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67화
눈동자가 뒤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얼른 죽어!”
녀석의 외침, 그리고 광탄의 연발. 녀석은 김여개를 무참히 공격했다.
“끄아아아…….”
계속된 폭발로 김여개는 결국 뒤로 넘어갔다.
옷 속의 방호복 덕에 간신히 생명 유지 중, 저런 사람에게 기대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하하하! 정말 통쾌하군! 저런 부류가 딱 질색이거든. 잘난 것도 없는 주제에 잘난 척이나 하고 말이야.”
녀석은 어깨를 풀면서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를 했다.
“어째서……?”
아란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란을 본 녀석은 고개를 삐딱하게 저으며 말했다.
“글쎄? 딱히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어. 그냥 일이야, 비, 즈, 니, 스! 이해하겠어?”
아란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뭐, 몰라도 할 수 없지. 어차피 죽을 거니까…….”
공미는 아란의 옆에 서서 아까 벗었던 투구를 다시 썼다.
“비겁자.”
속삭이듯 내뱉은 공미의 말. 녀석은 공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알게 뭐야?”
녀석의 손바닥이 번쩍이며 또 광탄이 날아왔다.
목표는 공미.
“언니!”
아란은 즉시 공미를 밀쳤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공미가 서 있던 자리로 날아온 광탄은 그 뒤로 쭉 날아가 흰빛을 뿜어내며 폭발했다.
“어쭈? 피했어?”
녀석은 얼굴을 찡그리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날 향해 말했다.
“너도 해 봐. 너도 할 줄 알잖아?”
응? 뭔 개소리세요?
“내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제길! 그냥 할 줄 안다고 허세나 부를 걸 그랬나?
“미스터 타이거가 그랬거든. 넌 H력을 ‘물질화’시킬 수 있다고. 그건 광탄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기술이거든.”
그, 그땐 미스터 타이거의 H력을 흡수한 덕에……. 이, 이런 이야기는 해 봤자 소용없겠지?
“어서 보여 줘, 너의 힘!”
“싫어!”
이런, 입에서 멋대로 말이 튀어나왔다.
“정체를 밝혀! 장달이 본명이냐?”
“장달은 그저 임무를 위한 가명이다.”
녀석은 양팔을 옆으로 쫙 펼치며 당당히 외쳤다.
“내 이름은 미스터 블레이드! 김상팔, 널 끌고 가 당당히 공을 세우겠어.”
“미스터 블레이드면…… 칼날?”
장달인 척하던 미스터 블레이드는 양손에서 수증기급의 아지랑이를 뿜어냈다. 일반적인 아지랑이가 대기를 일렁이며 천천히 위로 올라간다면, 녀석의 것은 그야말로 수직 상승. 딱 미스터 타이거 때가 생각난다.
“받아라!”
미스터 블레이드는 날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녀석의 바지 뒤에 꽂혀 있던 단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와 공중을 날았다.
원을 그리며 도는 단검의 회전. 그것을 본 순간 박자공과 길국이 어떻게 죽은 것인지 단번에 깨달았다.
“하앗!”
접이식 6단봉을 꺼내 내 목을 노리며 날아온 단검을 쳐 냈다. 보통의 단검이라면 쳐 내진 후에 땅바닥에 떨어져야 정상, 그러나 녀석의 단검은 잠시 뒤로 밀려났을 뿐 계속 공중에 떠 있었다.
“하하하! 이게 내 능력이야. 넌 과연 얼마나 버틸까?”
사악한 벌레 자식!
일단 6단봉을 돌리며 단검의 재공격을 견제했다. 그리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좀 도와주실래요?”
언제 다시 단검이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 일단 아무나 듣길 바라는 마음으로 외쳤다. 그러자 미스터 블레이드의 시선이 내 양옆으로 분산,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건 결투야! 방해하지 마!”
“개소리!”
공미가 내 왼쪽으로 서서 크게 외쳤다. 완전 중무장한 공미는 손에 철판으로 만든 방패까지 든 채 미스터 블레이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오, 멋지다!
“나쁜 사람 말엔 따르지 않아야 착한 아이라고 배웠거든요?”
오른쪽에 선 주아란. 그녀는 몸을 풀면서 공미 이상으로 살벌한 눈을 뜨고 있었다.
“하!”
미스터 블레이드는 바지 속에 손을 넣더니 단검 하나를 더 꺼냈다.
“내가 너희를 죽이지 않은 건 순전히 너희가 여자이기 때문이야.”
미스터 블레이드는 손에 든 단검을 뽑아 공중으로 던졌다.
“왜냐하면 계집애 따위에게 질 일은 없으니까! 하하하!”
미스터 블레이드의 양손을 따라 두 개의 단검이 제각각 허공을 날았다.
빙그르르 도는 두 개의 칼날을 보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지금 몸에 저장된 H력은 한돈 아저씨의 것. 하지만 지금의 나로선 아저씨의 치료술을 따라할 실력이 없었다. 치료술이 아저씨 고유의 능력인지, 아니면 H력의 응용 기술인지도 제대로 파악이 되질 않는다.
“훈련의 성과를 시범해 볼까?”
리볼버의 실린더에 든 총알은 6발. 한 발이라도 미스터 블레이드에게 명중할 수 있다면 이길 수 있다. 녀석은 공격에 올인하는 타입. 그렇다면 당연히 방어엔 젬병일 것이다.
상반신 누드인 변태한테 질까 보냐!
조금의 틈이라도 있었다면 작전 회의라도 할 텐데, 지금은 너무 상황이 급하다. 일단 각자 따로 해 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제가 총을 쏘면 일제히 달려들어요!”
두 사람은 내 양옆에 나란히 섰다. 대답은 하지 않았어도 두 사람의 의사가 절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하하하. 마음대로 해. 단검 하나당 한 명이면 수지맞는 싸움이니까!”
수지맞아? 정신 나간 녀석. 리볼버로 녀석의 단검을 조준,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일제히 미스터 블레이드를 향해 달렸다.
“누구부터 죽여 줄까? 다들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
미스터 블레이드의 단검들이 날 향해 곧장 날아왔다.
직선으로 날아온다면 오히려 내 쪽에서 땡큐다.
두 발을 발사, 각각 단검을 명중해 궤도를 틀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총에 맞은 단검이 왜 무사한지에 대해선 좀 의문이 든다.
특수 소재로 만든 것일까?
일단 앞길은 훤히 뚫렸다.
두 단검은 곧바로 균형을 되찾아 도로 나에게 날아오려고 했지만, 내 양옆을 지키는 아란과 공미에 의해 저지당했다. 두 사람은 각각 발차기와 방패로 단검의 비행을 막았다.
“항복하지 않으면 쏘겠어!”
일단 리볼버로 미스터 블레이드를 위협했다.
눈앞의 적은 불과 3m. 일부러 빗맞히려고 해도 쉽지 않은 거리다. 살인은 하고 싶지 않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쏠 수밖에 없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방아쇠를 당길 거야.”
살인, 사람을 죽이는 것. 사냥, 괴물을 죽이는 것. 대상이 다를 뿐 죽인다는 행위는 같다.
“하하하! 아니. 넌 못 쏴. 넌 나쁜 놈이 아니라 착한 놈이잖아? 죽이는 건 우리 몫이야.”
미스터 블레이드는 씩 웃으며 어떠한 방어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의 얼굴은 ‘쏴 볼 테면 쏴 봐!’란 표정이었다.
“그래?”
내가 못 쏠 줄 알고? 꼭 머리통을 날리지 않아도 무력화시키는 것 정도는 간단하거든!
살짝 총구를 내려 녀석의 무릎을 겨눴다.
“겨우 그거냐?”
일단 한 발. 녀석의 오른쪽 무릎에 총을 쐈다.
리볼버의 구경과 위력으로 짐작건대, 아마 스치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어?”
내 예상과 달리 미스터 블레이드는 멀쩡했다. 총알이 무릎에 명중하기 직전, 녀석의 바지 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총알을 쳐 내 버렸다.
말도 안 돼.
고속으로 회전하는 총알을 쳐 냈어? 역시…… 보통이 아니야.
단검은 고작 두 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한 거잖아? 너 같은 애송이도 6발짜리 총을 쓰는데, 나라고 안 그러겠어?”
나보다 어려 보이는 주제에! 녀석의 주변을 도는 것들은 단검이 아닌 칼날 그 자체였다.
미스터 블레이드란 이름처럼 녀석은 칼날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모양이다.
“걱정 마. 죽기 바로 직전에 멈춰 줄 테니까!”
미스터 블레이드의 손가락 하나하나가 독자적으로 꿈틀대며 칼날을 조종했다.
단검 두 자루에 칼날 8개. 손가락 하나당 하나씩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젠 내 차례지?”
녀석은 칼날 두 개를 자신의 근처에 남기고는 나머지를 전부 나에게 날렸다. 6개의 칼날이 곡선을 그리며 날 에워싼 채 주변을 날았다.
“아까는 그냥 인사치레야. 이번이 진짜지.”
칼날들은 내 주변을 돌다가 기습적으로 하나하나씩 날아들었다.
마치 여러 명이 날 포위하고는 돌아가면서 찌르는 것 같다. 제아무리 H력으로 감각을 강화시켜서 대응을 해도 모두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접이식 봉을 휘둘러봐도 한 손만으로는 역부족. 그저 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크윽!”
정강이를 시작으로 조금씩 공격이 위로 올라왔다. 공격을 당하니, 녀석이 어떤 부류인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변태다.
“어때? 아파? 아니면 좋아? 난 좋아! 널 보고 있으니 아주 짜릿해.”
이 자식, 말로만 듣던 S야!
크윽, 내가 M이라면 완벽한 조합이겠지?
하지만 난 M이 아니다.
“이런 M이 없는 자식!”
아프든, 말든 남은 총알을 모두 발사.
한 발이라도 녀석이 맞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가 쏜 3발의 총알은 모두 녀석의 칼날에 막혀 튕겨 나갔다.
“이젠 총알이 다 비었지? 남은 건…… 그 접이식 봉뿐인가? 미스터 타이거한테 썼던 힘 좀 보여 주지 그래? 그거면 날 충분히 이길 수 있을 텐데?”
H력의 물질화…….
사실 나도 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선 쓸 수 없다.
한돈 아저씨 왈 ‘그게 되면 넌 단숨에 헌터 랭킹 100인에 들어가게 될 거다.’라고…….
“하는 수 없지.”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최후의 수단을 써야겠다!
이건 정말 쓰고 싶지 않았는데…….
일단 리볼버를 주머니에 넣은 후 양손을 사용해 제대로 봉을 휘둘렀다.
한 손일 땐 칼날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전력으로 몸을 던지며 봉을 휘두른 결과, 더 이상 상처가 느는 일은 없었다.
칼날을 막아 내는 틈틈이 아란과 공미를 살폈다. 다행히 둘 모두 아직까진 무사하다.
아란은 H력을 이용해 단검을 낚아채는 데 성공했지만, 미스터 블레이드가 보낸 또 다른 칼날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미의 경우에는 단검의 단순한 공격에도 쩔쩔매는 상황.
일단 죽지 않기를 바라자.
“좋았어.”
이젠 거칠 것이 없다.
봉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은 채 양손을 모아서 웅크렸다. 그러고는 H력을 모두 개방하여 손바닥 안으로 모았다.
H력의 물질화를 연습하면서 얻게 된 기술, 광탄의 응용기에 가깝다.
“좀 더…….”
방어를 그만두니 칼날의 공격에 노출되어 속수무책으로 상처가 늘어났다.
처음엔 살갗만 베던 칼날은 점차적으로 깊게 파고들어 와 혈관, 신경을 건드렸다.
“더……!”
광탄 같지만, 광탄은 아니다.
응축, 그리고 순수한 농도.
손안에 모인 섬광은 밝게 빛나다가 어느 순간 점차 투명해져 갔다.
“고작 광탄이었나? 그런데 그마저도 실패한 모양이군. 하긴, 그게 당연한 거야. 집중하기 힘들지?”
미스터 블레이드는 잠시 칼날 공격을 멈췄다. 덕분에 H력을 모이기가 수월해졌다.
“그래. 더럽게 힘들다.”
보답으로 재밌는 걸 먹여 주마.
사실 이 기술을 실전에서 쓰게 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준비 시간이 긴 기술은 빈틈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나 필살기 쓰려고 하니까, 막아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받아라!”
양손을 활짝 펴며 그 안에 든 구슬 형태의 힘을 발사했다. 나에게, 그리고 상대에게도 보이지 않는 공격. 순수함의 극한으로 간 구슬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으며 미스터 블레이드에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