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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42화 (42/250)

42화

42화

한국 헌터에게 있어 성지라고 할 수 있는 협회, 그리고 그 중심인 한국 지부.

이곳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냥 행위의 중심이자 정점, 그리고 상징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저건’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질 않냐?

썅, 썅!

우람한 상체 근육과 상대적으로 빈곤한 하체.

온몸을 뒤덮은 줄무늬는 흑백으로 간결했고, 짧고 곧게 뻗은 털들이 거친 느낌을 주었다. 콧구멍에서 내뿜는 날숨은 우리에게까지 전달됐으며, 잔뜩 일그러진 눈과 눈이 마주쳤다.

아, 저거 이름이 뭐더라? 아는 괴물인데…….

현재 5층에는 우리하고 카페를 지키는 아르바이트생뿐,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업무를 보거나 자격시험 때문에 휴식 구역에 올 수 없었다.

이서현이 ‘저게 왜 저기 있는 거지?’로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아저씨는 알바생을 걱정하며 괴물의 움직임을 살폈다.

“자네, 간부니까 당연히 한 실력 하겠지? 저 정도는 맨손으로도 충분히 제압 가능할 거야. 그렇지?”

아저씨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서현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서현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기대와 정반대였다.

“전 행정 전문이라 직접 싸우는 쪽에는 젬병인데요? 어떻게 여자한테 싸우라고 하실 수 있죠? 제가 몸으로 뛰는 사람이면 이렇게 차려입고 다니겠어요? 하이힐 신고 뛰는 게 얼마나 고문인 줄 아세요?”

“이런 염병! 그럼, 당장 핸드폰으로 다른 사람한테 전화 좀 걸어 봐! 저게 지금 계속 우릴 보고 콧김으로 간 보는 게 안 느껴져? 지금 우리 엄청 위험한 상황이거든? 윗사람이면 아랫사람 소환해서 함부로 부릴 줄도 알아야지!”

“저도 그 정도 생각은 할 줄 알아요! 그런데…….”

이서현은 울상이 된 얼굴로 탁자 아래 내려놨던 손을 들어 올렸다.

손에 쥔 스마트폰 액정에는 ‘신호 없음’이란 기호가 커다랗게 떠 있었다.

“전화가 불통이에요! 갑자기 전파가 통하지 않게 됐어요. 전화, 문자, 메신저, 인터넷까지 전부 먹통이라고요!”

“제기랄, 어쩐지 오늘은 재수가 좋더니만……. 좋다고 처먹은 내가 미친놈이군.”

우리는 맨손.

굳이 녀석과 싸우는 위험을 자초하고 싶지 않다. 여기선 저놈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아저씨는 손짓으로 우리에게 신호를 했고, 우리는 다 함께 자세를 낮춰 탁자 밑으로 몸을 숨겼다. 난 카페 알바에게도 알려 몸을 숨기게 했다.

“어떻게 우리를 탈출한 걸까요? 저건 분명 연말에 있을 축제를 위해 공수해 온 건데…….”

이서현은 울먹이며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헛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내가 여기 직원이야? 부장님께서도 모르는 일을 손님인 내가 알면 그게 정상이냐? 나라꼴…… 아니, 협회꼴 잘 돌아간다!”

아저씨는 소리를 높이려다가 아차 싶어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일단 손짓으로 기어가자는 뜻을 아저씨와 이서현에게 전했다.

“순서는?”

아저씨의 말에 이서현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전 맨 마지막에 갈게요. 도저히 앞장은 못 서겠어요.”

“아니, 자넨 여기 사람이잖아? 그럼 자네가 앞장을 서는 게 맞지 않나? 여기 구조도 잘 알 거 아니야?”

“구조는 다 거기서 거기죠!”

이런 때에 아웅다웅하는 건 자살행위다.

빠르게 두 사람에게 속삭였다.

“제가 맨 앞에서 갈게요. 대신 부장님이 중간에서 방향을 알려 주세요.”

결국 순서는 나, 이서현, 아저씨 순으로 정했다. 우리는 탁자에서 탁자로, 장식을 벽 삼아 은밀하게 녀석의 시야 밖으로 향했다.

일단 계단까지만 가면 그다음엔 냅다 뛰면 될 일이다.

“이야! 나이는 먹었어도 관리 열심히 하나 봐? 뒤태는 아직도 20대 같은…… 아얏!”

이서현이 반사적으로 뒷발차기를 날려 구두 굽으로 아저씨를 찍은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참 한가하신 분이다.

“뭐하는 짓이야? 이러면 내가 상당히 호색한처럼 보일 거 아니야? 그러다가 사람들이 우리 사이에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오해하면 어떻게 해? 난 그쪽한테 전혀 마음이 없단 말이야! 이런 식으로 사람 꼬시는 건 곤란해!”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하세요! 이런 상황에 아직도 농담이 나오세요?”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우리는 무사히 계단에 도착했다.

계단과 연결된 벽에 기대 몸을 일으켜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두고 온 알바생이 좀 안쓰럽지만,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아저씨는 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괴물의 상태를 지켜본 후 엄지를 세웠다.

“멍청한 놈이라 다행이구먼.”

“빨리 내려가요, 무섭다고요!”

이서현은 다리를 떨며 간신히 서 있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또 실없는 소리를 날렸다.

“걱정 마. 난 절대 여성을 잡아먹지 않아. 그냥 감상만 할 뿐이지. 난 ‘신사’라고! 섬으로 당일치기로 놀러 갔는데, 어쩌다가 배가 끊기고, 어쩌다가 여관방이 하나뿐이라 둘이 한 방에서 자게 돼도, 난 절대 선을 넘지 않아. 대신 상대가 넘어오게 만들지.”

이서현은 기가 막혔는지 아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일일이 반응하기도 귀찮아 보인다.

“자네는 먼저 내려가게. 아무래도 카페 알바가 좀 걸리거든.”

맞는 말이다. 알바생을 그냥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네? 그런 소리 하지 마시고 어서 내려가요!”

아저씨는 이서현의 등을 살며시 밀면서 배시시 웃었다.

“혹시 나 걱정해 주는 거야?”

“수고하세요!”

이서현은 뒤도 안 돌아보고 후다닥 계단을 내려갔다.

아저씨는 계단을 돌면서 사라져 가는 이서현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거, 참. 사람 인정머리 없기는……. 세 번 정도 같이 가자고 권했으면 갔을 텐데…….”

“그건 그렇고, 어떻게 저 녀석을 상대하죠? 전 이제 H력도 없는데요?”

H력이 있어도 맨손으로 싸울 수 있을까? 갑자기 루호가 보고 싶다.

“나한테 맡겨라.”

아저씨는 H력을 전신에서 내뿜으며 천천히 괴물 앞으로 걸어갔다.

탁자만 바라보고 있던 괴물은 갑자기 계단 쪽에서 아저씨가 다가오니까 깜짝 놀라며 고함을 질렀다.

우람진 양팔로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로 위협하는 행위.

이는 완전한 전투 준비를 의미한다.

“끌끌끌! 뭐 하는 거야? 죄수고릴라!”

이름을 듣고 나서야 괴물의 정체가 기억났다.

고릴라형의 괴물 중에서 줄무늬를 갖고 있는 녀석, 분명 3급의 ‘죄수고릴라’였다. 거대한 육체에서 나오는 괴력은 단순 파워뿐만 아니라 속도에서도 위협적이었고, 야생 특유의 거친 감각과 부드러운 몸놀림은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나도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죄수고릴라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남쪽에 사는 괴물이라 일반적으로 보기 힘들다.

아저씨는 죄수고릴라를 향해 중지를 올리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난 한돈이라고 한다! 왜 한돈이냐고? 나도 몰라, 인마! 돼지처럼 생겨서 그런가? 끌끌끌. 하지만 난 그런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세상을 우습게 본다! 허례허식과 가식, 이중적인 연놈들의 세상에서 난 진실하지. 난 언제나 한결같다! 그것이 설령 오만과 증오로 얼룩졌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난 당당해! 떳떳하다고!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놈의 ‘두유 노 김치?’ 좀 그만…….”

죄수고릴라는 괴물, 아저씨의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호기심이라도 생겼는지 잠시 귀를 기울였던 죄수고릴라는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길어지자, 눈살을 찌푸리며 단숨에 주먹을 날렸다.

성인 몸집만한 주먹이 아저씨의 얼굴을 정통으로 강타하면서 살점과 살점 사이에서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는 너무나 허무하게 주먹을 맞고 날아가 조금 전 사이다를 마셨던 탁자 위에 널브러졌다.

“아저씨!”

아저씨는 숨만 헐떡거리며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꼴이었다. 얼굴은 어느 만화의 찐빵맨처럼 퉁퉁 불어서 새빨갰고, 한쪽 눈에서는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코는 완전히 뭉개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입술은 뜯겨나가 너덜너덜했다.

“아저씨…….”

단 한 방, 단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겨우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사람 하나가 너덜너덜해졌다.

눈물이 핑 돌며 죄수고릴라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죄수고릴라는 그것으로 성이 안 차는지 단숨에 아저씨에게로 달려들었다. 내가 막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H력 없이 놈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놈은 날 신경도 쓰지 않으며 아저씨를 잡아 몽둥이 휘두르듯 여기저기 패대기쳤다.

“그만둬!”

아저씨에게서 하얀 조각들이 튀어나왔고, 관절이 반대 방향으로 꺾이면서 사람이라기보다는 쌍절곤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다. 그럼에도 아저씨의 입에서는 아주 작은 신음 소리, 비명 하나 나오지 않았다.

죄수고릴라는 너덜너덜해진 아저씨를 집어 던지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개자식!”

나도 모르게 죄수고릴라를 때렸다.

그냥 마구잡이식 펀치. 동네 꼬마들이 싸움할 때나 쓰는 이런 방식이 거구의 괴물에게 통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가 없다.

죄수고릴라는 귀찮은 듯 몸을 털면서 날 쳤다. 그것은 타격이 아닌 단순한 몸부림. 그러나 난 그것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아저씨완 정반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쳐 떨어지니, 눈앞이 빙글 돌았다.

애초에 체격에서부터 급이 다르다.

“제기랄…….”

이제 겨우 정식 헌터가 되려는데…… 어째서?

이를 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지만, 곧장 쓰러졌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운 걸로 봐선 뇌진탕 같다.

죄수고릴라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아마, 아저씨에게 그랬듯이 날 마구잡이로 휘두르겠지. 놈이 온다면 이로 깨물어서라도 아저씨의 복수를 할 것이다.

“어?”

죄수고릴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뭔가가 녀석의 다리에 붙어 있다. 녀석도, 그리고 나도 처음으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의문’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생명 하나가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바르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죄수고릴라는 눈을 비비면서 자신의 다리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눈을 비볐다.

“끌끌끌! 어딜 가? 나랑 좀 더 놀아야지?”

아저씨는 멀쩡한 몸으로 죄수고릴라의 다리를 붙들고 있었다.

방금 전에 분명 반죽음 상태였음에도 지금은 상처는커녕 생채기 하나 없다? 다만 찢어지고 구멍이 난 옷과 엉클어진 머리칼이 아저씨가 정말로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려 준다.

죄수고릴라는 곧 좀 전처럼 아저씨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그저 때리고, 휘두르고, 내팽개치는 것이 전부. 아저씨는 이번에도 무력하게 죄수고릴라의 몸짓에 몸을 빼앗겨 처참하게 망가졌다.

놈은 아저씨를 나에게로 던졌다. 내 앞에 떨어진 아저씨는 아까처럼 참혹한 몰골이었다.

“끌끌끌! 뭘 보냐? 사람 죽는 거 처음 봐? 너도 죽어 봤잖아?”

아저씨는 헐렁해진 턱과 혀를 움직여 말했다.

“아저씨…….”

사냥 일을 하다 보면 사람 죽는 건 지겹게 보게 된다. 그런 트라우마를 견디며 버텨 낼 수 있는 사람만이 헌터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이름난 헌터들에겐 마음의 멍이 있다고 해도 좋다.

“어서 가라. 내 생각엔 발표장 쪽에도 뭔 일이 났을 것 같구나. 넌 거기로 가라. 여긴 내가 맡으마.”

‘여긴 나에게 맡기고 먼저 가!’는 사망플래그잖아요!

“하지만…….”

“괜찮아. 지금의 넌 어차피 짐만 될 뿐이야. 네가 안전해지면 나도 적당히 빠질 거야.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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