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44화
작은 못 2개와 묵직한 망치의 충돌. 무력하게도 못 끝이 완전히 구부러졌다. 죄수고릴라의 주먹에 지지대가 완전히 찌그러지며 내 몸이 뒤로 밀려났다.
충격에 의해 손에서 지지대를 놓치고, 그 무식한 힘에 뒤로 벌러덩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이고…….”
죄수고릴라의 주먹에는 약간의 생채기만 있을 뿐 아무 이상도 없었다. 죄수고릴라는 고함을 지르며 떨어지는 날 향해 양 주먹을 번쩍 들었다. 아무래도 날 돈가스 고기처럼 다지려는 것 같다.
죄수고릴라는 주먹을 머리 뒤로 힘껏 젖히며 본의 아니게 유연함을 드러냈다. 만약 죄수고릴라의 주먹에 부딪친다면 최소한 사망, 심하면 시체가 조각날 것이다.
주먹 두 개가 벼락처럼 내려치는 것을 본 순간, 앉은 채로 바닥을 힘껏 찼다. 그리고 바닥을 미끄러져 겨우 죄수고릴라의 주먹을 피했다.
본래 목표를 잃은 죄수고릴라의 공격은 그대로 무대 바닥에 직격, 무대 전체가 요동치며 무너졌다.
“으아아악!”
무방비 상태로 죄수고릴라와 떨어진다. 무대 바닥의 잔해와 뭔가 더 큰 시멘트 같은 것이 우리 둘 위로 떨어졌다. 뭐지? ‘쿵’ 소리가 나며 눈앞에 별이 돈다. 뒤통수를 제대로 찧은 것인지, 따끔한 고통과 함께 눈물이 흘러내렸다.
“쓰으으읍!”
무대 밑, 아까 추가시험에서 링이 무너졌을 때와 시야가 비슷하다. 나와 함께 떨어진 죄수고릴라는 완전히 잔해에 묻혀 버렸다. 하하하, 평생 쓸 운을 다 쓴 건가? 일단 여기서 나가고 봐야겠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는 그 때, 무대 바닥에 뚫린 구멍 위로 천장이 보였다. 역시 위층에서 뭔 일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아니면 죄수고릴라의 공격이 너무 강한 나머지 천장이 무너진 건가? 무대 바닥에 난 구멍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구멍. 그것은 바로 천장에 난 것이었다.
오늘 하루만 두 번째, 구멍에서 힘겹게 빠져나왔다. 대충 정리가 된 발표장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각 계단에 맞춰 가지런히 놓여 있던 좌석들은 대부분 부서지거나, 무너져 있었다.
죽은 죄수고릴라를 짓밟는 아란, 그런 아란을 말리는 유정, 슬그머니 뒤로 빠지며 도망칠 준비를 하는 나존귀, 구석에 앉아 조용히 쉬는 구지태, 여전히 출입구를 막고 있는 갈리, 그리고 갈리 뒤에서 밖을 지켜보는 장혁.
응? 티라노가 보이지 않는다?
“김대팔 씨 보신 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김대팔과 함께 싸웠던 아란은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모른단 건가?
“일단 한곳에 모이죠. 인원 점검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내 제안에 무대 옆으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였다. 출입구를 지키던 갈리도 죄수고릴라가 모두 물러갔단 말과 함께 합류했다.
어디 보자. 장혁과 갈리. 그리고 다른 합격자가 4명……. 역시 김대팔이 안 보인다. 그리고 아무 쓸모없는 협회 직원이 3명, 합격자의 동행을 포함한 기타 인원이 5명.
“혹시 안 보이는 사람이 더 있거나 하진 않죠?”
죄수고릴라와 싸우기 바로 직전에 들어온 나로선 알 수 없는 정보다. 다행히 사람들 말에 따르면, 김대팔을 제외하고 모두 무사한 모양이다.
죄수고릴라들이 제거되고 발표장은 잠시나마 평온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둘로 나뉘어 무대 아래 공간에서 간단히 응급처치를 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열심히 숨어 있던 직원들은 상황이 안정되자 금방 냉정을 되찾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 여기저기 지시를 내렸다.
“거긴 함부로 깔고 앉으면 안 됩니다!”
“응급상자에 있는 약은 조금씩만 써요!”
“죽은 괴물은 협회 소유니, 더 이상 접촉하지 마십시오!”
아이고, 누가 들으면 아주 큰일 하시는 줄 알겠네. 하긴, 큰일이 일어나긴 했지.
협회에서 괴물이 날뛰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과연 우리의 자랑스러운 헌터협회 대한민국 지부에선 어떻게 뒤처리를 할까?
일단 ‘은폐한다.’에 내 전 재산을…… 응?
정리가 일단락되는가 싶은 와중에 직원 하나가 천장을 가리켰다. 좀 전에 뚫린 천장 구멍으로 보인 것은 사람의 모습,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타타타! 이제부턴 우리 말에 따라 줘야겠다!”
괴상한 웃음소리가 나고, 두 사람은 우리가 있는 2층으로 풀쩍 뛰어내렸다.
겨우 1층 차이지만, 높이로만 따지면 족히 4~5m. 보통 사람이었다면 자살행위다.
두 사람은 그나마 멀쩡한 무대 바닥에 착지, 기어코 무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무대 바닥은 완전히 박살 나며 먼지를 일으켰다.
완전 진상이잖아?
야구 모자를 쓴 근육질의 거한과 빨간 재킷의 안경잡이. 두 사람의 인상이 매우 낯이 익다. 그러고 보니 추가시험 발표 때 맨 뒤에서 수상쩍게 있던 그 2인조다!
“너희들이 싸우는 모습에 매우 감명받았다. 고작 삼류 응시자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수하더군.”
안경잡이가 머리에 묻은 먼지를 털며 말했다. 그러자 근육질 거한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주 잘 싸웠어!”
안경잡이는 안경을 닦으며 여유롭게 웃었다.
“난 ‘미스터 터틀’, 그리고 옆에 있는 이 친구는 ‘미스터 타이거’라고 한다. 준비한 쇼는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군?”
사람들은 웬 덩치랑 범생이가 관심종자처럼 구는 모습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했다.
사실 나도 좀 머리가 어지럽다. 아, 이건 뇌진탕 증세인가?
“이보세요!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농담이나 하고 있습니까? 응? 가만…….”
직원 하나가 자칭 미스터 터틀이란 안경잡이에게 가까이 가려다가 발을 멈췄다.
잠시 정적, 그리고 직원의 뒤통수에 식은땀이 흐른다?
“서, 설마…….”
“후후후.”
미스터 터틀은 안경을 고쳐 쓰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우리가 바로 플레…….”
“인마! 너 영욱이 맞지?”
미스터 터틀은 살짝 눈썹을 떨면서 안경을 매만졌다.
“뭐? 미안하지만, 그게…… 누구지?”
직원은 과감히 손을 뻗어 미스터 터틀의 이마를 힘껏 후려쳤다. ‘빡’ 소리와 함께 미스 터틀의 앞머리가 흐트러졌고, 지켜보던 미스터 타이거의 한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미스터 터틀은 무표정한 얼굴로 직원을 노려봤다.
“영욱이 맞잖아, 곽영욱! 지옥남고 3학년 1반! 만날 나한테 얻어터졌잖아? 야, 이거 고등학생 때 생각나네. 그땐 너 때문에 참 즐거웠는데…….”
직원은 의기양양해하며 이번엔 미스터 타이거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대범하게도 미스터 타이거의 몸 여기저기에 있는 근육을 손가락으로 꾹꾹 찔렀다.
“다 추억이지, 뭐! 어릴 때가 참 좋았어. 때리고, 돈 걷고, 옷 벗기고, 과녁 시키고, 변기에 머리 박기랑…… 또…….”
직원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미스터 타이거를 만진 후엔 미스터 터틀의 볼을 쭉 잡아 늘렸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다! 야, 그때 기분 한 번 또 느껴 보자! 내가 500원 줄 테니까 가서 담배 사 오고 거스름돈 2만 원 받아…….”
직원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미스터 타이거의 주먹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직원의 복부를 강타했다. 직원은 그 자세 그대로 날아가 망가진 좌석들 위로 떨어졌다.
너무 빠르게 날아간 탓에 직원과 충돌한 좌석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괜찮아요?”
직원을 구하기 위해 날 포함한 몇몇이 좌석 더미를 치웠다. 조심스럽게 직원의 몸을 빼냈지만, 직원의 상반신은 고슴도치처럼 플라스틱 파편과 철심 조각이 박혀 있었다. 거기에 피와 살점…….
“말도 안 돼. 겨우 펀치 한 방에…….”
방금 전까지 죄수고릴라도 두려워하지 않던 합격자들도 직원의 참혹한 모습에는 식겁하는 듯했다.
솔직히 나도 저 미스터 머시기들이 두렵다. 그러나 내가 저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다친 직원의 몸을 만졌을 때 이 사람에겐 H력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도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은 H력 덕분, 만약 일반이었으면 즉사할 충격이었다.
즉, 미스터 타이거란 녀석의 주먹은 H력을 가진 능력자를 일격에 보낼 만한 파괴력이 있단 뜻. 쉽게 말하면 죄수고릴라보다 더 위험한 놈이다!
“당신들, ‘플레잉’인가요?”
유정은 침착한 말투로 둘을 향해 물었다. 미스터 타이거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타타타!”
미스터 터틀은 자신과 동료를 번갈아 가리켰다.
“다시 소개하죠. 전 미스터 터틀. 이쪽은 미스터 타이거입니다. 저희는 플레잉. 여러분을 모시러 왔습니다.”
모시러 와? 이건 죽이러 온 분위기인데?
“당신들, 도대체……!”
승리에 고양된 탓일까? 구지태가 뜬금없이 앞으로 나서며 미스터 타이거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러자 미스터 타이거는 이를 드러내면서 구지태의 손가락을 와락 움켜잡았다.
“으악! 악, 악!”
귀에 들리는 소리는 오도독뼈를 씹었을 때의 그것. 뼈 갈리는 소리를 바로 앞에서 들으며 모두들 몸을 움츠렸다. 직접적인 통증보다도 손가락이 으스러진다는 사실 자체가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다.
“그만둬!”
급한 마음에 미스터 타이거에게 달려들어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그런데…… 야, ‘세상에 맙소사!’다.
뱃가죽이 죄수고릴라보다 더 질긴 게 느껴진다?
“놔 줘! 놔 줘! 놔 줘!”
미스터 타이거의 배를 때릴 때마다 구지태와 내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타타타! 웃기는 녀석이군. 지금 누구한테 그딴 소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나?”
미스터 타이거는 내 주먹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젠장,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
“으악!”
구지태가 H력을 담아 주먹으로 미스터 타이거의 팔을 때렸다. 이번엔 충격이 있는 것인지 구지태의 손가락을 쥔 손이 움찔거렸다.
“미스터 타이거.”
미스터 터틀이 미스터 타이거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미스터 타이거의 손이 활짝 퍼졌다. 구지태는 황급히 손가락을 빼 뒤로 물러났고, 모두의 이목은 미스터 터틀에게 쏠렸다.
“가급적이면 반항하지 않길 바란다. 우린 어디까지나 우수한 인재를 모집하러 온 거니까……. 순순히 협조하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차라리 옥수수랑 다이아몬드를 바꾸자고 그래!
“다시 한 번 말하지. 우리에게 이 이상 폭력을 강요하지 마라. 선택은 너희의 몫이다. 다 같이 죽든가, 아니면 고개를 숙여서 살아남을 것인가. 아! 참고로…….”
미스터 터틀은 검지를 곧게 펴 천장을 가리켰다. 대부분은 미스터 터틀이 직접 말해 주기 전까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내 머릿속엔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지나갔다.
“위층에서 도와줄 거란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그쪽은 ‘정리’됐거든.”
미스터 터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장이 추가로 무너지면서 파편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젠 싸울 생각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파편 사이로 보인 것은 부상당한 직원 십여 명과 수많은 무기. 발표장 위층이 연습장인 것을 감안하면 미스터 타이거와 미스터 터틀에게 대항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무기다!”
합격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파편 사이에서 무기를 빼내 손에 들었다.
아니, 지금 사람보다 무기가 먼저냐? 그리고 미스터 타이거와 미스터 터틀이 말리지 않네?
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