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50화
전 세계에서 찾아와 시청한 모양이다. 다만 댓글의 날짜로 볼 때 최근엔 좀 주춤한 편. 관리를 안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카리…….”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상의로 입은 점퍼 주머니에는 핸드폰 말고도 저번에 쓴 손전등 모양 캠코더가 있다.
이번 일은 감정이 섞인 사냥이라 조금 분위기가 무겁지만, 기회를 봐서 촬영할 생각이다. 쌍두하피를, 그것도 3급 사냥 구역에서 해치운다는 것은 보통 흔한 일이 아니다.
밴은 3급 사냥 구역 주차장에 주차, 우리와 검은 과부들은 모두 자동차에서 내렸다. 내리고서야 알았지만, 여긴 우리가 저번에 온 출입문과 다른 곳이었다.
비명횡산이 워낙 넓어서 입구가 다섯 개이니,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작정하고 무기와 장비를 챙겼기에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짐이 많다.
일단 우리 팀만 해도 사람 머릿수가 있는지라 배낭 숫자만 7개. 짐을 옮기는 것도 큰 부분이라 분배에 신경을 써야 했다.
반면에 검은 과부들은 셋이서 겨우 배낭 하나. 드래건 사냥 때를 생각하면 다소 가볍다. 하긴, 무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다.
최향자는 대검을 등에 멘 상태. 다른 장비는 짐만 될 뿐이다. 장마리와 박유화는 전투용 나이프, 루호는 언제나처럼 유성추다. 유정과 호규는 배낭 위에 사냥용 소총이 얹혀 있다.
양측을 합해서 배낭이 모두 8개. 각자 하나씩 들면 충분하다.
일단 용기를 내어 최향자에게 물었다.
“저희 배낭 좀 들어 주실래요?”
크윽, 내가 오빤데……. 내가 연장자인데! 그렇지만 역시 최향자는 무섭다.
단순 노안이냐, 동안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카리스마와 기세가 남다르다! 일단 키부터 나보다 크다.
“싫어.”
하하하. 역시나…….
기대한 내가 바보지. 장마리는 갈등하는 눈치, 박유화는 혀를 날름거린다.
아오, 혀나 씹어라!
결국 배낭의 분배는 내가 2개, 아저씨가 2개, 그리고 나머지가 각각 하나씩. 검은 과부들 것은 장마리가 멨다.
내용물이 가득 찬 배낭을 앞뒤로 메니 좀 버겁다. 하지만 이런 일은 보조 헌터 때 지겹도록 겪어 봐서 괜찮다. 캠코더는 머리띠를 이용해 왼쪽 관자놀이에 고정, 내 시선이 곧 녹화 화면이 될 것이다.
아저씨는 원래 메고 다니던 본인 배낭 안에 추가로 받은 배낭을 넣었다?
원래 배낭이 워낙 커서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배낭 분배가 끝나고, 그다음엔 지도를 펼쳐서 목적지를 설명했다.
목표물은 쌍두하피, 녀석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은 비명횡산의 정상. 3급 괴물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녀석들이 서식하고 있다.
물론 그래 봤자 쌍두하피한테는 그냥 간식거리겠지만…….
“길은 좁아. 한 줄로 빠르게 올라갈 거야.”
최향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형 설명 다음엔 쌍두하피에 대한 정보.
쌍두하피는 이름 그대로 머리가 2개인 괴물. 일반적으로 하피는 인간의 몸에 새의 날개, 혹은 인간의 머리에 새의 몸을 지닌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냥할 녀석은 평범한 하피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전체적으로 깃털 난 사람의 형태다. 상체엔 날개, 하체엔 다리와 꼬리. 반인반조라 할 만한 모습이다.
발톱은 한 번 잡은 먹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반달형으로 크고 흉측하다. 거기에 날개는 팔에 한 쌍, 등에 한 쌍으로 총 두 쌍을 갖고 있다.
덕분에 일반적인 조류와는 달리 무려 호버링이 가능하다! 마치 꽃에서 꿀을 빨아먹는 벌새처럼 공중 체공, 즉 하늘에 뜬 채로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쌍두하피는 주둥이의 부리도 벌새처럼 길쭉하다. 거기에 이름처럼 머리가 2개. 각 머리는 양쪽 어깨 위에 하나씩 나 있는데, 특이한 점은 머리 하나가 죽어도 다른 하나한테 아무 영향이 없단 것이다.
“5급이란 이름에 걸맞게 상당히 강하니까, 알아서 조심해.”
최향자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호규가 손을 번쩍 들었다.
“5급이나 되는 녀석을 잡으러 가는데, 좀 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6급인 드래건을 잡을 때 4개 팀, 30명이나 모였었다.
아무리 드래건보다 약하더라도 5급인 쌍두하피를 잡는데, 고작 8명. 확실히 어처구니없는 숫자다. 하지만 최향자와 검은 과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우리 팀 외에 다른 팀과의 연합은 기대하기 힘들다.
‘돈’이 얽히지 않는다면, 누구도 오지 않을 일이다.
드래건의 경우, 협회에서 건 현상금의 존재를 몰랐다고 해도 기본몸값이 5억 이상이다. 당시 참여했던 30명이 모두 무사히 사냥을 마쳤단 가정을 해도, 순이익만 1인당 최소 1천만하고 수백만 이상. 그러나 쌍두하피는 경우가 좀 다르다.
5급인 쌍두하피의 경우 몸값은 1억 정도, 지금 있는 8명이서 나눠도 최대가 1천만 정도다. 여기에 사람을 더 부른다? 누구도 오지 않는다. 물론 사냥 한 번에 1천만은 큰돈이다. 그러나 문제는 액수가 아니라 쌍두하피의 위험도다. 재수 없으면 모두 전멸할 수 있단 게 바로 비행 괴물의 무서움이다.
날개 달린 괴물에게는 함부로 덤벼선 안 된다.
사실 우리 팀도 사전에 팀원들의 의사를 물어본 후 온 것이다.
내 이기적인 동정심 때문에 팀원까지 희생시킬 수 없는 노릇이니까…….
고맙게도 다들 날 믿고 목숨을 걸어 주었다.
심지어 아저씨까지!
정말 눈물겨운 동료애다.
등산로를 올라가는 순서는 최향자, 박유화, 호규, 장마리, 루호, 아저씨, 나, 유정으로 정했다.
쌍두하피의 습성으로 볼 때 좁은 등산로로 오진 않을 터, 일단 빠르게 정상으로 향했다. 내심 저번처럼 돌발 상황이 생길까 염려가 되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중턱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딱 3가지.
흔히들 ‘가위, 바위, 보’의 길이라고 부른다. 중턱까지는 세 곳이 전체적으로 비슷하지만, 여기서부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상황이 달라진다.
가위의 길은 정상으로 가장 최단거리에 길도 편하다. 그러나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가시거머리’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곳이다. 그래서 사실상 가위의 길은 3급쯤은 우습게 볼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낸다.
바위의 길은 중간거리에 길은 가장 험하다. ‘바위’란 이름에 걸맞게 절벽을 올라가야 하는 구간도 있다.
보의 길은 장거리에 길은 보통. 중간에 마주칠 확률이 있는 괴물들도 다소 약한 편이다. 다만 앞의 두 길에 비해 여긴 정말 똥개 훈련 하기 좋은 곳이다. 산을 빙빙 돌아서 올라가기에 아침 일찍이 아니라면 왕복만으로도 제한 시간까지 빠듯하다. 여기서 여유를 부리면 통제 시간인 오후 6시까지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세 가지 길 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은 바위다. 보는 보통 1박 2일로 계획한 경우에 주로 이용하고, 가위는 실력 있는 헌터 팀만 이용한다.
우리는…….
“역시 바위구나.”
최향자는 일말의 고민 없이 바위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한참을 걸은 후 절벽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서 위로만 올라가면 곧장 정상이다.
“자기 짐 잘 챙겨.”
절벽에는 쇠파이프와 철판으로 이루어진 계단이 붙어 있다.
각도는 50도 이상으로 가파르다. 그야말로 절벽에 밀착하여 정상까지 이르는 구름사다리. 그런 계단이 나란히 10개가 있다.
물론 10개 모두 일방통행, 5개씩 나뉘어 위아래 방향이 정해져 있다.
첫 번째 것은 최향자와 박유화, 두 번째 것은 호규, 세 번째 것은 장마리와 루호, 네 번째 것은 아저씨와 나, 그리고 마지막 것은 유정이 오르기로 했다. 그 뒤 우리의 몸을 등반용 로프로 연결, 혹시나 있을 추락에 대비했다.
“출발!”
내 외침에 다들 천천히 계단에 올랐다.
지금까지는 순조롭지만, 여기서부턴 다르다. 여기를 다 오르고 나면 곧장 쌍두하피와 마주칠지 모른다. 아님 그전에 피라미들과 마주치거나…….
제발 위에 올라갈 때까지 평온해라.
이건 완전히 허공 위에 뜬 상태나 다름없어서 어떻게 할 수도 없단 말이야!
고기 파티가 끝난 다음 날. 난 혼자서 최향자와 만났다. 물론 우리가 만난 것은 데이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확인, 그리고 병문안이었다.
병원에서 내가 본 것은 중환자가 된 카리.
이일과의 인터뷰 때 당한 후로 쭉 그 상태라고 했다. 최향자는 카리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전날 내게 그랬던 것처럼 한 번 더 ‘부탁’했다. 최향자 같은 사람이 나한테 부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카리의 본명은 최향기.
바로 최향자의 동생이다. 최항자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복자매. 어렸을 땐 함께 살았으나, 집안 사정으로 헤어진 모양이다. 그 뒤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연락두절.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최향자가 카리의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부터였다.
“다른 사람에겐 이야기할 수 없어. 난 상관없지만, 향기가 더 이상 상처받는 걸 원치 않아.”
카리는 A급 연예인을 꿈꾸는 입장. 지금의 부상도 치명타인데 가정사까지 소문나면 끝장이다. 최향자의 말에 따르면 꽤 괜찮은 연예소속사와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라고 한다. 몸만 제대로 회복한다면 정식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은 안 되고, 전 괜찮나요?”
우리 딱 한 번 같이 사냥한 사이인뎁쇼?
솔직히 최향자가 날 이렇게까지 신뢰할 줄 몰랐다.
내가 어지간히 호구처럼 보였던 걸까?
최향자는 순순히 대답해 줬다.
“닮았어. 내가 알던 어떤 사람이랑…….”
어…… 불길한데…….
“혹시 그분께선 지금……?”
“죽었어.”
역시!
혹시 저번에 엿본 기억 속에서 살해당한 사람인가? 분명 이상하게 생긴 붕대남에게…….
“그리고…….”
응? 아직 뭔가 더 말하려는 건가?
“넌 묘하게 멍청해. 그래서 마음이 놓여.”
결국 호구란 거잖아!
에잇, 너무해. 하지만 카리의 얼굴과 최향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울컥한다. 동생의 복수를 원하는 언니. 그리고 그런 언니의 속도 모른 채 웃기만 하는 동생. 말 그대로 사이좋은 자매다.
최향자는 한 번 더 내게 부탁했다, 함께 ‘쌍두하피’와 싸워 달라고. 다른 팀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돈도 많지 않을뿐더러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용무. 사람이 많아도 시끄러워진다. 애초에 나한테 도와달라는 것도 최향자 입장에선 꽤 파격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5급 괴물이 3급 사냥 구역에 날아든 것은 특이사항. 여차하면 협회에 보고해서 제대로 처리해야 할 문제다. 다만, 그렇게 되면 카리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보상이야 이미 협회에서 지급이 끝난 상황이다.
달라진다면 그것은 카리에 대한 시선, 앞길이 막힐 수도 있는 스캔들뿐이다.
결국 난 카리를 보며 최향자와 약속했다.
물론 집으로 돌아와선 바로 후회.
쓸데없는 동정심에 하지 않아도 될 약속을 해 버렸다. 하지만 최향자를 위해 웃는 카리, 최향기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난 외동아들이라 잘 모르지만, 형제자매 사이의 우애는 동료애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예 모르는 사이라면 모를까, 함께 생사를 넘은 동료의 부탁. 절대 거절할 수가 없다.
나는 혼자 강해진 게 아니다.
언제나 내 곁엔 누군가가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누군가의 곁에 있어 줄 차례다.
“저게 뭐지?”
아저씨의 외침.
잠시 생각을 접고 위를 올려다본다. 다들 나처럼 아저씨가 가리킨 곳을 보고 있다. 아직 절벽의 중간, 계단 옆으로 보이는 풍경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내 뒷목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오늘 우리가 여기 온 목적.
“말도 안 돼.”
나도 모르게 한탄을 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위에서 우릴 향해 뭔가가 ‘날아서’ 내려오고 있다. 심지어 멀리 있는데도 머리가 2개인 게 아주 잘 보인다!
망했다.
“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