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53화
서둘러 호규의 몸에 손을 대고 심호흡을 했다. 고기 파티 후 열심히 훈련한 성과. 그것은 바로 강제 흡입이다! 이게 바로 내 진정한 능력발현. 빨아들인 상대의 능력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차라리 잘됐어. 상대방 의지에 따라 흡수가 잘 안 될 때도 있는데, 지금의 호규는 빈껍데기.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호규의 H력이 흘러들어 왔다.
“끌끌끌! 그나저나 능력도 참 너처럼 어중간한 걸 얻었구나.”
“아저씨 덕분이죠!”
일단 능력은 얻었고.
다음은 진형을 펼치는 일이다.
“다들 이리로 모여 주세요!”
호규와 아저씨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한곳으로 모였다.
일단 가볍게 정보 공유. 아저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줬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다행이네요. 그럼 한 번 더 그물망을 쓸까요?”
루호의 질문. 하지만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 방법은 두 번 통하지 않을 거야.”
애초에 덫이나 함정도 아니고, 그냥 던진 것뿐이잖아.
게다가 한 번 실패했고…….
“그럼 어떻게 하죠?”
장마리가 산탄총을 장전하며 물었다.
장마리의 능력은 고속 주행. 정확한 정보를 위해 장마리에게 되물었다.
“혹시 한 사람을 업고 높이 점프할 수 있나요? 전속력으로 달리면서요.”
장마리는 잠깐 최향자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유정과 박유화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미끼가 되어 줘요. 총을 쏴서 녀석의 시선을 끌어 줘요.”
차례차례 각자가 할 일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러자 동료들 얼굴에 의구심과 함께 번뜩이는 용기가 보였다.
“성공할 수 있어?”
최향자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가장 냉정한 척하고 있지만, 사실 지금 누구보다 흥분한 사람이 바로 최향자다. 아니라면 나도 벤 쌍두하피를, 최향자가 베지 못했다는 사실이 말이 안 된다. 분명 동생의 복수 때문에 제대로 힘 조절이 안 되고 있을 것이다. 보통 분노하면 더 잘 싸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정반대다. 냉정해지지 않으면 제대로 위력을 내지 못한다.
특히 손에 든 무기가 냉병기라면 더더욱.
“네.”
내 대답에 최향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 진정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날 못미더워하는 걸까?
어차피 우리에게 차선책은 없다. 호규와 아저씨가 전투에 도움이 안 되는 이상, 남은 6명이서 해내야 한다.
“그럼 시작하죠! 저기가 포인트예요!”
바위에 걸쳐진 계단 중 하늘로 솟구친 하나를 가리켰다.
그래, 저기가 우리의 희망. 놈을 무찌를 동아줄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단 주위로 달려갔다. 쌍두하피는 아직도 지면에서 꽤 가까운 높이에 있다.
우리를 본 녀석이 급강하를 준비. 우선 녀석을 묶어 둬야 한다!
“하아아아압.”
우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목소리의 증폭이 호규의 능력, 그렇다면 H력을 성대가 있는 부분에 집중시키면 되겠지?
최대한 숨을 마시다가 입을 다문 후 쌍두하피를 노려봤다. 그리고 H력의 전개와 함께 크게 소리쳤다.
“야아아아호!”
역시 산에 올라오면 ‘야호’를 해야지!
내 목소리가 H력에 의해 증폭, 거대한 공기의 출렁임을 만들며 말 그대로 음속으로 날아가 쌍두하피를 때렸다. 쌍두하피는 급강하를 중단, 4개의 날개를 푸덕이며 어떻게든 공중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본래 비행이란 행위 자체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 반자연적인 것. 아주 사소한 실수로도 추락할 수 있다.
지금 녀석은 아마 필사적일 것이다.
지금이야! 내 호흡은 그리 길지 않다고. 서둘러!
난 곁눈질로 루호와 장마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행동에 나섰다.
작전에서 말한 대로 장마리는 루호를 업고 능력발현. 포니테일이 불꽃에 휩싸이는 것을 시작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땅을 박찼다.
야생마의 질주가 절로 생각나는 질주. 장마리는 루호를 업은 채 계단 잔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장마리가 달리는 사이, 내 목소리가 점점 약해져 갔다.
원래 호규의 능력은 순간적인 폭발력을 이용한 것이어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없다.
내 목소리가 끝나는 것을 대비해 박유화와 유정이 각각 총을 들고 대기, 내가 입을 다물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총을 쏴 댔다.
“휴우!”
정말 긴 외침이었다.
이래서 호규가 목이 쉬는구나 싶다.
장마리는 충분히 속도를 올린 후 계단 잔해 중 하늘을 향해 솟은 난간으로 돌진, 재빨리 쇠파이프에 올라타 경사를 올라갔다. 그리고 난간 끝에서 점프.
쌍두하피는 아직 장마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장마리와 쌍두하피의 거리는 아직도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장마리가 최고조로 뛰어올랐을 때 업혀 있던 루호가 능력을 발현, 흰색 사슴으로 변해 장마리의 등을 박찼다. 덕분에 장마리는 엄청난 속도로 땅에 곤두박질쳤지만, 대신 루호는 어마어마하게 위로 도약할 수 있었다.
“가라!”
응?
누가 소리친 거지?
뒤를 돌아보니, 숨어 있던 아저씨가 루호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아저씨는 루호를 보면서 추락한 장마리에게 가고 있는 중.
오오, 이럴 땐 그래도 알아서 잘 움직이시네?
루호는 기어코 쌍두하피에게 도달했다. 그리고 크고 아름다운 뿔로 쌍두하피를 찔렀다.
관통하진 않았지만 녀석은 결국 추락, 루호가 녀석의 위로 올라간 상태로 떨어졌기에 충격은 더욱 클 것이다.
“좋았어!”
장마리는 아저씨가 구조. 아저씨는 서둘러 호규가 있는 바위 쪽으로 옮겼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장마리가 떨어진 지점과 쌍두하피가 떨어진 지점은 잔해가 깔린 곳과 거리가 있었다.
추락한 쌍두하피는 피를 토하며 몸을 꿈틀거렸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하나 남은 목도 부러져 있었다.
흠, 이건 빨리 숨을 끊어 줘야 할 것 같다.
“마지막이에요.”
내 말에 최향자가 대검을 들고 천천히 쌍두하피에게 걸어갔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단순 능력 강화로 목을 자르는 데 성공했는데 아예 그쪽으로 특화된 최향자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후웁!”
최향자는 대검을 높이 치켜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것은 단순한 H력 발동이 아닌 고도의 정신력. 긴 호흡이 있은 후 최향자는 다시 눈을 떴다.
“하아아아앗!”
최향자의 대검이 눈 깜짝할 새에 쌍두하피의 마지막 목을 잘랐다. 그리고 그것으로 쌍두하피는 죽었다.
“아이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긴장이 사라지고 찾아온 나른함.
하늘과 가까워서인지 화창한 햇살과 은은한 산 냄새가 느껴진다.
분명 조금 전까진 쌍두하피의 피 냄새 때문에 아무 냄새도 못 맡았는데…….
그래도 냄새 덕에 피로가 가셔서 좋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우리가 다시 일어난 것은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저씨의 푸념이 시작할 때였다. 아저씨는 우리가 쉬는 사이, 혼자서 쌍두하피의 해체를 끝마쳤다.
응? 잠깐, 그 튼튼한 살가죽을 무슨 수로……?
내 질문에 아저씨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윙크를 날렸다.
“그건 비밀이야.”
더러워.
그게…… 그냥 더럽다. 아저씨의 저런 얼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더러워. 정말 더러워. 최향자도 나와 마찬가지로 역겹단 표정. 그러나 한결 가벼워 보이는 얼굴이다. 역시 복수를 끝냈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복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 일은 내 생각보다 훨씬 사이즈가 컸다.
우리는 ‘보의 길’을 통해 하산하기로 했다.
바위의 길은 사실상 사라져서 절벽을 기어야 하고, 가위의 길은 현재 상태론 버겁다.
현재 시각 오후 4시.
남은 거리로 볼 때 앞으로 4시간을 더 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출입문에 도달하는 것은 통제 시간을 넘긴 오후 8시. 본의 아니게 오늘은 야영을 해야 한다.
보의 길은 이런 헌터들의 사정에 맞춰 중간에 캠핑을 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다.
야영장의 구조는 간단하다. 괴물의 침입을 막아 주는 돔 형태의 유리 막, 비상시에 아래에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는 직통 전화, 그리고 식수대. 참고로 화장실은 없다.
즉,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돔 바깥에 나가 용변을 해결할 때다.
“큰일 났네.”
솔직히 이건 명백한 내 판단 착오다.
난 우리가 오늘 안에 사냥을 끝내거나 중단할 것이라 생각해서 야영 준비를 하라고 알리지 않았다. 검은 과부들은 본인들 몫의 장비를 가져왔지만, 우리 팀은…… 사냥 도구뿐이었다.
일단 짐을 푼 후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걱정스럽지만, 일단 머리에 단 캠코더를 떼니까 목은 정말 개운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루호가 웃으며 팔을 쓰다듬었다.
고마운 녀석.
“끌끌끌!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야.”
저 웃음소리.
이젠 불길하기까지 하다.
아저씨는 자기 몸집만 한 배낭을 내려놓으며 우리에게 흥정을 시작했다.
아저씨의 비만 몸매만 한 배낭에선 정말 물건이 끝도 없이 나온다.
“자자. 쌉니다, 싸요! 폭신한 침낭, 숙면에 최고인 베개, 뜨거운 물 서비스인 컵라면, 에너지 듬뿍 초코바, 달달한 사탕, 칼로리 듬뿍 조난비스킷, 거기에 핫팩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습니다. 쌉니다, 싸요!”
악. 이 아저씨, 진정한 악이었어! 무슨 흥정하는 드워프 같아.
“좀 나눠 쓰시죠?”
유정이 정말 마지못해 한마디 던졌다. 그러나 그런 말이 이 양심 없는 드워프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끌끌끌! 억울하면 돈을 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 시장경제를 가진 나라야. 즉, 돈 없으면 사람 취급 받으며 살기 힘든 곳이지!”
반박하고 싶지만…… 막상 하려니 말문이 막힌다.
불쌍한 내 인생.
일단 아저씨를 달랬다.
“내려가면 제가 한꺼번에 드릴게요. 일단 다들 지쳤으니까, 좀 나눠 주세요.”
상처야 아저씨의 치료술로 낫지만, 피로는 별개의 것이다. 치료술은 어디까지나 육체가 가진 재생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지, 무에서 유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저씨는 인간성과 별개로 능력만큼은 우리 중 거의 유일한 일류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아저씨는 내 말에 수긍했다.
“좋아. 팀장이 그렇게까지 부탁하니, 하는 수 없지.”
아저씨는 침낭 3개, 베개 2개, 컵라면 5개, 양은 주전자, 초코바 5개, 사탕 한 봉지, 그리고 핫팩 10개를 꺼냈다.
참 많은 양. 하지만 이렇게 꺼내놓고도 아저씨 배낭 부피가 조금도 줄지 않았네? 그러고 보니까 해체한 쌍두하피 부산물도 저기 들어 있었지?
한돈 아저씨…… 무슨 4차원 주머니를 지닌 너구리형 로봇 같다. 그러고 보니 체형도 진짜 또라에몽 같잖아?
“그럼 이 중에서 필요한 걸 나눠 가져. 난 잠시 바깥 좀 나갔다 오마.”
아저씨는 야영장의 문을 열었다.
돔과 일체나 다름없는 유리문이 열리며 바깥 공기가 시원하게 불어온다.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망 좀 봐 드릴까요?”
“그래. 상팔이, 네가 좀 따라와라.”
다른 팀원들에게 물건의 배분을 맡긴 후 나와 아저씨는 야영장을 나갔다.
30평 정도인 야영장을 밖에서 보고 있으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거대한 스노우볼.
벽과 같은 소재인 야영장의 유리문은 자동으로 닫히며 외부와 내부를 완벽하게 갈랐다. 돔 중간에 작은 구멍이 촘촘히 뚫려 있기에 산소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애초에 식수대 옆에는 모닥불과 비슷한 화력의 불이 나오는 화구까지 있었다.
“큰 거예요, 작은 거예요?”
“안 싸. 지금부터 주변을 정찰하러 가는 거야.”
응?
설마…… 지금 아저씨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