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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52화 (52/250)

52화

52화

난간을 잡은 채 위태롭게 몸을 일으켰다. 그물망 특유의 탄성으로 인해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간신히 난간을 통해 계단으로 올라가는 데 성공! 그다음엔 후다닥 위로 올라갔다.

멀리 정상에서 계속 총소리와 쌍두하피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다리는 계단을 오르고, 손은 바쁘게 리볼버를 장전했다.

이번에 장전한 탄은 일반 탄이 아니다. 평범한 물건으로는 쌍두하피의 살갗을 뚫을 수 없다. 물론 총알의 힘은 전해질 것이니 충격이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놈이 ‘괴물’이란 점이다. 괴물의 신체구조는 동물과 흡사하지만, 그 기능은 가히 하늘과 땅 차이다. 제대로 된 유효타가 아니면 소용이 없다.

드디어 정상에 발을 디뎠다.

정상은 여태까지 본 비명횡산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살짝 고원 같다고 할까?

산꼭대기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평평한 지형이다. 거기에 나무나 풀은 하나도 없고, 온통 바위투성이.

좀 삭막하다.

아, 물론 지금 여기서 우리 팀과 검은 과부들 팀이 함께 쌍두하피……를…….

잡았네.

“잡았어?”

절벽에 걸쳐져 있던 것과 비슷한 크기의 그물망.

쌍두하피는 그것에 걸려 땅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물로 새를 잡을 수 있다더니, 괴물도 잡을 수 있네?

“형!”

루호가 날 보며 가장 먼저 달려왔다.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루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규를 가리켰다.

“호규 씨가 좀 이상해요. 쌍두하피를 본 뒤부터 계속…….”

“나도 알아.”

호규는 여전히 멍한 상태. 바위에 기대어 앉아 덜덜 떨고만 있다.

“일단 진정되게 놔둬. 지금 중요한 건 쌍두하피야.”

쌍두하피는 생각보다 힘을 못 쓰고 있다.

5급이 저 정도로 당할 리가 없는데? 왜 그물을 찢고 빠져나오지 못하지?

이해가 가질 않아 최향자에게 물었다.

“무슨 방법을 쓴 거예요?”

최향자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대검을 뽑아들어 높이 들었다. 그리고 H력을 전개, 단숨에 대검으로 쌍두하피를 내려쳤다. 질긴 살가죽 때문에 검 날에 몸이 잘리진 않았지만, 쌍두하피의 몸부림은 그것으로 끝났다.

대검을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녀석은 기절한 것인지 축 늘어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진 않았을 테고……. 이제 어떻게 하죠?”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끝났다.

이렇게 끝날 리가 없는데……?

최향자는 자신의 대검을 나에게 넘기며 말했다.

“네가 끝장내. 그때처럼!”

그때?

아! 드래건하고 싸울 때?

그땐 내가 당신 H력을 좀 빌렸거든요. 지금 대놓고 빌렸다간…….

그 전에 과연 내가 정상인 상태의 최향자에게 손댈 수 있을까? 난 오래 살고 싶은데…….

“받아!”

“네!”

일단 대검을 받는다.

지금 내 몸에 흐르는 H력은 아저씨와 루호에게 조금씩 나눠 받은 것. 덕분에 두 사람이 오늘 아침 식사로 뭘 먹었는지 알게 됐지만…….

지금은 그딴 것 아무 소용없다.

“죽여!”

최향자가 날 죽일 듯이 노려본다. 잘하면 동생 복수가 아니라 날 죽이겠는데? 일단 대검을 들어서 치는 시늉이라도 해 본다.

“하아아아아…….”

기합.

최대한 길고 느리게 힘을 모으는 시늉을 한다. H력을 응축시켜 팔 힘이라도 강화시킨다면…… 어쩌면 베는 게 아니라 때려서 죽이는 게 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살가죽이 질겨도 하다 보면 될 테지. 세상에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있어? 모든 H력을 한 곳에 응축시키는 일은 이제 수월하게 해내는 편이다. 저번에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더니…….

“빨리해! 여기 너만 똥 마려운 줄 알아?”

뒤에서 아저씨의 비아냥거림이 들려온다.

좋은 응원 감사해요. 특별히 오늘 일당은 깎아서 드릴게요.

“하아아아압!”

대검으로 힘껏 쌍두하피를 내려쳤다.

노린 곳은 녀석의 오른쪽 목. 목이라면 상대적으로 약하니, 쉽게 숨을 끊을 수 있다……가 아니네?

분명 쌍두하피의 오른쪽 머리는 몸통과 분리되었다. 그러나 목이 잘린 순간 왼쪽 머리가 제정신을 차렸다.

역시 한 몸이라 감각을 공유하나 보네?

녀석이 다시 미쳐 날뛰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물망을 찢으며 빠져나왔다.

“공격!”

서둘러 뒤로 빠지며 외쳤다. 유정과 루호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사격 개시. 수많은 총알이 쌍두하피를 때렸다. 녀석은 총알에 맞아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엉?”

허겁지겁 거리를 벌린 후 옆을 보고 나서 깨달았다. 총을 쏘고 있는 사람은 우리 팀만이 아니었다. 대검을 가진 최향자를 제외한 장마리와 박유화. 두 사람의 손에 무려 산탄총이 들려 있다.

잠깐, 내가 앞에 있었는데 쏜 거야?

이런 미친……!

확실히 산탄총이 파워가 세다. 리볼버 연사를 맞고도 멀쩡하던 쌍두하피가 조금 주춤거리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하지만 역시 치명타는 아니다. 하다못해 슬러그탄이라도 있었다면…….

“산탄만 있어요?”

다급한 마음에 장마리를 보며 소리쳤다. 장마리는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쌍두하피는 무슨 공포 영화 속 괴생물체처럼 총알 세례를 받으며 꿋꿋이 서 있었다. 하지만 당하고만 있을 괴물이 아니었다. 녀석은 갑자기 날개를 쫙 펼치더니 다시 날아올랐다.

뒤늦게 최향자가 새 그물망을 던졌지만, 이미 녀석이 하늘로 떠오른 뒤.

쌍두하피는 하나 남은 부리로 울부짖으며 절벽으로 날아갔다.

“절벽?”

총을 든 네 사람이 서둘러 절벽으로 향했다.

나도 리볼버를 장전하며 함께 사격을 할 생각으로 뒤를 따른다.

산탄총의 존재에 놀라느라 잊고 있었다. 이 총에 나름 괜찮은 특수 탄이 장전되어 있단 사실을…….

“다들 제 신호에 따라 일제……히…….”

리볼버를 겨눈 채 절벽을 내려다본 순간,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모두가 침묵, 사격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저 녀석의 행동을 바라만 볼 뿐.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입을 뗐다.

“도망쳐!”

내 말에 네 사람은 우르르 절벽에서 멀어졌다. 사정을 모르는 최향자와 아저씨, 그리고 넋이 나간 호규에게도 위험을 알렸다.

“큰 바위 사이로 숨어요!”

최향자와 아저씨는 영문을 몰랐음에도 우리의 행동에 바로 움직였다.

호규는 여전히 산송장처럼 굴었지만, 이미 바위 옆에 있어서 상관없었다.

우리가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난 직후, 쌍두하피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의기양양하게 4개의 날개로 날아오르며 발톱으로 계단을 통째로 뽑아내고 있었다.

아저씨가 한마디 쏘아붙인다.

“치사하다! 도구를 쓰는 것은 엄연히 인류만의 특권이거늘……! 감히 인간도 아닌 것이 도구를 사용해? 너 인마, 너무하는 거 아니냐?

동감이다.

일단 앞뒤로 멘 배낭을 벗어 바위틈에 쏙 넣었다.

이제부턴 몸이 가벼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녀석에게 이길 수 없다. 머리에 단 캠코더도 뗄까 3초 정도 고민했지만……. 아직은 괜찮다. 좀 더 촬영하자.

쌍두하피는 우리가 있는 지점으로 계단을 집어던졌다. 옆구리 터진 김밥 꼴이 된 강철 계단은 보기 흉하게 꼬여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쇠파이프와 철판이 부서지며 주변으로 흩어졌고, 흙과 돌멩이가 날려 먼지 구름을 일으켰다.

“젠장!”

녀석의 공격은 이제부터였다.

“또 온다!”

4개의 날개가 풀가동.

일반적인 새의 속도보다 2배 이상으로 빠른 비행에 의해 공중에서 정상으로 강풍이 몰아쳤다.

바람 땜에 감히 나설 수도 없을 정도.

우리가 당황한 사이에 쌍두하피는 다른 계단을 또 뜯어 와 집어 던졌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폭격.

계속해서 계단이 떨어진다!

“다들 알아서 잘 피해요!”

계단이 모두 몇 개였지?

이제 2개째니까…… 앞으로…… 이런 미친……!

“아깐 저렇게 빠르지 않았잖아? 이게 뭐야?”

장마리의 품에 안긴 박유화가 버럭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재앙에 화밖에 낼 수 없는 상황. 그나마 우리가 몸을 숨긴 바위가 우리보다 컸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계단에 깔려 납작해졌을 것이다.

바위가 기둥 역할을 해 준 덕에 우리 위로 떨어진 계단에 직접적으로 깔리진 않았다.

“끌끌끌!”

응?

이 상황에 아저씨가 혼자 웃고 있다. 아저씨는 팔짱을 낀 채 뭔가 알고 있단 듯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뭐예요? 혼자만 알지 마시고, 가르쳐 주세요.”

내 질문에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고 싶으냐? 그럼 비용이 좀 드는데……?”

우와.

갑자기 알고 싶지 않아졌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서비스로 알려 주시죠? 이런 비상 상황에는 서로 도와야죠!”

아저씨는 코를 후비며 딴청을 피운다.

하늘에서 철재가 떨어지는 이런 때에 여유라니……. 하긴, 이 아저씨라면 혼자서라도 살아남을 거야. 왠지 그럴 것 같아.

먼지 구름으로 눈이 매울 지경이다.

하는 수 없지.

“알았어요. 정보료 드릴 테니까, 알려 주세요.”

아저씨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 안 사실인데, 저 녀석 정상이 아니야.”

“그렇겠죠. 머리가 하나 떨어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내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아오. 내 머리……!”

“어린놈의 자식이! 어른이 말씀하실 땐 끝까지 듣는 거야!”

눼에, 눼에. 알겠습니다요. 분부대로 합죠.

입을 꼭 다물며 아저씨를 노려봤다.

“험험. 머리 이야기가 아니야. 처음부터 중상이었단 이야기다. 안 그러면 처음 최향자가 던진 그물망에 그렇게 쉽게 걸렸겠냐?”

흠, 맞는 말이다. 너무 쉽게 풀릴 뻔했지.

그럼 내가 괜히 잠자는 야수의 코털을 건드린 건가.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향자가 시킨 건데…….

“그럼 이대로 버티란 소린가요?”

“아니. 버티는 것만으로는 안 돼. 녀석이 뻗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전멸할 수 있거든. 지금은 계단을 뜯고 던지는 것으로 화를 풀고 있지만, 계단이 다 떨어지면 다음엔 직접 공격을 해 올 수도 있어. 누가 녀석 머리를 벌컥 베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꼬인 거야.”

그러니까, 그건 내 탓이…….

“아, 정말 도대체 어디 사는 놈이 쌍두하피 머리를 벤 거야? 머리 두 개가 서로 싸워야 판단 착오가 생겨서 빈틈이 많아지는데, 지휘 체계가 하나 되어서 효율이 빵빵해졌잖아?”

뭐요? 그럼 위험도가 더 올라갔단 말입니까?

“김모 씨의 아들 상팔이만 아니었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녀석이 중상이라서 높이 날 수 없단 거지. 새대가리치고 저렇게 지면에서 가까이 나는 멍청이가 또 있을까? 끌끌끌!”

젠장. 끝까지 내 탓이란 소리지? 그래. 어디 이 한 몸 바치마!

나도 명색이 대한민국의 정식 헌터란 말씀! 그런데 이젠 머리가 하나니까, 쌍두하피가 아니라 그냥 하피 아닌가?

흠……. 하지만 엄연히 일반 하피와는 다른 괴물이니까, 그냥 ‘머리가 하나인 쌍두하피’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지막 계단이 뜯겨져 정상으로 추락했다.

이로써 바위의 길은 초토화. 쌍두하피는 정상을 빙빙 돌며 사냥에 나선 매처럼 우리를 감시했다.

“호규 씨!”

대충 작전은 있는데…….

일단 호규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호규는 여전히 똑같은 상태.

하는 수 없지……. 빨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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