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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63화 (63/250)

63화

63화

바로 박자공과 교대해 줬다.

통로 안은 어둡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랜턴 빛이 닿는 곳 밖에선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땅속이란 것치곤 온도나 공기는 쾌적한 편.

새삼 군단개미의 건축 기술에 감탄이 나왔다.

“응?”

감상에 빠진 그때, 어둠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가느다랗고 긴 두 물체, 느낌상 더듬이 같다.

“뭔가 있어요!”

“퉤엣!”

내 말에 박자공은 급히 먹던 점심을 뱉어 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끝낸 상황, 각자의 무기를 들고 일어서 어둠 속을 경계했다.

일단 대기.

마음 같아선 총으로 쏴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나올 수 있다.

그것만큼은 일어나선 안 된다. 물론 2급 따위에게 당하진 않겠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쪽수엔 답이 없다.

“그렇다면…….”

즉각 배낭에서 소형 캠코더를 꺼내 적외선 촬영 모드를 켠 후 눈에 댔다.

“역시!”

예상대로 군단개미가 어둠 속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다.

문제는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란 점이다.

두 마리가 나란히 서서 통로를 막고 있다.

녀석들의 더듬이는 일종의 레이더. 그렇기에 군단개미는 어둠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녀석이 곤충형이기에 필연적으로 갖는 단점도 있다.

난 그것을 이용할 생각이다.

일단 안전모에 달린 랜턴을 분리, 전원을 껐다. 그러고는 캠코더의 시야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녀석들은 이렇다 할 행동 없이 더듬이만 바삐 움직이고 있다.

“받아라!”

최대한 접근 후 냅다 녀석들을 향해 랜턴을 켰다.

이래 보여도 안전모에 달린 랜턴 빛은 상당히 강력하다. 그리고 군단개미에게는 안타깝게도 눈꺼풀이 없다. 이런 어두운 곳에서 갑작스럽게 강력한 빛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답은 뻔하다.

개미형이라 그런지, 녀석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고통스러워했다.

물론 곤충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대신 ‘페로몬’이란 무시무시한 물질로 의사소통을 한다. 벌써 최초접촉 때 중앙으로 신호를 보냈을 확률이 높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녀석들을 빠르게 제거한 후 지원이 오기 전에 체액을 빼내는 것.

이젠 거리낄 것이 없다.

리볼버를 꺼내 왼쪽 녀석의 머리 정면에 한 방, 그리고 오른쪽 녀석의 입속에 한 방을 갈겼다.

와, 총알 한 방에 제압되는 괴물이라니!

요즘 너무 강한 녀석들만 상대해서 그런지,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실린더에 남은 총알은 4발. 리볼버의 총구를 어둠 속으로 겨누며 등 뒤로 소리쳤다.

“어서 채취하세요!”

길국이 허겁지겁 배낭에서 커다란 주사기 같이 생긴 체액 채취기를 꺼냈다.

진공 펌프, 이물질 필터, 신선 보존 기능까지 있는 최신형……이 아니네? 그냥 펌프 기능만 있는 구형이다. 음, 뭐 형편대로 사는 거지. 하하하.

길국은 장달과 함께 체액을 빨아들이면서 한마디 던졌다.

“이 녀석들, 상병이야.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는데?”

“그럼 안 되죠! 돈 벌러 와서 손해를 입으라고요?”

바로 이어진 김여개의 불평. 그러나 그것은 옳은 불평이라 할 수 있다.

두 마리의 체액으로는 6명의 몫을 감당할 수 없다. 부득이하지만, 몇 마리 더 나오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 과연 지원이 몇 마리나 올까? 그나저나 이 소형 캠코더 정말 유용하다. 확실히 전자 제품은 살 거면 아예 고급으로 사야 한다.

“손님 오시네.”

꾸물꾸물 군단개미 몇 마리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참고로 군단개미는 각 계급별로 외형이 달라 쉽게 구분이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개미의 외형을 가진 것은 상병 개미. 졸병 개미의 경우 애벌레 같은 몸통에 다리 6개와 더듬이, 그리고 집게 입을 갖고 있다.

“7마리 정도? 전부 상병이에요.”

“왜 졸병이 아닌 상병만 오는 거죠?”

장달의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나도 그 점이 궁금했다.

“글쎄요. 일단 녀석들을 처리하죠. 저 정도면 손해는 면할 수 있을 거예요.”

치고 빠지는 작전에서 너무 늘어지는 것은 치명적이다. 우리의 존재가 노출된 이상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진다.

“그래요. 싸웁시다!”

노출도로만 보면 제일 먼저 죽을 것 같은 장달이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그래, 열심히 하는 모습만큼은 참 보기 좋구나. 제발 부탁이니까, 죽지만 마라. 내가 볼 때 넌 안 다치는 게 더 의문이야.

각자 무기를 든 채 다가오는 군단개미들을 바라봤다.

우리의 목적은 최대한 빠르게 녀석들을 정리하는 것. 가급적이면 이렇게 몇 마리씩 끊어서 덤벼 주는 편이 우리 입장에선 편하다.

“간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장달의 자신만만한 기합이 신경에 거슬린다. 부탁이니까, 저세상으로나 가지 마.

“하압!”

맨 앞에서 나와 함께 서 있는 박자공이 힘차게 기합을 질렀다.

그나저나 이 아저씨 무기도 참 걱정이다. 과연 육각 방망이로 잘 싸울 수 있을까? 뭐, 상대가 2급이니까…… 음…… 여차하면 내가 다 해치우면 될 것이다.

“히이이익!”

김여개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앗!”

김여개가 비명을 지른 이유는 너무나 당연했다.

벽.

우리 뒤쪽에 있는 통로의 벽 양쪽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거기서 졸병 개미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망했다.

어쩐지 좀 이상하다 싶었다. 너무나 긴 통로에, 너무나 정돈된 형태, 거기에 너무나 잠잠했다.

왜 이런 정보는 인터넷에 없는…… 아, 다 죽어서 그런 거구나!

어쨌든 정면에서 온 녀석들이 왜 상병뿐이었는지에 대해선 해명이 된 셈이다.

“으악!”

바로 옆 박자공의 목소리.

아차, 바로 앞에도 군단개미가 있었지. 얼른 고개를 돌렸다.

박자공은 이미 상병 개미 하나와 사투 중. 내 바로 앞에도 군단개미 하나가 집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림없지!”

총알 발포하려는 순간 또 다른 한 마리가 더듬이로 내 손을 후려쳤다. 그 탓에 총이 오발, 발포의 충격으로 멀리 날아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젠장!”

욕이 절로 나온다. 저게 얼마짜리인데……!

분노로 눈이 뒤집혀 6단봉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즉시 더듬이로 내 손을 때린 녀석과 정면의 녀석의 머리를 박살 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H력이 발동. 바삭한 파이가 부서지듯 녀석들의 머리가 깨지며 체액이 쏟아졌다. 그러나 즉사시키기엔 부족했는지 녀석들은 계속 나에게 덤벼들었다.

이러지 마, 나 총 주워야 돼!

“크아아악!”

박자공은 군단개미에게 한쪽 팔을 물린 채 육각 방망이를 휘둘렀다.

‘혹시나’가 ‘역시나’구나.

일단 박자공을 문 녀석의 집게 입을 6단봉으로 찌르기, 집게 한쪽을 부러뜨려서 박자공을 구했다.

“가, 감사합니다.”

“인사하실 때가 아니에요!”

지금은 말을 주고받는 것도 아깝다.

박자공은 얼른 정신을 추스른 후 정면의 군단개미에게 맞섰다.

그럼 이제 총을 좀 주우러…….

“꺄아아악!”

이번엔 아란의 소리.

정식 헌터인 아란이 고작 졸병 개미 따위에게 경악할 리 없었다. 총을 주우려다가 흠칫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도대체 또 무슨…….”

정확히 우리 양옆의 벽이 무너지며 예닐곱 개의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각각 두세 마리의 졸병 개미가 쏟아져 나왔다. 통로가 좁아서 겨우 버티던 형세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변했다.

“이렇게 되면……!”

박자공은 열심히 상병 개미를 때리다가, 돌연 자신의 팀을 향해 소리쳤다. 드디어 뭔가 팀장다운 지시를 하려는 건가?

“다들 흩어져! 졸병 개미가 나온 구멍으로 도망치는 거야. 우리가 흩어지면 녀석들도 분명 흩어질 거야!”

“뭐라고?”

아차! 이 인간을 믿은 내가 잘못이다. 기대하는 마음에 박자공이 끝까지 말하도록 내버려 두고 말았다.

다른 상황이면 모를까, 지금 이 상황에서 흩어지는 것은 자살행위다!

박자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른 다른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아니에요! 모두 모여 있어요. 이럴 때 흩어지면 전부 죽어…….”

하아, 진짜 짜증이 몰려온다. 그새 흩어졌어? 왜 이런 것만 말 잘 듣는 거야!

어느새 내 옆에 있던 박자공도 구멍으로 도망치고 없었다. 통로에 남은 것은 나 혼자. 심지어 군단개미들도 어이가 없는지 나만 바라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하, 하, 하. 덕분에 총 주울 시간은 벌었구나.”

리볼버를 주운 후 실린더를 열고 총알을 장전했다.

미치겠네. 내가 무슨 유치원 선생님도 아니고, 사냥에 대해서 일일이 가르쳐야 되는 거야?

“어떻게 하지?”

그냥 혼자 바깥으로 나갈까?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군단개미들은 날 쳐다보다가 동시에 한 구멍으로 몰려갔다.

뭐지? 분명 저 구멍은…….

아! 분명 아란이 들어간 곳이다!

“그렇다면, 나도!”

구멍의 지름은 약 1.5m. 허리를 살짝 숙여 안으로 들어갔다. 개미들은 내가 따라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쓰며 무작정 구멍 속을 달렸다.

구멍은 정사각형의 통로처럼 쭉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내가 다다른 곳은 뻥 뚫린 넓은 공간의 방이었다.

“아란!”

방 안에서 아란은 군단개미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철저하게 군단개미의 함정에 놀아나고 있다. 녀석들은 우리가 흩어지길 바란 것이다. 뭉쳐 있었다면 포위되더라도 충분히 밖으로 뚫고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흩어지면 오히려 빈틈이 많아져서 우리 쪽이 더 불리해진다. 아무리 녀석들이 약하더라도 엄연히 괴물이고, 우리는 인간이다. 더구나 H력이 없는 사람은 더욱 위험할 것이다.

아란은 미친 듯이 날뛰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군단개미를 박살냈다.

능력발현이 다리 근력 강화라서 그런지, 마치 망아지처럼 군단개미 사이를 뛰어다닌다.

군단개미들은 졸병, 상병 할 것 없이 아란에게 짓밟혀 죽어 나갔다.

“앗!”

아란의 뒤에서 상병 개미가 집게 입을 쫙 벌리며 다가온다. 아란은 녀석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 채 다른 개미들을 죽이느라 정신이 없다.

“위험해!”

아란은 내 외침을 듣고는 재빨리 몸을 돌려 상병 개미의 집게 입에 돌려차기를 날렸다. 아란의 발뒤꿈치에 맞은 군단개미의 집게가 보기 안쓰럽게 으깨지며 체액을 뿌렸다.

다른 사람한테 갈 걸 그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굳이 아란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 애초에 내가 쟤한테 두들겨 맞는 신세인데?

내가 미쳤지.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을 구해 준답시고 오다니…….

“에라, 모르겠다!”

일단 싸우고 보자!

어차피 헌터란 늘 위험이 따르는 직업. 사냥 구역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각자 나름대로의 각오를 했을 것이다.

‘싸우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이 바로 헌터다.

앗, 또 아란이 위험하다. 이래서 혼자 싸우면 안 되는 건데…….

“숙여요!”

아란은 즉시 내 외침에 반응, 몸을 굽혀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그리고 아란이 엎드림과 동시에 내 리볼버가 불을 뿜으며 연달아 6발의 총알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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