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65화 (65/250)

65화

65화

“사람이면 정체를 밝혀요!”

‘일단 한 발 쏴 볼까?’ 하고 생각하는 사이 상대가 어둠 속에서 대답했다.

“쏘, 쏘지 마세요! 전 사람입니다.”

틀림없는 박자공의 목소리.

방아쇠를 당기려던 손가락을 멈추고는 안전모의 랜턴 빛을 세게 밝혔다.

“여, 여깁니다!”

박자공은 완전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안전모는 없어지고 옷은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으며, 배낭과 개인 소지품도 사라진 상태였다.

그야말로 그냥 살아만 있는 것이다.

“괜찮으세요?”

장달이 배낭을 집어 던지고는 냅다 박자공에게 달려갔다. 박자공은 장달의 부축을 받으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기, 길국 씨는 어떻게 됐죠?”

응? 왜 길국에 대해 묻는 거지? 설마…….

“길국 씨는 죽었어요.”

내 말에 박자공의 눈이 커졌다. 박자공은 매우 놀란 얼굴로 간신히 대답했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꼭 숨통이 틀어 막히는 것 같다.

“저랑…… 같이 있었어요. 길국 씨는…… 저랑 있었다고요.”

같이 있었다?

“그리고요?”

역시 살인인 건가. 확실히 군단개미의 짓이라기엔…….

하지만 증거가 없다. 기껏해야 증언 정도일 텐데, 이렇게 급박한 상황을 겪은 증언은 법적으로 그 신빙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모르겠어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중간에 헤어졌거든요.”

모르겠다, 그리고 중간에 헤어졌다…….

참 애매한 말이다.

길국의 사인은 자상에 의한 과다출혈. 그런데 박자공한테 날붙이가 있었나? 분명 육각 방망이, 그것도 나무로 만든 것이 전부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군단개미에게 포위당했을 때 진작 꺼냈을 것이다.

일단 박자공에게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만약 길국이 정말로 살해당했을 경우 그 동기는…….

“미끼.”

입술을 깨물며 혼잣말로 조용히 내뱉었다.

동료를 죽여서 미끼로 쓰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내치는 것이 바로 사람이 가진 무서움, 어떤 의미론 인간이 가진 더러운 생존 본능이라 할 수 있다.

나도 예전에 딱 한 번 함께 일하던 팀에서 미끼로 버려진 적이 있었다.

당장 판단은 보류. 일단 박자공의 상처를 살폈다. 떨어져 있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지만, 박자공의 상처도 제법 심각한 편이었다. 복부를 다친 장달과는 달리 박자공은 팔과 다리에 상처가 많았다. 잘못될 경우 길국처럼 과다출혈까지 우려되는 상황. 일단 붕대로 상처를 지혈하는 것에 집중했다.

“죄송합니다.”

뜬금없는 박자공의 사과. 뭐가 죄송하다는 걸까?

슬쩍 박자공을 떠봤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하시는 건 옳은 판단이 아니에요.”

그래요. 진실을 말해요. 그것만이 옳은 판단이죠.

만약 박자공이나 장달이 능력자였다면, 진작 H력을 흡수하면서 기억을 읽었을 것이다.

“제가…… 제가…….”

박자공은 울먹였다.

그래, 이제 범인이 실토하는 건가? 어서 말해요! 그래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제압하죠. 아란이 박자공의 편을 들진 않을 테고, 장달은 부상이 심하다.

나 혼자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제가?”

나도 모르게 박자공을 닦달한다.

“제가…… 흩어지란 말만 안 했어도…….”

응? 그 이야기였어? 하긴, 박자공의 판단 미스만 아니었어도…… 진작 포위를 뚫고 바깥으로 나갔을 텐데……. 좀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후회는 여기서 나간 후에 해도 안 늦어요.”

박자공도, 장달도 아니라면 범인은 누굴까? 김여개?

확실히 그 사람이라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동료를 내팽개칠 것 같긴 하다. 무기도 나이프, 실력도 충분하다.

갑자기 방 안 전체가 흔들렸다.

지진?

천장에서 흙이 쏟아지며 사방을 뿌옇게 만들었다.

젠장, 안전모의 불빛만으로는 앞을 보기도 힘들다.

“크아아악!”

비명 소리? 소리가 난 거리로 봐선 박자공의 것이다! 설마 그새 또 군단개미가 들어온 건가? 혹시 지진이 난 것 자체가 녀석들의 함정! 젠장, 뭔 놈의 2급 괴물이 이렇게 까다로워?

3급 괴물이 훨씬 편하겠네.

“자공 씨!”

박자공을 부르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역시…… 당한 건가……. 다른 사람들은?

얼른 모두의 이름을 불러 봤다.

“아란 양?”

“네!”

“장달 씨?”

“여기요!”

두 사람은 무사한 건가? 왜 무사하지? 군단개미가 박자공만 노렸다고? 그럴 수가 있나? 괴물이…… 녀석들이…… 특정 사람만 노렸다고?

그게 아니라면…… 역시!

“조심해요! 뭔가 공격해 올 수 있어요!”

모두에게 경고 후 주변을 경계.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런 상황에선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동료를 돕거나, 동료에게 도움을 받는 일 따윈 기대해선 안 된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빛도 없는 상황에다가 폐쇄된 공간. 자연스레 시간을 인지하는 감각이 둔해져 있다.

먼지가 가라앉아 시야가 확보될 때쯤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박자공은…… 죽어 있었다. 또 목이 날카로운 것으로 그어져 있다.

젠장! 뭐지? 내가 모르는 능력자가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괴물이라도 숨어 있나? 혼란스럽다. 아차 하면 사람이 죽어 버리고,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가 없다. 마치 질 나쁜 공포 영화 속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다.

“자공 팀장도 버리고 가나요?”

장달이 살짝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역시 길국을 버린 것에 대해 날 원망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상관없다. 여기서 모두가 무사히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원망 같은 것은 얼마든지 견뎌 낼 수 있다.

“네!”

난 장달보다 더 거칠게 대답했다.

설사 장달이 비난을 해 오더라도 지금으로선 그 불만을 억누를 수밖에 없다.

“젠장!”

장달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본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산 자는 계속 살아야 하고, 죽은 자는 죽은 것이다. 그 사이는 절대적, 종이 한 장의 차이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다.

“가요.”

아란은 고개를 끄덕였고, 장달은 배낭을 짊어졌다. 다행히 이번엔 선택할 통로가 하나뿐이었기에 우리는 일말의 지체 없이 방을 떠날 수 있었다.

정사각형의 길.

이젠 이 통로를 걷는 것이 역겹다. 감시당하는 기분이 든다. 어디선가 살인자와 군단개미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

“정면에서 와요!”

아란의 외침.

통로 저편에서 군단개미가 바글바글 몰려왔다.

길을 잘못 택한 걸까?

“돌아갈까요?”

장달이 겁에 질려 소리쳤다.

만약 여기가 넒은 방이었다면 도망치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은 2m 너비의 통로. 군단개미가 아무리 애를 써도 한 번에 2마리 넘는 개체가 덤벼들 수 없다. 물론 아까처럼 벽이나 바닥, 천장을 뚫고 나오지 않는단 보장은 없지만 그 점은 도망쳐도 마찬가지다.

“뚫고 가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리볼버로 쏴 대며 가장 앞장서서 덤벼들었다. 실린더는 금방 비워졌고, 내가 장전을 하는 동안 아란이 대신 군단개미들을 상대했다. 싸울 수 없는 장달은 우리와 거리를 두고 떨어져 혹여 다른 곳에 구멍이 뚫리는지 감시했다.

체액을 채취하러 왔다가 체액에 온몸이 염색될 판이다. 이놈의 개미들은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또 어디선가 기어 나왔다. 벌써 통로에서만 20마리째. 리볼버의 탄환이 슬슬 떨어져 간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처음처럼 함정에 빠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퉷!”

입안에 들어간 체액을 침과 함께 통로 저편으로 뱉었다. 당장은 몰려온 녀석들을 다 죽였지만, 금방 다른 녀석들이 몰려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사람은 아란이다. 아무리 H력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해도 정신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동료가 죽고, 계속된 전투에 아란의 얼굴은 1초가 다르게 초췌해져 갔다.

“다음 방에 도착하면 좀 쉬어요. 다들 너무 지쳤어요.”

아란과 장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가면 군단개미에게 당하기 전에 체력 저하로 쓰러질 판이다.

통로와 연결된 방.

다행히 이곳은 텅 비어 있었다.

연결된 통로도 우리가 온 곳을 제외하면 단 한 곳, 감시하기에도 수월하다.

“편히 쉬어요. 제가 망을 볼게요.”

장달은 배낭을 내려놓은 후 땅바닥에 드러누웠고, 아란은 벽에 기댄 채로 앉아 눈을 감았다.

숙련자도 아닌 둘에게 이 이상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둘은 지금 자신의 능력을 120% 발휘하여 버티고 있다. 사실 내분 없이 묵묵히 내 지시에 따라 주는 것부터가 일반적으로는 하기 힘든 행동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열의 아홉은 분열할 징조가 보이기 마련이다.

“하아.”

이런 때에 왜 자꾸 한돈 아저씨 얼굴이 생각나는 걸까?

둥글 넙적하고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면상, 볼링공 같은 몸통은 절로 성인병을 염려하게 만들고, 당신만 한 크기의 배낭은 왠지 모르게 안정감을 준다. 게다가 생긴 것처럼 식탐이 과해서 만나면 항상 밥으로 마무리, 그것도 일반적인 식사량보다 훨씬 과하다. 먹방 하는 사람과 붙여 봐도 될 정도. 어쩌면 아저씨가 이길지도 모른다. 솔직히 같이 식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아저씨는 한 번도 배가 불러서 먹는 행위를 멈춘 적이 없다. ‘질렸다.’라든가 ‘다른 약속이 있다.’든가 하는 이유를 대며 식사를 중단했을 뿐이다.

“죽게 되는 걸까요?”

대뜸 아란이 말을 던졌다. 그것은 특정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 자기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의문. 솔직히 나도 속으로는 커져 가는 절망감을 억누르는 중이다. 힘든 상황일수록 힘든 척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란 의외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장달은 잠이라도 자는지 묵묵부답.

결국 아란의 말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나라도 대답해 줄 걸 그랬나?

그렇지만 나도 딱히 대답할 기운이 없었다.

휴식은 딱 30분.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 후 아란과 장달에게 말했다.

“슬슬 다시 움직여요.”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가 쉬는 동안 별다른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30분. 덕분에 다들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공미와 사모님을 찾을 때까지 계속 돌아다닐 건가요?”

장달이 배낭을 메며 물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질문. 솔직히 좀 늦은 감이 있다.

“아니요. 다음 방까지만 가 보고…… 돌아가죠.”

이 이상 수색을 계속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어쩌면 공미와 김여개는 진작 탈출하여 역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저 나 혼자만의 기대, 망상. 하지만 사람 일이란 것은 또 모르는 것. 언제, 어느 때이고 희망은 중요하다.

우리가 통로에 발을 디디려는 순간, 뭔가가 통로 저편에서 튀어나왔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 우리는 모두 당황, 특히 맨 앞에 선 난 하마터면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깜짝이야!”

하마터면 쏠 뻔했다. 일단 침착하게 손에 든 리볼버를 주머니에 넣은 후 상대를 확인했다.

일단 군단개미가 아닌 것은 확실…….

응?

“앗!”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