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73화
아저씨는 의자 뒤에 내려놓은 배낭에서 또 다른 쪽지 하나를 꺼냈다.
“이번엔 제대로 된 거겠죠?”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싫다고 한 그 팀 이름도 나름 진지하게 권한 거야.”
“아…… 그러세요?”
일단 쪽지를 받았다.
이번엔 사람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주소가 적혀 있었다.
“누구죠?”
아저씨는 내 손에 쥐어진 쪽지를 도로 쏙 빼 가고는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우리가 방문할 사람. 녀석이 널 단련시켜 줄 거다. 그쪽으로 도가 텄거든.”
“훈련이요?”
“응. 조련.”
조련?
내가 알기로 조련은 사람한테 쓰는 단어가 아닐 텐데?
“훈련이 아니라 조련이라고요?”
“그래. 가 보면 알 거야.”
아저씨의 웃음이 심히 마음에 걸린다. 의미심장하다기보단…… 어딘가 꺼림칙하다.
이러다가 나중에 어딘가로 팔려 가는 거 아니야?
며칠 후, 네오 부산 변두리에 있는 시골 마을.
버스에서 내린 후 아저씨의 콧노래와 축사의 악취에 감각을 공격당하는 중이다.
화창한 날씨와 푸른 산과 들의 경치가 없었다면 끔찍했을 것이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의 이름은 변태신.
우리 쪽에도 김상팔에 한돈, 거기에 조루호와 호규까지 있지만, 변태신이라는 단어는 너무 강력하다.
“하하하…….”
자조 섞인 웃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조련?
21세기에 사람을 노예나 가축으로 취급하는 짓거리가 아직 암암리에 남아 있단 것은 알고 있지만, 설마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저씨는 내 등을 탁 치면서 쾌활하게 말했다.
“그냥 편하게 원양어선 탄 참치 잡이 노예 됐다고 생각해.”
하하하. 미치겠네. 차라리 불 난 집에다가 유조차를 주차하세요.
“사람이길 포기하면 다른 경치를 볼 수 있을 게다. 내가 보장하지!”
“전제가 너무 과하지만…… 일단, 믿어 드릴게요.”
시골 마을에서도 가장자리, 교외 지역의 교외.
우리의 목적지는 가히 첩첩산중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산과 산 사이에 위치한 평지, 앞에 강까지 흐르니 그야말로 ‘배산임수’가 따로 없었다.
농장.
정확히는 전문적으로 개를 키워 분양하는 개 농장이었다. 농장 입구에는 개의 순수혈통 증명과 각종의 숫자가 상세히 적힌 푯말이 있었다.
“개 농장이잖아요?”
“끌끌끌. 여기가 바로 숨겨진 명당이지. 들어가자!”
철조망으로 둥글게 싸인 농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농장 한가운데 풀밭을 뛰어다니는 개 떼였다. 개 떼는 순식간에 우리에게 접근, 우리가 어떻게 할 틈도 없이 빙 둘러쌌다.
“아이고, 개자식들이 이렇게까지 반겨 줄 줄이야. 끌끌끌!”
개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헌터로서의 경험으로 예상하건대, 이건 노골적인 적대가 확실하다.
“위험한 것 같은데요? 주인을 불러야 할 것 같아요.”
일단 몸을 낮추며 개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여차하면 싸울 수밖에!
“상하게 하면 안 돼. 그러면 우리가 이 녀석들 몸값을 내야 하거든. 그런데 여기 있는 녀석들은 다들 ‘억’ 소리 나는 귀하신 품종이야. 파산하기 싫으면 정신 바짝 차려!”
목숨보다 은행 계좌를 더 걱정해야 합니까? 그러고 보니 우릴 포위한 개들의 생김새가 하나같이 심상치 않다. 개에 대해서 그리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은 완전 처음 보는 종이다.
“조용!”
농장 입구와 가까운 컨테이너에서 나온 남성의 한마디. 개들은 집단 최면에 걸린 듯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훈련은 잘된 아이들인데, 외부인에게는 좀 민감합니다.”
남성은 개 떼에 가까이 와 손으로 허공을 저었다.
“흩어져!”
개들은 ‘낑낑’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개들의 움직임은 도망치는 패잔병보단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예병에 가까웠다.
“오랜만입니다, 한돈 아저씨.”
아저씨 또래의 남성이 손을 내밀었다.
“끌끌끌. 그래,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변태신!”
아저씨와 악수를 나누는 중년 남성.
이 사람이 바로 오늘 우리가 만날 변태신이었다.
한돈 아저씨와 비슷한 연령으로 보이는데, 왜 이 사람도 아저씨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존대하지?
“아저씨 덕분이죠. 자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식사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죠?”
“당연하지!”
아저씨는 변태신의 뒤를 따라 컨테이너로 향했다.
잠시 두 사람의 인사로 얼이 빠진 사이 두 사람과 거리가 생겼고, 변태신이 한눈을 판 틈을 타 개들이 다시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슬쩍슬쩍 변태신의 눈치를 보며 움직이는 모습이 흡사 사람의 그것과 비슷하다.
“가, 같이 가요!”
혼자 남으면 100프로 공격당한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다리가 절로 움직였다. 이 녀석들, 보통 개가 아니다. 사람처럼 눈치를 볼 줄을 안다. 이는 그만큼 머리가 좋다는 뜻, ‘조련’이 잘 됐단 증거다.
컨테이너는 사무소 겸 숙소였다.
내부는 사무 책상 하나, 큰 사각 테이블 하나, 그리고 테이블을 둘러싼 소파 둘, 마지막으로 구석에 침대 2개가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우릴 위해 차려진 음식이 있었다. 우리는 변태신의 권유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놓인 냄비. 그 안에 뭔가 국물 음식이 끓는 것이 보였다.
“토끼 전골입니다. 사냥해서 잡아온 것이죠.”
변태신이 자랑스럽게 냄비를 가리켰다.
아저씨는 끓는 국물에 입맛을 다셨다.
“오호! 이거 간만에 별미를 맛보겠구먼. 끌끌끌! 그래, 애는 잘 있나?”
그래서 침대가 2개구나!
일단 전골 냄새를 맡으며 입맛을 돋웠다.
맑은 탕이라 국물 속 고기가 눈에 띈다. 토끼 고기는 처음 먹어 보지만, 냄새가 끝내준다.
“지금도 사냥 나갔습니다. 어두워지기 전엔 돌아온다고는 했는데…… 좀 걱정입니다. 세바스찬 자식, 요즘 말을 잘 안 듣거든요.”
세바스찬? 외국계 이름? 아들인가?
변태신은 전형적인 한국인의 외모다. 아들 이름이 세바스찬이란 것은 아내가 외국인이란 건가? 그렇다면 왜 침대가 2개뿐이지?
음……. 남의 가정사에 너무 참견하는 건 좋지 않겠지? 우리는 그 세바스찬이란 사람을 기다리며 식사를 시작했다.
완전히 가죽과 분리된 토끼의 뒷다리는 흡사 개구리처럼 보였다.
항상 복슬복슬한 토끼만 봐서 그런지 반들반들한 형태의 익은 고기는 낯설다.
이거, 맛은 있는 걸까? 냄새는 끝내주는데…….
“끌끌끌! 고기다, 고기!”
아저씨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토끼 고기를 먹었다.
변태신은 그런 아저씨를 보며 술잔에 소주를 따랐다.
“예전에 같이 소고기 사 먹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날 점심부터 저녁까지 드셔서 나중엔 식당에서 쫓겨났죠? 고기 뷔페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무한 리필되는 고기 뷔페도 아닌데 쫓겨났다고?
“뭐, 그땐 그랬지. 다음에 식당이 문을 닫은 것이랑 관련이 있을까?”
아저씨는 변태신이 따라 준 술잔을 비우며 고기를 뜯었다.
“캬! 좋구먼. 맛있어! 아주 좋아.”
아저씨는 토끼 다리를 닭다리 뜯듯이 덥석덥석 먹어 치웠다.
왠지 지금 아저씨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황소개구리 잡아먹는 드워프’라는 제목으로 올리면 조회 수가 엄청날 것 같다.
변태신은 흐뭇하게 아저씨를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자네 이름이…… 전화로…… 그…… 아마, 김상중하?”
설마 놀리는 건 아니겠지?
“하하하. 김상……팔인데요.”
“아! 맞다, 김상팔이었지. 그나저나 참 대단하군. 설마 우리 농장에 제 발로 찾아오는 애송이가 아직도 남아 있을 줄이야……. 정말 상상도 못 했어. 요즘은 그런 방식으로 수련하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여기니까 말이지.”
하하하. 젠장.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내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차라리 그냥 대놓고, ‘죽여주마!’라고 하세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김여개 여사가 생각나네.
“어, 어떤 수련인데요?”
“어……. 구체적으로 말해 주긴 좀 그렇고……. 쉽게 말해서…… 일류의 자질이 있다면 일주일, 이류의 자질이 있다면 한 달, 그리고 삼류의 자질이 있다면…….”
삼류의 자질이라면?
“세 달.”
“예?”
왜 내가 삼류 부분에서 놀라워하는지 모르겠다.
“세 달 동안…… 여기서 있어야 하는 거죠?”
제가 미성년자가 아니라서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거든요?
세 달씩이나 농장에 틀어박혀서 도 닦을 여유가…….
갈팡질팡하던 차에 갑자기 아저씨까지 한 마디 툭 던졌다.
“세 달 걸린다는 뜻이 아니라, 세 달 정도 하고 나서 포기한단 뜻이다. 삼류는 뭘 해도 삼류란 뜻이지. 포기하지만 않으면 이류는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끌끌끌!”
아저씨는 입안에 든 것을 꿀꺽 삼키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자고! 어차피 다른 팀원들도 그동안 자기들 나름대로 수련하고 있을 테니까……. 이 녀석은 남는 게 시간이거든.”
아니거든요!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도 수련하고 있다고요?”
내 질문에 아저씨는 반쯤 뜯어먹은 토끼 다리로 날 가리켰다.
“당연하지! 팀장이 개고생 하는 동안 자기들은 게으르게 있으려고? 어림도 없지! 루호와 호규, 그리고 유정과 아란으로 조를 짜서 각자 수련을 하라고 시켜 놨지. 양쪽 다 한쪽이 다른 한쪽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을 거야. 어차피 루호나 유정은 대충 자기 앞가림이 되는 녀석들이거든.”
생각보다 치밀하시네. 진짜로 날 이곳에 가두시려나 보다. 적어도 세 달간은 꼼짝도 못 하고…….
아니! 그럴 수는 없어! 각오를 다지자. 왜 내가 세 달씩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의외로 빨리 끝날 수도 있잖아?
“응?”
사무소 밖에서 개들의 연속적인 하울링이 들려왔다.
무슨 늑대 무리가 하듯이 들려오는 대낮의 울부짖음. 그 소리에 변태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돌아왔나 보군요.”
아저씨는 토끼 다리를 내려놓고는 변태신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
“말한 것보다 빨리 왔네? 어디 그놈의 세바스찬 구경 좀 할까?”
세바스찬. 심히 부담스러운 이름이다. 하긴, 변태신도 있는데……. 양반이지.
“으악!”
컨테이너 밖으로 머리를 내밀려던 아저씨가 별안간 비명을 질렀다.
검은 입. 그리고 흰 이빨. 침이 줄줄 흐르는 주둥이가 아저씨의 상반신을 뒤덮었다.
“개?”
“야, 이 개새…… 으아아악!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이 개새…… 우웩, 냄새! 이 개새, 끼아아악……!”
개, 그것은 분명 개였다.
적어도 늑대로는 보이지 않았고, 이런 늑대가 있단 소리도 들어 보지 못했다. 다만 일반적인 개와 달리 아저씨를 문 녀석은 족히 덩치가 소만 한 크기. 저런 개는 난생처음 봤다.
“세바스찬, 뱉어!”
여자 목소리?
검은 개한테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듣자마자 검은 개는 아저씨를 뱉고는 입맛을 다시며 노려봤다.
“퉤엣!”
아저씨는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털면서 진절머리를 쳤다.
컨테이너 입구로 들어온 검은 개의 머리와 침으로 코팅이 된 아저씨. 그리고 난처한 표정의 변태신. 그 뒤로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검은 개의 머리를 밀쳐내며 사무소로 들어온 사람은 여자.
검은 개 이상으로 매서운 눈을 지닌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