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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60화 (60/250)

60화

60화

‘유니콘 뿔 채취’의 보수는 꽤 짭짤했다.

원래는 그냥 알바 시급 정도였지만, 아저씨와 박유화의 활약으로 주인의 기대보다 훨씬 많은 뿔을 채취한 덕분이었다. 기본 보수 말고도 주인이 따로 챙겨 준 보너스가 통장으로 들어왔다.

나중에 아저씨한테 한턱내야겠네.

콧노래를 부르며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오늘은 일 없는 일요일. 느긋하게 방 안에 틀어박혀 인터넷 서핑이나 할 생각이다.

일단 트튜리팟에 접속.

지난번에 올린 쌍두하피 영상에 대한 반응을 살폈다. 이번 영상엔 자막으로 주의 사항을 써 넣었다.

[본 영상의 괴물은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이 말을 넣은 이유는 혹여나 우리 실력이 부풀려져 쓸데없는 소란이 일어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저번 드래건 영상 때 생긴 적지형과의 트러블이 간간이 떠오른다.

“카리는…… 아직 회복 중이고……. 다른 사냥 영상이나 볼까?”

현재 이 사이트에 올라온 영상 중 내 것과 같은 종류는 드래건 사냥이 2개, 쌍두하피가 1개다. 다만 다른 영상들은 내 것과 달리 편집이 과할 정도로 많다.

“어?”

망할 적지형이 쌍두하피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쓰레기들끼리 잘 노네. 쌍두하피가 부상당하지 않았으면 다 죽었을 듯? 저것들은 헌터도 아니야. 부상당한 괴물이나 찾아 죽이는 것들이 무슨 헌터임? 저 녀석들은 해수 사냥도 하면 안 됨. 그냥 바퀴벌레 덫이나 놓으라고 해. 헌터계의 수치임. 저런 것들은 ‘사냥’이라는 말도 쓰게 하면 안 됨.]

이 자식!

크윽, 절로 이가 갈린다. 하지만 분함보다도 녀석이 쓴 ‘쌍두하피가 부상당하지 않았으면 다 죽었을 듯’이란 문장에 가슴이 쓰리다. 스스로 생각해도 적지형의 말이 옳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부족해…….”

적지형은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헌터.

다른 점은 몰라도 녀석의 실력은 진짜다. 만에 하나라도 녀석과 붙게 되는 날이 온다면…… 힘이 필요하다. 적어도…… 최소한 내 정의를 관철할 수 있을 만큼. 최강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불의에 꺾이며 도망치지 않아도 될 정도만이라도.

“아저씨한테 얼마 찔러 드리고 또 수련시켜 달라고 할까?”

한돈 아저씨는 수전노에, 저질에, 반사회적 인격 장애에, 혼돈주의자에, 필 충만한 아재시지만…… 확실히 실력은 좋으시다.

헌터는 실력이 전부.

인성은 중요치 않다.

“어?”

문득 눈에 띈 영상 하나. 제목이…….

“새나라 목장 사건 사고? 여, 여긴?”

새나라 목장이면…… 우리가 일한 곳이다.

무슨 사건 사고?

황급히 영상을 클릭, 재생시켰다.

약 5분짜리의 영상. 뉴스를 짧게 편집한 것이었다. 일단 뉴스리포터가 나왔다.

“네. 저는 지금 유니콘을 몽땅 도둑맞은 새나라 목장에 와 있습니다. 여기 제 옆엔 목장 주인께서 계시는데요. 사장님, 어제 일어난 도난 사건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모자이크를 했지만, 분명 리포터가 인터뷰한 사람은 새나라 목장 주인이 맞았다.

주인은 변조 음성으로 횡설수설 떠들어 댔다.

“이상하게 그날 재수가 좋더라고요. 요즘엔 중, 고등학생도…… 거시기…… 그, 그게…… 음, 학생들이…….”

설마 학생들이 순결…… 에이, 됐어. 생각하지 말자.

“험험, 믿을 수가 없는데…… 설마하니 다 큰 성인들이…… 그게…… 거시기……. 아! 이름이 아마…… 팀 이름이…… 길었는데, ‘헌터 협회 한국 지부장은 발기부전’이었지? 외계인처럼 생긴 남자가 분명 그렇게 말했어요.”

크윽, 한돈 아저씨!

이 문제는 나중에 꼭 따져야겠다.

“네. 그 부분은 저도 들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익명의 제보자께서 자신을 ‘헌터 협회 한국 지부장은 발기부전’이란 팀의 헌터라고 하셨죠.”

왜 그걸 한 번 더 강요하는 거야?

리포터는 주인에게 대화의 주제를 상기시켰다.

“그래서 범인의 얼굴을 보셨나요? 그 부분은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예? 아, 예예. 마지막으로 축사를 둘러보는데……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어요. 여자애…… 긴 흰 머리…… 창백한 얼굴을 지닌 아이였어요. 나이는 10대 중후반? 그 아이가 나타나니까, 갑자기 유니콘들이 날뛰면서 축사를 부수기 시작했죠.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요.”

리포터는 주인의 말에서 중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짚으며 물었다.

“그럼 범인은 미성년자란 말씀이신가요?”

“네. 그러고는 유니콘들을 끌고 어딘가로 사라졌죠.”

“경찰과 협회에서 수사 중이라고 하던데요?”

그 말에 주인은 울먹거렸다.

“그렇긴 한데, 이 일대가 온통 평야인 데다가 인적이 드물어서…….”

즉, 수사가 힘들단 뜻이구나. 엄청 불쌍하다. 아마 자기 소유가 아니라 협회로부터 지급 받은 것일 텐데……. 보험은 들어 놨겠지?

다음으로 검색한 영상은 ‘나이트윙’이란 괴물에 관한 것이었다.

불타는 고구마.

그 괘씸한 녀석들을 결국 경찰에 넘기지 않았다. 대신 어떤 정보를 넘겨받았는데, 무려 붕대를 두른 어떤 남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허접한 녀석들치곤 꽤 고급 정보였다. 아, 물론 마지막에 아저씨가 녀석들에게서 ‘삥’을 뜯었다.

“그러니까 6급 사냥 구역에서 붕대 두른 남자가 나이트윙과 함께 있는 걸 자기들 눈으로 직접 봤단 말이지…….”

처음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묘하게 내용이 구체적이고 뚜렷했다.

일단 나이트윙의 생김새 묘사, 5급 이상의 괴물은 정보가 적다. 그래서 직접 보거나, 이렇게 영상에 찍힌 것이 아니면 가치 있는 내용이 들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전 세계적인 사냥 영상 사이트인 트튜리팟에서 나이트윙에 대한 영상이 단 하나도 없단 게 그 증거. 나이트윙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괴물은 영어권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다.

두 번째는 녀석들이 6급 사냥 구역에 들어간 방법과 안에서 있던 일들의 경위. 녀석들은 정문이 아닌 샛길이 있다고 했다. 그 샛길은 사람만 겨우 통과 가능한 크기라 6급 사냥 구역에서 사는 거대한 괴물들은 절대 드나들 수 없다는 말도 덧붙여서…….

세 번째는 붕대남에 대한 이야기.

내가 최향자의 기억에서 본 붕대남은 분명 몸의 대부분을 붕대로 감고 있었으며, 오직 눈과 입 부분만 붕대가 감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 ‘키키키’까지. 물론 그런 사람이 또 있지 말란 법은 없지만…….

확률이 얼마나 될까?

불타는 고구마의 이야기에 따르면, 녀석들은 괴물의 알을 노리고 무려 6급 사냥 구역에 침입했다고 한다. 녀석들의 빈틈 찾는 능력이 대단한 것인지, 아니면 협회의 관리가 소홀한 것인지…….

어쨌든 한참을 찾았지만, 알이 무슨 ‘나 잡아가쇼.’ 하면서 대놓고 있지는 않아서 소득은 제로. 그렇게 헤매고 헤매다가 우연히 어느 초원에 들어섰다고 한다. 거기서 녀석들이 본 것은 무려 6급 괴물인 나이트윙에게 ‘명령’하고 있는 붕대남의 모습. 멀리서 봤음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그 뒤 녀석들은 도망, 즉시 사냥 구역을 빠져나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호규 씨가 쌍두하피를 처음 봤을 때 무슨 남자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지? 설마…….”

6급 사냥 구역에 가 봐야 하나? 그렇지만 드래건 사냥 때도 숙련된 헌터 30명이 갔다가 5명이 죽고, 6명이 중상이었다.

우리 팀 5명과 검은 과부들 3명을 합쳐도 사상자보다 적다.

“사람을 사서 써야 하나…….”

당장은 나이트윙을 사냥해야 할 이유도 없고, 수단도 없다.

그렇다면, 일단 보류.

참고로 쌍두하피 영상의 조회 수는 5백만. 드래건과 비교하면 한참 아래지만, 그만큼 두 괴물 사이의 격차를 뜻하기도 한다. 위험하고, 등급이 높은 녀석일수록 더 높은 관심을 끄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쌍두하피는 정상적인 사냥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도 고작 영상 2개로 받은 어마어마한 관심은 과분할 정도로 많다.

적지형의 악플이 계속 신경에 거슬리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다.

“음……. 당분간은 3급 사냥 구역에서만 일하는 게 좋겠지?”

유니콘 일로 한돈 아저씨의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음, 좀 심하게 놀렸나? 그렇지만 아저씨가 평소에 한 말에 비하면 별로 수치스러우시지도 않을 텐데? 우리 팀에 여자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있었다면 진작 아저씨는 성희롱으로 고소당했거나, 제거됐을 것이다.

유정의 경우에는…… 아직 정확한 사정을 듣지 않았지만……. 조만간 따로 만나 이야기할 생각이다.

역시, 너무 기생오라비처럼 잘 생겼다 했어.

잠깐만……!

유정은 아저씨가 데려온 사람인데? 그렇다는 것은 아저씨는 알고 계셨단 뜻인가?

“삼자대면을 해야겠구나.”

아저씨의 ‘순결’ 문제에 대해 좀 더 놀릴 구실이 생겼다.

주말 아침. 2급 사냥 구역 주차장.

나는 혼자 청색 밴 차량 앞에 서 있었다. 오늘은 함께 일하던 팀원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언제나 변함없이 자기 몸뚱이만 한 배낭을 멘 아저씨가 보고 싶다.

‘끌끌끌! 어디 우리 팀장 실력 좀 볼까?’

상상 속의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하하하.”

상상 속 아저씨의 표정이 심히 마음에 걸린다. 한쪽 입꼬리만 귀에 걸린 삐딱한 미소. 실력은 개뿔! 오늘 일은 정말 하기 싫다. 그렇지만 보수가 좋다. 저번 유니콘 뿔 때 받은 것보다 훨씬 두둑한데,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겠나?

아아, 갈수록 아저씨처럼 돈에 휘둘리네.

사실 이번 일은 일종의 찌꺼기다.

의뢰를 준 담당관 말에 따르면, ‘다른 헌터들이 모두 거절해서 가장 서열이 낮으신 상팔 씨가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거절하셔도 이해합니다. 그만큼 막장이거든요.’라고.

솔직히 돈만 아니었다면 거절했을 일이다.

배낭을 멘 채 쓸쓸히 몸을 풀었다.

아저씨라도 부를 것을 그랬나? 하지만 이번 일은 나 혼자 해내고 싶다. 요 며칠 수련한 성과도 알고 싶고…… 팀장으로서 실력을 확인하고도 싶다.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라도 죽이자.

배낭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읽었다.

미리 읽어 봤지만 다시 읽어도 참 답이 없다.

오늘 함께 일할 팀의 이름은 ‘땅벌.’

이름처럼 구성원도 다채로운 편이다. 협회에서 보내 준 자료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편에 경험 미숙, 거기에 능력자가 겨우 2명뿐이다.

보조 헌터 출신의 팀장, 박자공.

상의 노출에 목숨 건 사나이, 장달.

장달과 정반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으로 무장한 보조 헌터, 공미.

별 모양 선글라스를 쓴 멋진 장년, 길국.

정식 헌터이자 능력자인 중년 헌터, 김여개.

마지막으로 낯익은 한 사람.

트레이닝복의 태권도 소녀, 주아란?

“치한으로 몰렸을 때 생각나네. 얜 도대체 왜 여기 들어간 거야? 여긴 딱 봐도 답답한데…….”

약속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은 뒤에야 노란색 밴이 주차장에 도착했다. 밴에서는 정확히 서류에 쓰인 6명이 내렸고, 팀장인 박자공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차가 밀려서…….”

거짓말.

내가 올 땐 완전 한가했는데? 그 새 도로가 북적였다굽쇼? 하하하.

“하하하……. 괘,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박자공의 사과에 뒤에서 비아냥거림이 들려온다.

“흥! 저렇게 줏대가 없으니 우리가 아직도 밑바닥이지. 남자가 저렇게 함부로 사과해선 안 되는 거야!”

파마한 머리에 펑퍼짐한 스웨터와 몸빼 바지 같은 치마. 게다가 색은 형광이다! 어떻게 저런 옷을 구한 거지? 사냥할 때 입는 복장 맞아?

어딘가 엇나간 전형적인 아줌마 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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