피를 뿜었다.

완전히 입안이 헌 것이다.

용기와 끈기를 가지고 당당히 맞선 결과였다.

세바스찬은 신체적인 부분 못지않게 정신적인 부분에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녀석은 아파하기보단 뭔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아버지한테도 맞은 적 없는데!’라고 하는 것 같다.

“하아…….”

더 이상은 힘들다.

체력과 H력의 고갈, 거기에 한쪽 팔도 부상. 손이 붙어 있는 게 기적이다. 오른손가락 5개 모두 끝이 터져서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참 묘하다.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

“크윽……!”

아쉬움 때문인지 좀처럼 ‘포기’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가 갈리고, 속이 끓는다.

“끌끌끌! 바로 그거야!”

응?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저씨의 등장에 세바스찬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하긴, 지친 나보단 활기찬 아저씨 쪽이 더 위협적일 것이다.

“잘했다, 상팔아. 어때? 이제 좀 감이 잡히냐?”

감? 무슨 감?

“발상의 전환…… 그러니까, 자유로운 발상인 거죠?”

생각해 보면 그동안은 너무 타인의 능력이나 무기에 의존했다.

미스터 타이거와 김대팔.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두 능력자.

두 사람 모두 강했고, 존재감이 남달랐다. 그러나 결정적인 공통점은 바로 능력 자체에 의존하지 않고, 획기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켰단 점이었다.

미스터 타이거의 물질화와 김대팔의 광탄.

두 가지 모두 상성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방법이다.

반면에 난…… H력을 흡수한다는 특성 때문에 그런 쪽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량의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부턴 자신의 능력을 믿고 주저하지 않겠어!

“아저씨! 저…… 광탄을 알려 주세요!”

아저씨는 내 부탁에 배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야 겨우 다음 단계로 나아갔군.”

그날 밤.

조련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간만에 변해라가 하는 밥이 아닌 정상적인 음식을 보자, 다들 흥분에 젖어 몸을 떨었다.

고기는 내가 기꺼이 구웠다.

아저씨는 익지도 않은 날고기를 먹으려다가 계속 저지당했다.

“고기다! 진짜 음식이야! 매일 보던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 진짜야!”

변태신은 아저씨를 말리며 딸의 눈치도 살폈다.

“하하하! 아, 아빠는…… 우, 우리 딸이 만든 게 아니라서…… 조, 조금 서운한데? 하하…… 하…….”

변태신 아저씨. 동공이 떨리는 게 훤히 보인다.

변해라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기를 먹었다.

분위기로 봐선 말 걸었다간 한 대 맞을 것 같다.

고기 냄새를 맡아서인지 개들이 들어간 축사가 들썩였다. 다행히 내가 때린 개들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어디 가?”

갑자기 고기를 먹던 변해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다 먹었나?

사무소로 들어가는 변해라를 보며 변태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할 겁니다. 세바스찬을 다루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든지, 말든지…….”

아저씨는 고기를 맹공격. 난 집게를 내려놓고 변태신에게 물었다.

“괴물을 다루는 게 능력인 거죠?”

“그래. 나도 그랬고, 해라도 그렇지. 하지만 주기적으로 H력을 공급해 줘야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어. H력을 대가로 일종의 계약을 맺는 거야. 강한 괴물일수록 더욱 양질의 H력을 원하거든.”

오호. 상당히 재미있는 능력인데?

“그럼 아저씨는 어떤 괴물을 다뤄 보셨어요?”

변태신은 어깨를 으쓱이며 슬며시 한돈 아저씨를 바라봤다.

“말해 줘도 되나요?”

“해. 입은 꽤 무거워.”

아저씨의 말에 그제야 변태신은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왕년엔 7급까지 다뤄 봤지. 하하하!”

“예?”

뭐라고라고라! 7급? 내가 본 괴물 중 가장 강한 게 6급인 드래건이었는데…….

7급이면…… 변태신 아저씨…… 은근 거물이었잖아! 7급을 거느릴 정도인데도 내가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은퇴하신 지 꽤 오래됐단 뜻. 이른 나이에 그만두신 모양이다.

“어떤 괴물인데요?”

7급 중에 사람이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게 있나? 대부분 대형급이라 개인이 어찌할 수 없을 텐데?

“끌끌끌! 놀라지 마라.”

갑자기 한돈 아저씨가 입을 연다.

참고로 불판 위의 고기는 전멸.

“바로 7급의…….”

“하하하! 거기까지! 사실 농담이야. 사람이 어떻게 7급을 다루겠어?”

변태신은 황급히 손을 뻗어 아저씨의 입을 막았다. 그런데 아저씨 입을 막는다는 것이 코까지 막은 것인지 한돈 아저씨 얼굴이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저기…….”

잘하면 아예 보내 버리시겠는데요?

변태신은 아저씨의 입을 꽉 쥐면서 말을 맺었다.

“뭐, 그런 의미에서 해라한테는 조금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세바스찬 정도면 준수한 편이긴 한데…… 뭐랄까, 스스로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아. 자네가 오늘 보여 준 모습에 충격받은 걸 테지.”

“그래요?”

삼류가 세 달이라면서요? 저 세 달 넘었는뎁쇼? 저 같은 사람보고 자격지심이 들면…… 음…… 많이 심각한 건데요?

얼굴이 사과처럼 달아오른 아저씨는 온 힘을 다해 변태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고, 마음껏 산소를 들이마신 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날 죽일 셈이야! 너 이 자식, 은혜를 원수로 갚아?”

변태신은 아저씨가 뭐라 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잠시 날 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아저씨는 내 귀에 입을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다른 녀석들은 네가 깨달은 지점부터 예시로 든 시간이 걸려. 그러니까 삼류의 세 달이란 것은 ‘특수복을 벗는다.’란 깨달음을 얻은 다음부터 걸린 개념이지.”

그 말은……?

“끌끌끌! 의외로 알면서도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

아저씨는 내 뒤통수를 퍽 하고 때리며 웃었다.

“너무 자만하지 마! 결국엔 내가 알려 준 거잖아?”

이 아저씨…… 정말 정체가 뭐야? 처음에도 미심쩍었지만, 이젠 정말로 한돈 아저씨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H력을 흡수하면서 몰래 기억을 엿보긴 했지만…… 모두 먹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드시기만 할 거면 차라리 먹방을 하세요! 대박 날 것 같은데?

응?

변태신의 눈빛이 아까보다 선명해졌다.

날 뚫어져라 보는 눈동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안 좋은 감각은 항상 들어맞는다.

참, 엿 같은 예감이다.

“상팔이! 부탁이 하나 있네!”

변태신은 돌연 내 손을 잡으며 부담스러운 얼굴을 들이댔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이러지 마세요!’라고 외치며 호신술을 사용할 뻔했다.

“무, 무슨 부탁이요?”

저 돈 없는데요? 세 달 숙박비랑 한돈 아저씨 용돈 드리면 개털이거든요?

변태신의 부탁.

예상이 가긴 했는데, 막상 들으니까 갑자기 또 걱정이 몰려왔다.

“오랜만이군요.”

김익조와의 커피 한 잔. 참으로 자리가 불편하다.

최고급 호텔의 최상층 레스토랑의 최고가 커피. 향기만 맡아도 몇만 원은 가볍게 내야 할 것 같다.

“아, 예.”

일대일.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물론 계산은 김익조가 할 것이다. 난 미치지 않는 이상 커피 마시러 여기까지 오지 않는다.

아저씨라도 부를까 했지만, 괜히 일만 더 키울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김익조가 먼저 ‘단둘’이 만나자고 제안한 일이었다.

한국 지부의 실세인 사람이 이렇게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을 보면, 뭔가 중요한 일일 게 분명하다.

김익조는 커피의 향을 만끽하면서 바깥 경치를 바라봤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여기서 보면 인도의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이지요. 참으로 하찮게 보여요.”

‘인간이 쓰레기처럼 떨어진다!’ 같은 소리를 하고 싶은 건가? 일단 적당히 대답한다.

“그렇군요.”

“이렇게 높은 건물을 짓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자원이 들어갔을까요? 그런 곳을 우리는 이렇게 편안히 앉아 즐기고 있습니다. 정작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은 이곳에 올 형편이 못 되겠지요. 참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속을 알 수 없는 부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