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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71화 (71/250)

71화

71화

이렇게 여자와 함께 다닌 것은 같은 과였던 여친과 상당히 안 좋게 헤어진 후 처음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네 여자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검은 과부들과 함께 옷을 고르는 유정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사냥할 땐 볼 수 없던 유정의 무방비한 미소.

같은 여자들끼리 모여서 웃고 즐기는 모습.

특히 유정의 외모에 대한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만약 저 세 사람이 유정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유정의 ‘능력’이다. 같은 헌터 동료를 반죽음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라면 우리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본인이 능력발현을 하지 않는 데에는…… 트라우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팀장님.”

“예?”

잠시 딴생각을 하는 동안 네 사람은 1차 전투를 마치고 귀환했다. 네 사람 뒤로 방금 전까지 세일 상품이 있던 가판대는 초토화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부상당한 여성들이 널려 있었다.

“고, 고생하셨습니다.”

무, 무서운 사람들! 세일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무섭게 바꾸는구나.

유정은 나에게 쇼핑백을 내밀었다.

“선물이에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오?

쇼핑백에는 티셔츠가 들어 있었다.

살짝 감동인데?

“상팔아, 나도!”

박유화가? 근데 얘도 티셔츠네?

“받아 주세요.”

장마리도.

“받아라.”

최향자도.

졸지에 선물을 잔뜩 받았다.

“그럼 이제부터 부탁해!”

박유화가 내 옆을 가리켰다.

“응?”

내 옆엔 네 사람이 구입한 물건이 ‘쌓여’ 있었다.

와, 양아치네. 이 인간들 티셔츠 한 장으로 때우려는 거야?

“팀장님, 부탁드려요.”

유정이 수줍게 말한다.

젠장, 뿌리치기 힘들다.

결국 하루 종일 네 여자의 노예로서 충실히 짐을 날랐다. 가면 갈수록 물건이 늘어나 나중에는 H력까지 동원할 정도였다.

그래도 유정과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유정은 유정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아저씨는 그냥 추한 것이고…….

“이봐! 뭐 하고 있어? ‘데카헥토킬로메가기가테라페타엑사제타요타 팥빙수’는 아직 멀었어?”

한돈 아저씨가 카페 종업원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예, 곧 갑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여종업원은 자기 몸통보다 더 큰 그릇에 얼음, 팥, 그리고 얼린 과일을 올려놓았다. 족히 봐도 50인분쯤은 가볍게 넘는 양. 이게 바로 이 카페의 명물인 ‘데카헥토킬로메가기가테라페타엑사제타요타 팥빙수’다.

아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돈지랄’이라 할 수 있다.

“끌끌끌! 역시 이 정도는 먹어 줘야지!”

더운 날씨, 우리 팀은 카페에 모여 있었다.

오늘 자리는 지난번 사냥에 대한 정보 공유와 향후 우리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나, 아저씨, 루호, 호규, 유정, 그리고 새로운 멤버가 한 명 더 앉아 있었다.

“그래도 구석 자리라 다행이네요. 아니었다면 민폐였을 겁니다.”

아저씨의 맞은편에 앉은 루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살짝 화가 난 것 같다.

“당연하지! 난 구석이 아니면 앉지 않거든! 구석은 언제나 날 위해 존재하는 자리라고!”

아저씨는 루호의 신경 따윈 당당히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뻔뻔함의 극치!

다른 팀원들은 혀를 내두르며 아예 아저씨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루호는 순순히 포기하지 않았다.

“이 자리는 상팔 형의 귀환과 팀의 미래를 위해 모인 자리입니다. 조금은 정숙해 주세요.”

루호가 살짝 언성을 높였다.

“끌끌끌! 어린놈의 자식이……! ‘정숙’을 한자로 쓸 줄은 아냐? 그러는 너도 꽤 목소리가 크잖아?”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왜 상관이 없어? 예의를 논하면서 나이를 무시해? 그것 참 대단한 사대주의시군?”

어휴, 안 되겠다. 이러다가 진짜 싸움 나겠네. 이 둘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대는구나. 아이러니한 점은 둘 중 하나만 없어도 팀의 밸런스가 안 맞는다는 것.

“잠깐만요.”

일단 내가 둘 사이로 팔을 뻗으며 시야를 가렸다.

본래 동물을 진정시킬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바로 감각의 차단, 그중에서도 제일 효과적인 감각이 바로 시각이다.

“일단 신규 멤버부터 소개할게요. 괜찮죠?”

두 사람은 즉각 내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오냐!”

마침 아저씨가 무단으로 주문한 팥빙수가 탁자로 올려졌다. 종업원 둘이 낑낑대며 옮긴 팥빙수는 음식이라기보단 건축물에 가까웠다.

“어디 한번 맛있게 드십시오!”

종업원이 왠지 배짱 튕기듯 말한다. 아저씨의 재촉으로 짜증이 난 걸까? ‘어디 한번’이란 말이 심히 마음에 걸린다.

“와아.”

오늘도 변함없이 후드를 쓰고 온 호규는 후드 밑으로 드러난 입을 쩍 하고 벌렸다.

하긴, 이건 내가 봐도 사람 먹으라고 만든 음식이 아니다. 이건 그냥…… 사료다!

“그럼 어디 한번…….”

아저씨가 숟가락을 팥빙수로 뻗었다. 그러나 그 숟가락은 팥빙수를 푸지 못하고 중간에 다른 숟가락에 의해 가로막혔다.

“뭐야?”

“기다리세요. 소개 끝나고 드시면 되잖아요?”

숟가락의 주인은 나.

루호는 아저씨를 보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었다.

“쳇!”

아저씨는 굴욕적인 얼굴로 순순히 숟가락을 내려놨다. 대신 팔짱을 끼며 맨 끝자리에 앉은 신입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래! 어디 한번 우리 신입 소개나 들어 볼까? 실력에서 자신 없으면 재롱을 봐도 괜찮은데? 아니면 입에다 리코더를 물고, 양손으로는 접시돌리기를 하며, 다리는 공 타기를 한 채 불이 붙은 줄넘기를 넘는 거야! 어때? 참 쉽지?”

우와, 차라리 죽으라고 하세요. 이 아저씨가 은근 사람 괴롭힐 줄 아시네?

“이, 일단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하하하. 여기 계신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으신 분의 말씀은 잊으렴.

신입은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주아란입니다.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엥? 그게 끝? 더 이야기를 해 주지 않으련?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저씨는 그 정도로 만족…….

“뭐야? 너 지금 여기가 초등학교인 줄 알아! 그걸 지금 인사라고 하는 거야?”

‘혹시나’가 ‘역시나’군. 아저씨의 호통. 그것은 신입 입장에선 꽤나 버거운 압력이 될 수 있다. 팀의 연장자라는 것은 비록 실질적인 지위가 어떻든 간에 간과하기 힘든 존재다.

“인사하라고 해서 인사한 건데, 어쩌라고요!”

신입이 지지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쩌렁쩌렁 카페 안을 울리는 목소리에 한순간 카페 안의 이목이 우리 테이블로 집중되었다.

“끌끌끌! ‘어쩌라고요!’라고? 이거 아주 제대로 맛이 갔군.”

응?

아저씨는 오히려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마음에 들어. 나이가 좀 어리지만, 괜찮아. 어차피 나이는 먹게 되어 있으니까……!”

뼈가 있는 한마디군. 그러고 보니 아저씨와는 헌터 자격시험에서 이미 본 사이지?

아저씨 다음으로 다들 신입에게 한마디씩 인사를 건넸다.

청색 트리이닝복에 분홍색 운동화, 그리고 양쪽으로 묶은 삐삐머리의 주아란은 당당히 자리에 앉았다.

“그럼 이제 먹어도 되지?”

“좋아요.”

내 허락을 받은 아저씨의 숟가락이 맹렬히 팥빙수를 공격, 무자비하게 얼음과 단팥을 퍼냈다.

카페의 명물인 이 팥빙수를 다 먹으면 상금이 무려 100만 원! 시간은 30분이다.

“끌끌끌! 상금 받으면 기여도로 나누는 거야. 알았지?”

일단 팥빙수값은 아저씨가 지불, 가격은 20만 원이다. 약 5년 동안 성공한 팀은 딱 3팀. 그것도 10명 이상으로 꽉 채워서 시도한 팀들이다.

“그냥 아저씨 다 드릴게요. 열심히 하세요.”

하하하. 즉, 우리는 열심히 안 할 거예요.

아저씨는 내 말에 용기를 불태우며 열심히 팥빙수를 섭취했다. 아저씨가 팥빙수에 집중하는 동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은 아란 양이 있던 ‘땅벌’이란 팀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땅벌의 이야기.

작은 사건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군단개미, 팀의 분열, 미스터 블레이드, 그리고 플레잉. 아란은 그날의 일이 버거운 듯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팥빙수를 퍼먹었다.

“그럼 그 플레잉에서 팀장님을 노리고 있단 건가요?”

이야기를 다 듣고, 호규가 가장 먼저 질문을 했다.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의문, 오히려 이런 말이 나오니 담담해진다.

“아마도. 물론 미스터 블레이드란 녀석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어. 하지만 녀석을 경찰에 넘길 때 들은 바로는 적어도 녀석이 플레잉인 것은 확실한 것 같아. 그리고 그 미스터 타이거란 남자도 도망친 게 확실하고…….”

“그럼…….”

호규는 시선을 떨어뜨리며 말끝을 흐렸다.

“한 가지, 분명하게 하고 싶어. 만약 언제, 어느 때고 팀을 그만두고 싶다면 그만둬도 괜찮아. 플레잉이 노리는 이상, 그리고 땅벌이 당한 일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는 이상, 우리 팀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오늘 팀원들을 부른 진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헌터란 직업이 항상 목숨을 걸고 임하는 것이지만, 이번엔 차원이 다르다. 언제, 어디서 범죄 집단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것은 항상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전 나가지 않을 거예요.”

루호는 툭 한마디 말하고는 팥빙수를 퍼먹기 시작했다.

“저도요.”

다음으로 유정.

“전 오히려 플레잉하고 싸우려고 여기 온 거예요. 꼭 다른 분들의 복수를 할 거예요!”

아란은 숟가락을 팥빙수에 깊이 찔러 넣으며 씩 웃었다.

우와, 저 웃음! 저거 보니까, 그 사이코패스 주아라가 생각난다! 피는 못 속이는구나, 그래도 언니보단 덜 하겠지?

그래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복수를 하겠다고 저렇게 열을 올리다니…… 어리고 무모하지만, 그 기백만큼은 대단하다. 난 지금도 플레잉 생각만 하면 좀 오싹하다.

“하하…… 그…… 음…… 공미 양은 좀 어때요?”

‘공미’란 이름에 아란의 얼굴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나라 잃은 표정이 된 아란은 깨작깨작 팥빙수를 휘저었다.

“아직은…… 조금 힘들어해요.”

그, 그렇구나.

하긴, 사람에 따라선 극복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지. 어쩌면 그런 일을 겪고도 태연하게 웃는 쪽이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호규 씨는……?”

이제 호규만 남았다.

물론 엄연히 따져선 아저씨도 계시지만, 솔직히……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저씨가 발을 빼실 것 같진 않다. 오히려 더 크게 웃으면서 플레잉에게 걸린 현상금에 군침을 흘리실 것이다.

“저, 전…….”

호규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완전히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부정도, 긍정도 아닌…… 고뇌. 호규는 그 무게에 버거워하고 있었다.

“호규 씨.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알았죠?”

일단 호규를 달래며 빙그레 웃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지의 표명이나, 맹세가 아니다.

서로를 위한 웃음, 관용과 배려다.

“네…….”

호규는 풀이 죽어서 팥빙수를 먹었다. 일단 전원의 뜻은 확인이 끝났다.

“야! 나는?”

아참, 아저씨를 잊었구나.

“아저씨……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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