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58화 (58/250)

58화

58화

‘새나라’ 목장. 그곳이 바로 협회가 나에게 알선해 준 일거리 장소였다.

목장 주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먼저 목장 사무실에 도착한 아저씨와 최향자, 그리고 박유화는 주인이 내온 과자를 먹고 있었다.

아저씨는 과자를 먹으며 쾌활하게 웃었다.

“끌끌끌! 꽤 늦었구먼? 양손에 꽃을 좀 즐기고 온 거냐?”

흥!

대답 대신 아저씨의 손에서 과자를 낚아챘다. 아저씨는 순순히 과자를 넘겨주고는 손가락을 빨았다.

루호는 아저씨의 짓궂은 농담에 난색을 표했다.

“그런 말씀은 좀……. 그러다가 언젠가 혼나실지도 몰라요.”

아저씨는 유정을 보며 윙크를 날렸다.

“괜찮아! 저 친구는 보기보다 속이 깊거든.”

“‘보기보다’인가요…….”

유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나와 루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하필 눈길이 닿은 곳에서 박유화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어머, 그렇게 빤히 쳐다보실 것 없어요! 제가 그렇게 좋으세요?”

유정은 황급히 박유화에게서 최향자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최향자는 최향자대로 자신과 눈이 마주친 유정을 죽을 듯이 노려봤다.

난 두 사람 사이로 들어가며 최향자에게 말했다.

“하하하. 과자가 참…… 맛있죠?”

“그래.”

최향자는 마지못해 성격을 누그러뜨렸다.

유정은 고맙단 말과 함께 내 뒤에서 과자를 먹었다.

주인은 우리에게 오늘 할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녀석들한테서 뿔만 자르면 된다, 이거요?”

아저씨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날 쳐다봤다. 그것은 무언의 항의, 무언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일단 가볍게 아저씨의 눈을 무시했다.

“저희한테 맡겨 주세요!”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장 저편에 있는 나무들을 가리켰다.

“고맙습니다. 그럼 해가 지기 전까지 부탁드립니다. 지금 시간이면 다들 그늘에서 쉬고 있을 거예요. 저쪽으로 쭉 가면 녀석들이 쉬는 작은 숲이 있어요. 평소엔 온순한 녀석들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되지만, 정말 할 수 있겠어요?”

“그럼요!”

난 호언장담을 하며 주인에게서 뿔을 담을 바구니와 뿔을 자를 때 쓸 톱을 받았다.

우리는 서둘러 숲을 향해 걸어갔고, 주인은 멀리서 우리에게 소리쳤다.

“명심하십시오! 해가 지면 돌아오셔야 합니다! 해가 지면 난폭해지니까요!”

“거 참. 알았으니까, 간식이나 준비해 놓으쇼! 누굴 아마추어로 알아?”

아저씨는 큰소리로 대답하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한참을 걸어 작은 숲에 도착했다. 눈으로 보기엔 얼마 되지 않아 보였는데, 의외로 목적지까지 거리가 멀었다.

가까워 보였던 숲까지 가는 데 대략 1시간, 걷기만 했는데도 벌써부터 지친다.

“목장이 엄청 넓네요.”

“여긴 일반 말들도 사육하는 모양인데?”

아저씨는 저 멀리서 뛰어노는 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말들은 흙먼지를 날리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저 말이라도 하나 잡아서 타고 싶네요.”

“끌끌끌! 말 탈 줄은 아냐?”

“호호호!”

박유화는 유정의 팔을 잡고 끌면서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래 봬도 제가 승마에 일가견이 있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교양을 쌓느라 안 배운 게 없거든요! 호호호!”

“완전히 코가 꿰였군.”

“그러게요.”

툴툴대는 우리의 말이 무색하게 박유화는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은 모두들 양손으로 두 귀를 막을 수 있을 때 박유화에게 한 팔을 뺏긴 유정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결국 한 쪽 귀로 그 웃음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점이다.

유정은 청각을 포기한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 갔다.

“호호호!”

“크아아악!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아저씨는 성수에 맞은 악귀처럼 박유화의 웃음소리로부터 달아났다.

“아저씨, 멈추세요!”

“싫어!”

아저씨는 대답하며 숲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아저씨를 따라 헐레벌떡 숲으로 달려갔다. 점심 해가 높이 오르고, 한참을 걸어 더웠던 터라 시원한 그늘 속이 참 반가웠다.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슬며시 뛰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숲 안쪽에서 아저씨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가장 앞에 서서 아저씨의 비명이 들린 곳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거대한 몸집의 짐승들에게 둘러싸여 험한 꼴을 당하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아저씨를 둘러싼 짐승들은 훌륭한 허벅지 근육으로 안정감 있는 뒤태를 자랑했다. 육중한 몸은 지방이 아닌 가죽과 근육으로 이루어져 위협적으로 보였고, 늘씬하게 뻗은 목과 그 목 위로 난 갈기는 그늘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며 주변을 비추는 듯했다. 초롱초롱 빛나는 두 눈은 아저씨에게 고정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눈 사이에 길게 뻗은 원뿔형의 뿔은 드릴처럼 꼬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있었다.

가장 유명한 괴물 중 하나이자, 여자들의 로망.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가장 좋은 정력제 생산물.

바로 ‘유니콘’이었다.

“아저씨!”

서둘러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도, 도와줘! 이 자식들, 육식인가 봐!”

아저씨는 날 보며 손을 뻗어 도움을 청했다. 달려가는 동안에도 유니콘들은 아저씨에게 달라붙어 몸 여기저기를 긴 혀로 날름 핥고 있었다.

이런 미친 말대가리들! 너희가 지금 ‘뭘’ 핥고 있는 건지 알아? 저것들이 단체로 마약을 했나?

“그거 먹는 것 아니야, 그거 지지야. 지지!”

우리가 아저씨에게 다가가려 하자, 유니콘 한 마리가 두 눈을 번뜩이며 앞을 가로막았다. 일반적인 말보다도 훨씬 큰 유니콘이 길을 막자, 우리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유니콘은 세계의 수많은 괴물 가운데 몇 안 되는 사육 가능 종. 그렇지만 엄연히 5급의 위험도를 지닌 괴물이다. 즉, 이놈들 하나하나가 쌍두하피와 동급이란 소리다.

일단 녀석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모두에게 손짓으로 움직이지 말라고 신호했다.

만약 유니콘과 싸움이라도 난다면 우리의 생사는 물론이고, 녀석들 몸값까지 책임져야 한다.

유니콘들은 꼼짝 않고 있는 우리를 자세히 둘러보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미리 공부한 바에 따르면 유니콘은 처음 만난 상대의 체취를 맡아 상대방이 ‘특성자’인지 바로 알아낸다. 만약 상대가 ‘특성자’라면 절대복종, 별 상관없이 뿔을 채취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조사를 해도 ‘특성자’가 아닌 경우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그냥 ‘조심하라.’란 말뿐이었다.

설마 소녀들의 꿈과 희망인 유니콘이 살인이라도 하겠어?

일단 잠자코 유니콘의 처분을 기다렸다.

유니콘은 한참 우리 냄새를 맡더니, 이윽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변을 빙빙 돌았다. 그러나 아무리 냄새를 맡아도 유니콘의 아리송함은 풀리지 않았다.

유니콘은 결국 고개를 최대한 높게 들어 크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아저씨에게 달라붙어 핥아 대던 유니콘들이 모두 우르르 몰려와 우리를 에워쌌다.

“저거…… 큰일 난 거 아닌가요?”

유정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아직은…… 아니에요.”

우리는 포위된 상태에서 최대한 한곳으로 뭉쳤다. 괜히 가까이 다가갔다간 온몸에 말굽 편자가 찍힐 위험이 농후했다.

유니콘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박유화의 냄새를 맡았다. 처음에는 갸우뚱, 그다음에는 골똘히, 한참을 생각하던 유니콘들은 마침내 결론을 내리고는 울음소리를 주고받으며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뿔을 겨눴다.

“설마…….”

침을 꿀꺽 삼키며 자세를 낮췄다.

망한 건가?

썅!

유니콘들은 자기들끼리 눈치를 살피다가 돌연 고개를 숙이고는 일제히 뿔을 들이댔다.

이어진 돌진, 뿔을 창날 삼아 일제히 우리를 찔렀다. 잘 훈련된 병사의 그것처럼 유니콘들의 찌르기에는 불필요한 동작이 전혀 없었다.

“알아서 피하세요!”

몸을 뒤로 눕혀 뒤통수로 땅바닥을 찌었다. 눕자마자 바로 눈앞으로 교차되는 유니콘들의 뿔,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연속 찌르기였다.

무기도 없는데……!

겁에 질려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 유니콘들의 다리 틈으로 들어갔다.

유니콘들은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미쳐 날뛰며 날 짓밟으려 꿈틀댔다. 그러나 한 장소에 너무 많은 수가 뭉쳐 있던 탓에 다리를 들어 찍는 것은 그다지 수월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무사할까?

“으아아아! 예비군 훈련이 이런 때 도움이 되다니……. 진짜 ‘높은 산, 깊은 골’이다!”

빠르게 기어 유니콘들에게서 벗어났다. 그러나 녀석들이 눈치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유니콘들은 개처럼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쫓았다. 허둥대던 것도 잠시, 자신들에게서 벗어나 이동했음을 직감하고는 방향을 돌려 흩어진 일행들을 각각 바라봤다.

“아저씨는?”

나도 모르게 시선이 아저씨에게로 갔고, 막 몸을 추스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저리 가! 훠이, 훠이! 저리 가라! 쉭, 쉭! 죽으려면 혼자 죽어!”

아저씨는 자신에게 기어오는 날 보며 전신전력을 향해 양팔을 휘저었다. 마치 귀찮은 하루살이를 쫓는 것처럼, 여름밤 피를 빨러 날아오는 모기를 본 것처럼.

후후후, 그렇단 말이지?

나중에 두고 봅시다.

아직 유니콘들은 본격적인 추적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 잘만하면 충분한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도망쳐!”

아저씨는 양손을 휘저으며 유니콘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어? 설마…… 스스로 미끼 역할을……? 아, 아저씨! 아저씨가…… 우리를 위해서?

아저씨는 적지 않은 유니콘들을 이끌고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유정, 최향자, 박유화는 얼떨결에 아저씨를 따라 움직였다.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

루호가 소리쳤지만, 셋은 아저씨를 따라 멀리 사라졌다.

도대체 뭔 목장 안의 숲이 이렇게 무성한 것인지…….

남은 사람은 나와 루호.

우리는 남은 유니콘들의 주위를 살피며 계속 기었다.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지금 당장 우리가 죽을 목숨이라…….”

우리는 일단 유니콘들을 따돌리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젠장, 괜히 아저씨를 불러선…….

이러다간 해지기 전에 뿔을 자르기는커녕 우리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녀석들을 진정시키고 뿔을 잘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 맨몸이란 점. 싸움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

“숫자가 너무 많아요.”

루호는 눈대중으로 유니콘들을 세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유니콘을 사육하는 목장에 대해서도 의심스럽다는 의견을 내놨다. 유니콘의 뿔은 강력한 정력제이자 최음제, 그렇기에 그 수는 협회에서 엄격히 관리하고 있었다. 효과의 강력함은 물론이고, 막대한 수익도 따랐기에 단순 관리가 아닌 개체 수 지정까지 할 정도.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수를 사육한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당장 여기에 모인 녀석들만 해도 50여 마리, 우리 눈에 띄지 않은 개체까지 합치면 100에 육박할 수도 있었다.

“이 녀석들 한 마리가 웬만한 집 한 채보다 비싸다니…….”

더럽게 비싼 몸값, 그리고 그런 괴물을 사육하는 목장. 목장의 다른 말들은 이 녀석들을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

“잠깐…… 말? 말이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