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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64화 (64/250)

64화

64화

날아간 총알은 5마리의 졸병 개미에게 명중. 녀석들은 애벌레 같은 몸통에서 체액을 쏟아내며 그대로 땅 위에 주저앉았다. 재장전을 할 틈도 없이 나도 아란처럼 군단개미들에게 둘러싸였고, 총 대신 접이식 6단봉을 꺼내 쫙 펼쳤다.

“여기선 마음껏 휘둘러 주마!”

아깐 찍거나 살짝 휘두르는 정도였다. 그러나 공간이 넉넉한 여기라면 이 봉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다.

“아자!”

봉을 돌리며 단숨에 졸병 개미 3마리를 후려쳤다. 아란이 내 뒤로 오면서, 우리는 서로 등을 마주한 채 싸울 수 있었다.

후방 기습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싸움은 그야말로 신속하게 정리되었다.

우리가 함께 해치운 군단개미는 대충 졸병 개미 7마리, 상병 개미 10여 마리다. 왜 졸병이 상병보다 수가 적은 걸까? 다른 사람들한테 많이 붙어서 그런 걸까?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다.

“서둘러…… 크윽…….”

역시, 그동안 너무 눈이 높아졌었나 보다.

계속 엄청난 녀석들하고 싸운 나머지, 방심하고 있었다.

아무리 약해도 군단개미는 괴물, 난 경험이 많아 봤자 약골 신인 헌터다.

그런 내 주제에 군단개미를 만만히 본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아란도 나를 따라 그냥 땅바닥에 털썩 앉았다.

“조금만 쉬면 안 될까요?”

지친 목소리.

우리는 군단개미의 체액과 흙먼지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더군다나 이곳은 지하에 있는 땅굴. 눈이 피곤하고,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잘도 싸웠구나. 좀 진정된 후에야 주변 시야가 트였다.

옷은 더럽고, 몸은 땀투성이. 거기에 머릿속은 뒤죽박죽!

“안 될 것 같은데요.”

안전모의 랜턴이 깨져 불빛이 깜빡거렸다. 일단 만일을 대비해 소형 캠코더를 이마에 부착, 한쪽 눈의 시야를 고정시켰다.

아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은 쉴 수 없다.

“다른 사람들하고 합류한 후에 실컷 쉬게 해 줄게요.”

아란은 보란 듯이 혀를 쭉 내밀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후우!”

우리는 서둘러 방 안에 뚫린 구멍을 살폈다. 방 안에는 구멍만 8개. 여기서 잘못 선택했다간 영영 밖으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어디로 가죠?”

아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생각해 보면 난 올해 29, 아란은 겨우 18. 아무리 나와 같은 신인 헌터라도 내심 많이 불안할 것이다.

나도 처음 보조 헌터로 사냥에 따라나섰을 땐 항상 불안했었다.

“걱정 마세요.”

뚫린 구멍은 각 통로로 진입하는 부분을 빼면 우리가 들어온 곳처럼 정사각형 모양이다.

만약 개미집 전체가 이런 방식이라면…….

일단 배낭에서 물병을 꺼낸 후 구멍 안 통로에 물을 조금 부어 보았다.

물은 통로 안이 아닌 우리가 있는 방으로 흘러나오다가 바닥에 스며들었다.

그렇다면 이 통로의 경사는 방 쪽이 낮고, 저쪽이 높다는 뜻이다. 최소한 이곳으로 가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다른 구멍도 차례차례 안에서 물을 부어 보았다. 처음 구멍과는 반대로 모두 통로 안으로 물이 흐르며 바닥에 스며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적어도 어디로 가야 지상으로 갈 수 있는지 알아냈어요.”

문제는 탈출이 아닌 합류,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통로를 식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 방법은 물이 아주 많아야 한다.

당장 내 물병은 마지막 구멍을 확인 후 텅텅 비어 버렸다.

리볼버를 장전하며 아란에게 물었다.

“올라갈까요?”

아란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마 속으로는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고 싶을 것이다.

“네.”

일단 위로 올라가는 것을 선택.

우리는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정사각형의 통로를 걸을 땐 나름 인공적인 느낌이 나서 좋았는데 이젠 소름이 돋게 만든다. 생각보다 괴물들이 지능적인 것 같다. 문제는 그 지능을 사람 죽이는 데 쓴다는 것이지만…….

사람이 괴물을 사냥하는 것과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 것 중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통로를 오르는 동안 우려하던 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평소였다면 끊임없이 군단개미가 몰려왔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산란기. 아마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기 전까지는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통로는 쭉 이어졌고, 끝에 가선 길이 두 개로 나뉘었다.

“어디로 가죠?”

아란의 질문에 이번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아란의 물병을 빌려 또 물을 부어 봤지만, 양쪽 모두 우리가 온 길로 흘러내렸다.

“미치겠네.”

아주 대놓고 골탕 먹이는구나.

일단 왼쪽으로 가자.

우리는 왼쪽 길로 올라갔다.

왠지 선택하지 않은 오른쪽 길에 뭔가 중요한 게 있을 것 같단 예감이 든다. 부디 이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으악!”

음, 일단 꽝은 아니네.

통로 저편에서 남성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전력으로 질주, 소리가 난 곳까지 단숨에 다다랐다.

통로 끝과 연결된 방. 그곳에서 우리가 본 것은 쓰러진 길국과 겁에 질린 장달이었다. 두 사람은 상병 개미들에게 둘러싸인 채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사, 살려 주세요!”

나와 눈이 마주친 장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길국의 상태는 잘 보이지 않아 모르겠지만, 장달의 상처는 확실히 보였다. 애초에 상의를 안 입고 온 녀석이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 장달은 복부에서 피를 흘리며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제가 놈들을 맡을게요. 달이 오빠랑 국이 아저씨를 봐주세요.”

아란은 지친 기색을 떨쳐 내며 군단개미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내가 고딩한테 지시를 받을 줄이야. 하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흐뭇하다고나 할까?

아란은 군단개미들을 발로 밀어내며 두 사람에게서 최대한 떨어뜨렸다. 아란이 틈을 만든 사이 난 두 사람에게 접근, 일단 쓰러진 길국을 살펴봤다.

“이런…….”

자세히 본 길국의 목에는 자상이 있었고, 맥박과 호흡은 멎어 있었다.

피가 많이 나온 것으로 봐선 정확히 동맥을 절단당한 것 같다.

다행히 죽은 길국의 배낭은 무사했다. 즉시 배낭에서 응급처치 상자를 꺼냈고, 그것으로 장달의 배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

“길국 씨는 어떻게 당한 거죠?”

“모르겠어요. 제가 여기 왔을 땐 이미…….”

장달은 내가 감아 준 붕대를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길국의 상처는 괴물에게 당한 것이 아니다. 괴물은 저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군단개미라면 더더욱……. 이건 사람이 찌른 상처다.

장달의 손에는 무기가 없다.

일단 장달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누가, 왜 길국을 죽인 거지?

“응?”

잠깐만…….

장달이 몸을 추스르는 사이, 바지 뒤에 꽂아 둔 단검이 눈에 들어왔다.

무기를 갖고 있었어? 그런데 왜 쓰지 않았지?

설마…….

아무래도 장달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장달에게는 길국의 배낭을 맡게 했다.

부상당한 사람에게 싸우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다 죽입시다요!”

아란과 나는 한 번 더 군단개미과 싸웠다.

이번엔 겨우 7마리. 아까 싸운 수와 비교하면 우스운 수준이다.

놈들을 다 해치우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리볼버의 실린더가 다 비기도 전에 싸움은 끝이 났다. 장달은 내 손에 들린 총을 보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부럽다. 나도 총 한 정만 있었으면…….”

뜨끔.

장달의 말이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든다. 역시 난 실력이 아니라 총 덕으로 싸우는 건가. 하긴, 나보다 훨씬 어린 여자애는 맨손으로 잘만 싸우고 있으니…… 옆에서 보면 확연히 비교가 되겠지.

맨손으로 싸운다는 것은 강함의 증거. 그러나 그것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 하다못해 너클이라도 끼고 싸운다면 좋으련만, 아란은 꿋꿋이 맨손 맨발을 고집한다.

“아란 양, 이거요.”

아란에게 붕대와 소독약을 내밀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란의 손은 피투성이. 아란의 몸에 묻은 체액에는 군단개미의 것 말고도 아란 본인의 것도 섞여 있다.

아무리 H력으로 강화해도 사람의 몸은 엄연한 살덩이다. 거칠게 쓰면 당연히 닳기도 하고, 상처도 난다. 단지 H력으로 인한 신체 능력 강화로 인해 흉터가 잘 안 생길 뿐. 즉, 티가 안 나더라도 부상은 당하는 것이다.

아란은 내가 준 소독약을 손에 부은 후 권투 선수처럼 붕대를 손에 감았다. 음, 이번 사냥이 끝나면 진지하게 너클을 권해 봐야겠다.

“일단 채취할까요?”

장달이 채취기를 꺼내며 물었다.

음…… 지금 상황에 체액 채취 따위로 시간을 낭비해도 되는 걸까?

“아니요. 지금 급한 건 모두가 모이는 거예요.”

“그럼 길국 할배는 어떻게 하죠?”

“그건…….”

솔직히 말해서 데려가는 것이 맞다. 죽은 사람이라도 이런 곳에 내버려 두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죽은 사람은 짐, 시체를 옮기기 위해 산사람에게 위험부담을 전가할 수는 없다. 장달은 부상 때문에 힘을 쓸 수 없으니 나와 아란이 옮겨야 하는데 그것은 또 그것대로 전력이 저하된다.

“두고 가죠.”

힘들게 입을 열어서 말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만약…… 만약 상황이…….

만약 내가 길국 씨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버려두고 가길 원할까? 지금 내가 내린 결정은 비겁한 걸까?

살기 위해 죽은 동료를 포기한 결정. 하지만 아란과 장달은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정도로 두 사람은 차분하다. 내가 너무 감상적인 걸까?

“남은 사람은…… 여개 씨, 공미 씨, 그리고 자공 씨군요.”

김여개는 정식 헌터, 분명 혼자서도 잘 버티고 있을 확률이 높다. 문제는 공미와 박자공. 장달과 길국의 경우로 보아 두 사람 역시 1초가 급할 것이다. 어쩌면 벌써 당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하나?”

내가 갈 곳을 정하는 동안 두 사람은 길국을 묻었다. 그것이 최소한의 도리, 산 자가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동료애였다.

“응?”

이 방과 연결된 통로는 모두 4개. 하나는 나와 아란이 올라온 곳이고, 다른 하나는 장달이 통과한 곳이다.

남은 선택지는 둘.

일단 한쪽에 서서 캠코더의 적외선 촬영 기능을 이용해 내부를 살폈다.

“흐음.”

통로의 내부는 깨끗하다. 우리가 온 그 어떤 길보다 깔끔해 새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다른 쪽. 이번에는 정반대다. 벽이고 바닥이고 천장이고 할 것 없이 체액과 흠집으로 가득하다. 흙을 파서 만든 통로이기에 여차하면 길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깨끗한 길로 가요.”

흠집 난 길은 장달이 도망쳐 온 통로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지금, 누가 거쳐 온 길은 가 봤자 소용없다. 만약을 대비해 지금까지 온 통로 입구에 숫자로 표시를 해 놓았다. 처음 길은 1, 아란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2, 장달과 길국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3. 그리고 이제부터 갈 길은 4번이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돌아가기 한결 쉬울 것이다.

“쭉 이런 식으로 소수만 덤볐으면 좋겠는데…….”

이런 상황이 돼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팀원들이 참 그립다. 한돈 아저씨의 치료술, 루호의 유성추, 호규의 사자후, 유정의 사격술…… 심지어 그 얄미운 박유화도 아쉽다!

통로를 걷는 순서는 나, 장달, 아란으로 정했다. 장달은 길을 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개 아줌마라도 있으면 좀 나을 텐데…….”

흠, 동감이다.

김여개란 사람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정식 헌터이니 도움은 되겠지.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방.

여태까지 본 방들처럼 이곳도 넓고 텅 빈 공간에 어두컴컴했다. 사람이 있다면 머리에 쓴 안전모의 불빛으로 확실히 식별할 수 있다.

“저기…… 뭔가 움직여요.”

아란이 어둠 속을 가리켰다.

또 군단개미인가?

일단 리볼버로 어둠 속을 겨누며 힘껏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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