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66화
한 명이 아니다. 막판에 운이 튼 걸까?
김여개를 업고 있는 공미였다.
공미의 갑옷은 온통 흠집투성이.
어떤 일이 있었을지 대충 상상이 가는 상태였다.
반면에 김여개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괜찮아요?”
일단 공미에게 물었다.
공미는 투구를 벗어 던지고는 김여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김여개는 눈을 비비며 태평스럽게 깨어났다.
“누가 날 내려놓으라고 했어? 자꾸 그러면 너……. 응?”
지금 ‘응?’ 하실 때가 아니실 텐데요?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네.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뭔가 충격을 받은 것도 아니다.
깨어나고 나서 날 노려보는 눈빛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흠, 이럴 땐……!
슬쩍 김여개의 어깨에 손을 올려 H력을 흡수, H력에 실려 온 김여개의 기억을 훔쳐봤다.
비록 기억의 파편이지만, 상황 파악을 하는 데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와!”
답이 없네.
일단 김여개는 살인자가 아니다.
애초에 우리랑 만나기 전까진 쭉 공미랑만 붙어 다녔다. 문제는 그 행실. 이 아줌마, 공미를 한 번 구해 준 것을 약점 잡아 줄곧 공미에게 업혀 있었다. 두 사람은 최초의 충돌을 빼곤 여태껏 군단개미와 마주치지 않았다.
“하아.”
물론 동료를 구해 준 것은 엄청난 공이다. 생명은 누구의 것이든 소중하다. 하지만 기억과 함께 흘러들어 온 김여개의 본심.
거기에 동료애나 이타심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위한 장기말로 보는 오만만 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떠받들어지고 싶은 욕망. 이 사람도 결코 ‘좋은’ 헌터는 아니다.
일단 두 사람에게 박자공과 길국의 일을 알려 줬다. 두 사람의 죽음을 들은 공미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 것에 비해 김여개의 반응은 매우 단순했다.
“다 자업자득이야.”
이게 끝.
그 뒤 김여개는 자기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목을 축였다.
개인적으로는 한돈 아저씨와 붙여 보고 싶어질 정도의 뻔뻔함이다. 물론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아저씨 쪽이 더 낫다.
최소한 아저씨에게선 동료애가 느껴졌다.
애초에 아저씨는 내게 있어 목숨을 구해 주고, 헌터로서의 인생을 구원해 준 은인이다.
“그럼 모두 모였으니까, 이제 나갈까요?”
내 말에 모두 동의.
우리는 서둘러 내가 표시해 둔 통로를 통해 밖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온 길을 역행, 나가는 도중 이렇다 할 충돌은 없었다.
“빛이다!”
김여개가 날 밀치며 일행의 맨 앞으로 나섰다.
뭐, 이 정도 왔으면 대열이 무너져도 괜찮긴 한데…….
어차피 대열이 무너진 것, 천천히 보폭을 줄여 맨 뒤에 선 장달과 나란히 섰다.
“어때요? 상처는 괜찮아요?”
장달의 치료는 어디까지나 응급처치. 당장 상처가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네. 덕분에요.”
장달은 배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좀 씁쓸한 얼굴이었지만, 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말이죠.”
조심스럽게 장달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달은 날 쳐다보지도 않으며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
“누가 자공 씨와 길국 씨를 죽였을까요? 절대 군단개미의 짓이 아니에요. 괴물은 급소 같은 거 따지면서 죽이지 않거든요. 특히 자공 씨가 죽을 때를 생각하면……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장달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배낭을 고쳐 멨다.
“목을 베였거든요. 증거 사진도 찍어 놨어요. 그러니 확실하죠. 땅벌 여러분 중에 날붙이를 가진 사람이 누구누구 있을까요?”
물론 지금도 장달의 바지 뒤엔 단검이 꽂혀 있다.
길이는 약 8~10cm. 은장도 수준의 짧은 길이다. 하지만 날만 제대로 섰다면 사람을 죽이는 데 충분하다.
“글쎄요.”
장달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관심 없는 척하고 있지만, 눈썹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란 양은 아니에요. 아란 양은 무기가 필요 없거든요. 그럼 공미 양? 제가 볼 때 공미 양은 공격 담당이 아니에요. 오히려 방어 담당에 가깝죠. 그렇지 않고서야 여개 씨한테 휘둘리지 않았을 테니까요.”
장달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긴장으로 목이 타는 걸까?
“그렇다면 여개 씨는? 솔직히 좀 의심이 가긴 했어요. 함께한 내내 불평불만, 거기다가 이기적인 모습만 보여 줬으니까요. 의식하지 않으면 적개심을 억누르기가 힘든 분이에요.”
“그래서요?”
장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다소 목소리가 날카롭다.
“하지만 역시 범인이라고 볼 수 없어요.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자라고 가정해도 그런 굴속에서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만약 가능하다면…… 그 정도의 능력자가 여태껏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죠.”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장달은 내가 할 말을 알고 있었다.
“아란 양, 공미 양, 여개 씨를 빼면 남는 사람은…….”
내가 말을 마치기 전에 장달이 먼저 가로챘다.
“상팔 씨도 있잖아요? 어떻게 본인의 결백을 증명할 거죠?”
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나한테도 의심이 갈 만하지.
“난 날붙이가 없어요. 하지만 장달 씨는 있죠? 바지 뒤에 있잖아요?”
“그건 증거라고 할 수 없어요. 제가 칼을 갖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비상용이에요. 상팔 씨 생각이 적중하려면 칼날에서 혈흔이라도 나와야 하겠죠?”
벌써 혈흔을 처리했단 건가. 만약 그렇다면…… 이 녀석, 보통이 아니야. 계획적인 건가? 아니면…… 뭔가 있는 건가? 애초에 비상용이라고 말해 놓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뽑았잖아, 이 자식아!
확인할 방법은 하나. 장달의 어깨에 손을 댔다. 그리고 H력을 흡수하려는 그때.
“손 떼요!”
장달은 내 손을 잡아 거칠게 밀쳤다.
덕분에 흡수는 중단.
이 녀석, 너무 예민하게 구네? 처음 만났을 땐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발을 잘못 디뎌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정당히 둘러댔다.
장달은 더욱 목청을 높였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뭘 노리는 거지?”
“노려?”
이 녀석…… 설마? ‘노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런 때에 했단 것은 심각하다. 예민해졌단 것을 감안해도 부자연스럽다.
“역시 너구나.”
물증은 없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다.
가만히 장달의 반응을 살폈다.
장달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술을 씹었다.
이젠 묵비권을 행사하는 거냐? 하지만 그런 것에 순순히 봐줄 내가 아니다!
“너…… 능력자지? 모두를 속였구나. 방금 전 접촉…… 경계한 이유를 난 알아. 그리고 네가 걱정한 대로 덕분에 알게 됐어. 너에 대해서…….”
사실은 전부 뻥, 그냥 떠보기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뻥은 진실로, 떠보기는 추리로 변모한다.
“하하. 이 새끼가…….”
장달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녀석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
그것은 ‘장달’의 것이 아니었다.
“역시 똑똑하구나.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좀 위험한 구역에 발을 디딘 거야. 하긴…… 내 기억을 읽지 않았어도 어차피 처리될 운명이었지만……. 김상팔. 역시 넌 흥미로워.”
내 능력에 대해 알고 있었어?
더군다나, 뭐라고? ‘조직’이라고! 서, 설마…….
“플레잉.”
툭. 녀석에게 내 생각을 던졌다.
헌터인 이상 플레잉과 마주치는 것은 살면서 한 번쯤 겪을 일. 그런데 난 그런 일을 도대체 연달아 몇 번을 겪는 거야!
미치겠네. 차라리 저번에 만난 불타는 고구마가 훨씬 낫지.
“그래. 조직에선 널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어. 그런 능력은 드물거든. 정신 계통의 능력은 희귀해. 특히 네 능력은 더욱 대단하지. 그래서 널 꼭 스카웃하고 싶어. 여기 있는 전부를 죽이더라도 말이지.”
“뭐?”
장달, 혹은 장달인 척하는 녀석의 말.
그 뜻은 결국 오늘 생긴 살인이 내 탓이란 것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처음부터 녀석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완전히 개미집에서 빠져나와 공터에서 멈췄다. 다른 사람들은 안도감에 기뻐하며 바깥공기를 들이마시느라 바빴다.
“어떻게 할래? 순순히 갈래? 아니면 반쯤 죽을래?”
녀석은 개미집 입구 바로 앞에 서서 말했다. 녀석 뒤로 보이는 통로 속 어둠처럼 녀석이 새까맣게 느껴졌다.
“난 네가 뭘 고르든 상관없어. 솔직히…… 난 네가 저항하길 바라거든.”
“전투광이냐?”
헌터 중에도 가끔 그런 놈들이 있다, 목적과는 상관없이 그저 치고받고 싸우는 것에 환장한 부류가…….
“하하하. 물론 싸우는 걸 좋아하긴 해. 하지만 내가 흥미로운 건 너 같은 피라미가 미스터 타이거를 쓰러뜨렸다는 거야.”
미스터 타이거.
그 이름에 머리끝이 쭈뼛 섰다. 상상만 해도 짜증이 난다. 그땐 정말 운으로 죽다 살아난 것이다.
“미스터 타이거는 말이지. 한국 내 조직에서 간부인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정식 헌터 시험 응시자한테 쓰러졌다? 완전히 넌센스지. 분명 방심했을 거야. 그 사람이 처음부터 전력이었다면 너 따윈 1초도 안 돼서 걸레 신세거든.”
하하하, 아니거든? 그때도 걸레 되기 일보 직전이었거든!
“너야말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장달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치 않다. 녀석은 적,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놈이다.
“하고 싶은 말? 미스터 타이거가 안부 전해 주라고 하더군. ‘곧 죽여 주러 오겠다!’라고 말이지.”
뭐라고?
“미스터 타이거는 지금 조직에 돌아와 있어. 이 나라의 사법 체계 따위야 우리한테 우습거든.”
망했다.
놈이 탈출했다고? 그런데 뉴스에 안 나왔어? 경찰 입장에선 개망신일 테지만, 그래도 알려야지! 악명 높은 플레잉의 간부가 도망친 건데! 그 덕에 나만 죽게 생겼잖아!
녀석은 날 똑바로 응시하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바로 그거야. 바로 그 얼굴이 보고 싶었어! 길국 할배가 뒈질 때도 딱 그런 표정이었거든? 뒤통수를 아주 제대로 맞은 거지!”
슬쩍 뒤를 돌아본다.
지금 녀석이 웃는 소리 때문에 다들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기선 조금 더 시간을 끌어 보자.
“어지간히 자신 있나 봐? 배에 그런 부상을 입고도 잘도 싸우잔 소리가 나와?”
녀석이 신분은 속였을지 몰라도, 녀석이 지금 복부에 입은 부상은 진짜다. 상처만큼은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직접 치료도 했기 때문에 확실하다.
“이딴 건 부상도 아니야. 이건 그냥 핸디캡이지. 너와 내 힘의 차이에 대한 배려야. 그냥 죽이면 재미가 없잖아?”
녀석은 배낭을 벗어 멀리 집어 던졌다.
갑작스러운 녀석의 행동에 드디어 다른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뭐하는 거지, 장달? 이리 와서 내 어깨나 주물러!”
하하하. 사모님, 제발 가만히 좀 계세요. 그러다 진짜로 죽어요!
녀석은 김여개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전부터 아줌마가 가장 재수 없었어. 사실 개미집에서 제일 먼저 죽이려고 했는데 말이야……. 뭐, 가는 데 순서가 어디 있겠어?”
녀석은 그러더니 대뜸 주먹을 쫙 펴서 ‘광탄’을 날렸다.
이, 이 녀석!
재빨리 몸을 엎드렸다. 녀석이 쏜 광탄은 번쩍이며 날아가 폭발했다.
“쿠에에엑!”
어디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설마 아저씨가 오셨나? 얼른 고개를 들어 광탄이 날아간 곳을 쳐다봤다.
“세상에…….”
광탄은 김여개에게 명중.
방금 비명 소리는 김여개가 지른 것이었다.
“네, 네놈이 감히……!”
김여개는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광탄은 김여개에게 직격 후 폭발, 김여개는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간신히 서 있었다.
“용서 안…….”
김여개는 입 밖으로 혀를 축 늘어뜨리며 침을 질질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